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화. 데스나이트 (2)
“사람들, 사람들은 무사합니까?”
“네. 다행히 한번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무사히 다들 피신했습니다.”
“휴우.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런데 뭐요?”
“아레스가 출동했습니다. 데스나이트를 저지한다며.”
“하아! 뒷정리하라니까 거긴 왜 쫓아간 거야. 제길.”
아레스라는 말에 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레스의 제자들이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첫인사를 나누었는데 불구덩이로 뛰어갔다고 하니 심장이 쿵쾅거렸다.
조성태, 최우람, 김봉준. 흑기사 부대까지.
게다가 나와 생사고락을 한 전우들도 함께이지 않은가.
김용규와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그들 때문이라도 이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데스나이트는 상급 소드 마스터야. 같은 마스터가 아닌 이상 붙어서 싸워서는 승산이 없이. 흑기사 부대와 아레스 길드 헌터들이 동시에 덤벼도 5분이면 전멸할 거야.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내게 경고를 하였다.
지금 내 마음이 그녀에게도 전달이 된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빨리 나가서 아레스부터 뒤로 물려야 할 것 같았다.
“수정아, 성태 씨한테 연락해서 싸우지 말고 고착 견제만 하라고 해.”
“네!”
“군인들도 마찬가지예요. 총이고 대포고 다 소용없으니까 막을 생각 하지 말고 주민들 대피에만 만전을 기하라고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다시 게이트를 넘어 지구로 건너온 김용규 본부장과 수정이가 부랴부랴 인천으로 연락을 취했다.
-태백산맥이랑 마녀 부대도 모두 활부터 챙기라고 해. 그린피쉬랑 바이올렛 피쉬 챙겨 온 것도 가져오라고 하고.
끄덕끄덕.
“……챙겨서 차에 탑승해.”
“네!”
“네!”
난 운디네가 일러주는 대로 일행들을 지휘했다.
“성주님, 데스나이트가 북망산 쪽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쪽은 공동묘지가 있는 곳이잖아요? 거긴 왜?”
“사람들이 보이지 않으니 망자들을 부활시켜 수하로 삼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부활을 시킨다고요? 그 새끼 그런 것도 할 줄 아나요?”
“네. 일본에서 받은 데이터에 의하면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조차 부활시켜 해골화 시킨다고 합니다.”
“젠장. 서둘러야겠네요.”
“네, 안 그래도 지금 최대로 밟고 있습니다.”
150km.
국민에게 안전 문자가 갔는지 도로는 통제됐고 우리는 무서운 속도로 인천으로 향해갔다.
이 정도 속도면 이십 분에서 삼십 분 정도면 데스나이트가 있는 곳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린 피쉬랑 바이올렛 피쉬 A급 헌터한테 나누어 주라고 해.
「그린 피쉬.
속도 상승 50% (지속 시간 1시간)」
「바이올렛 피쉬
속도 상승 50% (지속 시간 1시간)
*그린 피쉬와 중복 가능 」
.
.
.
“……나누어 주세요.”
-데스나이트를 발견하면 A급 헌터들만 다가가서 데스나이트의 시선을 끌라고 해.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붙어서 싸워서는 절대 승산이 없어. A급 헌터도 싸울 생각하지 말고 화살만 날리면서 시선만 붙잡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게 시킨다고 될까?’
-그린 피쉬랑 바이올렛 피쉬를 먹으면 속도는 얼추 비슷해질 거야. 그리고 플로라 아이들한테 딴 거 하지 말고 캔슬이랑 힐만 계속 시전하라고 해.
‘캔슬? 나한테도 안 통하는데 데스나이트한테 통하겠어?’
-한 백번쯤 하다 보면 한두 번은 걸릴 거야. 그 정도만 돼도 데스나이트의 속도를 충분히 감소시키고 마나도 소모하게 할 수 있어. 내가 일러준 대로만 하면 피해 없이 잡을 수 있을 거야.
끄덕끄덕.
“……플로라는 힐과 캔슬 마법에 집중해 주세요.”
