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아버지
‘나 없는 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푸석푸석한 피부.
퀭한 눈빛.
떡 진 머리.
옷에서 전해지는 퀴퀴한 냄새.
아까는 경황이 없어 인지하지 못했는데 지금 보니 이세훈은 노숙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행색이 초라했고 피곤해 보였다.
짐작건대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돌아다니느라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도 자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제 내가 왔으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일단 잠 좀 자 둬.”
“각성한 거야? 돈 좀 벌었어? 얼마 벌었어? 아버지 살리려면 최하 10억은 있어야 해.”
“돈도 많이 벌었고 아버지 되돌릴 수 있는 포션도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포션? 성수를 구한 거야? 어떻게? 돈이 있다고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아닌데?”
이세훈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9개월 만에 내가 너무 많이 변해 있어서 그런지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엔트의 줄기라고…….”
난 그동안 오크의 숲에 있었던 일들을 이세훈에게 설명해 주었다.
정령을 만나 각성을 하고.
오크들을 물리쳐 성벽을 쌓고.
헌터들의 추대로 성주가 되고.
.
.
.
하나도 숨김없이 모두 다 말해 주었다.
“와. 진짜 잘 됐구나. 난 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 내가 그랬잖아. 옛날 위인 중에서도 30대 넘어서 날개를 펼친 사람이 많다고.”
내 얘기를 들은 이세훈이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기뻐해 주었다.
한명회, 정약용…….
그는 옛날부터 나를 늦은 나이에 뜻을 펼쳤던 위인들과 비교를 하고는 했다.
“해용아.”
“응?”
“플로라 헌터 님들께 함부로 굴지 마.”
“……?”
“저분들 아니었으면 아버지 돌아가셨어.”
“자세히 얘기해 봐.”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이세훈을 쳐다봤다.
“좀비들이 나타나고 처음엔 아레스 길드랑 군인들이 왔는데 그땐 정말 많은 사람이 죽었어. 헌터들이랑 군인들이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까지 다 죽였거든.”
“이런…….”
“근데 다행히 부산을 정리하고 지원을 온 플로라 길드가 아버지가 살던 동네에 투입되었고 저분들은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격리한 거야.”
“아…….”
“너도 겪어봐서 알겠지만, 좀비에게 물리면 죽이는 것보다 사로잡는 게 두 배는 어려워. 그 와중에 2차 감염자가 생길 수도 있고. 더욱이 좀비에게 물리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이지를 상실하게 되는데 그걸 막는 데 어마어마한 돈이 드는 걸 플로라 길드에서 지금 다 부담하고 있나 봐.”
“플로라 길드에서 부담한다고? 재난 관리 본부에서 해 주는 게 아니고?”
“재난 관리 본부는 자금이 없다고 손 뗀 지 오래야. 그래서 함부로 굴지 말라는 거야. 나라도 포기한 사람들을 플로라 길드에서 살려 보겠다고 붙잡고 있는 거니까.”
“아…….”
이세훈이 존경과 미안함이 섞인 눈빛을 하고선 이슬비를 쳐다봤다.
“김용규 본부장님도 포기한 적 없어요. 아마 그분이 아니었으면 감염자들을 이렇게 격리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그건 또 무슨 말이죠?”
“처음에도 물론이고 지금도 윗선에서는 감염자들까지 모두 사살하라고 하고 있어요. 근데 본부장님께서 저희한테 생포를 부탁하셨고 돕지는 못해도 버텨 주고 있는 거예요. 살릴 수 있으면 살려야 하지 않겠냐며.”
이슬비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나와 박민정을 쳐다봤다.
그녀의 얼굴엔 안타까움이 가득했다.
우리와 재난 관리 본부의 관계가 틀어져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이었다.
“아버지를 살려준 건 너무나 고맙지만,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오다 칠백 명이 넘게 죽었어.”
“해용아…….”
“내 마음 같아서는 지난 일은 다 잊고 잘 지내보고 싶지만 다른 사람에게 마저 강요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미안하다.”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창밖을 바라봤다.
