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화. 영지민을 거두다 (4)
“해용아, 선박 기술자 필요하다고 했지?”
“선박 기술자도 벌써 구한 거야?”
“마장동이랑 남동 공단에 알아보니까 베트남에서 온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
베트남 선박 기술자 및 경험자.
지하철 공사 기술자 및 경험자.
상, 하수도 공사 기술자 및 경험자.
전기 배선 공사 기술자 및 경험자.
아파트, 빌라, 주택 공사 기술자 및 경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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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훈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필요한 인원들을 척척 섭외했다.
“형 친구라 그런지 세훈이 형도 능력이 장난 아니네요. 어떻게 저렇게 사람을 빨리 구할 수가 있죠?”
“줌마 파워라고 들어봤어?”
“줌마 파워요?”
“백화점이랑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이 이천 명이라 하면 그중에 천오백 명이 아줌마들이거든.”
“근데 그게 왜요?”
“말로는 설명이 안 돼. 계속 겪어보면 자연스레 알게 될 거야.”
이세훈의 힘의 근원을 알려 주는데도 이부성은 알아듣지를 못했다.
공무원, 회사원, 프리랜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누구나 집에 가면 어머니가 있고 아내가 있다.
우리가 기술자들을 구하려면 직접 발품을 팔아야 했지만, 이세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주부 사원들의 단톡방에 올리면 전국 백화점과 마트에서 일하고 있는 이십만 명의 어머니들이 알아서 수소문을 해 주는 것이었다.
“세훈아, 축제한다는 얘기는 못 들었냐? 연예인도 섭외할 수 있으면…….”
“안 그래도 퀸즈 섭외해 놨다.”
“퀸즈를 섭외했다고? 정말? 어떻게?”
“우리 매장에서 일하다가 공항점으로 간 영희 여사 알지?”
“어. 알 것 같아.”
“영희 여사 친구의 동생의 딸의 남편이 개그맨이랑 결혼했는데 그 개그맨이 퀸즈랑 친해서 소개시켜줬어.”
“오. 고맙다. 수고했어.”
“감사 인사를 하기는 이르지. 포텐도 섭외했다.”
“포텐까지?”
“이번에 네가 구해준 사람이랑 포텐 멤버 한 명이 육촌지간이래. 그래서 숙고 끝에 같이 가 주기로 했어.”
이세훈이 날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뭔가 많이 복잡했지만 어쨌든 섭외를 했다는 게 중요한 것이다.
‘한시름 덜었네.’
장지원과 약속을 하긴 했지만, 워낙 중요한 사항이 많아 힘들 것 같아 돌아가서 들들 볶일 줄 알았는데 생각 외로 쉽게 해결이 되었다.
브로마이드라도 보고 싶었던 연예인들을 본 영지민이 좋아할 것을 상상하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수고했어. 역시 이세훈이네. 짱이다.”
“짱은 얼어 죽을. 돈이나 빨리 만들어 와. 퀸즈랑 포텐 그리고 보이 그룹이랑 걸 그룹 열 팀 정도 더 섭외하고 이십억 주기로 했으니까.”
“뭐 이십억?”
“이것도 싸게 한 거야. 퀸즈랑 포텐 대학교 가서 행사 한 번만 해도 삼천만 원 이상 받는단다. 근데 스카이 캐슬은 오고 가는 시간만 사흘이라며? 게다가 거기서 하루 묵으면 오 일이고.”
“그렇긴 하지만 너무 비싼데…….”
“비싸도 어쩔 수 없다. 이미 계약금으로 삼억 보냈으니까. 파기하면 그 돈 날아간다.”
“하아…….”
삼억이라는 말에 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세훈이 15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며 모은 돈이 삼억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그 큰 금액이 날아간다는 말을 너무 스스럼없이 얘기했다.
“축제 한번 하겠다고 이십억이면 너무 많지 않냐? 근데 어쩌자고 그렇게 덥석 계약까지…….”
“영지민 위로하고 응원해 주기 위해 쓰는 거면 좀 많긴 하지. 근데 일할 사람들은 물론이고 헌터들도 더 섭외해야 한다며?”
