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아레스를 거두다 (2)
“차 갖고 올게.”
아버지가 맞았다는 말에 이세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차를 몰고 왔다.
“은솔아, 얼굴 알지?”
“네. 알아요. 제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요.”
“타.”
“네.”
은솔이가 망설이는 기색 하나 없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차에 올라탔다.
무서울 법도 한데 은솔이도 그동안 쌓인 게 많은 듯했다.
부들부들.
분명 몸은 떨고 있는데 눈은 이글거렸고 두 주먹을 말아 쥐고 있었다.
“혹시 엄마도 맞았어?”
“네. 엄마도 때리고 욕도 하고 매일 찾아와서 막 이상한 농담을 하면서 겁도 줬어요.”
은솔이의 얼굴에서 울분이 느껴졌다.
눈앞에서 어머니가 폭행을 당했는데 눈이 돌지 않을 자식은 없었다.
허나 힘이 없어서 막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아팠을 것이다. 이대로 두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고 든든한 사람이어야 할 부모님이 눈앞에서 다른 사람한테 폭행을 당한다는 건 육체적인 것보다 심리적으로 더 상처가 크게 다가올 수 있었다.
“제가 경찰에 신고도 했었는데 다 하루도 되지 않아 풀려나더라고요.”
글썽글썽.
“경찰도 한편이에요. 제가 왜 나쁜 짓을 했는데 풀어 주냐고 따졌더니 어른들이 하는 일에 끼어드는 거 아니라며 오히려 저를 혼냈어요,”
“이제 오빠가 혼내 줄 테니까. 울지 마.”
토닥토닥.
난 은솔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달래줬다.
그런데 그때,
슈우웅 펑!
슈우웅 펑!
하늘에서 빨간색 폭죽이 터져 올랐다.
“오빠, 먼저 가세요. 전 애들 데리고 뒤따라갈게요.”
“아가야, 너라도 말려야지. 같이 그러면 어떡하니?”
아버지가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수정이를 나무랐다.
“제가 더 화가 나는걸요. 죄송해요. 아버님.”
후다닥.
후다닥.
“수정아, 무슨 일이야? 갑자기 비상 신호는 왜 터트린 거야?”
“언니,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플로라에서 시비라도 걸어왔나요?”
“그게 아니고 아버님이 버팔로 길드 놈들한테 폭행을 당하셨데. 지금 가야 하니까 차 좀 준비해 줘.”
“아버님이? 이 새끼들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폭죽을 보고 달려온 박민정과 발키리 헌터들의 눈이 이글거렸다.
그녀들의 손엔 모두 활이 한 자루씩 들려 있었다.
‘너무 흥분했나?’
무장하고 달려온 박민정과 헌터들을 보고 있자니 뜨겁게 타오르던 가슴이 순식간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해용아, 갑자기 표정이 왜 그래?”
“그게 내가 너무 흥분한 것 같아서 자세히 알아보고…….”
“뭔 개소리야. 아버지가 맞았다는데 알아보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어! 재수 씨, 저희 먼저 출발할 테니까 따라오세요.”
“네. 알겠어요.”
부우웅.
이세훈은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
은솔이가 세상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나와 거리를 벌렸다.
“은솔아, 그런 거 아니야.”
“아니면 뭔데요? 경찰도 한 편이라고 하니까 겁먹은 거 아니에요?”
“겁을 먹은 건 맞는데 경찰 때문이 아니야. 세훈아, 최대한 밟아. 헌터들보다 더 빨리 가야 해.”
“최대한 밟고 있어.”
“더 밟으라고 헌터들보다 늦게 가면 버팔로 애들 다 죽는다.”
“당연히 죽여야지. 그놈들은 죽어도 싸.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그동안 그놈들 하는 짓거리 보면 백번 죽어도…….”
“새끼야. 말로 죽이는 게 아니라 진짜 죽인다고!”
“어?”
내가 언성을 높이자 이세훈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룸 미러를 쳐다봤다.
그는 모를 것이다.
각성했다 하나 아직은 마음가짐이 일반인에 가까운 나는 화가 나도 어디 한군데 부러뜨리는 한에서 끝내겠지만 헌터들은 달랐다.
반항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혹여나 반항하면 죽이고도 남을 사람들이었다.
