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79화 (79/255)

79화. 영지민을 거두다 (2)

“멀리서 찾을 게 뭐 있어. 여기 사람들이 넘쳐 나는데.”

“스카이 캐슬은 네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위험하고 환경이 열악한 곳이야. 남자들은 그렇다 치고 여자들이랑 아이들이 살만한 곳이 아니야.”

난 이세훈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주머니와 은솔이는 이제 내 가족이 될 사람들이기에 내가 보살피겠지만 저들까지 책임을 질 자신도 의지도 없었다.

“저들한테는 그곳이 아무리 환경이 열악하다고 해도 여기서 사는 것보다는 나을 거야. 네가 거둬 주지 않으면 저들은 돌아갈 곳이 없거든.”

“돌아갈 곳이 없다고?”

“여기 있는 대부분이 집에서 사람이 죽어 나갔어. 그것도 내 가족과 이웃에 의해. 너 같으면 그런 집에 가서 다시 살 수 있을 것 같아? 게다가 비록 좀비가 됐다 하나 군인들과 헌터들에게 가족과 이웃을 잃은 사람들도 많고.”

“하아…….”

이세훈의 말을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아버지를 치료하기 위해 저들과 함께하다 보니 그새 정이 많이 든 모양이었다.

“해용아, 어려운 사람을 도우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정부도 치료를 포기했던 이들을 네가 치료해 줬잖아. 지금 저 사람들은 너에게 평생을 갚아도 못 갚을 빚을 졌잖아.”

“돈 달라고 할 생각 없어.”

“알아. 인마. 내가 너를 모르겠냐? 너 성주라며? 보아하니 영지에 꽤 귀한 물품들을 많이 갖고 있는 것 같은데 어중이떠중이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보다는 너를 은인으로 생각하고 마음의 빚이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는 게 낫지 않겠어?”

“흠…….”

“어린아이들은 모르겠지만 여자들은 찾아보면 분명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거야. 농사짓는 걸 도와도 되고 다들 자기 밥벌이는 할 수 있는 사람들이야. 게다가 무작정 먹여 살리라는 것도 아니야. 다들 지금 사는 집과 재산을 처분하면 다 당분간 먹고살 돈도 있는 사람들이야.”

“흠…….”

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스런 표정을 지었다.

듣다 보니 제법 일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때,

“게다가 국가를 선포하려면 국민도 필요하잖아. 군인만 있어서 되겠어?”

“국가?”

이세훈의 입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뭘 놀래? 오다 보니까 재난 관리 본부는 물론이고 헌터 협회 사람들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더니만.”

“그거야 사정이 있어서…….”

“거두절미하고 스카이 캐슬 대한민국에 편입시킬 거야?”

“…….”

난 이세훈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보아하니 광산을 발견한 모양인데 나라에 내야 하는 세금이 만만치 않을 거야. 너 그거 낼 거야?”

“아니.”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기 싫다.

정부가 우리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세금을 내겠는가?

재난 관리 본부는 우릴 버렸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저버렸다.

근데 그 와중에 살겠다고 발견하고 개발한 광산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거봐. 인마. 넌 생각해 본 적 없겠지만 스카이 캐슬은 결국 독립된 국가가 될 수밖에 없어. 그러기 위해선 국민이 필요하고.”

국가.

통치 조직을 가지고 일정한 영토에 정주하는 다수인으로 이루어진 단체.

국가.

일정한 영토와 그 영토에 사는 사람들로 구성되고, 주권에 의해 다스려지는 사회 집단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Sealand 공국.

자체 여권을 갖추고, 화폐와 심지어 국가 대표 축구팀까지 있는…….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영토에 이어 이제는 사람까지 생겼잖아. 내가 알아보니까 사람 열 명에서 세운 나라도 있더라고.”

이세훈이 핸드폰을 켜고 국가에 대해 검색해서 내게 보여줬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어째 대화를 하면 할수록 너무 멀리 나아가는 기분이다.

