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S급 헌터 (3)
“지금까지 저희가 확보한 버팔로에 대한 자료들입니다.”
클럽.
룸살롱.
기획사.
건설 회사.
투자 회사.
인신매매.
마약 판매.
매춘.
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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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팔로 헌터 길드 맞나요? 이런 식의 운영은 보통 조직폭력배들이 하는 거 아닌가요?”
“말이 헌터 길드지. 수뇌부 대부분이 원래 음지에서 활동하던 놈들입니다.”
버팔로의 만행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 심각했다.
이번에만 나쁜 짓을 한 게 아니라 애초에 밤의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거대 조직이었다.
“이렇게 증거가 있는데도 왜 그동안 수수방관하고 있었던 거죠?”
“그게 위쪽이랑 이해관계가 꽤 얽히고 섞여 있고 청방이랑 아레스가 뒤를 봐주고 있어 함부로 손을 대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 심각한 거 아닙니까?”
“저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닙니다. 나름 저들을 법의 심판대 위에 올리려고 노력을 해 봤지만, 머리는 건드려 보지도 꼬리 몇 마리만 잡고 되레 역풍을 맞기 일쑤였습니다.”
김용규가 분노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자기가 보여줘 놓고서도 치가 떨리는 모양이었다.
옛말에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이렇게 나쁜 짓을 대 놓고 하는데도 법의 처벌을 받지 않으니 수천 명의 사람까지 죽여 가며 웨이브를 조장까지 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 정도면 존재 자체만으로도 국가 재난 수준이었다.
“잡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어느 선까지 말씀하시는 건지.”
“전부요. 버팔로의 이름으로 있던 모든 사람과 그들이 범죄 행위로 벌어들인 돈을 나누어 쓴 자 모두요.”
“끙…….”
김용규 앓는 소리를 내며 날 쳐다봤다.
“그럼 적어도 수백 명은 될 겁니다. 게다가 섣불리 정치인과 재벌까지 건드렸다간 제 자리까지 내놓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리스트만 주세요. 정치인과 재벌들은 저희가 납치를 해서 게이트로 데리고 갈게요.”
“납치한다고요?”
“그게 제일 깔끔하지 않나요?”
“그렇긴 하지만…….”
“그럼 그렇게 하는 거로 해요. 건드리기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저희가 해결하는 거로 하고 본부장님께선 나머지 사람들을 잡아 와 주세요.”
김용규가 계속 난색을 보이자 박민정이 앞으로 나서서 애로사항을 해결해 줬다.
재벌과 정치인을 납치한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녀는 거침이 없었다.
“아무리 은밀하게 움직인다 해도 내일 해가 뜨면 분명히…….”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아레스를 흡수하고 레인보우와 울프 길드까지 우리와 함께하겠다고 하면 쉽게 건드리지 못할 테니.”
“레인보우와 울프 길드요? 제가 알기론 그쪽 길드들은 미국과 일본 쪽 길드들과 동맹을 맺은 거로 아는데 함께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게 뭐 중요한가요? 아시다시피 옆에 있는 최은빈 헌터가 레인보우 출신이에요. 함께 할 수 있으면 함께 하는 게 낫죠. 울프 길드 역시 일본 길드와 동맹을 맺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미스릴을 비싼 값에 사가는 소중한 고객이고요.”
박민정이 김용규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레스. 2
레인보우. 2
울프. 1
발키리. ?
플로라. 2
그녀의 말처럼 된다면 대한민국 10대 길드 중에 다섯 곳이 우리 편이었다. 게다가 A급 헌터도 무려 일곱 명이나 되었다. 아니 정령과 계약을 한 발키리 헌터들을 다시 측정하게 되면 어쩌면 둘에서 셋 이상은 더 늘어날 수도 있었다.
내가 느끼기엔 박민정도 그렇고 수정이도 그렇고 다른 A급 헌터들과 비교했을 때 마나 차이가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짐작건대 세계수의 축복에 이어 정령과 계약을 하면서 두 사람 모두 비약적으로 마나가 늘어났고 지금도 여전히 성장을 하는 듯싶다.
우리의 전력을 확인하게 된다면 아마 정부에서도 우리가 사람들을 데리고 간 걸 알게 된다 해도 직접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이상 우리를 쉽게 추궁하지는 못할 것이다.
