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아레스를 거두다 (3)
“지금 하는 얘길 다른 사람한테 한 적 있나요?”
“없습니다. 지역 경찰은 물론이고 헌터와 군인들도 모두 버팔로랑 한편입니다. 좀비한테 물리지도 않은 사람을 감염자라 죽이고 몹쓸 짓을 하다가 잡혀가도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다 풀려났습니다. 말할 곳이 없었습니다.”
“헌터들이요? 혹시 아레스 길드를 말하는 건가요?”
“……네.”
“지금 말하는 걸 증명 할 증거가 있나요?”
“증거는 없지만 버팔로 길드 내에선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정도로 알려진 내용입니다.”
“끙…….”
“끙…….”
이승제의 말을 듣고 있던 박민정과 조성태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우리가 아무래도 벌집을 제대로 건드린 모양이네요. 버팔로야 조무래기들이라 문제가 안 되지만 아레스까지 연관되어 있으면 우리만으론 감당하기 힘들겠어요.”
“아레스가 그렇게 강한가요?”
“싸우면 이기긴 할 거예요. 헌데 우리도 상당한 피해를 보게 될 거예요.”
박민정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녀의 눈에 두려움이 서리기 시작했다.
수만의 오크한테 둘러싸여 있을 때도 항상 자신감이 가득했었는데 이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성주님이 허락해 주신다면 아레스 길드 마스터의 목은 제 손으로 거두겠습니다.”
“목을 거둔다고요? 죽이겠다는 말인가요?”
“정황상 아레스도 이 일에 연루된 게 확실해 보이지만 아마 마스터와 친위대만 움직였을 겁니다. 애들이 무식하고 좀 덜 떨어지긴 했지만 이런 짓에 동의할 놈들은 아닙니다.”
조성태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날 쳐다봤다.
“마스터와 친위대만 사라지면 다른 부대장들은 제 말을 따를 겁니다.”
“흠…….”
난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조성태를 바라봤다.
내 지시만 떨어지면 진짜 바로 아레스 길드 마스터를 찾아갈 기세였다.
“그 인간 언제 사고 칠 줄 알았어. 나도 같이 가. 이참에 강태훈 몰아내고 성태 네가 아레스 마스터 하면 되겠네.”
“나도 민정이 언니 생각에 동감이야. 솔직히 태훈이 오빠가 나이 많아서 마스터 된 거지. 간부들 전부 오빠랑 더 친하잖아. 아레스가 커진 것도 다 흑기사 부대 덕분이었고.”
박민정과 최은빈이 조성태의 생각에 동의한다는 듯 그를 부추겼다.
“다들 흥분하신 것 같은데 이 문제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자세히 알아본 후에 조취를…….”
“이대로 있으면 아레스랑 전면전을 해야 합니다. 차라리 조금 위험하더라도…….”
“조금 위험한 거 맞나요? 강태훈 마스터도 A급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닌가요? 다들 성태 씨를 더 따른다고 하지만 강태훈 마스터를 따르는 무리도 분명 있을 텐데요? 게다가 성태 씨는 오랜 시간 길드를 비웠는데도 간부들이 힘을 보태 준다고 확신할 수 있나요?”
“그건…….”
조성태는 내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마음은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아영이 언니랑 슬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어때요?”
“이아영 마스터한테?”
“두 사람이 도와준다면 우리 쪽엔 A급만 네 명이에요. 그 정도 전력이면 강태훈 마스터가 반항할 틈도 없이 제압할 수 있을 거예요.”
수정이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람들과 눈을 마주쳤다.
“지금 우리가 의심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아영이 언니가 모를 리가 없어요. 아마 우리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을 거예요.”
“그래? 근데 왜 가만히 있는데?”
“증거가 없었겠죠. 죄 아무리 헌터 협회장이라 해도 버팔로와 아레스 같은 거대 길드가 연관되어 있으니 쉽게 건드리지 못했을 거예요. 게다가 그 뒤엔 성수를 보유하고 있는 청방까지 있으니 더더욱 몸을 사렸을 거고요.”
