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78화 (78/255)

78화. 영지민을 거두다 (1)

중급 정령사.

스카이 캐슬.

성주.

난 지금 내가 가진 힘과 재력, 권력을 아버지한테 다 설명해 주었다.

“……기력 좀 회복하시면 저랑 같이 저희 영지로 같이 가요. 앞으론 제가 모실게요.”

“다 늙어서 가긴 어딜 가. 죽어도 고향에서 죽어야지. 난 신경 쓰지 말고 너희 둘이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아. 난 그거면 충분해.”

“수정아, 잠시만 아버지랑 둘이 얘기 좀 할게.”

“네, 알았어요.”

꾸벅.

아무래도 아버지와 긴히 얘기해야 할 것 같아 난 수정이를 밖으로 내보냈다.

안, 강, 최.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여간해선 꺾지 않는 분이었기에 웃으면서 얘기를 하면 내 뜻을 따라 주지 않을 것 같았다.

지난 시간 동안 아버지랑 숱하게 싸우며 살아왔지만 수정이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늘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홀아비에 외아들인 집안에 딸을 시집보내고 좋아할 부모는 흔치 않기에.

게다가 돈이 없는 집안은 더더욱 마음이 편치 않을 테니까.

그래서 마치 날 세뇌하기라도 하겠다는 거같이 계속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근데 난 저 말이 참 듣기 싫었다.

“그렇게 얘기하면 참 속이 편하시죠?”

난 굳은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노려봤다.

“나이 먹은 아들 앞길 막을 것이 염려됐으면 조금 더 열심히 사시지 그랬어요? 적어도 아파트 한 채라도 있었으면 며느리가 될 사람을 처음 보고 그리 궁상맞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됐을 테니.”

“…….”

아버지의 미간이 잠시 꿈틀거렸다가 멈췄다.

화가 나셨나 보다. 허나 아버지는 그걸 표현하지 못하셨다.

내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기에.

창고를 개조해 수선 방을 차린 보증금 오백에 월세 삼십오만 원짜리 월세 집.

아버지는 삼십 년 전에도 월셋집에서 살았고.

이십 년 전에도 월셋집에서 살았고.

십 년 전에도 월셋집에서 살았다.

아버지는 평생을 그렇게 매달 월세를 내면서 생활을 하셨다.

“지금이야 정정하시니 생활비라도 버시겠지만, 더 늙으시면 뭐 먹고 사시게요?”

“그건 내가 알아서…….”

“알아서 하긴 뭘 해요? 모아 놓은 돈 있으세요? 제게 짐이 되기 싫었으면 노후 대비를 하셨어야죠.”

“이놈이…….”

“듣기 싫어도 들으세요. 아버지가 뭐라 해도 전 아버지 모시고 가야겠어요. 제게 짐이 되기 싫었으면 아버지는 조금 더 열심히 사셨어야 했었어요.”

이글이글.

아버지의 눈빛이 불타오른다.

예전 같았으면 아마 당장 귀싸대기라도 날아왔을 것이다.

아버지의 역린을 건드렸기에.

적어도 내게 짐은 안 되겠다는 마음으로 사셨던 아버지.

허나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인간은 시간이 지나면 늙기 마련이고 언젠간 내 보살핌이 필요한 시간이 찾아올 테니까.

그리고 그때 내가 아버지를 모시는 건 자식으로서 당연한 도리였다.

십 년, 아니 이십 년 이상 가슴 속에 담아둔 말이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은 건 처음이었다.

난 아무런 말 없이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한다면 하는 분이었다.

자신의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은 어떡해서든 지키시는 분이었고.

내가 이대로 돌아선다면 아버지는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내게 폐를 끼친다고 여겨지면 정말 연락을 안 할 사람이었다.

허나 그건 아버지 입장이고 자식 된 처지에 난 아버지를 계속 이곳에 혼자 남게 할 수는 없었다.

“……미, 미안하다. 근데 나는 이곳이 정말 좋구나. 너한테 짐이 될까 봐 그러는 게 아니고 늙은 나이에 아는 사람도 없는 곳에 가는 게 무서워.”

“아는 사람이 없긴 왜 없어요. 저도 있고 수정이도 있잖아요.”

한참을 말이 없던 아버지는 속삭이듯 힘겹게 다시 입을 여셨다. 허나 아버지는 여전히 고집을 꺾지 않으셨다.

그런데 그때,

짝!

“싸가지 없는 새끼. 바로 어제까지 사경을 헤맸던 분한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이세훈이 병실로 들어와 내 등짝을 내리쳤다.

찡긋.

코끝과 미간마저 찡그리며 잔뜩 화가 난 표정인데 눈은 내게 윙크하고 있었다.