심지어 재난 관리 본부장도 우리와 한배를 타지 않았는가.
“저흰 아레스 본부로 갈 테니 부마스터님께서는 헌터들을 데리고 재난 관리 본부와 협조해서 전부 깡그리 잡아서 던전 안으로 보내주세요.”
“네, 알겠어요. 그럼 바로 일어나볼게요. 반항하면 좀 패도 되죠?”
“사정을 봐줄 필요는 없는 놈들인 것 같네요. 단 죽이…….”
“죽일 수야 없죠. 그럼 성주님이 말씀한 대로 너무 편안한 벌이 될 테니. 그리고 최대한 많이 잡아가야 더 빨리 많이 미스릴을 채굴하죠.”
“끙…….”
박민정의 대답에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왔다.
얼굴이 후끈거렸다.
솔직히 나도 죄인들을 광산으로 끌고 가는 게 조금 양심에 찔리기는 했다.
나름의 이유를 내세우긴 했지만, 솔직히 그건 핑계였다.
내가 그들을 광산으로 끌고 가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영지민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돈을 많이 주고 대우를 좋게 한다 한들 광산에서 채굴하고 성벽을 쌓는 건 너무 고되고 힘들었으니까.
“제가 괜한 얘기를 했나 보네요. 아무튼 전 나쁜 놈들 때려잡으러 가 볼게요.”
박민정이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많이 신이 난 얼굴이었다.
그들은 몰랐을 것이다.
아버지와 통장 아주머니.
아무 힘없는 어른 두 명을 때렸다가 자신의 길드가 이런 식으로 풍비박산이 나게 될 줄은.
“우리도 가죠.”
“네, 알겠습니다.”
“알겠어요.”
권수정, 최은빈, 조성태, 이아영, 이슬비 그리고 흑기사 부대까지.
난 A급 헌터들을 데리고 아레스 본부가 있는 인천 구월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빠, 레인보우 마스터랑 울프 마스터 연락됐어요. 지금 바로 출발한대요.”
“그래? 그럼 우리 그 사람들 올 때까지 커피 한잔 마시고 있을까?”
“네. 좋아요.”
커피를 마시자는 말에 수정이의 얼굴에 금방 미소가 꽃 피웠다.
인천 최대 번화가 구월동.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펀치 기계에 주먹을 휘두르는 무리.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잡고 산책을 하는 연인.
거리에 음향 시설을 설치해 감미로운 노래를 부르며 버스킹을 하는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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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피를 흘려가며 몬스터와 싸우고 아레스 길드 마스터를 잡기 위해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는데 이곳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다.
나도 얼마 전까진 저들처럼 몬스터 웨이브가 생기든지 말든지. 당장 하루하루 먹고살기에 급급해하며 지친 몸을 유흥으로 달랬었는데 어느새 삶이 한순간에 변해있었다.
“오빠, 커피 뭐 드실 거예요?”
“나 아메리카노에 시럽 많이. 아니다. 나도 같이 가서 주문할래.”
“그냥 여기 계세요. 어차피 바로 안 나와요. 있다가 받으러 갈 때 같이 가 주세요.”
“아! 그럴까 그럼?”
“네. 헤헤.”
“헤헤.”
카라멜 마끼아또. 2
고구마 라테. 1
녹차 라테. 1
아메리카노. 1
일행들에게 주문을 받은 수정이가 배시시 웃으며 커피숍 안으로 들어갔다.
매일 삭막한 던전 안에만 있다가 이렇게 사람이 많은 번화가에 오니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레스 길드 마스터 일만 아니었으면 지금 여기서 수정이와 데이트를 하고 싶을 정도로 텐션이 올라가 있었다.
“성주님, 여기 외로운 솔로도 있으니 그쯤 하시죠.”
“아. 미안해요.”
내가 너무 헤프게 웃었나 보다. 항상 정중한 말투와 몸가짐으로 날 대했던 조성태가 까칠한 말투로 내게 핀잔을 주었다.
“오빤 왜 괜히 성주님한테 시비야. 보기만 좋구먼.”