“캔슬이야 버프 마법을 취소시킨다 치고 힐도 하라고요?”
운디네가 지시한 대로 작전을 설명하는데 이아영이 고개를 갸웃하며 날 쳐다봤다.
영지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러가며 오크를 무찔렀던 경험으로 인해 동료들은 내 지시에 조건 없이 따랐는데 그녀는 의문을 품었다.
난 코끝을 찡그리며 이아영을 노려봤다.
일전에 박민정이 보여준 태블릿PC 안의 데스나이트는 엄청나게 빨랐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명의 사람에게 다가가 검을 휘둘러 도륙을 할 만큼.
내 지휘, 아니 운디네의 지휘에 토를 달아서는 안 됐다.
지금 믿을 건 그녀밖에 없었고 그녀의 명령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무조건 따라야 했다.
“이아영 마스터님. 혹시 절대명령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네? 네. 군인들이 그런 말을 쓴다고는 들었어요.”
“네. 맞아요. 지휘관이 지시하면 군인들은 무조건 따릅니다. 총알이 빗발쳐도 자리를 사수하라고 하면 사수하고 돌격을 하라고 하면 돌격을 합니다.”
“……죄송합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요. 저도 설명을 하면서 지시를 하고 싶지만, 지금은 상황이 너무 다급하네요.”
“아닙니다.”
이아영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말귀를 잘 알아들은 모양이다.
“오셨습니까! 성주님.”
북망산 인근에 도착하자 조성태와 흑기사 부대가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붙지 말라는 전달 못 받은 겁니까?”
“죄송합니다. 상황이 너무 다급해서 저도 모르게 그만…….”
난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조성태를 노려봤다.
붙지 말라고 했는데 데스나이트와 맞닥뜨렸는지 오른쪽 어깨에서 시작해 왼쪽 골반까지 크게 자상이 나 있었다.
보아하니 상처로 인해 오른쪽 팔을 움직이는 게 어려운 듯했다.
‘운디네!’
-응, 알았어.
아쿠아 워터.
따스하고 포근한.
푸른 바다처럼 투명하고 맑은 물방울이 조성태의 상처를 감쌌고,
“으윽.”
포말, 물거품을 일으키며 그를 치료했다.
“어때요? 이제 좀 움직일 만한가요?”
“네. 다 나은 것 같습니다.”
조성태가 팔을 움직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중급 정령이 돼서 그런지 치료 마법의 효과도 꽤 상승한 듯했다.
“성주님!”
우리가 도착하고 이내 버팔로 길드 무리를 토벌하러 갔던 박민정이 헌터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모두 미스릴 화살통으로 바꾸라고 해.
끄덕끄덕.
“……바꾸세요.”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태백산맥 길드.
발키리 길드.
흑기사 부대.
마녀 부대.
플로라 길드.
내 지시를 받은 동료들이 모두 화살통을 바꿨다.
일본에 출몰해 수백만 명의 인명을 살상하고 지금도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는 몬스터 데스나이트.
우린 단 삼백 명의 인원으로 그 무시무시한 놈을 막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성주님, 이곳에서 싸우면 저희도 움직이기가 편하고 궁수 부대도 안전한 거리를 확보해서 화살을 날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주변을 살펴봤는데 제가 봐도 여기만 한 곳이 없는 것 같아요.”
데스나이트를 따라 북망산 중턱에 도착하자 박민정과 수정이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주변 지형을 살폈다.
오크들의 매복에 빠져 동료들을 잃고 다친 경험과 진지 구축과 진형을 짜 물리친 경험으로 인해 이제 그녀들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적당한 장소를 모색했다.
“좋네요. A급 헌터들만 남아서 데스나이트를 유인해오고 나머지 분들은 산개하세요. 명중률이 떨어져도 좋으니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자리를 잡으세요.”
“네!”
“네!”
내 지시와 함께 사람들이 흩어졌고 저 멀리 A급 헌터의 공격을 받고 다가오는 데스나이트가 보였다.
불이 이글거리고 있는 검과 하얀색 갑옷을 입고 있는 데스나이트.
