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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76화 (76/255)

76화. 플로라

짜장면, 피자, 양념치킨, 탕수육, 콜라…….

‘천국이 따로 없네.’

맨날 푸석푸석한 밥에 고기랑 생선만 먹다가 달고 짠 음식이 입에 들어가니 금세 온몸 가득 행복함이 감돌았다.

마치 군 시절 백일 휴가를 나와 사제 음식을 먹었을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지현아, 적당히 먹었으면 사무직 직원들한테 이쪽으로 오라고 연락해.”

“네. 알겠어요. 선배. 가족들한테 연락하려고 그러죠?”

“어, 우리가 직접 가면 좋겠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사무직 직원들 시켜서 일단 통화부터 하고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돈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하자.”

“네, 알겠어요. 선배.”

식사를 마친 발키리 길드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직접 움직이며 가족들을 찾아가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인원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그 사람들은 아직 그대로인가요?”

“네. 아무래도 저흴 감시하려고 붙여 놓은 것 같아요.”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게이트부터 따라와 호텔 주위를 맴돌고 있어 헬퍼들을 따로 움직이게 하기엔 부담스러웠다.

“일단 이곳에 계신 인원의 가족들은 연락해서 호텔로 모시는 방향으로 할게요.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가면 아쉬울 테니.”

“정말입니까? 저희 가족은 지방에 살아서 시간이 좀 걸릴 텐데…….”

“비행기를 대절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모셔 올 테니 걱정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쉬고 계세요.”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수정이가 헬퍼들을 둘러보며 해맑은 미소를 지었다.

헬퍼들은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고.

‘돈이 좋긴 좋구나.’

안에선 몰랐는데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나는 이 나이 먹도록 비행기 한번 타 본 적이 없는데 수정이는 마치 콜택시라도 부르는 것처럼 쉽고 가볍게 비행기를 언급했다.

“오빠.”

“어?”

“민정이한테 연락이 왔네요. 긴히 상의 할 얘기가 있다고 모시고 밑으로 내려오라네요.”

“응. 알았어.”

식사를 마친 난 수정이를 따라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여긴 마사지 샵 아니야?”

“네. 맞아요. 레이드를 마치면 피로를 풀러 자주 오는 곳이에요.”

익스피디아.

안으로 들어가니 박민정이 이미 도착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마사지는 조금 있다 받을 테니 일단 세팅부터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자 직원들이 슬며시 자리를 비켜 주었다.

“저희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회의를 할 때 자주 이용하는 곳이에요. 다들 믿을 만한 사람들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네.”

난 박민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좋은 소식 한가지와 나쁜 소식 한 가지가 있어요. 어떤 것부터 들으실래요?”

“나쁜 소식부터 들을게요.”

난 자세를 바로 하고 경청할 준비를 했다.

표정을 보아하니 꽤 심각한 내용인 듯했다.

“현재 한국의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가 봐요. 뱀파이어들이 단순히 사람들 사이로 숨어 들어간 걸 넘어서 고위층 인사들과 재벌 주위로 접근을 시도하는 것 같더라고요.”

“헐…….”

“게다가 일본도 우리 못지않게 아니 그 이상으로 대공황 상태라고 하네요.”

“일본도요?”

“네. 일본에서도 몬스터 웨이브가 생겼나 보더라고요. 여기요.”

박민정이 코끝을 찡그리며 내게 태블릿PC를 건네줬다.

좀비.

구울.

해골.

듀라한.

리치.

데스나이트.

.

.

.

영상 안에는 언데드 몬스터들이 시가지 안으로 들어와 사람들을 해치는 장면이 녹화되어 있었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거죠?”

“도쿄에 있던 게이트에서 웨이브가 생겼대요. 좀비와 해골과 같은 비교적 하급 몬스터만 나오는 던전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수가 많아지더니 리치와 데스나이트까지 함께 가세해 게이트를 넘어왔나 보더라고요. 마치 우리가 머물고 있던 곳처럼.”

“끙…… 그래도 이건 너무 심한데요.”

영상을 보니 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이건 대공황이 아니라 도시 하나가 몬스터로 점령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정도로 심각해 보였다.

“일본 군사력이면 꽤 강하지 않나요? 아무리 방심했다고 해도 이건 이해가 되지 않네요.”

“이렇게까지 확산될지 모르고 초반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나 봐요. 그리고 찰나의 방심이 순식간에 수십만 명의 사람을 언데드화 시켰고요. 몇 명의 생존자가 남아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국의 도시와 국민을 향해 미사일을 날릴 수도 없으니 일본 정부에서도 꽤 골치가 아픈 모양인가 보더라고요.”

“정말 처참하네요. 그럼 좋은 소식은 뭔가요?”

“뱀파이어는 물론이고 언데드 들 역시 지구의 무기로는 소멸시키기가 쉽지 않은가 봐요. 머리에 총을 맞고 대포로 산산조각이 나도 재생한다네요.”

“그게 왜 좋은 소식인가요?”

“뱀파이어와 언데드 몬스터를 죽이려면 마나가 깃든 힘으로 공격을 하거나 미스릴로 만들어진 무기로 상처를 줘야 한대요. 그래야 재생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헐…….”

“그 때문인지 미스릴 값이 기존보다 열 배 이상 올라갔어요. 헌터의 가치도 그만큼 상승했고요.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쪽도 일본과 우리나라처럼 몬스터 웨이브가 생길까 봐 지금 혈안이 돼서 헌터들을 양성하고 스카웃하려고 난리인가 보더라고요. 던전 물품에 관한 연구도 돈을 들이부으면서 하고 있고요.”