“그래? 오랜만에 병용이 형 만날 생각하니까 가슴이 막 두근두근거리나 봐. 저리 꽁냥꽁냥 하는 게 보기 좋은 걸 보면?”
“죽을래? 내가 그 얘기 싫어하는 거 알면서 옛날얘기는 왜 꺼내는 건데!”
“그랬었나? 난 네가 아직도 병용이 형을 못 잊고 있는 줄 알았지.”
“이게 정말!”
최은빈의 주위로 마나 농도가 짙어졌다. 정말 많이 화가 난 듯했다.
“은빈아, 멈춰.”
“언니. 성태 오빠가…….”
“알아. 나도 들었어. 조성태 너 계속 그렇게 못되게 굴 거야?”
“내가 언제?”
조성태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수정이를 쳐다봤다.
그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힘들면 그냥 힘들다고 하면 될 것을.’
난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조성태를 쳐다봤다.
흔들흔들.
흔들흔들.
탁자 밑으로 그의 다리가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그는 다리 떠는 버릇은 없었다.
애써 태연한 척 굴었지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짐작건대 아레스 길드의 헌터들마저 이 일에 동조했을까 봐 염려하는 듯싶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 모두 다 죽거나 산다고 해도 광산에 보내지게 될 테니까.
“레인보우와 울프 길드 마스터를 부르는 건 성태 씨를 못 믿어서가 아니라 아레스 길드원들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에요.”
“…….”
“최악의 상황을 염려하고 안배해 두는 거니 이해 좀 해 주세요.”
꾸벅.
난 자리에서 일어나 조성태에게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내 잘못이었다.
그의 심경이 지금 복잡한 걸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전혀 배려하지 못했다.
지금 조성태가 내 동료이자 가족인 것처럼 지난 시간 아레스 길드원들 역시 조성태의 가족들이었을 테니까.
A급 헌터이기는 하나 그는 아직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혈기 왕성한 이십 대 후반의 젊은 청년이었다.
“……죄송합니다.”
마치 고3 수험생처럼 예민하게 굴었던 조성태가 고개를 내리깔며 되레 내게 사과를 해 왔다.
글썽글썽.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고 이내 속삭이듯 다시 말을 이어갔다.
“무섭습니다. 절대 아닐 거라고 믿으면서도 제 동료들이 이 일과 연관되어 있을까 봐.”
난 그에게 걸어가 아무런 말 없이 꼭 안아주었다.
지금 내게 그에게 해 줄 위로의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아레스 길드원들이 이 일과 상관없길 기도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때,
“저기들 오네요.”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사내 두 명이 우리에게 걸어오는 게 보였다.
레인보우 마스터 최병용.
울프 길드 마스터 최영식.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몰랐으면 모르되 버팔로 길드의 만행을 들었는데 가만히 있을 수야 있나요.”
이아영과 수정이가 일어나 대표로 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보아하니 전화 통화로 이미 상황은 전해 듣고 온 모양 같았다.
“은빈이는 이제 오빠랑 아는 체도 안 하기로 한 거야?”
“우리가 인사를 주고받을 사이는 아니지 않나?”
“쩝.”
레인보우 길드 소속이었던 최은빈.
그녀는 자신이 몸담고 있던 길드의 마스터를 만났는데도 그리 반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난 네가 아직도 병용이 형을 못 잊고 있는지 알았지.’
아까 조성태가 했던 말을 미루어 보아 둘만의 사연이 있는 듯했다.
‘나중에 수정이한테 몰래 물어봐야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왠지 물어보면 안 될 것 같았다.
“지금 상황은 더 설명 안 해도 되겠죠. 다들 이것들 입으세요.”
수정이가 사람들에게 검은색 로브를 나눠 줬다.
흑기사 부대가 무장 위에 있는 옷이었다.
최은빈이 몸담았었던 레인보우 길드.
미스릴을 필요로 하는 울프 길드.
다들 우리와 이래저래 이해관계로 맺혀져 있는 사이라 그런지 별말 없이 수정이의 지휘를 따라 로브를 걸쳤다.
이아영, 이슬비, 조성태, 최은빈, 권수정, 최병용, 최영식.
무려 7명의 A급 헌터를 모은 우린 자리에서 일어나 아레스로 본부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