외형만 보면 몬스터가 아니라 미국에 영화에 나오는 히어로들처럼 꽤 멋진 모습을 하고 있었다.
스슥!
스슥!
휘이익!
휘이익!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조성태, 최은빈, 이아영, 이슬비, 최병용, 최영식.
여섯 명의 A급 헌터들은 내가 지시한 대로 거리를 두고 데스나이트에게 활을 날리며 시선을 끌었고 그에 화가 났는지 데스나이트는 앞을 가로막는 나무와 바위들을 닥치는 대로 부시며 우리가 파놓은 함정으로 다가왔다.
멀리서 보는데도 오금이 지릴 정도로 파괴력과 스피드가 대단했다.
“성주님!”
“발사하세요.”
“네! 준비된 사수로부터 발사!”
스르륵.
스르륵.
내 지시와 함께 수백 발의 미스릴 화살이 데스나이트에게 날아갔고 효과가 있는지 데스나이트가 괴성을 뿜으며 막무가내로 검을 휘둘렀다.
“플로라!”
“네!”
“진실한 너의 모습을…….”
“진실한 너의 모습을…….”
“캔슬!”
“캔슬!”
.
.
.
두둥.
두둥.
백여 명의 플로라 길드원들.
운디네가 얘기한 대로 죽어라 캔슬 마법을 시전하니 한두 번씩 성공했고 데스나이트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졌다.
반면에 그린 피쉬와 바이올렛 피쉬를 먹은 A급 헌터들은 여유롭게 데스나이트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하며 괴롭혔다.
지능이 그리 높지는 않은지 데스나이트는 눈앞에 있는 A급 헌터들에게만 맹목적으로 쫓아다니며 분노를 표출했다.
십 분, 이십 분, 오십 분…….
“성주님, 화살이 거의 다 떨어져 가요.”
“저희도 마나가…….”
‘젠장, 왜 안 죽는 거야? 이렇게 해서 없앨 수 있는 거 맞아?’
-거의 다 왔어. 조금만 참아.
데스나이트는 수천 발의 화살과 수백 번의 힐을 맞았는데도 쓰러지지 않았다.
위기였다.
‘결국 내가 나서야 하나?’
-참아. A급 이하들이야 아예 격이 다르니까 마나로 찍어 눌렀지만 데스나이트는 달라.
‘그럼 어떻게?’
-도망가서 미스릴 화살 더 가져와야지. 이 정도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하네.
운디네가 데스나이트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화살과 마나가 떨어져 가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 조금 있으면 그린 피쉬와 바이올렛 피쉬의 효과도 끝날 시간이 되어갔다.
그런데 그때,
“크으으으!”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감히…….
“뭐야, 이새끼 말도 하네?”
-말이 아니라 나처럼 의념을 보낸 거야.
마치 정령과 세계수가 의사를 전달하는 것처럼 머릿속으로 이명이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스르륵.
스르륵.
“크으으으!”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털썩.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주변을 쑥대밭으로 만들며 발악을 하던 데스나이트가 결국 무릎을 꿇으며 바닥에 쓰러졌다.
‘죽었나?’
-어. 죽었어.
‘휴우. 십년감수했네.’
사상자 0명.
운디네 덕분에 우린 단 한 사람도 다친 사람 없이 데스나이트를 물리쳤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
북망산 가득히 동료들의 환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법 검인가?’
난 가만히 데스나이트가 들고 있던 검을 쳐다봤다. 운디네가 죽었다고 했으니 분명 죽었을 텐데 데스나이트가 들고 있던 검은 여전히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응. 헬파이어 마법진이 내장된 것 같아. 저 정도면 너희 세계 기준으로 레전드급 이상 될 거야.
‘레전드급 이상이라고?’
-헬파이어가 맞는다면 7단계 이상의 마법이야. 네가 들고 휘둘러도 헬파이어가 발동되면 S급 밑으로는 즉사야!
‘오! 대박!’
혹여나 다시 일어날까 봐 사람들이 경계하는 사이 난 데스나이트에게 뛰어가 검부터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