“그렇지?”
“이참에 축제 공연 영상을 찍어서 광고 좀 하려고. 연예인들까지 와서 공연하는 곳인데 그걸 보면 사람들이 안전에 대해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아…….”
난 이세훈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구 친군지. 내가 정말 친구 하나는 잘 둔 것 같았다.
“성주님, 조금 경계하셔야겠어요. 그 친구에 그 친구라더니. 세훈 씨 때문에 일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어요. 헌터들이랑 헬퍼들하고도 어느새 형, 동생 하며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고요.”
박민정이 빙그레 웃으며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굳이 내가 도와주지 않아도 이세훈은 알아서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내가 괜한 짐을 나눠 준건가?’
난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박민정을 쳐다봤다.
웃고는 있는데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게 밤새 고민하느라 잠을 자지 못한 모양이다.
“부산에서 이아영 마스터가 왔어요. 성주님과 뵙기를 원하네요.”
“아, 그래요? 그럼 가봐야죠.”
“제가 안내할게요. 투표는 이아영 마스터랑 대화하고 나서 하는 거로 해요.”
“네. 알았어요.”
난 박민정과 함께 플로라의 마스터 이아영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조성태, 최은빈, 이부성. 이슬비, 이아영…….
박민정을 따라가자 스카이 캐슬의 수뇌부들이 모두 모여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누구지?’
50대 중반의 처음 보는 사내가 함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재난 관리 본부장 김용규라고 합니다.”
“아…….”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 이곳에 와 있었다.
재난 관리 본부장.
그는 장관급 공무원이었고 몬스터 웨이브가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언제 또 터질지 모르는 지금 그는 대통령과 버금가는 권력을 가진 인물이었다.
“성주님…….”
“아, 죄송합니다. 전 안해용이라고 합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난 김용규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우리를 버린 인물의 수장이기도 했지만, 아버지를 살려준 은인이기도 한 애증의 존재였다.
“스카이 캐슬에서 감염자들을 치료해 줬다는 말을 듣고 연락도 없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놀라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당황하긴 했지만 놀라는 않았어요. 괘념치 마세요. 그럼 앉을까요?”
내가 들어오자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기에 난 주위를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
내가 앉아야 다른 사람도 앉을 것 같았다.
그런데,
“성주님, 이쪽으로 앉으시면 돼요.”
“네?”
최은빈이 상석에 있는 의자를 빼며 내게 앉으라고 했다.
찌릿.
유난히 하얀 피부를 가지고 로브를 입고 있는 여자.
만약 성녀가 있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은 아름다운 여자가 코끝을 찡그리며 최은빈을 노려봤다.
짐작건대 그녀가 플로라 길드의 마스터 이아영인 듯했다.
“무례하게 굴지 마. 참는 데도 한계가 있어.”
“무례하게 굴지 말라고? 지금도 참고 있는 거 안 보여? 내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언니와 김용규 저자를 제압해 민정이 언니 앞에 무릎을 꿇리게 하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거야.”
찌릿, 찌릿.
한순간에 공기가 무거워졌다.
최은빈과 이아영이 마치 원수를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노려봤다.
“은빈아, 그쯤 해 둬.”
“아영이 언니가 먼저…….”
“성주님 불편해하시잖아.”
“……네.”
최은빈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거뒀다.
허나,
“화난 게 있으면 나한테 풀어. 내가 결정한 거니까. 괜히 엄한 우리 애들 건들지 말고. 한 번만 더 우리 애들한테 손대면 참지 않을 거야.”
이아영은 화가 가라앉지 않았는지 한마디를 더 내뱉었다.
“안 참으면 어쩔 건데?”
“뭐라고?”
찌릿.
기껏 최은빈이 누그러지나 싶더니 이번엔 수정이가 이아영과 신경전을 벌였다.
“왜 우리를 죽이기라도 하게? 맞다. 언니는 차라리 우리가 오크의 숲에서 죽는 게 마음이 편했겠네. 그렇게 매몰차게 버린 동생들이 이렇게 살아서 눈앞에 있으니까 불편하지?”