아버지가 해 줬던 말이 또 떠올랐다.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다만 나쁜 상황이 있을 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재난 관리 본부장과 헌터 협회 회장이 나쁜 사람은 아닌 듯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을 뿐.
허나 그 선택으로 인해 내 동료들은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잠진도.
우리가 탄 차는 인천 영종도에 남단에 있는 선착장에 도착했고 배를 탄 상태에서 배에 올라탔다.
“무의도로 가는 건가요?”
“네. 무의도에 감염자들을 격리해 놓고 보호를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이슬비의 대답에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3차 감염을 막기 위해서 도시와 떨어진 곳에 일부러 장소를 마련한 듯했다.
이곳이라면 혹시나 3차 감염이 생겨도 외부로 나가기는 힘들 듯 보였다.
“사람이 많네요.”
“감염자의 가족들이에요. 면회가 안 된다는데도 매일 이렇게 찾아들 오네요.”
배가 출발했지만, 선착장에는 여전히 수백 명의 사람이 남아 있었다.
배가 작아서 타지 못하고 다음 배를 기다리는 듯했다.
잠진도에서 무의도로 가는 배는 작았지만 10분이면 도착을 하기에 20분만 기다리면 다음 배를 탈 수 있었다.
“헌터 님, 제발 얼굴 한 번만 보게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저희도 그러고 싶지만…….”
“살아 있는지 확인만 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마냥 기다리라고만 하면 저흰 답답해서 어떻게 사나요.”
차에서 내리자 감염자의 가족들이 헌터들과 실랑이를 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때,
“해용이 아니니? 아줌마 기억하니?”
“네. 안녕하세요.”
동네 통장 아주머니가 네게 아는 체를 해 왔다.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수선집 옆에서 슈퍼를 하시며 통장을 맡고 예비군 통지서를 갖다주던 분이라 기억을 하고 있었다.
“헌터가 된 거니?”
“네.”
“혹시 안으로 들어가는 거니? 그럼 아줌마도 같이 들어가게 해 주면 안 돼? 딸아이 얼굴이라도 보려고 하는데 그걸 못 보게 하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니. 흑흑.”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일까.
통장 아주머니는 몇 년 만에 보는 내 팔을 붙잡고선 사정을 해 왔다.
“은솔이가 감염이 된 건가요?”
“그래. 이 철없는 것이 집에 가만히 있으라니까…… 흑흑.”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들어가서 높은 사람한테 허락을 맡아 드릴게요.”
“정말이니? 정말 그래 줄 수 있어?”
“네.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앉아서 좀 쉬고 계세요.”
난 통장 아주머니를 부축해 의자에 앉히고 다시 입구로 돌아왔다.
문구점, 세탁소, 피아노 학원, 이불 집…….
감염자들의 가족들을 살펴보니 생각보다 아는 얼굴들이 많았다.
서로 말을 트고 인사를 하는 사이까지는 아니었지만 한 동네에 40년 가까이 살았기에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다들 내게 아는 체를 하고 싶은데 망설이는 기색이 여력 했다.
“들어가시죠.”
“네.”
난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애써 돌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친한 분이었어?”
“어. 가끔 김치도 갖다주시고 담배 한 보루 사면 꼭 라이터 하나를 챙겨 주셨어.”
“흠…….”
이세훈이 알쏭달쏭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 정도면 친한 거 아닌가?’
동네 사람들이랑 친해 봐야 얼마나 친하겠는가.
어머니라도 있었으면 몰라도 우리 집은 이웃들과 그리 교류가 없었다.
크아아아아!
크아아아아!
건물 내부로 들어가자 마치 감옥처럼 방 하나하나마다 쇠창살로 된 문으로 막혀 있었고 괴기스러운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몬스터의 코어 에너지를 변환해 감염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마나를 투입하고 있어요.”
“코어로 마나를요?”
“네. 감염 상태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성수를 구해 치료한다 해도 백치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마나를 사용해 계속 자극을 주고 있어요.”
“그래서 돈이 많이 든다는 거였군요.”