“에이 설마…….”
“설마가 사람 잡는 거 보기 싫으면 빨리 밟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이쪽 동네가 그리 아름다운 곳이 아니야.”
“끙…….”
이세훈도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모양이다.
시속 80km.
“뭐해 더 밟으라니까?”
“이게 최대 속도야. 더 밟으면 차 퍼진다.”
“하아…….”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창밖을 내다봤다.
아반떼 2000년식.
아무래도 차를 잘못 탄 것 같다.
이세훈의 차는 은솔이보다도 나이가 더 많았다.
창문을 여닫는 게 수동인 것도 모자라 그마저도 고장이 나서 뒷자리는 아예 열리지도 않았다.
게다가 타이어 바꾼 지도 오래됐는지 차가 굴러가는 게 아니라 미끄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당장 지금 멈춘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똥차였다.
* * *
“오셨습니까. 성주님.”
꾸벅.
1시간 30분 만에 내가 살던 동네에 도착하니 조성태와 흑기사 부대들이 이미 도착해 날 맞이했다.
그리고,
“세훈아, 은솔이 눈 가려.”
“……어.”
그들의 뒤엔 버팔로 길드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어떻게 된 거죠?”
“반항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여긴 던전이 아니잖아요.”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살려서 제압하려 했다간 저희도 피해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아…….”
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혹시나 했는데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몇 명이나 죽은 거죠?”
“오십 명쯤 죽고 헌터 열 명, 일반인 오백 명을 생포했습니다.”
“설마 생포했다는 인원이 저 사람들을 말하는 건 아니죠?”
언덕 위 저 멀리 수백 명의 사람이 도로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다들 무릎을 꿇고 있는 것조차 버거운지 힘에 들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말이 생포지. 내가 보기엔 반송장이나 다름이 없어 보였다.
“성태, 나무라지 마세요. 다들 죽을 만한 놈들이라 죽었고 맞을 만해서 때린 거예요.”
“……?”
“같이 저랑 저쪽으로 가세요. 다 설명해 드릴게요.”
“……그래.”
수정이가 세상 진지하고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날 버팔로 길드가 사용했던 건물로 안내했다.
내 성향을 아는 그녀는 지금 이 상황을 내가 못마땅해할 걸 알 텐데도 전혀 미안해하는 기색이 없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박민정과 참모들이 금고를 열어 수십 권의 장부와 서류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어떻게 확실한 증거는 나왔어? 더 살펴봐야 해?”
“이놈들 좀비 웨이브가 생길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게 확실해. 아니 이놈들이 사주한 증거만 나오지 않았을 뿐이지. 더 살펴보면 그것도 곧 찾아낼 수 있을 거야.”
“진짜 일부러 좀비 웨이브를 만든 거라고요?”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박민정을 쳐다봤다.
의심하기는 했지만 설마 같은 인간으로서 그렇게까지 할까 싶었는데 증거가 나온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뭔가 계속 미심쩍기는 했어요. 뱀파이어는 변신도 하고 하늘을 날 수 있으니 그렇다 치고 고작 좀비 때문에 그렇게 빨리 바리케이드가 뚫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거든요.”
박민정이 분노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 물음에 설명을 시작했다.
“버팔로 마스터는 C급 정도의 하위 헌터고 길드원이라고 해 봤자 채 백 명도 되지 않았어요. 그마저도 다 F급이거나 각성도 하지 않은 일반인들을 데리고 와 일을 시켰고요.”
“흠…….”
“장부를 보니 좀비 웨이브가 생기기 얼마 전부터 크게 세력을 넓혔고 웨이브가 발발하자 성수를 팔아 돈을 벌고 정, 재계까지 꽤 발을 넓혀 놓은 것 같아요.”
“정, 재계까지요?”
“일전에도 얘기했지만 돈이 있어도 연이 없으면 성수를 구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전 성수의 물량이 많지 않은 줄 알았는데 여기 장부를 보면 상위 길드들은 물론이고 돈 좀 있다 싶은 사람들에게 죄다 성수를 판 기록이 적혀 있어요.”
