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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93화 (93/255)

93화. 쾌속선 (2)

“……일본에서 성주님께서 제시한 금액대로 아이템을 구매하겠다고 합니다.”

붉은 석양이 지는 저녁.

미스릴 괴 100개 3조.

그린 피쉬 10마리 1조.

바이올렛 피쉬 10마리 1조.

최영식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대로 거래를 성사시키고 돌아왔다.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수완이 좋은 자였다.

“금액이 커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결정을 했네.”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최영식을 쳐다봤다.

괜히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일본에 가지 않아도 되고 일본은 데스나이트를 처치할 수 있으니 아이템을 좀 비싸게 구매한다 해도 서로 만족할 만한 거래인 듯했다.

“성주님이 직접 오셔서 삼백조를 주는 것보다는 싸게 먹히니까요. 헌데 일본에서 저를 레이드 지휘관으로 오라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흠…….”

“가는 거야 문제가 없지만, 미스릴이 부족한 게 염려가 됩니다. 미스릴 괴 백 개로는 턱없이 부족할 테니.”

최영식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미스릴 화살을 근 한 시간 동안 맞고서야 쓰러진 데스나이트.

미스릴 괴 백 개로 화살을 만들어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다.

최하 미스릴 괴 천 개는 있어야 데스나이트를 처리할 수 있을 듯했다.

최영식의 시선이 발키리 길드원들이 메고 있는 화살통에 가 있었다.

보아하니 미스릴 화살을 빌려 가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오조원.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백억 원이면 살 수 있는 것들을 몇백 배로 거래를 성사시켜왔는데 조금 신경을 써줘도 될 듯했다.

“수거해 올 자신 있어?”

“빌려주시겠습니까?”

“네가 간다면 울프 길드원들도 함께 갈 텐데 모른 체할 수야 있나. 내 사람들을 엄한 타지에서 죽게 할 수는 없지. 박민정 부마한테 얘기해 놓을 테니 출발할 때 가지고 가.”

“지금 내 사람이라고 하셨습니까? 저 싫어하는 거 아니었습니까?”

“싫기는. 아까는 네가 날 열받게 했잖아.”

“성주님…….”

글썽글썽.

최영식이 눈물을 글썽이며 날 그윽하게 쳐다봤다.

내 사람이라는 말에 감동이라도 받은 모양이었다.

“아침에도 얘기했지만 일본 길드와 동맹을 맺으면 좀 어때? 근데 거래하는 데 나라와 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하란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다시는 실망하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하잖아. 우리 앞으로 잘해 보자.”

토닥토닥.

난 최영식의 등을 쓰다듬으며 저 멀리 게이트 옆에 있는 해변을 쳐다봤다.

“영식아, 네가 일본에 갔다 오면 난 여기 없을 거다. 영지로 가서 배 만들어서 나올 테니까 여기다가 선착장 좀 만들어 놔.”

“제가 그 일을 맡아도 되겠습니까?”

“왜 싫어?”

“아닙니다. 성주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건데 당연히 따라야죠. 최선을 다해 튼튼하게 만들어 놓겠습니다.”

최영식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달달달 달달달.

달달달 달달달.

이른 아침.

무의도로 내려갔던 이부성과 이세훈이 경운기를 타고 감염자와 가족들을 인솔해 왔다.

얼핏 봐도 수천여 명은 되어 보였다.

이제 영지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온 듯했다.

“공사 자재와 식자재도 다 제대로 챙긴 거지?”

“네. 형.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돼요.”

영지민과 물품 리스트를 다시 한번 확인한 이부성이 날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일본이 아이템 값을 비싸게 사가 줘서 영지로 복귀하는 작업이 쑥쑥 진행됐다.

돈.

돈.

돈.

지구는 정말 돈만 있으면 정말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인 듯했다. 근데 대부분의 사람은 다 그 빌어먹을 돈이 없었고.

“좋아?”

“네. 좋네요. 영지에 있을 때는 너무 불편하고 힘들어서 지구로 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여기서 머물다 보니 그곳이 그리워졌어요.”