“네. 힐 마법으로도 자극을 줄 수 있지만 그렇게 하기엔 헌터들의 마나가 감당이 안 되거든요.”
“진짜 고생들 하고 계셨네요. 감염자가 몇 명이나 되죠?”
“이천 명 조금 안 돼요.”
“그럼 부족하겠네요.”
난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박민정을 쳐다봤다.
“부마스터님.”
“네?”
“어린아이와 노인. 그리고 감염이 오래된 사람들부터 선별해서 치료해 주세요.”
“혹시 가져온 엔트 주사를 전부 다 사용하라는 말인가요?”
“네.”
“……네. 지시하신 대로 하겠습니다.”
박민정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헌터들을 쳐다봤다.
보아하니 일면식도 없는 사람에게 엔트 주사를 사용하는 게 아까운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도 살짝 아까운 마음이 들기는 했다.
‘아픈 사람을 앞에 두고 장사를 할 수는 없지.’
허나 난 두세 번을 생각해도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았다.
아픈 사람이 앞에 있고 그걸 치료할 수 있는 약이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건 인간으로서 도리가 아닌 듯했다.
크아아아아아!
크아아아아아!
쾅! 쾅! 쾅!
쾅! 쾅! 쾅!
헌터들이 움직이며 엔트 주사를 놓기 시작하자 감염자들이 괴로운 듯 발버둥을 쳐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치료제를 투약한 거예요. 조금 있으면 다들 잠들 거예요.”
“헐…….”
“헐…….”
이슬비와 플로라 길드원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성주님 천 개 모두 사용하라는 거 맞죠?”
“혹시 모르니까 비상용으로 열 개 정도만 남겨 놓고 모두 사용하세요.”
“……네.”
990개.
헌터들이 스카이 캐슬에서 가져온 엔트 주사를 들고 다니며 감염자들에게 모두 사용했다.
구천구백억 원.
만약 청방 길드처럼 돈 주고 팔았다면 조에 가까울 만큼 어마어마한 금액의 양이었다.
* * *
엔트 주사를 맞은 아버지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좀비 바이러스와 싸우느라 기력이 많이 쇠한 모양이다.
“우리 아버지 왜 이렇게 마르셨을까.”
난 물수건을 가져와 아버지의 몸을 닦아 드렸다.
글썽글썽.
뚝! 뚝!
아버지의 홀쭉한 얼굴과 야윈 몸을 보자 절로 눈물이 나왔다.
“아, 아들?”
“네. 저예요. 아버지.”
내 손길을 느낀 것일까.
아버지가 눈을 뜨셨다.
아직 약 기운이 남아 있는지 아버지의 눈빛이 몽롱했다.
“어떻게 된 거니? 나 살아 있는 거야?”
“네. 살아 있는 거예요.”
“어떻게 내가? 분명 좀비한테 물렸었는데…… 죽었어야 했는데…….”
“뭐가 급하다고 그리 빨리 가려고 하세요. 아들 장가가는 것도 안 보고.”
“장가?”
아버지가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수정이가 서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권수정이라고 해요.”
“제 여자 친구예요.”
“여자 친구? 내가 또 꿈을 꾸고 있구나.”
“꿈 아니에요.”
“꿈이 아니라고?”
아버지가 믿기지 않는 듯 양손을 올렸다.
보아하니 나와 수정이의 손을 잡고 싶은 모양이었다.
꼭.
꼭.
“밥은?”
“먹었어요.”
“잘했다. 잘했어.”
아버지가 빙그레 웃으시며 손을 꼭 붙잡으셨다.
“고마워요.”
“네?”
“우리 아들이랑 만나줘서 정말 고마워요. 난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으니 난 신경 쓰지 말고 둘이 잘살아 봐요.”
“아버지도 참. 그런 말이 어디 있어요. 저 자식 낳는 것도 보고 아버지도 새 장가 가셔야죠.”
아직 약 기운이 남아 있어 비몽사몽 한 듯싶은데도 아버지는 자신이 짐이 될까 염려를 하는 기색이 여력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