“그래서 버팔로가 일부러 웨이브를 발발시켰다고 확신을 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성수의 가치를 높이려고 일부러 바리케이드를 뚫었을 소지가 다분해요.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감염됐으니 공포와 불안감이 확산될 테고 그만큼 성수의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테니까요.”
“누나는 왜 자꾸 날 쳐다보면서 얘기하는 건데?”
박민정이 한창 제 생각을 얘기하고 있는데 조성태가 불만스런 표정을 지으며 짜증을 부렸다.
“너도 알고 있잖아.”
“내가 알긴 뭘 알아.”
“아레스.”
“아레스가 뭐 어쨌는데?”
“지금 내가 의심하는 것들이 이루어지려면 한 가지 전제가 있어야 하거든. 아레스의 협조.”
“끙…….”
조성태가 듣기 싫은 걸 들었다는 것같이 앓는 소리를 고개를 돌렸다.
“아무리 흑기사 부대가 빠져 있다 해도 아레스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한 길드야. 게다가 군인들도 분명 같이 게이트를 지키고 있었을 테고. 아무리 좀비의 특성이 감염이라고 해도 버팔로 따위가 단독으로 수작을 부려서 바리케이드를 뚫었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아.”
“그러니까 지금 누나 말은 아레스가 버팔로랑 사바사바해서 바리케이드를 일부러 뚫었다. 이 말이지?”
“그랬다는 게 아니고 의심은 된다는 거지.”
쾅!
“제기랄.”
박민정과 대화를 하던 조성태가 옆에 쓰레기통을 걷어차며 성질을 부렸다.
“의심해서 미안하긴 한데…….”
“미안해할 거 없어. 누나가 의심해서 화내는 거 아니니까. 누나 말에 반박할 수 없어서 화가 나는 거야.”
조성태가 처량한 표정을 지으며 박민정을 쳐다봤다.
“태훈이 형이라면 돈만 주면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푼돈에 움직이지는 않겠지만 눈 한번 질끔 감아서 수천억 원이 생긴다면 못할 것도 없을 거야.”
조성태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이 몸담았던 길드 마스터를 저리 얘기하는 거 보니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닌 듯했다.
그런데 그때,
똑똑!
“해용아, 나 좀 들어가도 되나?”
“무슨 일이야?”
“도움이 될까 하고 아까 얘기했던 그 조합원을 데리고 왔어.”
이세훈이 회의실로 찾아왔다.
그의 뒤엔 왼쪽 상의에 버팔로 문양의 배지를 착용한 사내가 서 있었다.
“중요한 얘기야?”
“아마도?”
“흠! 들어와.”
난 이세훈과 사내를 안으로 들여보냈다.
‘선수 출신인가?’
마나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운동깨나 했는지 몸이 다부져 보였다.
“나한테 얘기한 것 그대로 다 말씀드려. 우리 어차피 조금 있으면 던전 안으로 들어갈 거야. 너도 같이 데리고 가 줄 테니 아무 걱정말고.”
“……네.”
이십 대 중후반의 사내가 잔뜩 겁을 먹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자기소개부터 부탁할게요.”
“나이는 스물아홉이고 이름은 이승제입니다. 버팔로에서 용역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용역 팀장이요? 무슨 일을 하는 거죠?”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을 섭외해서 철거 현장에 가서 농성을 저지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용역 깡패네요?”
“……네.”
이승제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기껏 용기 내서 온 사람인데 넌 왜 애 싹을 죽이고 그래.”
“미안합니다. 나쁜 의도로 말한 건 아니에요.”
“아닙니다. 저 나쁜 놈 맞습니다. 시켜서 한 거긴 하지만 좀비 웨이브가 날 걸 알면서도 알리지 못했고 부모님 같은 분들을 때리고 인간으로서 못 할 짓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제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좀비 웨이브가 날 것을 알았다고요?”
“네. 좀비 웨이브가 생긴 그날 버팔로 길드 상부에서 팀장들에게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좀비들이 곧 들이닥칠 거니까 모두 철수하라고.”
“바리케이드가 무너져서 지시가 내려온 걸 수도 있잖아요?”
“아닙니다. 그때는 분명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위험을 알리려고 했는데 알리지 못하게 했고요.”
“흠…….”
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승제를 쳐다봤다.
증거와 이제는 증인까지.
버팔로 길드가 뭘 해도 하긴 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