“알았으니까 그만하자.”

“데리고 갈 거지?”

“지휘부랑 회의해야 확답을 할 수 있지만 일단 데리고 가는 방향으로 추진을 해 볼게.”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라고 자시고 그런 복잡한 건 모르겠고 일단 저들을 데리고 가면 믿을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가족을 살려준 내 등에 칼을 꽂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 * *

발키리 길드 권수정, 박민정.

태백산맥 길드 이부성.

흑기사 부대 조성태.

마녀 부대 최은빈.

난 각 길드의 인솔자들을 긴급회의를 열었다.

내 마음이 기울었다 하나 나 혼자 결정할 사항은 아니었기에.

“……이러한 이유로 여기 있는 사람들을 스카이 캐슬로 데려갔으면 합니다.”

난 이세훈과 얘기한 것을 토대로 지휘부에게 내 뜻을 전달했다.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안 그래도 개당 십억이나 하는 약을 무료로 나눠줘서 아까웠는데 잘됐네요.”

“저도 찬성입니다. 힘든 일을 겪었고 우리가 가족마저 살려 줬으니 환경이 열악해도 불평, 불만 없이 잘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역시 성주님이십니다. 그 비싼 약을 안면도 없는 사람에게 나눠줘서 의아해했는데 이러려고 그러신 거군요. 대단하십니다.”

“그러게. 돈 십억에 1,000호에 가까운 가족들이 이주하고 충성심마저 얻었으니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네요.”

지휘부는 모두 내 뜻에 찬성했다.

근데 다들 왠지 뉘앙스가 이상했다.

“지금 다들 뭔가 오해를 하시는 것 같은데 상황이 그렇게 됐을 뿐.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다른 의도는 전혀 없었어요.”

“네. 알고 있어요. 정황상 오해는 받겠지만 저희는 성주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네. 저도 정황상 그런 오해를 받을지도 모르겠구나. 생각만 했지. 성주님이 다른 목적을 가지고 감염자들을 치료했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네.”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들 아니라고는 하는데 속으론 의심을 하는 듯했다.

왠지 서운한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오해한 적 없다는데 계속 언급을 하면 그게 더 이상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오빠, 신경 쓰지 마세요. 애들이 장난치는 거예요.”

“장난치는 거라고?”

“오빠가 곤란한 표정 지으니까 재미있어서 일부러 저러는 거예요.”

수정이가 슬며시 내게 귓속말을 해 왔다.

“야, 권수정 너 지금 뭐라고 했어?”

“그만 놀려. 오빠 진짠 줄 알고 상처받는단 말이야.”

“이씨. 한참 재미있었는데.”

“그러게요. 쩝.”

박민정과 이부성이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입맛을 다셨다.

‘부성이 너마저…….’

진짜 내게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그럼 인원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됐으니 이제 미스릴과 아만티움을 팔아서 공사 자제와 기술자들만 구하면 되겠네요.”

“처음에 계획했던 것보다 파이를 좀 키워야 할 것 같아. 가족들까지 합치면 최하 이천 명 이상 될 테고 집을 짓는 것만 해도 만만치 않을 테니까.”

“어, 안 그래도 감안하고 있어. 일하러 들어 온 것도 아니고 가족 단위로 아예 살려고 오는 건데 통나무집을 지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수정이와 대화를 주고받던 박민정이 내게 서류철 하나를 보여줬다.

“계획했던 거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미스릴과 아만티움을 팔아서 돈만 생기면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 아레스 길드

미스릴 괴 100개 1,000억 원.

아만티움 괴 100개 100억 원.

오크 코어 20,000개 100억 원.

동충하초 포션 100개 10억 원

TOTAL 1,210억 원.

2. 레인보우 길드

미스릴 괴 100개 1,000억 원.

아만티움 괴 100개 100억 원.

오크 코어 20,000개 100억 원.

