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화. 쾌속선 (1)
“얼마?”
“네?”
“그쪽에서 사례금을 얼마 정도 얘기를 하던가요?”
“……?!”
“그런 얘기는 안 해 보고 온 건가요?”
최영식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확신에 찬 얼굴로 일본이 사례를 섭섭지 않게 해 줄 거라 말하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 줄 건지는 물어보지 않은 모양이다.
“……원하는 금액을 말씀해 주시면 제가 일본에 가서 약속을 받아 오겠습니다. 성주님께서 오신다고만 하면 일본에선 돈이 얼마가 됐든 수락을 할 겁니다.”
“그래요? 그럼 데스나이트 한 마리에 백조씩 받는 걸로 약속을 받아와 주세요. 그럼 일본에 파견 가는 걸 긍정적으로 생각해 볼게요.”
“네? 한 마리에 백조요?”
최영식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내 계산에는 나름 합리적인 금액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저런 표정을 지으면서 리액션을 하니 되레 나까지 당황스럽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한 해 국방비 예산이 삼십조 이상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아마 일본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수십 년 동안 그런 거금을 쏟아붓고도 막지 못하고 있는 데스나이트를 처치해 주는데 당연히 그 정도는 받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최영식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얼굴로 핸드폰 꺼내 검색을 시작했다.
2016 국방비 (십억 US$) 순위
1. 미국 604.5
2. 중국 145.0
3. 러시아 58.9
4. 사우디아라비아 56.9
5. 영국 52.5
6. 인도 51.1
7. 일본 47.3
8. 프랑스 47.2
9. 독일 38.3
10. 대한민국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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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식은 나랑 얘기하던 것도 잊었는지 한동안 핸드폰을 보고 눈을 떼지 못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우리나라 한 해 국방비가 삼십조나 되는 걸 몰랐나 보다.
아니 어지간한 사회 기득권층조차 관심이 없는데 일반 사람들은 모르는 게 많을 부분이었다.
나 역시 군대에 있을 때조차 국방비로 얼마나 쓰이는지는 잘 몰랐으니까.
근데 언젠가부터 택시에 타면 열에 아홉은 기사님들께서 정치 얘기를 하셨고 고개를 끄덕이며 대충 장단을 맞춰주다 들은 얘기였다.
천조국 미국.
모르는 사람들은 미국이 돈이 많아 천조국이라 불리는지 아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미국이 그리 불리는 진짜 이유는 국방비로 어마어마한 돈을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육백조.
미국은 2위에서 10위에 랭크된 국가들의 국방비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었다.
“흠! 금액이 너무 큰데…….”
한참동안 핸드폰을 쳐다보던 최영식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내가 일본으로 파견가면 간이고 쓸개고 다 받아 올 수 있을 것처럼 굴더니 백조라는 말에 태도를 달리했다.
“최영식 마스터님, 지금 저랑 장난하십니까?”
“네?”
“일본이 지금 위기에 빠져 제 도움이 필요한 건 알겠어요. 근데 그 정도 약속도 받아 올 자신이 없으면서 지금 저한테 일본으로 가서 세 마리나 되는 데스나이트랑 싸우라는 말입니까?”
난 잔뜩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최영식을 노려봤다.
Give and take.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근데 최영식의 말대로 하면 난 일본에 가서 목숨을 바쳐 싸워야 하지만 그 보상이 미비할 듯했다.
내가 느낀 최영식은 give and take를 함에 있어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더 크길 원하고 그렇게 거래를 진행하는 것 같은데 나에 대한 배려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 새끼 날 호구로 본 모양이다.
“A급 헌터에 한 길드의 마스터씩이나 되시는 분이니 날 만나기 전에 분명 내 조사를 했을 거예요? 그럼 우리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했던 것도 알 테고.”
“…….”
“대답.”
“네, 알고 있습니다.”
