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85화 (85/255)

85화. S급 헌터 (1)

“푸하하하!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죠?”

“……!”

“……!”

씨익.

난 빙그레 웃으며 김용규를 쳐다봤다.

‘공무원인데 어쩌라고?’

참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헌터를 오십 명이나 죽이고 오백 명이나 되는 사람을 힘으로 제압해 포박했는데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정당방위를 인정한다며 우리를 보내주려 했던 사람이 공무원 타령을 하니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터졌다.

“전 공무원으로서 국민의 안전과…….”

“공무원을 영어로 ‘퍼블릭 서번트’라고 합니다. 공공의 하인. 잠시 국민의 권리마저 포기하고 국민의 삶에 향상을 위해 자부심을 품고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란 말이죠. 이 나라의 공무원 중에 그런 사람이 몇명이나 있을까요?”

“그건…….”

난 김용규의 말을 끊고 질문했고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의 얼굴 표정이 점점 씁쓸하게 변해갔다.

짐작건대 내 질문이 많이 아픈 듯했다.

이게 지금 이 나라의 현실이었다.

구청 위생 관리과.

시청 위생 관리과.

소방서.

백화점과 마트 근무 시절 나와 동료들은 공무원들을 깡패라고 불렀다.

단속이 나왔다 하면 그들은 하수구 뚜껑까지 열며 위생 점검을 했다.

국민에게 안전한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우리가 깡패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청소를 하러 나온 것인지, 고기를 썰러 나온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위생에 신경을 쓸 만큼 철저하게 단속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단속을 한 건 바로 돈 때문이었다.

뭐라도 하나 잡아내야 사무실에 가서 상품권이라도 받아 갈 수 있었으니까.

아무리 철저하게 위생 관리를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가끔 위반 사항이 나왔지만, 법적으로 처리되는 일은 없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돈이 있으면 단속에 걸려도 무마된다.

허나 돈이 없으면 과태료를 맞고 영업정지를 당한다.

물론 진짜 사명감과 소신으로 일을 하는 공무원들도 많겠지만 내가 사십 평생 이 나라에서 겪었던 공무원들은 가지고 있는 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안위부터 챙기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짐작건대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없이 사는 사람들이 공무원을 이 나라의 권력자고 지배 계층이라고 생각하지. 공공의 하인이라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본부장님 혼자 아무리 애를 써도 이 나라는 바뀌지 않아요. 그러니 손 내밀 때 제 손을 잡으세요. 좋은 길이 있는데 굳이 서로 얼굴 붉힐 필요는 없잖아요.”

난 내가 공무원에 대해 갖고 있던 인식을 김용규에게 있는 그대로 얘기했다.

“……조부께서 독립운동을 한 거로 아는데 많이 삐뚤어져 있으시네요.”

“삐뚤어진 게 아니라 이 사회와 타협을 했다는 게 맞을 것 같네요. 제가 모셨던 상사들은 다른 말로 삶의 지혜라고도 하더라고요. 위반 사항이 나와 영업 정지를 당하는 것보다는 돈 백만 원으로 무마시키는 게 나으니까. 공무원은 용돈 생겨서 좋고, 회사는 영업을 이어가서 좋고, 직원들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난 얼굴에 미소를 머금으며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대화할수록 느낀 건데 진짜 사람을 웃기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안순남.

그의 말처럼 우리 할아버지는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한다.

비록 TV나 책에 나올 만큼 대단한 활동을 하지는 않으셨지만 나름 나라를 위해 꽤 애를 쓰셨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우리 집안은 선산은 물론이고 대대로 갖고 있던 땅과 전 재산을 다 탕진했다고 한다.

‘할아버지만 아니었으면 너희가 이렇게 고생을 안 했을 텐데…….’

설날과 추석.

일 년에 두 번 친척들이 모이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같은 말을 하며 어른들 모두 할아버지를 원망했다.

초등학교 졸업 혹은 중퇴.

아버지는 물론이고 아버지의 형제, 자매들 모두 어려운 가정 환경으로 인해 한창 공부를 해야 했을 14살, 15살이란 어린 나이부터 먹고 살기 위해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우리 집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할아버지는 명예와 자랑의 대상이 아니었고 원망의 대상일 뿐이었다.