동충하초 포션 100개 10억 원

TOTAL 1,210억 원.

3. 버팔로 길드

미스릴 괴 100개 2,000억 원.

아만티움 괴 100개 100억 원.

오크 코어 20,000개 100억 원.

동충하초 포션 100개 10억 원

TOTAL 2,210억 원.

4. 울프 길드.

미스릴 괴 100개 3,000억 원.

아만티움 괴 100개 100억 원.

오크 코어 20,000개 100억 원.

동충하초 포션 100개 10억 원

TOTAL 3,210억 원.

5. 플로라 길드

미스릴 괴 100개 500억 원.

아만티움 괴 100개 100억 원.

오크 코어 20,000개 100억 원.

동충하초 포션 100개 10억 원

TOTAL 710억 원.

.

.

.

“지금까지 저희한테 물품을 사고자 원한다며 연락을 한 길드와 제시한 금액들이에요.”

“미스릴이 열 배 정도 올랐다고 하지 않았나요? 버팔로랑 울프는 왜 이렇게 제시 금액이 높죠?”

난 의문스런 표정을 박민정을 쳐다봤다.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 전에 미스릴은 1kg에 1억 원에 거래가 됐고 지금은 열 배로 시세가 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두 길드는 무려 스무 배와 삼십 배가 넘는 금액을 제시했다.

“버팔로 길드는 청방이랑 동맹을 맺고 그쪽에서 자금 지원을 받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성수를 그쪽에서 관리하고 있더라고요.”

“울프는요?”

“울프는 일본 쪽과 동맹을 맺은 것 같아요. 그쪽은 아직 몬스터 웨이브가 해결되지 않아서 아마 울프한테 판매하면 다 일본 쪽으로 들어갈 것 같아요.”

“그 말은 버팔로랑 울프 쪽에 판매를 하면 미스릴이 다 국외로 흘러간다는 말이네요?”

“……네.”

박민정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설명해 주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녀의 시선은 가장 적은 금액을 적어낸 플로라 길드에 가 있었다.

난 수정이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조용히 귓속말했다.

“플로라 길드랑 사이 안 좋은 거 아니었어?”

“아니요. 엄청 좋았어요. 플로라 길드 마스터 이아영이랑 언니, 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어요.”

“그래서 더 화가 난 건가?”

“네. 맞아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하게 지내던 언니가 저희를 버렸으니까요.”

“아…….”

사람이 배신을 당할 때만큼 치졸해질 때가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그런 듯했다.

박민정, 조성태, 최은빈.

사람들이 왜 그렇게 이슬비한테 날카롭게 굴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이슬비는 A급 헌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죄인처럼 변변한 반항하지 않았고.

‘좋은 사람들 같은데…….’

김용규와 이아영 그리고 이슬비까지.

사람들은 끼리끼리 어울리기 마련이다.

비록 우리를 버렸지만, 그들은 부산과 인천의 시민들을 살려 냈다.

‘미스릴이랑 아만티움이야 스카이 캐슬에서 더 가져오면 되는데…….’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

머리는 울프 길드한테 팔라고 하고 가슴은 플로라 길드한테 팔라고 하고 있었다.

“물품을 어디에 판매할지는 내일 비공개 투표로 결정하겠습니다.”

“비공개 투표요?”

“하루의 시간을 드릴 테니 다들 신중하게 고민해 보시고 어디에다 판매할지 결정해 주세요. 기권은 없습니다.”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나요? 울프가 가장 많은 금액을 제시했으니 그냥 거기에다가 팔면 되잖아요?”

“울프한테 팔면 미스릴이 일본으로 흘러간다잖아. 우리야 많은 돈을 벌어서 좋긴 하지만 혹시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난 이부성의 등을 토닥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부성의 말처럼 전부 울프를 선택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난 이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었다.

나 역시 조금 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고.

앉은 자리에서 결정하기엔 너무 어려운 사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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