짐작건대 아버지 편을 들며 날, 도와줄 모양인 듯했다.

“네가 끼어들 일이 아니야. 나가 있어.”

난 이세훈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의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듯했다.

“싫은데? 넌 뭐 그리 열심히 살았다고 아버지를 타박하냐. 고등학교 때 애들 두들겨 패서 수백만 원 날려 먹고…….”

“그 얘기가 지금 왜 나와?”

“너도 아버지한테 뭐라 할 처지는 아니라고 새끼야. 아무리 부자지간이라도 서로 아픈 곳은 건드리는 거 아니다. 안 그렇습니까? 아버지?”

“……그치.”

아버지가 이세훈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씁쓸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잠시 자신의 편이 생기자 조금씩 얼굴이 평온해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저놈이 던전 들어가서 돈 진짜 많이 벌었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걱정, 한숨 다 털어 내고 통장 아주머니랑 한번 잘해 보세요.”

“헛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아버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헛기침을 하셨다.

“에이. 왜 그러세요. 아버지가 통장 아주머니 좋아하는 거 동네 사람들 다 알고 있더만요.”

“누가 누굴 좋아한다는 거야. 이놈아. 내 나이가 몇인데…….”

“통장 아주머니도 마음이 있으시대요.”

“뭐라고?”

아버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나와 있을 때와 달리 아버지의 얼굴에 생기가 돋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내가 아니라 둘이서 부자지간으로 알만큼 다정해 보였다.

“좀비들 출몰했을 때 은솔이 구하려다가 아버지도 물리신 거라면서요?”

“아니 나는 그냥 도망가려다가 앞에 은솔이가 있어서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나선 거지. 헛험.”

“그래요? 이런! 제가 오해를 했나 보네요. 전 아버지가 마음 있으신 줄 알고 통장 아주머니한테 같이 해용이네 영지로 가자고 했는데…….”

이세훈이 낭패 어린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를 쳐다봤다.

“그냥 여기에 있으라고 해야겠네요. 나라에서도 버림받은 상황에서 목숨 바쳐 지켜 주셨던 아버지가 있어서 힘이 많이 됐던 모양인데 아버지 마음이 그렇다면 어쩔 수…….”

“내가 해용이 저놈 따라가면 같이 간데?”

끄덕끄덕.

“어차피 살던 집은 거의 부서져 있고 동네 자체가 좀비 웨이브 때문에 피로 얼룩져 있어서 돌아가기 싫은 모양이더라고요.”

“흠…….”

아버지가 세상 걱정은 다 떠안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내 밥벌이는 알아서 할 테니 부탁 좀 하자.”

“네?”

“뭘 되물어. 내 소원대로 같이 따라간다고.”

“헐…….”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정색까지 해 가며 말을 할 땐 꿈쩍도 안 하더니 통장 아주머니가 함께 간다는 말에 아버지는 한순간에 태도를 달리하셨다.

* * *

“라이터는 그렇다 치고 아무리 옛날 동네라고 해도 김치 갖다주고 밑반찬 가져다주는 일은 드물거든. 그래서 사람들한테 물어봤더니 아버지랑 아주머니랑 서로 의지하며 지내셨더라고.”

“의지했다는 게…….”

“뭘 그런 걸 물어. 다 큰 성인이면 척하고 알아들어야지.”

“아…….”

씨익.

병실에서 나온 이세훈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봤다.

“……고맙다.”

난 진심을 다해 그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부자지간.

세상 그 어떤 관계보다 가까운 사이지만 반대로 가장 불편한 사이이기도 했다.

나도 아버지랑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무서워서 어려웠고 지금은 그냥 특별한 이유도 없이 서로를 어려워했다.

아버지와 나랑 가장 평화로울 때는 같이 있어도 서로 아무 말도 안 할 때뿐이었다.

그래서 그런 듯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서도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던 이유가.

“고마워할 것도 많다. 당연한 일을 가지고.”

이세훈이 날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는 예전부터 항상 이래 왔다.

가끔은 나조차 잊어버린 아버지의 생신날 술과 먹을 것을 들고 찾아와 아버지와 식사를 할 정도로 진짜 친자식처럼 굴었다.

“좋은 말 할 때 그 눈빛 거둬라.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

“……어.”

내 눈빛이 너무 그윽했나 보다.

이세훈이 주먹이라도 날릴 것처럼 인상을 찡그렸다. 아마 일 초만 더 쳐다봤으면 어쩌면 진짜 한 대 맞았을지도 모르겠다.

친구, 형제 아니 그는 내 분신이었다.

내 가족이 그의 가족이었고. 그는 나의 희로애락을 항상 함께했다.

내게 기쁜 일이 생기면 같이 기뻐했고. 슬퍼하면 같이 옆에서 울어 주었다.