나라가 독립을 하면 뭐 하는가.

우리 집안의 어른들은 배우지 못한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피라미드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져 버렸는데.

나름 내 뒷조사를 한 모양인데 그는 지금 괜한 얘기를 한 것이다.

내가 이아영 마스터한테 거부감을 느꼈던 게 바로 위와 같은 이유였으니까.

그리고 그녀로 인해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확실히 깨닫기도 했고.

난 할아버지를 반면교사 삼아 절대 나라와 명예, 애국심 이런 것 따위 때문에 내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을 것이다.

“제가 양보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어쭙잖은 말로 절 설득하려 하지 마세요. 던전에서 버림받은 것을 떠나 제 지난 삶이 이 나라의 법을 다 지켜가며 살만큼 그리 순수하지 않으니까.”

“그럼 어쩔 수가 없네요. 힘으로라도 제압할 수밖에.”

김용규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재난 관리 본부 소속 헌터들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그는 우리와 함께할 수 마음이 없는 듯했다.

“부마스터님, 혹시 우리가 이대로 물러난다면 아레스랑 버팔로에서 보복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저희를 보복하려고 할 거예요.”

“역시나 그렇군요. 친구들을 부르세요.”

“네, 알겠습니다. 성주님.”

물의 정령.

바람의 정령.

불의 정령.

땅의 정령.

내 지시와 동시에 발키리길드 헌터들이 정령을 소환했다.

살랑살랑.

시원하고 차가운.

그녀들이 소환한 정령은 대부분 바람의 정령이었고 재난관리 본부 소속 헌터들을 감쌌다.

다들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우릴 노려보고 있었지만, 명령만 떨어지면 바로 제압을 할 수 있을 듯했다.

다들 정령들이 옆에서 노닐고 있는데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다만,

“으음?”

“언니. 단순한 바람이 아닌 것 같아요.”

이아영과 이슬비만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경계를 할 뿐이었다.

‘운디네, 카샤, 노움, 실프.’

-알았어. 저 인간 여자들 상대하면 되는 거지.

-안 그래도 몸이 근질근질했는데 재미있겠다.

‘상대할 수 있겠어?’

-우릴 뭐로 보는 거야.

-그러게. 그동안 우리가 너무 실력을 발휘를 안 했나 보다. 고작 익스퍼트 최상급 아이 2명을 상대하라고 하면서 걱정을 하는 걸 보면.

정령들이 자신감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다들 전투를 한다기보다는 마치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러 가는 것처럼 신이 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지금 뭘 하는 거죠?”

뒤에서 아무 말 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이아영이 앞으로 걸어와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친구들의 기운을 느꼈는지 그녀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있었고 몸을 잘게 떨기까지 했다.

이제 갓 발키리 헌터들과 계약을 한 그녀들의 정령과 중급 정령이 된 내 친구들과는 나조차도 그 힘의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격 자체가 달랐다.

“이아영 마스터?”

“우리 주위로 지금 마나가 가득 차 있어요.”

김용규와 시선을 주고받은 이아영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괜히 A급이 아닌 모양이다. 그녀는 정확히 친구들이 있는 곳을 정확히 쳐다봤다.

“저도 이러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불의를 보면 참거나 못 본 체하며 살아왔는데 이번엔 본의 아니게 너무 깊숙이 들어와 버렸거든요.”

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이아영을 쳐다봤다.

너무 큰 사람이라 함께 할 수 없었지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다.

적으로 두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쩔 수가 없었다.

아레스와 버팔로의 처우를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에 맡기면 꿈자리가 아주 뒤숭숭할 것 같았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자주 나오는 레퍼토리 아닌가.

괜한 인정과 준법정신, 정의감에 사로잡혀 악당들을 살려 두었다가 결국 가까운 지인이 다치고 나서야 후회를 하는 스토리.

난 그런 병신 같은 짓은 할 생각이 없었다.