최영식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본이라고 하면 치를 떠는 집안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일본을 도우러 가야 한다면 적어도 그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
“아니 당신은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 먼저 약속을 받아와야 했어요. 우리나라에도 위기가 빠질 수 있으니 그때를 대비해서라도 돕자는 개소리 말고요. 제겐 그 말이 협박처럼 들렸거든요. 그래서 지금 기분이 아주 많이 더러워요.”
“……?!”
부글부글.
최영식과 얘기를 나누고 얼굴을 보고 있자니 마나가 들끓었다.
내가 왜 한국도 아닌 일본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건지 짜증이 났고 내게 이런 고민을 안겨준 최영식을 보고 있자니 스멀스멀 화가 끓어올랐다.
-죽여 버릴까?
‘아니 잠시만.’
내 분노를 느꼈는지 운디네가 정형화되어 나타나 내 옆에 자리했다.
“사람들에게 지탄받을 걸 알면서도 일본 놈들이랑 손을 잡고 울프 길드를 운영하는 거 보면 지탄받는 것을 감수할 정도로 큰돈이 생겨서 아닙니까?”
“끙…….”
“근데 나는 우리나라에도 위험이 생길 수 있으니 얼마를 줄지도 모르는 사례를 약속받고 지원 가라고? 최영식 마스터, 아니 영식아.”
“……?!”
“조선이 왜 망했는지 알아?”
“……?!”
“바로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망한 거야. 나라가 어려우면 스스로 극복할 생각을 해야지. 일본이니, 중국이니, 러시아니 하면서 친하게 지내 도움을 받아야 한다며 내부 분열을 시키고 개소리를 지껄였던 놈들 때문에.”
“……?!”
부들부들.
내 말이 불쾌한지 최영식의 얼굴이 불게 달아오르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허나 그뿐이었다.
그는 내 말에 반박하기는커녕 손가락도 까딱하지 못했다.
아마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간 내년 오늘이 그의 제삿날이 될 거라는 걸.
그의 불쾌함보다 내가 훨씬 더 많이 화가 나 있었으니까.
“세계 대전을 일으키고 패전을 하고도 왜 일본이 지금까지 떵떵거리며 잘 살 수 있었는지는 알아?”
“……?!”
“그것도 너 같은 새끼들 때문이야. 독립했으면 한마음, 한뜻으로 으쌰으쌰해도 모자랄 판에 너 같은 새끼들이 지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외세에 흔들려 또 내분을 일으켰거든.”
“……?!”
“근데 그중에 네가 제일 크게 잘못한 건 날 호구 취급했다는 거야. 너도 그렇겠기만 호구 취급을 받을 때만큼이나 기분이 더러울 때가 없는 법이거든. 넌 살아 있는 것보다 죽는 게 차라리 이 나라와 나한테 이익이 될 것 같네.”
털썩.
“자, 잘못했습니다.”
내 분노를 느낀 것일까.
최영식이 의자에서 일어나 내 앞에 걸어와 무릎을 꿇었다.
“쿨럭!”
또 마나 필드가 발동됐는지 최영식이 괴로워하며 피를 토해냈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진정하세요. 이러다 죽겠어요.”
박민정이 뛰어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제발.”
그녀가 애원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아…….”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마나를 거뒀다.
마음 같아선 당장 이 자리에서 끝장내고 싶었지만, 박민정의 얼굴을 보며 억지로 참아 냈다.
“영식아.”
“……?”
“대답.”
“네, 성주님.”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뭐라고?”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
최영식이 하얗게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선 목에 핏줄이 설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네가 일본 길드랑 동맹을 맺든 말든 난 상관 안 해. 근데 나와 거래를 하고 싶으면 그들이 아닌 내가 그리고 대한민국이 이익되는 방향으로 머리를 굴려야 할 거야.”
“네, 알겠습니다.”
최영식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태훈과 데스나이트를 같이 처치한 공로를 인정하고 박민정 부마스터 얼굴을 봐서 이번엔 이쯤에서 넘어가는 걸로 할게. 헌데 만약 한 번만 더 이런 터무니없는 제안을 해오면…….”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성주님 말처럼 돈 때문에 일본 길드와 동맹맺기는 했지만 전 한국인입니다.”
