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화. 아레스를 거두다 (1)
4번 울프.
6표.
“끙…….”
“끙…….”
투표 결과가 나오자 동료들이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눈을 마주치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다들 충분한 시간을 두고 고민한 끝에 투표를 했음에도 마음이 그리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짐작건대 앞으로 계속 이와 비슷한 선택의 기로는 계속 찾아올 것이고 그 기준점을 확실히 정해야 할 듯했다.
‘무능력한 가장보다는 나쁜 짓을 해서라도 내 가족을 따듯한 집에서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가장.’
20년 전, 난 내 삶에서 가장 춥고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렸다.
“고1 때였나. 아버지가 3개월 동안 힘들게 교복을 만들어 놓고도 수금이 안 돼서 집에 가스가 끊긴 적이 있어요. 딱 두 번 연체했는데 냉정하게 바로 끊어 버리더라고요. 아버지는 염치가 없는지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고요.”
“……?”
“아마 그때 쌀이랑 라면도 다 떨어졌었던 것 같아요.”
“……?”
“너무 배가 고파서 슈퍼에 가서 외상이라도 하려고 했지만 안 해 주더라고요. 삼만 원이었던가. 할머니가 이미 외상으로 라면을 가져와서 갚지 못하고 있었더라고요.”
“……?”
“참 서러웠죠. 한동네에 십수 년을 넘게 같이 살았는데 그깟 삼만 원 때문에 외상을 해 주지 않는 슈퍼 아줌마도 그렇고. 그깟 3개월 수금이 안 됐다고 차가운 냉방에서 쫄쫄 굶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서글펐어요.”
“……?”
내가 뜬금없이 옛날얘기를 하자 동료들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어머니와 자식이 굶고 있는 것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참다못해 돈을 훔쳐 왔고 그제야 저와 할머니는 따듯한 방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죠. 돈을 훔친 아버지는 초범이라 금방 풀려 날 수 있었지만, 한동안 구치소에 가 계셔야 했고요.”
“…….”
“그때 처음 깨달았어요. 돈이라는 게 참 무서운 놈이라는 것을. 전 그때 아버지가 구치소에 가 있는데도 따듯한 방에 앉아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을 먹는데 너무 맛있더라고요.”
“…….”
“다들 플로라 길드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인데, 우리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만 생각하죠. 우리와 함께 생사고락을 넘기고 지금 이 시간에도 열악한 환경의 영지에서 고생하고 있을 우리의 동료들을.”
“…….”
“미스릴이 일본에 흘러가는 게 중요한가요? 물론 조금 찝찝하긴 하겠죠. 근데 우리만 조금 찝찝하면 전우, 아니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더 빨리 안락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살 수 있게 되는데 계속 그런 표정 짓고 있을 건가요?”
똥이라도 씹은 거 마냥 굳을 표정을 하고 있던 동료들의 얼굴이 조금 편안해지는 게 보였다.
다들 나처럼 영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에서 우릴 버린 것 때문에 화를 내고 울프 길드를 선택한 게 아니에요. 제가 화를 냈던 건 그들한테 흔들렸기 때문이에요. 잠시 잠깐이지만 뭐가 제일 중요한지 잊고 있었거든요.”
“네. 무슨 말인지 알 거 같아요. 죄송해요. 앞으론 지난 일로 성주님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행동은 하지 않을게요.”
“죄송합니다. 저도 지난 일은 다 잊고 앞으로 영지를 위해서, 그리고 전우들을 위해서 어떤 게 더 이득이 될지만 생각하겠습니다.”
박민정과 조성태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날 그윽하게 쳐다봤다.
국민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재난 관리 본부와 플로라 길드한테 판매하지 않고 일본이랑 동맹을 맺은 울프 길드한테 미스릴을 팔아야 한다는 죄책감에 되지도 않는 궤변을 늘어놓은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게 내 솔직한 속마음이었고 동료들은 내 뜻을 공감하고 이해해 주었다.
서른아홉 살.
짐작건대 내 남은 삶은 살아 온 날만큼 정도의 시간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나를 위해 살 것이다.
그동안 고생은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편안하게 남은 인생을 즐기고 싶었다.
“수정아, 밥 먹으러 가자. 배고프네.”
“네.”
걱정, 한숨 다 털어 내고 난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수정이와 함께 식사하러 갔다.
* * *
차돌 된장찌개에 우렁이 쌈밥.