“그치. 그 여우가 이런 일을 모를 수가 없지.”
“맞네. 아마 언니 스타일상 뒤에서 증거를 모으고 있을 확률이 높아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사람이니까.”
박민정과 최은빈이 수정이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방금까지 정색하고 싸워 놓고도 플로라가 아레스나 버팔로와 한편일 거라고는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밖으로 나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재난 관리 본부 헌터들이랑 군인들이 출동했습니다.”
“이런…….”
경계를 하고 있던 헌터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 * *
밖으로 나오니 재난 관리본부 소속 헌터 백여 명과 수백여 명의 군인들이 우릴 포위하고 있었다.
이아영과 이슬비.
게다가 그 뒤엔 플로라 길드 헌터들도 자리해 있었다.
“쩝. 많이도 끌고 왔네. 저희랑 전쟁이라도 해 보겠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함께 온 것뿐입니다. 헌터들이 오십 명이나 죽었던데 어찌 된 일인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수십 명의 사람이 죽고 수백여 명의 사람들을 포박하고 있는데도 김용규는 되레 저자세를 취했다.
“개인적인 일로 방문을 했는데 저들이 다짜고짜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어요.”
“정당방위라는 건가요?”
“네. 맞아요. 다짜고짜 칼이 목으로 날아오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죠.”
어째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러갔다.
박민정이 어깨를 으쓱하며 너스레를 떠는데도 김용규는 그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이에요. 안에 있는 장부 때문에 뒤가 구려서 그런지 우리가 도착하자마자 다짜고짜 공격했어요. 그래서 사상자가 많이 생긴 거예요.”
“그래?”
내가 당황스런 표정을 짓자 수정이가 슬며시 다가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아버지가 맞은 일로 화가 나서 터프하게 진압한 줄 알았는데 진짜 버팔로가 먼저 달려든 모양이었다.
안에 저리 중요한 장부가 있는 걸 봐서 그런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일 복잡하게 하지 말고 저희는 볼 일 다 봤으니 조용히 가게 해 주세요.”
“네. 조사를 조금 더 해야 하긴 하겠지만 그렇게 하겠습니다. 비록 지난 일로 발키리와 우리의 사이가 나빠지긴 했지만 적어도 발키리가 무고한 사람들을 해칠 거란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습니다. 단, 안에서 발견한 물품들은 모두 놔두고 가신다면 말이죠.”
김용규가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에 뭐가 있었는지 알고 놔두고 가라고 하는 거죠?”
“버팔로가 의도적으로 좀비 웨이브를 만들었고 아레스도 그 일에 연관됐다는 증거를 찾고 있습니다.”
“…….”
여유로운 표정으로 김용규를 상대하던 박민정이 말문을 잇지 못했다.
우리가 방금 알아낸 사실을 그도 이미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다 알고 있었나 보네요.”
“정황 증거와 심증만 있었습니다.”
“근데 지금까지 왜 가만히 있었던 거죠?”
“바리케이드가 너무 쉽고 빨리 무너져 조사하려 하는데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아레스 길드원들이 모두 실종을 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더 이상의 수사를 하지 말라고 사방에서 압력이 들어왔고요.”
김용규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정황 증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확실한 일도 아닌 거로 헌터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멈춘 건가요? 수천 명의 사람이 죽었는데 너무 무책임하다는 생각 안 드나요?”
“무책임한 게 아니라 제겐 계속 수사를 할 힘이 없었습니다. 이 나라 높은 곳에 있는 사람 중에는 국민의 안전보다 자신들의 집에 있는 곳간에 재물을 채우고 싶어 하는 도둑놈들이 더 많거든요. 보잘것없는 이 자리라도 지키려면 전 고개를 숙여야 했습니다.”
“쯧쯧.”
나도 모르게 절로 혀를 찼다.