우린 서로를 돕는 일에 고맙다는 말조차 하면 안 되는 사이였다.

“어떻게 은솔이도 깨어났다는데 새어머니랑 동생한테 인사하러 가 볼래?”

“새어머니? 동생?”

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17살.

내가 알기로 은솔이는 이제 갓 고등학교에 입학 한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통장 아주머니의 나이는 적으면 40대 후반 많아야 50대 초반일 것이다.

아버지는 올해 예순둘이다.

아주머니가 50대 초반이라 쳐도 나와 나이 차이가 그리 많이 나지 않았다.

내가 첫사랑에 성공했으면 은솔이는 내 딸뻘이었고.

“왜 부담스러워?”

“좀 그렇지?”

“부담스러워도 가서 인사하고 네가 적극적으로 추진 좀 해 봐. 네가 어려워하면 아버지랑 아주머니도 부담스러워서 지금처럼 계속 어영부영 살 수밖에 없어.”

이세훈이 세상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뭔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의 말이 뭔지도 알고 나도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게 참 쉽지 않았다.

지금 이 마음가짐으로 갔다간 어색해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시간이 필요했다.

“너는 다 문제인데 이게 제일 큰 문제야. 다 늙은 남자 새끼가 뭔 이렇게 낯을 가리냐. 잔말 말고 따라와.”

“끙…….”

이세훈이 내 뒷 목을 잡고 날 끌고 갔다.

뿌리치려면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새끼손가락 하나 가지고도 일반인인 그를 제압할 수 있기에.

근데 난 그러지 못했다.

‘새어머니라…….’

두근두근.

쿵덕쿵덕.

가슴이 요동친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생긴다는 말에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몸에서 기분 좋은 떨림이 느껴졌다.

지나간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학교 졸업식.

군대 입대.

설날과 추석. 사촌들의 결혼.

.

.

.

행사가 있을 때마다 난 아버지와 단 둘뿐이었고 그 외로움과 쓸쓸함, 서러움은 이루 말하지 못할 정도였다.

“안녕하…….”

“고맙다. 고마워. 해용이 네가 우리 은솔이를 살려 줬다며. 흑흑. 정말 고맙다. 정말 고마워.”

“감사합니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을게요.”

은솔이의 병실에 도착하자 통장 아주머니는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울며 달려와 내 손을 붙잡고 연신 고개를 숙이셨다.

손이 참 따듯하다.

얼굴도 곱게 생기셨다.

젊었을 적에 남자깨나 울리셨을 것 같다.

“아니에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은솔이는 좀 괜찮아졌나요?”

“그래. 흑흑. 네 덕분에 지금은 밥도 잘 먹고 흑흑…… 정말 고맙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아주머니는 서러운 눈물을 토해 냈다.

그런데 그때,

“아저씨, 정말 감사드립니다.”

“…….”

“…….”

“…….”

은솔이도 다시 한번 내게 감사 인사를 했고 병실 가득 적막함이 감돌기 시작했다.

‘아직은 아저씨가 맞긴 하는데…….’

고1 17살.

난 이제 해가 지나 서른아홉이 되었다.

22살 차이.

아저씨라고 해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나이 차이이긴 했다.

“은솔아, 엄마가 얘기했잖아. 엄마 아저씨랑…….”

“아, 맞다. 깜빡했다.”

쿵.

은솔이가 자기 머리를 쥐어박으며 날 쳐다봤다.

피부도 하얗고, 치아도 가지런한 게 엄마를 닮아서 그런지 은솔이도 참 예쁘게 생겼다.

“오, 오빠.”

찌릿.

순간 등에서 전기가 흘렀다.

수정이가 오빠라 불렀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감사해요.”

“어, 그, 그래.”

난 어색한 표정과 몸짓으로 은솔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근데 얜 어떡하려고 그러지?’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은솔이를 쳐다봤다.

아주머니야 그렇다 치고 은솔이는 아직 한창 학교에 다닐 나이였다.

보아하니 혼자서 딸을 애지중지하면서 키운 것 같은데 아버지 때문에 스카이 캐슬로 가겠다고 한 것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뭘 또 그렇게 멍때리고 있냐. 은솔이도 함께 갈 거야. 그러니까 스카이 캐슬에 학교도 지어야 할 거야.”

“학교를 지어야 한다고?”

“당연한 걸 왜 물어? 내가 알아보니까 스무 살 밑의 아이들이 오십 명쯤 되더라.”

“스무 명?”

“무슨 말이긴. 너 성주라며 그럼 안에 주민도 있어야 할 거 아니야? 사람 필요한 거 아니었어?”

이세훈이 빙그레 웃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그의 시선 끝엔 치료를 마치고 산책을 나온 환자들과 가족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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