최영식이 비명이라도 지르듯이 한국인이라고 소리 높여 대답했다.
“믿어보지. 미스릴 괴 한 개에 삼백억.”
“네?”
“가격이 올랐어.”
“그럼 백 개면 삼조인데…….”
“미스릴 화살로 데스나이트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됐으니 가격을 좀 올려도 되는 거 아닌가?”
“그럼 일본 쪽에 공략 방법을 알려줘도 되는 겁니까?”
“알려야지. 지금으로선 그게 더 돈이 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럼 혹시 그린 피쉬랑 바이올렛 피쉬도…….”
“마리당 천억 정도로 하지.”
“혹시 엔트 주사도 팔 의향이…….”
찌릿.
난 아무런 말 없이 최영식을 노려봤다.
분명 방금 죽다 살아난 것을 느꼈을 텐데 계속해서 일본에 필요한 것의 판매 여부와 금액을 확인했다.
“지금이야 데스나이트 때문에 신경 쓰지 못하고 있지만 데스나이트가 해결되면 감염자들의 처우에 대해 일본에서도 고민하게 될 겁니다.”
“엔트 주사는 영지에 가서 양을 확인해 봐야 해. 지금으로선 우리도 그리 여유롭지 않으니.”
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마음 같아선 엔트 주사도 일본에 비싸게 팔아먹고 싶었지만 재고가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스카이 캐슬에도 언제, 어떻게 언데드 몬스터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니 비상용으로 일정량은 보관하고 있어야 했다.
“외교 문제도 외교 문제지만 인도적으로 생각해도 과거의 일로 무작정 일본의 어려움을 외면할 생각은 없어. 무슨 말인지 알지?”
“네!”
“돈 가져와. 돈. 내가 됐든 아니면 내가 소유하고 있는 아이템이 됐든. 도움이 필요하면 그에 상응하는 재물을 약속받아 와.”
“네, 알겠습니다. 일본 쪽과 얘기를 해 보고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최영식이 내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제 내 의중을 알고 그에 따라 몸을 움직일 모양인 듯싶었다.
아마 그게 그에게도 더 좋을 것이다.
가격이 오른 만큼 그도 중간에 서 떼먹는 게 더 많아질 테니까.
내가 내 목숨마저 도외시 한 채 지키고 보호해야 할 사람은 내 가족과 영지민이었고.
내가 아무런 조건 없이 지킬 사람은 대한민국 국민까지였다.
그 외에 사람들은 충분한 대가가 동반되지 않는 이상 도와주거나 지킬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역시!”
“……?”
옆에서 잠자코 지켜보고 있던 김용규가 세상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날 그윽하게 쳐다봤다.
“뭐가 ‘역시’라는 거죠?”
“독도는 우리 땅이죠!”
“…….”
김용규는 내 물음에 동문서답을 했다.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보아하니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오해의 싹이 싹트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최영식 때문에 내가 너무 흥분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나 보다.
“본부장님.”
“네. 말씀하십쇼. 성주님. 경청하겠습니다.”
“잊고 있나 본데 우린 서로의 이익과 뜻이 맞아 잠시 손을 잡고 있을 뿐. 같은 편이 아니에요. 괜한 기대하지 마시고 볼일 다 보셨으면 나가세요.”
“방금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짝짝 짝 짝.
“대. 한. 민국!”
“뭐하십니까?”
“지금 박수 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성주님이 아무리 외면을 하려고 해도 성주님은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김용규 본부장을 쳐다봤다.
참 재미있는 양반이었다.
진짜 난 그의 박수를 따라 할 뻔했다.
2002년 월드컵을 겪은 한국인이라면 너무 익숙한 리듬이었기에.
나도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걸 거부할 생각은 없었다. 허나 그뿐이었다.
난 김용규와 이아영처럼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내 사람의 위기를 외면할 자신도 없었고 그러기도 싫었다.
“본부장님이 안 나가면 제가 나가죠.”
“성주님…….”
난 도망치듯 회의실을 부랴부랴 빠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