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데스나이트 (3)
「긴급 속보입니다. 인천 게이트에서 출몰한 데스나이트는 태백산맥 길드의 S급 헌터 안해용 님께서 처치를 했다고 합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안해용 님께서는 헬퍼로서 던전에 들어가……. 현재 헌터 협회의 공식적인 브리핑을 기다리고 있지만, 현재 알려진 바로는 대한민국 최초의 S급 등급 헌터뿐만이 아니라 세계 최초로 그 이상을 기대…….」
「태백산맥 길드는 이번 데스나이트를 처치했을 뿐만 아니라 좀비에 감염됐던 인천의 희생자들을 모두 무상으로…….」
“형, 이것 좀 보세요. TV 채널마다 다 형 얘기로 도배가 되고 있어요!”
아침 6시.
길고 길었던 어둠이 지나가고 해가 떠오르는 이른 아침 이부성이 태블릿PC를 손에 들고 호들갑을 떨며 내게 다가왔다.
“에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난 잔뜩 신이나 호들갑을 떨고 있는 이부성을 뒤로하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국민 영웅.
지금 국민은 영웅을 필요로 했다.
IMF 시절, 박찬호와 박세리가 국위 선양을 하며 온 국민의 울적한 마음을 달래줬던 것처럼 김용규는 몬스터 웨이브로 인한 국민의 불안함을 내가 해소해주길 원했고 그 결과가 이거였다.
대한민국 사람들,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일본처럼 감당하지 못할 몬스터의 등장을 두려워해 돈 좀 있다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언제든 자신의 고국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S급 헌터가 없는 대한민국은 그 상황이 더 심각했고.
그 증거로 평당 오천만 원이 넘었던 강남의 땅값이 지금은 절반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나야 뭐 어차피 스카이 캐슬에 들어가 살 거라 강남 땅값이 떨어지든 말든 상관이 없었지만 버팔로 길드와 관련된 자들을 계속 처단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수락하게 됐다.
데스나이트를 처치한 대한민국에 유일무이한 S급 헌터가 버러지 같은 놈들을 좀 처단한다는데 함부로 도발하기는 어려울 테니까.
근데 그로 인해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이거 이대로 꿀꺽하기에는 너무 양심에 찔리는데…….”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던전 광장에 쌓여 있는 컨테이너를 쳐다봤다.
적당히 일, 이천억 원 정도면 모른 체하고 쓱싹 하려고 했는데 금액과 일이 너무 커졌다.
짐작건대 이곳에 있는 것들 대부분은 누군가의 땀과 눈물을 훔쳐 마련한 것일 것이다.
국민 영웅 소리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절로 생각이 깊어졌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그저 나쁜 놈들 것이니 좀 가져도 되겠다 싶었는데 말이다.
아버지가 어렸을 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맛있어 보인다고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라고.
나쁜 놈들 것이야 수백, 수천억 원을 뺏어도 두 발 뻗고 잘 자신이 있었지만, 이것들을 이대로 차지했다간 배탈이 나거나 가위에 눌릴 것만 같았다.
나쁜 놈들도 처단하고 겸사겸사 전리품도 좀 챙기려고 했는데 빌어먹을 양심이라는 놈이 내 꽃길에 제동을 걸었다.
“본부장님, 인건비만 좀 챙겨 주세요.”
“네?”
“아무래도 이것들은 제가 차지해도 될 물건들이 아닌 것 같네요. 조사해서 주인들에게 돌려주세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죄송하지만 조금 더 자세히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버팔로 놈들도 그렇고 정치인 놈들도 그렇고 저것들을 다 본인의 땀과 노력으로 벌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 진짜 주인을 찾아 돌려주세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압수품의 소유권을 포기했다.
머리와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긴 했지만 1조나 되는 돈을 손에 쥐었다가 내려놓는 게 그리 쉬운 게 아니었다.
아무래도 당분간 1조가 눈앞에 계속 아른거릴 듯했다.
“잘하셨어요. 오빠.”
“이렇게 하는 게 성주님하고 더 잘 어울리긴 하네요.”
남의 속도 모르고 박민정과 수정이가 배시시 웃으며 날 쳐다봤다.
“나 잘한 거 맞아?”
“네. 잘하셨어요. 돈은 영지에 있는 아이템 팔아도 충분히 벌 수 있잖아요. 영지민도 저것들을 처분해서 가져오는 건 그리 탐탁지 않아 할 거예요.”
“그래. 좋게 생각하자. 어차피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으니까.”
난 애써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속이 열나게 쓰렸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이미 내 손을 떠난 것을.