회의를 끝마치고 나오니 아버지와 통장 아주머니, 그리고 은솔이가 병원 앞마당 평상에 식사를 차려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와! 된장찌개네요. 맛있겠다.”
꿀꺽.
“된장찌개 좋아해? 아버지한테 물어봤는데 뭘 좋아하는지를 몰라서 있는 거로 그냥 차려 봤는데…….”
“네. 좋아해요. 한국 사람치고 된장찌개 싫어하는 사람도 있나요. 수정아 얼른 앉아.”
“네.”
난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평상에 앉았다.
“크으. 죽이네요.”
숟가락으로 된장찌개 국물을 떠서 마셨더니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뜨거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이건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여인이 옆에 있고.
아버지와 새어머니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먹는데 뭔들 맛이 없겠는가.
집밥.
호텔에서도 먹었던 음식들도 맛있었지만, 감히 지금 먹는 밥과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었다.
“오빠, 근데 진짜 서른아홉 살 맞아요?”
“은솔아.”
“네?”
“남자한테 나이를 묻는 건 실례야. 내가 너한테 네 몸무게 물어보면 좋겠어?”
“치! 그게 뭐예요. 아니 제가 보기엔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서요. 친구들이 혹시 오빠 나이 물어보면 스물네, 다섯 살이라고 얘기해도 돼요?”
“왜? 오빠가 나이가 많아서 창피해?”
“쪼금?”
은솔이가 배시시 웃으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치료했다 하지만 좀비에게 물려 외상 후 스트레스라도 겪으면 어쩌나 염려를 했는데 다행히 잘 극복한 모양이었다.
17살 사춘기.
은솔이는 이미 속으로 나를 오빠로 인정하고 다가올 난관을 걱정하고 있는 듯했다.
아버지뻘의 나이를 먹은 나를 친구들에게 오빠라고 소개해 줄 생각에 앞이 깜깜한 모양이다.
콩!
“이것이 예쁘다, 예쁘다 하니까 오빠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밥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새어머니가 은솔이게 꿀밤을 때리셨다.
“아, 왜 때려!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모르긴 뭘 몰라. 그깟 친구들이 뭐 대수라고 오빠한테 거짓말을…….”
“그냥 두세요. 어려운 것도 아니고 제가 그냥 스물다섯인 걸로 하죠. 뭐.”
씨익.
난 새어머니를 말리고 은솔이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방금까지 수백, 수천억의 아이템을 어디에 팔지 고민을 하다가 이런 일로 실랑이를 하니 왠지 힐링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당장 살던 집을 처분하고 던전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열일곱 살의 어리고 어린 내 동생은 친구들에게 나를 어떻게 소개해줄지가 더 중요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때,
달달달달달달달.
“와아! 아버지 치사하게 저만 빼놓고선 밥 먹고 계신 거예요?”
“뭐 하는 거야. 인마! 연기 날리잖아.”
이세훈이 흙먼지를 흩날리며 경운기를 타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헛험. 그게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서 그렇게 됐다. 미안하다. 어서 와서 밥 먹어.”
아버지가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같이 옆으로 비키며 이세훈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아버지 이러는 거 아닙니다. 해용이만 자식입니까? 해용이 왔다고 전 이제 찬밥 취급이라 이거죠?”
“그런 거 아니라니까 이놈아. 전화도 해 보고…….”
“그쯤 해둬. 인마. 아버지 곤란해하시잖아. 근데 저 경운기는 뭐냐?”
“아 저거, 땅굴 이동하는 데만 이틀은 걸린다며. 젊은 사람들이야 그렇다 치고 어른들이랑 애들은 힘들 것 같아서 한번 가져와 봤다. 어때 저 정도면 땅굴에서 이동할 수 있을 것 같아?”
“흠…….”
난 자리에서 일어나 경운기를 살펴봤다.
‘이 정도 폭이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안 그래도 나도 고민을 한 부분이었다.
지상으로 이동을 할 때는 산새가 험하고 장애물이 많아 힘들었지만, 땅굴은 제법 길이 평탄했다.
일반 승용차는 몰라도 경운기라면 충분히 타고 들어갈 수 있을 듯했다.
“어때? 괜찮지? 어차피 들어가서 농사도 지어야 하니까 경운기 한 대씩 갖고 가면 좋잖아.”
“농사를 짓는다고?”
