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화. 영지민을 거두다 (3)
“회의는 잘 끝났어?”
밖으로 나오니 이세훈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가입한 건가?’
그의 왼쪽 상의에 태백산맥 길드 배지가 달려 있었다.
앞으로 계속 내 일을 돕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당연한 결정이었다.
바늘 가는 데 실이 가길 마련이니까.
단순 짐꾼으로서 헬퍼 일을 시작했을 땐 함께 하자고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그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아버지와 수정이가 있지만, 때론 친구가 아니면 말하지 못할 어려움도 분명 생길 테고 그때 이세훈이 옆에 있으면 큰 도움이 될 듯했다.
“어, 일단은.”
난 이세훈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내 친구이긴 허나 아직까진 공유할 수 있는 정보에 선을 그어야 할 듯했다.
“어떻게 됐어? 사람들 데리고 갈 수 있는 거지?”
“어. 지휘부에서 허락했어.”
“역시! 다 찬성할 줄 알았어. 미스릴은? 미스릴은 어디다 팔기로 했어? 플로워 길드에 팔기로 한 거야?”
“어?”
“뭐야? 미스릴은 어디다 팔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니 이부성이 서 있었다.
“네가 얘기했어?”
“네. 죄송해요. 근데 말하려고 말한 게 아니고 세훈이 형이랑 커피 한잔하면서 던전에 있었던 얘기를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다 술술 털어놓고 있더라고요.”
“뭐야? 내가 알면 안 되는 거였어?”
이세훈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사기꾼 같은 새끼.’
지금 그의 표정은 연기였다.
무려 이십 년이다.
내가 이세훈과 알고 지낸 지.
아마 내가 던전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서 이부성을 타깃으로 작업을 걸었을 것이다.
“죄송해 할 것 없어. 저놈이 마음먹고 들이댔으면 말하지 않을 재간이 없었을 테니.”
“아니에요. 세훈이 형이 억지로 물어본 게 아니라 저 혼자 신나서 막 떠들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할 말, 못 할 말 다 얘기하고 있더라고요.”
이부성은 자기가 당한 지도 모르고 이 와중에 이세훈의 편을 들고 있었다.
만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형, 형 거리면서
“그래서 죄송할 것 없다는 거야. 그게 저놈 특기거든. 장단 맞춰 주고 리액션 하면서 정보 뜯어내는 데 선수거든.”
“아…… 왠지 뭔가 찝찝하더니 그래서 그랬나 보네요. 세훈이 형이랑 얘기할 때는 몰랐는데 숙소에 와서 돌이켜 보니 귀신한테라도 홀린 기분이었거든요.”
이부성이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뭘 또 그렇게까지 비하를 하나. 그냥 네가 어떻게 지냈는지.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궁금하니까 좀 알아본 것 같고.”
이세훈이 코끝을 찡그리며 볼멘소리를 했다.
아웃소싱 팀장.
그가 했던 일은 기업과 제휴해서 원하는 인재를 소개해 주는 일이었다.
나와 같이 고등학교만을 졸업해 놓고도 그는 인천에 있는 수십여 개의 백화점과 마트와 계약을 맺고 수천여 명의 인원을 관리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기업들은 대기업, 중소기업 할 것 없이 윗대가리들은 전부 학연, 지연, 혈연으로 맺어져 있었는데 그 틈을 파고들어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온 능력자였다.
그는 뒷배가 없는 대신 접대와 로비, 사람 상대하는 데에는 아주 이골이 난 놈이었다.
“부성아, 저놈 조심해라. 눈 감으면 코 베어 갈 놈이니까.”
“네, 알겠어요.”
“너랑 형, 동생 하기로 했다며. 그럼 나랑도 형, 동생이 될 사이인데 내가 부성이한테까지 그러겠냐?”
“나한테도 사기 치는 놈인데, 부성이한테 안 한다는 보장은 없지 않나?”
“끙…….”