김용규에게 살짝 낚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광산에서 일할 인력은 충분히 확보됐으니까 그리 손해 보는 거래는 아닌 듯했다.
‘저놈은 왜 저러고 있데?’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광장 끝 나무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이세훈이 보였다.
보아하니 뭔가 고민이 있는 얼굴이었다.
“궁상맞게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생각 좀 하느라고.”
“무슨 생각?”
“난 네가 성주가 됐다고 해서 당연히 내가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어제 하루 같이 있다 보니까 굳이 내가 있을 필요가 있나 싶어서.”
이세훈이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손가락으로 땅바닥을 훑으며 대답을 했다.
헌터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그새 주눅이 든 모양이었다.
그가 이럴 만도 하긴 했다.
평소 같았으면 말도 섞어보지 못할 김용규와 길드 마스터들.
게다가 버팔로 길드를 소탕하고 데스나이트까지 무찌르는 걸 옆에서 보고 들었으니 자존감이 좀 떨어진 모양이다.
“무서운 건 아니고?”
“솔직히 무섭기도 한데 그것보다 날 더 힘들게 하는 건 부성이도 나랑 같은 일반인인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는 거야.”
“부성이?”
“어. 나보다 한참 나이도 어린데 걔는 아무렇지도 않더라고.”
“푸하하하.”
이세훈의 말을 듣다 보니 절로 웃음이 터졌다.
이래서 친구가 옆에 있어야 하나 보다.
손에 쥐었던 1조가 사라져 울적했던 것도 잠시 이렇게 큰 웃음을 선사하니 말이다.
“왜 웃어. 새끼야. 난 심각한데.”
“부성인 일반인이 아니야.”
“엥? 일반인이 아니라고? 내가 듣기론 각성자가 아니라고 들었는데?”
“각성자가 아니긴 한데 일반인은 아니야. 너 오크 앞에 두고 밥 먹을 수 있어?”
“오크를 앞에 두고 밥을 먹는다고?”
“부성이 저놈 수천 마리의 오크를 앞에 두고도 쳐들어오는지 감시하면서 밥 먹었던 놈이야. 그것뿐이냐. 늑대 울음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오는데 길드원들 먹을 거 챙겨주겠다고 나무도 하고 산 열매 찾으러 다녔어.”
“흠…….”
“각성은 안 했지만 어지간한 각성자보다 더 고생도 많이 했고 깡도 좋아. 손에 무기만 쥐여주면 오크 몇 마리는 거뜬히 처리할 수 있을걸? 그리고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나이도 많고 어쩌다 각성까지 해서 성주를 하고 있지만, 부성인 내 밑에 사람이 아니야. 처음에 나 던전에 들어갔을 때 부성이가 나 챙기면서 똥 기저귀까지 갈아줬었던 사람이야.”
“진짜?”
“그래. 인마. 그러니까 괜한 걸로 고민하지 마라. 부성이도 그렇고 나랑 함께 나온 헌터들은 물론이고 헬퍼들 모두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험한 상황에서 9개월 넘게 버틴 사람들이야.”
“아…….”
이세훈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던전 안이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그리 깊게 생각을 하지 않은 듯했다.
“정 무서우면 여기에 남아 있어. 스카이 캐슬에 물자를 공급하려면 여기에도 네가 도와줄 일이 많을 테니까.”
“아니야. 나도 가야지. 아버지랑 너랑 다 가는데 나 혼자 여기에 무슨 재미로 있냐.”
이세훈이 손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가 가겠다고 하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힘들면 언제든 말해.”
“그래. 알았다. 그럼 나 이제 뭐 할까?”
“갑자기 뭘 물어봐? 그동안 한 것처럼 부성이랑 얘기해서 알아서 하고 싶은 거 해.”
“그래도 되나?”
이세훈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의 시선 끝엔 헌터들과 헬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오래 한 만큼 눈치도 빠른 놈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야 오랜만에 본 내가 성주가 되어 나타나 반갑고 기쁜 마음에 무턱대고 일을 찾아 헤맸지만, 이제는 살짝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돼. 이제 며칠 내로 곧 스카이 캐슬로 들어갈 거니까 하던 대로 계속 사람들한테 필요한 것 좀 챙겨 줘.”
“그래. 알았다. 근데 남은 감염자들은 치료 안 해 줄 거야?”
“해 줘야지. 마침 저기 오네.”
이세훈과 한참 얘기하고 있는데 이부성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해용이 형, 스카이 캐슬에서 엔트 주사를 보냈는데 바로 무의도로 보내실 거죠?”
“어. 그래야지.”
“뭐야? 얘기해 놓은 거였어?”