“너희한테는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어. 헌터 협회 회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너희가 그 죄를 묻는다면 달게 받을게. 허나 내 아이들은 건드리지 마. 잘못은 내가 한 거니까.”
“우리는?”
“…….”
“우리는 언니의 사람이 아니었어?”
글썽글썽.
뚝.
뚝.
분명 얼굴은 잔뜩 화가 나 있는 표정인데 이아영을 노려보는 수정이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너희가 살아와서 기뻐. 하지만 난 만약에 같은 상황이 생겨도 똑같은 선택을 하게 될 거야. 헌터 협회의 회장으로서 내 형제, 자매 한 명을 살리는 것보다 수십, 수백 명의 국민을 살리는 게 내겐 더 중요해.”
이아영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수정이를 쳐다봤다.
생긴 건 청순하고 여리게 생겼는데 신념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피곤한 스타일이네.’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아영을 쳐다봤다.
아버지를 구해줘서 흔들렸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사람들을 살려 냈다는 사실에 호감도 있었고.
허나 나와는 맞지 않는 사람인 듯했다.
난 죽었다가 깨어나도 그녀처럼 할 수 없을 듯했다.
그녀는 함께하기엔 너무 큰 사람이었다.
“저는 말이죠.”
“…….”
“…….”
그리 크게 말하지 않았는데도 잠자코 있던 내가 입을 열자 사람들이 다 내 얼굴을 쳐다봤다.
“만 명의 사람이 죽는다해도 내 사람 한 명을 살릴 수 있고 그 한 사람이 미소를 짓는다면 그렇게 할 겁니다.”
“…….”
“…….”
“보아하니 우리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 이리 찾아온 것 같은데 고개를 좀 더 숙이세요. 마스터님 신념이나 듣자고 바쁜 시간 쪼개서 온 게 아니니까.”
난 아무런 표정 없이 이아영을 쳐다봤다. 허나 최은빈과 수정이와 신경전을 벌일 때마다 더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스윽.
스윽.
박민정, 권수정, 조성태, 최은빈, 이부성.
내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 뒤에 섰다.
짐작건대 내가 명령을 내리면 당장 공격이라도 할 기세였다.
“하하. 왜들 그러십니까. 다들 지난 일로 오해가…….”
“용건만.”
“네?”
“용건만 말씀하시면 좋겠네요.”
“미스릴이 필요합니다. 뱀파이어 잔당과 다시 초래될지 모르는 웨이브를 방어하기 위해선 미스릴 무기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도와주십쇼.”
털썩.
김용규가 무릎까지 꿇으며 내게 사정을 해 왔다.
꽤 높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무릎이 참 가벼운 사람이었다.
“저희 아버지가 늘 하시던 말이 있어요. 개 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쓰라고. 아까도 얘기했지만 전 제가 모르는 사람이 백 명이 죽어 나가든, 천 명이 죽어 나가든. 관심이 없어요. 제게 중요한 건 미스릴을 최대한 비싸게 팔아서 저와 함께 죽음을 이겨낸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는 겁니다.”
더 이상 여기 있어봤자 의미가 없을 듯했다. 아니 여기 있으면 흔들릴 것 같았다.
“미스릴이 필요하면 돈을 가져오세요.”
난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들을 쳐다봤다.
“나가죠.”
“……네.”
“……네.”
동료들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내 뒤를 따랐다.
난 나약한 인간이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생각도 없었고.
영웅 놀이를 하기엔 나이가 너무 많고 지쳐 있었다.
난 그저 내 사람들만 행복하고 웃으면서 지낼 수 있으면 되었다.
그것만 하기에도 너무 벅찬 세상이었다.
* * *
4번 울프.
3,210억 원.
난 가장 많은 금액을 제시한 길드의 이름에 체크를 하고 용지를 투표함에 집어넣었다.
“방금 제가 한 말은 다 잊으시고 소신대로 투표하세요.”
난 빙그레 웃으며 동료들을 쳐다봤다.
원래 투표 전에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는 행동이나 발언을 하면 안 되었는데 너무 흥분한 모양이었다.
하루를 줬는데 다들 이제 와서 고민하는 기색이 여력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