이세훈이 앓는 소리를 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축산, 수산, 농산, 안내 데스크, 화장품 코너. 심지어 여성 속옷 매장까지.
가뜩이나 방랑벽이 심한데 이세훈까지 옆에서 부추겨 난 마트에서 안 해 본 일이 없었다.
그와 얘기를 하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일할 생각이 없었는데도 정신을 차려보면 난 어느새 여성 속옷 매장에 가서 유니폼을 입고 빙그레 웃으며 고객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먹고 살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알잖아. 너도 노는 것보다야 그렇게 아르바이트라고 하는 게 나았을 시절이었고.”
“알아.”
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를 탓하는 게 아니었다.
그저 이부성을 동기로 했으니 이세훈에 대해 있는 그대로 자세히 알려주는 것뿐이었다.
“미스릴을 어디에 팔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어. 하루 동안 생각할 시간을 가졌다가 내일 비밀 투표로 하기로 했어.”
“투표한다고? 네가 여기 대장, 아니 성주 아니었어?”
“성주가 맞긴 하는데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세훈의 말처럼 내 뜻대로 결정해도 그걸 막아서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허나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난 부족한 사람이었고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사람이다.
던전 안에 고립됐을 때는 어쩌다 운이 좋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해내고 존중을 받으며 그들을 대신해 결정을 내리고 행동에 옮겼지만 더 이상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스카이 캐슬은 결국 독립된 국가가 될 수밖에 없어. 그러기 위해선 국민이 필요하고.’
이세훈이 예견한 거처럼 만약 내가 정말 국가를 선포하게 된다면 난 왕이 되기보다는 대통령이 되고 싶었다.
민주주의 국가.
그런 통치하에 있던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교육을 받아서인 듯했다.
물론 나 역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할 테지만.
박민정, 권수정, 이부성, 조성태, 최은빈.
현재 지휘부는 각 길드를 대표해서 함께 온 사람들이었고 난 그들의 결정 아니 모두와 결정을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면 일이 너무 복잡해지는데…….”
“왜? 무슨 일 있어?”
이세훈이 낭패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고 애들을 가르칠 선생님들을 섭외해 왔거든.”
“선생님들을 벌써 섭외했다고?”
“할 일도 없고 노느니 슬슬 알아봤는데 생각보다 따라가겠다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그래?”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감염자와 가족들은 그렇다 치고 평범한 삶을 살았던 이들이 던전에 함께 가겠다고 하는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교사라는 직업은 지구에서 생활해도 충분히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을 테니까.
굳이 자처해서 고난의 길로 갈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너 또 사기 쳤냐?”
“뭔 사기를 쳐.”
“근데 선생님들이 우릴 왜 따라간다고 해?”
“그건 가서 직접 얘기해 보면 알잖아. 괜히 애먼 사람 잡지 말고 네가 가서 직접 면접을 봐. 개새꺄.”
자꾸 사기꾼, 사기꾼 그래서 기분이 상했는지 이세훈이 입술을 내밀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안내해. 너 진짜 사기 친 거면 친구고 뭐고 국물도 없다.”
아무래도 내가 가서 직접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또 들어야 할 것 같았다.
* * *
20대에서 60대까지.
여자 13명.
남자 7명.
교사를 하겠다며 지원을 한 사람이 이십 명이나 날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말을 어떻게 듣고 오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스카이 캐슬은 아주 위험한 곳입니다. 지금이야 어찌저찌 몬스터들을 막아 내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환경 역시 열악해서 물을 먹으려면 우물이나 계곡에 가서 떠와야 하고 밤에 볼일이라도 보려면 야생 동물과 몬스터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봐야 합니다.”
난 혹시나 이세훈이 좋은 얘기만 하고 나쁜 얘기는 안 했을 것을 염려해 일단 스카이 캐슬의 현 상황을 최대한 자세히 설명을 해 주었다.
없는 말을 지어내고, 있었던 일을 달리 말하는 것만 거짓말이 아니었다.