삶의 지혜를 터득해 사람들과 얼굴을 붉히기보다는 그냥 한번 모른 체하고 참는 삶을 살아왔지만 다른 한 가지 더 배운 게 있었다.

적을 만들었다면 혹여나 기어오를 생각을 하지 못하게 확실히 밟아줘야 한다는 것을.

버팔로길드 헌터들과 이미 전투를 치른 이상 뿌리를 뽑아야 했고 그걸 가로막는다면 아무리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라도 양보하긴 어려웠다.

두근두근.

쿵덕쿵덕.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닌 처음으로 이능을 사용해 전투하려고 하니 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옥상으로 따라와!’

마치 학창시절 맞장을 뜨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갔을 때처럼.

“이대로 이 일에서 손을 뗐다가 혹여라도 저들이 내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게 된다면 제가 너무 슬플 것 같거든요.”

“저희가 증거를 확보한 걸 알면 저들도 경솔하게 움직이지 못할 거예요.”

“미안하지만 전 제 사람들을 단 일 퍼센트의 위험에도 드러내고 싶지가 않아요.”

난 단호한 표정을 이아영을 쳐다봤다.

저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오로지 O.X뿐이었다.

지금이라도 내 제안을 받아들이고 함께 하던지.

아니면 거절을 하고 우리와 싸울 것인지.

“십 분만, 아니 오 분만 잠시 상의할 시간을 주세요.”

이아영이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김용규와 시선을 주고받았다.

난 두 사람의 결정을 기다리며 가만히 이아영과 이슬비를 쳐다봤다.

전투가 생기면 저 둘을 빨리 제압해야 했다.

그래야 아군의 피해가 최대한 줄어들 테니까.

-십 분.

‘응?’

-십 분이면 제압할 수 있어. 죽이는 거면 일 분이면 가능하고.

‘……!’

-소드 마스터나 7서클 이상의 마법사가 아닌 이상 최상급 익스퍼트 정도는 열 명 이상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어.

끄덕끄덕.

난 운디네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최상급 익스퍼트 = A급 헌터.

운디네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사람 열 명과 상대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고 난 그녀의 말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싸우려고 마음먹으니 이아영과 이슬비가 품은 마나가 느껴졌고 내가 아니 정령들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녀들의 마나보다 정령들의 마나가 열 배 이상은 더 컸고 농도 역시 더 진했다.

‘나 정말 S급 헌터가 된 건가?’

일인 군단이라 불리는 S급 헌터. 이래서 사람들이 S급, S급 하나 보다.

A급 헌터 두 명과 상대하게 되었는데도 전혀 긴장되거나 떨리지 않았다.

S급 헌터 보유국.

중국 3

미국 3

일본 1

.

.

.

짐작건대 지금 동아시아에선 내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강자인 듯했다.

아직 S급 헌터가 등장하지 않은 우리나라에선 최강자였고.

물, 불, 땅, 바람.

싸우려고 마음을 먹은 것뿐인데도 정령들의 주위에서 거대한 힘이 느껴졌다.

지금 마음 같아선 이아영과 이슬비뿐만이 아니라 앞에 있는 모두를 다 한 번에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아영 마스터님.”

“……?”

“계속 고집을 부려 전투가 발발하고 만약 저희 일행 중에 한 명이라도 죽게 된다면 당신들은 일행 모두가 다 죽게 될 겁니다. 아울러 재난 관리 본부 소속과 플로라의 문양을 달았던 모든 헌터들도 다 찾아가서 죽일 겁니다.”

“……!”

“……!”

쿵덕쿵덕.

쿵덕쿵덕.

발키리, 태백산맥, 흑기사 부대, 마녀 부대.

난 내 뒤에 서서 전투 준비를 하는 헌터들을 쳐다봤다.

만약 이 중에서 한 명이라도 죽는 사람이 생기면 정말 슬프고 화가 날 것 같았다. 아니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리고 철렁거릴 만큼 아팠다.

9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던전에 갇혀 개고생하고 이제야 밖으로 나왔는데 이 자리에서 누군가 죽게 된다면 저들을 다 죽인다 해도 내 분노가 가시지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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