“아니 부성이가 알아서 스카이 캐슬에 사람을 보내서 전달해서 받아 온 거야.”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그러니까 너도 해야겠다 싶은 일이 있으면 알아서 해 줘.”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그럼 난 이것들 가지고 무의도로 갈게.”
이세훈이 빙그레 웃으며 엔트 주사를 건네받고 헌터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부성아, 잠깐만.”
“네? 더 할 말 있으세요?”
“세훈이 저놈한테 누가 뭐라 그랬지?”
“네?”
이부성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나와 눈을 마주쳐 놓고도 바라보지 못하고 눈동자가 급격하게 흔들렸다.
이세훈과 알고 지낸 지 이십 년이다.
무서워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단지 그것 때문에 저리 궁상맞은 자세로 고민을 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
“그게 지현이 누나가…….”
“지현이? 수정이 참모 말하는 거야?”
“……뭐라 한 것까지는 아니고 주의 정도 준 것 같아요.”
“둘이 있을 때는 몰라도 사람들이랑 같이 있을 땐 형한테 함부로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상의도 없이 영지 일로 형이랑 바로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일이 거꾸로 내려온다면서.”
“쯧쯧. 그럴 것 같더라니.”
“죄송해요. 제가 말렸어야 했는데…….”
“아니야. 서지현 입장에선 못 할 말을 한 것도 아니니까.”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 뛰어가고 있는 이세훈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내가 던전에 갇혀 있는 동안 아버지를 살피고 또 좀비에게 물린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전 재산을 처분해가며 뛰어다닌 친구인데 그녀가 보기엔 낙하산으로 보였나 보다. 아니 낙하산이 맞긴 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다 보니 아마 방금 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면 중요한 일을 맡게 되고 그에 상응하는 직책에 오르게 될 테니까.
“골치 아프네.”
머리가 지끈거렸다.
처음 겪어 보는 경험이고 감정이었다.
나 역시 낙하산이라고 하면 진절머리가 날 만큼 증오했지만, 내가 높은 직접 자리에 올라오니 예상치 못한 고충이 찾아왔다.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제가 옆에서 지켜보니 형이 챙기지 않아도 세훈이 형 혼자서 알아서 잘하실 것 같더라고요.”
“그래? 그럼 다행이긴 한데.”
“형, 신경 쓰이지 않게 제가 옆에서 잘 살펴볼게요. 어려워하는 거 있으면 옆에서 돕고요. 형한테 그랬던 것처럼.”
“그래. 고맙다. 역시 내 동생밖에 없네. 현지랑 잘 돼서 난 뒷전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던 모양이네.”
“에이. 당연히 제 원픽은 형이죠.”
분위기가 너무 심각한 것 같아 농담을 건네니 이부성이 배시시 웃으며 화답을 해 주었다.
그런데 그때,
“이부성, 다시 한번 얘기해볼래? 원픽이 누구라고?”
“……?!”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현지!
부성이의 표정을 보아하니 굳이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아, 맞다. 울프 길드 마스터가 보자고 했는데 깜빡했네.”
난 혼잣말을 읊조리며 급히 자리를 피했다.
* * *
던전 입구 광장에 간이로 설치한 휴게실에 도착하니 최영식과 박민정, 김용규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본부장님께선 어쩐 일로?”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미스릴 판매 건을 마무리 하기 위해 만든 자리인지라 김용규가 참석할 이유가 없는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게 일본에서 요청이 왔습니다.”
“요청이요?”
“저희가 데스나이트를 해결한 얘기를 듣고 성주님을 파견해 달라고 하더군요. 물론 수락할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S급 헌터를 파견한 사례도 없었고 괜히 파견 갔다가 몸이라도 상하게 되면 국가 입장에서 그만큼 끔찍한 일도 없으니까요. 다만 일본에서 공식적으로 요청이 왔기에 전달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김용규가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같이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염치가 없는 모양이었다.
“성주님, 외람되지 않는다면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될까요?”
“네. 들어보죠.”
“타국에 가서 레이드를 하는 게 어렵고 위험할 수 있겠지만 어제의 경험을 미루어 보아 성주님의 지휘 실력이면 어렵지 않게 데스나이트를 처리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 생각엔 이번에 한 번 도와주고 나중에 저희한테 어려움이 생겼을 때 지원 오는 것을 약속받는 건 어떨까 합니다. 지금 상황이 꽤 어려우니 성주님께서 도움을 주신다면 일본에서 사례 역시 섭섭지 않게 해 줄 겁니다.”
일본 헌터 길드와 동맹을 맺었다고 하더니 최영식이 일본에 파견 가자고 제안을 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