사실을 숨기는 역시 거짓말이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교사들이 절실히 필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말을 해서까지 데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네. 그 얘기는 이미 다 들었습니다.”
“그래도 따라가시겠다는 겁니까?”
“저희가 스카이 캐슬로 가려는 이유는 돈이나 안락한 삶을 원해서가 아니고 교육자로서 아이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겠다는 사명감 때문입니다.”
교장 선생님쯤 되어 보이는. 50대 중, 후반의 남자가 앞으로 나와 내 물음에 대표로 대답을 했다.
“사명감이라 하시면?”
“현재 대한민국의 초, 중, 고 교육시스템은 오직 대학교를 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인성, 체력, 취미, 특기 이런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마치 기계처럼 오직 시험성적에만 매달리게 하고 있습니다.”
“흠…….”
“먹고 살기 위해. 입 구멍이 포도청이라 지금까지 그리 살아왔지만, 오래전부터 교육자로서 회의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이세훈 팀장의 제의를 받고 제 소신대로 아이들을 가르쳐도 된다는 말에 용기를 내었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대표로 나온 교사가 마치 전쟁터라도 나가는 거 마냥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과 시선을 주고받았다.
끄덕끄덕.
이세훈은 교사가 한 말에 감동이라도 받은 것처럼 눈물마저 글썽였다.
“나머지 분들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서울대는 보내지 못해도 빌 게이츠 같은 학생이 나올 수 있게 아이들을 가르쳐 보고 싶습니다.”
“서울대는 보내지 못해도 에디슨 같은 학생이 나올 수 있게 아이들을 가르쳐 보고 싶습니다.”
다들 열의가 대단했다.
마치 누군가에게 세뇌라도 당한 사람처럼. 아니면 그동안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것을 꺼내 줬을 수도 있고.
“세훈아, 잠깐 얘기 좀 할까?”
그리고 그 범인은 멀리 있지 않았다.
주르륵.
주르륵.
난 옆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세훈을 불러 밖으로 나갔다.
“네 작품이냐?”
“또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다들 훌륭하신 분들인 것 같긴 한데 어째…….”
“훌륭하신 분들이지. 근데 너무 훌륭해서 임용 고시에 합격하고도 취업을 하지 못했거나 취업을 해 놓고 얼마 다니지 못하고 관둔 분들이야.”
“넌 그런 사람들을 부추겨서 여기까지 데리고 온 거고?”
“부추긴 적 없다. 난 그냥 얘기를 들어주며 공감을 해 주었을 뿐이야. 그리고 스카이 캐슬로 가면 원하는 대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한 거고.”
“끙…….”
나도 선생님들의 뜻은 공감한다.
영어와 수학.
시험만 봤다 하면 매번 30점을 넘기지 못해 평생 맞을 매를 중, 고등학교 때 다 맞은 것 같다.
근데 정작 난 사회에 나와서 그 두 가지를 써먹은 적이 없었다.
그래서 가끔 그런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내가 결혼을 하고 또 아이를 낳는다면 시골 한적한 곳에 내려가 학업에 목메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키우고 싶다고.
열 살도 안 된 어린아이가 유튜버를 한다며 방송을 하는 시대.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으면서 16년이나 되는 오랜 세월을 정형화되고 틀에 박혀 있는 교육을 할 필요가 있는지 항상 의문이 들었다.
헌데,
‘상처를 받고 정부에 버림을 받은 이주민들과 오래 공부해서 정부 고시에 합격해 놓고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따라가겠다는 선생님들까지.’
뜻이 좋긴 한데 약간 외인구단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어차피 스카이 캐슬에 학교를 세워 봤자 당장은 학력 인정도 받지 못할 테니. 애들한테 주입식 교육하는 것보다는 단체 생활과 기초적인 소양 정도만 가르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도와주게 하는 게 나아.”
“……그래.”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세훈의 말이 일리도 있었고 어차피 멀쩡히 학교를 잘 다니는 선생님들은 섭외하기도 쉽지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