더 듣지 않아도 대충 상황이 짐작되었다.
버팔로에서 아마 자신들이 벌어들인 금액으로 엄청나게 로비를 펼쳤을 것이다.
나쁜 짓을 하는 놈들의 전매특허 아닌가.
사람이 착하게 살려도 돈이 있어야 하는 것이었다.
“저희가 증거를 넘겨주면 그들을 확실히 단죄할 자신 있나요?”
“그건…….”
김용규는 내 물음에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저들을 단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자신 없으면 빠지세요. 보아하니 재난 관리 본부랑 플로라 길드랑 돈독하게 지내나 본데 이아영 마스터랑 이슬비 씨만 보내주세요. 아레스랑 버팔로는 저희가 해결을 하죠.”
“죄송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헌터들 사이의 문제라면 저희도 끼는 게 부담스럽긴 하지만 이 일은 수천 명의 국민이 희생을 당한 사건입니다. 국민의 세금을 받고 일하는 공무원으로서…….”
“협조하면 미스릴을 넘겨 드리죠.”
“네?”
“이번에 가져온 거는 울프 길드한테 판매하기로 했지만, 저희 영지에는 아직 미스릴이 많습니다. 이 일을 해결하고 저희를 따라오면 미스릴로 그 보답을 해 드리죠.”
“흠…….”
“아레스 길드는 저희가 흡수를 해야 하니 안 되지만 버팔로를 털어서 나온 전리품은 반을 나눠 드리죠.”
“흠…….”
“보아하니 예산이 없어서 헌터들한테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쥐어 주지 못하는 모양인데 눈 한번 질끈 감으시면 됩니다. 나머진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흠…….”
김용규가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뒤로했다.
보아하니 이아영과 의견을 나누는 모양이었다.
“……미스릴이 탐나긴 하지만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김용규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의 시선 끝엔 도로 위에 쭈그려 앉아 있는 버팔로 길드원들이 있었다.
실수였다.
거래할 거였으면 조금 더 은밀하게 해야 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이들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마세요.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에요.”
박민정이 서슬 퍼런 눈을 하고선 버팔로 길드원들을 쳐다봤다.
“거참, 무슨 몬스터도 아니고 왜 계속 죽일 생각만 하나요?”
“돈을 벌기 위해 수천 명의 생명을 앗아간 버러지들이에요. 굳이 살려둘 필요가 있나요?”
“그렇긴 한데…….”
이들을 이대로 김용규에게 인계하면 분명 감옥에 들어갈 것이다.
때 되면 밥 주고 운동도 시켜주고 잠도 편히 잘 수 있는 곳으로.
솔직히 나도 그게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다.
헌데 그렇다고 죽이는 건 아닌 듯했다.
아무리 죽을죄를 지었다 하나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에 거부감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우리에게 이들을 죽일 권한은 없는 것 같네요. 웬만하면 살려서 영지로 데리고 가는 방향으로 하죠.”
“영지로요?”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광산에 투입해서 자신들의 잘못을 후회하고 뉘우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흠…….”
박민정이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죄인들을 쳐다봤다.
죽은 자도 말이 없지만, 영지로 끌고 가도 이 자리에서 들은 말을 전달할 수는 없을 테니.
이들에게는 광산이 딱이었다.
“똥 밭에 굴러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고 하잖아요. 뭐 조금 어둡고, 칙칙하고, 해를 보기는 힘들겠지만 전 이들에게 아량을 베풀고 싶네요.”
“아량을 베푸는 것 맞나요? 해를 보기 힘들다는 말은 아예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건데. 몇 년이나?”
“오래 있게야 할 수 있나요. 한 오십 년 정도만 있게 하면 이들도 반성하지 않을까요?”
“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네요.”
“그러게요.”
부들부들.
동료들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여러분 잠시 잊으셨나 본데 저 공무원입니다만?”
김용규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가 거래하겠다고 승낙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가 너무 앞서간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