“너도?”

“형도요?”

“응.”

끄덕끄덕.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참 이상했다.

나 역시 스카이 캐슬에 있을 때는 그렇게 지구로 돌아오고 싶더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하루라도 빨리 영지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느새 내 마음속에선 이곳이 아닌 스카이 캐슬이 내 집이라고 강력하게 인식이 되어 버린 듯했다.

푹신한 침대와 따듯한 방에서 자는데도 내 집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낯설고 어색했다.

그런데 그때,

「긴급 속보입니다. 사흘 전 일본으로 건너갔던 울프 길드가 데스나이트 세 마리를 모두 처치했다고 합니다. 울프 길드는 플로라 길드와 함께 부산에 있는 게이트를 방어하는 길드로서…….」

「여기는 울프 길드와 데스나이트가 전투를 벌였던 처참한 현장입니다. 울프 길드는 일본의 S급 헌터 겐지마저 부상을 입히고 일본의 수천 명의 헌터들조차 피해 다니기만 했던 데스나이트를 단독으로…….」

“성주님!”

김용규 본부장이 태블릿PC를 손에 들고 호들갑을 떨며 내게 달려왔다.

“성주님, 울프 길드가 데스나이트를 처치했다고 합니다.”

“네. 잘됐네요. 그럼 전 바빠서 이만.”

“성주님…….”

“왜요? 더 할 말이 있나요?”

“그게 아니라 정말 이대로 돌아가시려고 하는 겁니까?”

“영지를 너무 오래 비웠습니다. 데스나이트도 해결이 됐으니 이제 돌아가야죠.”

“진정 이곳에 계속 머무를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는 건가요?”

김용규가 세상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날 그윽하게 쳐다봤다.

왕복 서른여섯 시간. 아니 이제 경운기가 있으니 절반 정도는 줄어들 것이다.

근데도 불안한 모양이다.

지구에 몬스터 웨이브가 생겨서 내게 연락해도 열여덟 시간은 지나야 내가 도착할 수 있을 테니까.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그의 성향이 파악되었다.

“누가 보면 제가 좋아서 헤어지기 싫어서 그러는 줄 알겠네요.”

“끙…….”

김용규가 앓는 소리를 내며 내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이내,

“좋아합니다.”

“네?”

“성주님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김용규의 입에서 전혀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버팔로 일도 그렇고 이번 일본 지원 건도 그렇고 성주님 곁에 있으면서 정말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배웠습니다.”

“……?”

“성주님께서 지금 이 나라와 정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헌데 만약 제게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성주님이 마음에 드실만한 나라로 바꾸어 놓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이 나라와 국민을 버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깜빡이도 켜지 않고 너무 훅하고 들어와 뭐라 대답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내가 말하는 ‘우리’에 대한민국은 없었으니까.

난 땅굴로 들어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영지민을 쳐다봤다.

“김용규 본부장님 저기 스카이 캐슬로 가기 위해 서 있는 사람들 보입니까?”

“네. 보입니다.”

“행복해 보이나요?”

“흠…….”

좀비에게 감염을 당했던 사람과 가족들. 그리고 기술자들까지.

그들의 얼굴엔 두려움과 불안함, 아쉬움과 같은 것들이 교차해 있었다.

짧게는 십수 년. 길게는 수십 년 동안 지구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들이었다.

“제가 보기엔 다들 두려워하는 것 같네요. 아무리 대한민국이 살기 빡빡하다고는 하나 몬스터가 우글거리는 던전 속 마을보다는 나을 테니 말이에요.”

“……?!”

“근데도 저렇게 다들 절 따라가겠다고 나선 겁니다. 몬스터에 대한 두려움을 감내할 만큼 지금 이 나라에 사는 게 더 힘들고 고단해서.”