“그럼 오십 넘은 어른들이 거기 가서 뭐 먹고 살겠냐. 쉬엄쉬엄 농사나 지어야지.”
씨익.
이세훈이 날 보며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짐작건대 단순히 농사를 짓겠다고 저런 표정을 짓는 건 아닌 듯했다.
“동충하초도 그렇고 암염광산 있는데 이능을 발휘하는 야채들이 많다며? 그것들을 연구해서 아예 대량으로 생산하면 너도 손해 볼 거 없잖아. 허락하는 거지?”
“그렇긴 한데…….”
“역시 허락해 줄지 알았어. 그래서 내가 알아서 영농 전문가들도 섭외해 놨다. 하하.”
“……그래.”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이 없었다.
가만두면 번개 불에 콩 볶아 먹을 것처럼 그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던전 안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째 나보다 더 신이 난 사람 같았다.
“세훈아, 저 경운기는 얼마나 하니?”
“한 천만 원정도면 살 수 있을 거예요.”
“가서 집도 지어야 하는데…… 경운기까지는 힘들 것 같은데…….”
아버지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경운기를 쳐다봤다.
“에이! 아버지는. 해용이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나 말고. 다른 사람들 얘기하는 거야. 들어보니 재개발 조합에서 집값이랑 보상비를 터무니없게 부르는 것 같더라고.”
“얼마나 부르는데요?”
“이 사람 집만 해도 평소 같았으면 일억은 받을 수 있는 집인데 삼천만 원 정도 얘기하는 것 같더라고.”
“삼천만 원이요? 이런 날 강도 같은 놈들을 봤나!”
뿌드득.
이세훈이 이까지 갈며 주먹을 불끈 말아 쥐었다.
“재개발 조합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말 이긴 무슨 말이야. 아버지가 살던 동네 재개발한다는 거지.”
“그거야 이십 전부터 나왔던 말이잖아?”
17살.
내가 살던 동네는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재개발한다고 조합을 만들어 추진했었다.
허나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였다.
동네 자체가 워낙에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개발이고 자시고 그냥 살던 곳에서 살다가 죽는다고 반대를 해서 이십 년 동안 말만 많고 진행이 되지 않았었다.
“그치. 근데 이번엔 진짜 할 모양인가 보더라고. 워낙에 큰일이 지나가서 사람들도 다 찬성하고 이사 가려고 하는데 이 염병할 놈들이 좀비 웨이브 지나간 마을이라고 가격을 후려치며 배짱을 부리고 있나 봐.”
“아무래도 그렇긴 하겠지.”
내가 살던 동네 인근에서만 사람이 수백, 수천 명이나 죽어 나갔다.
집값과 땅값이 떨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아니 그만한 돈이라도 주면서 사가는 게 다행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말할 일이 아니야. 이 새끼들 좀비 웨이브가 있기 전부터 횡포가 장난 아니었어. 내가 조합원 중에 한 명 아는 놈이 있어서 술 먹이면서 슬슬 물어보니 이놈들 일부러 바리케이드를 무너지게 했다는 말도 돌더라고.”
“바리케이드를 일부러 무너뜨렸다고?”
“거기 재개발 공사하는 회사 뒤를 버팔로에서 봐주고 있거든. 근데 계속 고집을 부리면서 반대를 하니까 일부러 길을 열어 주었다는 거야.”
“에이. 설마…….”
“설마가 아니야. 건설 회사는 땅 싸게 사서 좋고 청방 길드는 성수 팔아먹어서 좋고. 그놈들 하는 짓거리를 보니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놈들이더라고. 개새끼들.”
이세훈이 광분을 하며 열불을 토해냈다.
‘흠…….’
뭔가 있기는 있는 것 같다.
내가 아는 이세훈은 뜬소문만 같고 이렇게 경솔하게 행동할 사람이 아니었다.
설마 돈 때문에 그렇게까지 할까 싶지만, 이 세상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아름답지가 않았다.
게이트는 그동안 지구에서 정립됐던 과학적 법칙만이 아닌 법과 질서도 무너뜨렸기에.
“그 아저씨들이 아저씨도 때렸어요.”
“아저씨? 아버지 말하는 거야?”
“네. 그 사람들이 가게에 와서 행패 부려서 아저씨가 하지 말라고 하니깐, 막 욕하면서…….”
부들부들.
부들부들.
“이런 개새끼들이!”
아버지가 맞았다는 말에 몸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