“하아…….”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내 얘기를 들으며 영지민을 쳐다보던 김용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절 좋게 봐주시고 제 힘이 필요한 것도 알지만 전 지금 저를 믿고 따라나서 준 저들을 챙기기도 벅찹니다. 정말 나라를 위하신다면 제게 목을 맬 것이 아니라 앞으로 저런 사람들이 나오지 않게 스스로 힘을 키우세요.”

“…….”

“저희 영지에서 처음 좀비 감염자가 생겼을 때 박민정 부 마스터가 그러더군요. 청방을 쳐야겠다고.”

“청방을 치려고 했다고요?”

“만약 엔트 주사를 만들지 못했다면 저희 헌터들은 분명 중국에 들어가 청방을 치고 성수를 빼앗아 왔을 겁니다.”

“헐…….”

“만약 우리가 그랬다면 본부장님께선 그때도 우리와 함께하려고 했을까요?”

“…….”

“지금 제 물음에 ‘네’라고 대답을 할 수 있을 때 저랑 함께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제가 바라는 나라이니까. 약속한 대로 미스릴은 이아영과 플로라 길드 사람들에게 들려 보내드리죠.”

“…….”

내 얘기에 생각이 많아졌는지 넋이 나가 있는 김용규를 뒤로 하고 난 땅굴로 걸어갔다.

“출발하죠.”

“네. 알겠어요. 출발!”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달달달 달달달.

달달달 달달달.

커다란 뿔 나팔 소리와 함께 발키리 길드원들을 선두로 사람들이 경운기를 타고 땅굴로 들어갔다.

* * *

달달달 달달달.

달달달 달달달.

1구역 20km 4시간.

2구역 15km 3시간.

3구역 10km 2시간.

4구역 15km 3시간.

5구역 20km 4시간.

6구역 10km 2시간.

“죽겠네.”

땅굴에 들어온 지, 네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야 갓 4구역 입구에 도착했다.

경운기를 타고 이동을 했지만 워낙에 길이 좁고 울퉁불퉁해서 걸어서 가는 거와 크게 차이가 없었다.

그나마 무거운 공사 자재와 식자재를 편하게 옮기는 것은 좋았지만 차라리 걸어가는 게 나을 정도로 엉덩이와 허리가 쑤셔왔다.

“으쌰.”

“오빠 어디 가세요?”

“엉덩이가 아파서 잠깐 걸어가려고.”

“그럼 저도 같이 걸을래요.”

수정이가 나를 따라 경운기에서 뛰어내렸다.

각성한 그녀와 나는 차라리 이렇게 걸어가는 게 경운기를 타는 것보다 더 편안했다. 아니 각성하지 않은 성인 남자들도 좀이 쑤셨는지 경운기에서 내려 걷는 사람이 여럿 보였다.

이래서 개척의 시작을 도로라고 하나 보다.

일본에 아이템을 팔아서 어마어마한 금액이 손에 들어왔는데도 영지로 가는 고생은 크게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

“건설 회사에 알아보니 게이트에서 영지까지 땅굴을 넓히고 공사를 해서 지하철이 다니게 하려면 적어도 몇 년은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겠지. 그래서 돌아가면 바로 배부터 만들려고.”

“네. 그래야 할 것 같아요. 영지를 발전시키려면 계속해서 공사 자재를 들여와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옮겼다간 수십 년은 걸릴 것 같아요.”

수정이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가는 길이 험해서 그런지 사람들의 얼굴에 두려움이 더 커져 있는 게 보였다.

“반 정도 왔어요. 힘들어도 조금만 참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마치 군 시절 행군을 인솔했던 장교처럼 속도를 조절해가며 사람들의 안위를 살폈다.

“괜찮냐?”

“어, 지금까지는. 근데 이거 두 번은 못 할 것 같다. 네가 왜 선박 기술자들을 알아보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네.”

이세훈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뒤따라오는 경운기를 쳐다봤다.

그의 시선 끝엔 베트남 출신 선박 기술자들이 타고 있었다.

이미 나무도 가공을 다 해 놓았으니 저들까지 합세한다면 한 달 이내로 배를 만들 수 있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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