“아…….”

난 고개를 끄덕거렸다.

겨우 지옥을 빠져나왔는데 지구 역시 상황이 꽤 심각한 모양이었다.

“스카이 캐슬을 지켜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겼네요.”

“네.”

그리고 우린,

미스릴과 엔트 주사.

이 상황을 타개할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었다.

“인천과 부산은 무사한가요? 거기도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다고 했잖아요?”

“네. 뱀파이어가 좀 새어나가긴 했지만 재난 관리 본부에서 신속히 대응한 덕분에 초반에 진압할 수 있었나 봐요.”

박민정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를 구하러 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도쿄처럼 도시가 언데드화 되는 건 막아낸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똑똑!

“성주님,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세요.”

“친구분이 도착하셨습니다.”

내 친구 이세훈이 호텔에 도착했나 보다.

“올라가 보세요. 물품 판매에 관해선 더 진행하고 보고를 드릴게요.”

“네, 고마워요.”

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다시 위층으로 올라갔다.

* * *

“아이고, 이놈아! 그깟 돈이 뭐라고 그 험한 데를 또 들어간다는 거야.”

“엄마, 별로 안 위험해요. 절 지켜주는 분들도 많고.”

“안 된다. 안 돼. 그냥 덜 먹고 덜 쓰면서 살면 되지. 내 눈에 흙이 들어가도 절대 못 들여보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얼른 일어나. 엄마랑 집에 가게.”

방으로 돌아오니 헬퍼들의 가족들이 도착해 있었고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소란스러웠다.

“해용아…….”

그리고 난 그 많은 사람 중에서 단번에 내 친구를 찾아내었다.

20년 지기 친구 이세훈.

나와 눈이 마주친 그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뭘 또 그렇게 울고 그래. 팔, 다리 멀쩡하고 어디 까진 데도 없고 난 무사하다. 잘 지냈지?”

“살아 있었구나.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흑흑.”

털썩.

내게 걸어오던 이세훈이 바닥에 주저앉으며 서럽게 눈물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가 포옹을 하며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불안했다.

내가 아는 이세훈이라면 왜 이제야 왔냐며 욕을 하고 성질을 부려야 정상인데 너무 뜻밖의 반응이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해. 내가 지켰어야 하는데…… 흑흑.”

“무슨 말이야. 새끼야. 울지만 말고 얘기를 해 봐.”

“아버지가, 흑흑. 아버지가 좀비한테 물리셨어.”

“아버지? 우리 아버지 말하는 거야?”

“미안하다. 정말. 내가 빨리 간다고 갔는데 그땐 이미…… 흑흑.”

내 품에 안긴 이세훈이 눈물을 흘리며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런 시발!’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제야 효도해 보려고 했는데…….

평생만 고생하시던 우리 아버지 이제 호강시켜 드리려고 했는데…….

우리 수정이 인사시켜야 하는데…….

우우우우우웅.

우우우우우웅.

뿌지직!

뿌지직!

챙그랑!

챙그랑!

“오빠, 조금만 진정을…… 이러다 건물 무너지겠어요.”

“수정아…… 우리 아버지…….”

“네. 다 알아요. 그러니 제발 진정 좀…….”

옆에 있던 수정이가 다가와 뒤에서 날 끌어안았다.

“십억만 있으면 치료할 수 있다는데…… 그 돈 구하려고 집도 팔고 적금도 깨고 다 했는데…… 3억밖에…….”

“뭐라고? 치료할 수 있다고? 아직 살아 계신 거야?”

“미안하…….”

“새끼야. 그만 미안해하고 자세히 얘기해 봐. 아버지 아직 살아 계시냐고!”

“……어. 플로라 길드에서 데리고 갔어.”

이세훈이 눈물, 콧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부마스터님.”

“네. 지금 당장 데리고 오겠습니다. 발키리 모두 따라 와.”

“나도 같이 가.”

“우리도요.”

나와 눈을 마주친 박민정이 흑기사 부대와 마녀 부대를 데리고 방을 뛰쳐나갔다.

* * *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박민정이 용산 게이트를 지키고 있던 이슬비와 그의 길드원 수십 명을 데리고 왔다.

중간에 마찰이 있었는지 플로라 헌터들의 몸 곳곳에 생긴 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상처가 가득했다.

“인천 웨이브 때 좀비에게 물린 사람들을 플로라 길드에서 따로 장소를 마련해 보호하고 있다네요.”

“보호요?”

“네.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땐 어쩔 수 없이 목숨을 거뒀지만 대부분 사로잡아 격리해 놓고 치료할 방법을 찾고 있던 것 같아요.”

“아, 고마운 분들이었네요. 근데 이분들 왜 이렇게 상처를 입은 거죠?”

“그게 미리 말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오빠가 다짜고짜 찾아와서 때렸잖아요! 언제 말할 기회라도 줬나요.”

이슬비가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성태 씨?”

“전 민정이 누나가 먼저 때리기에 일단 제압부터 하는 줄 알고…….”

“죄송해요. 아버님 걱정도 되고 제가 지난 일로 평정심을 잃었던 것 같아요.”

박민정이 내게 고개를 숙이며 잘못을 빌었다.

“사과는 제가 아니라 저분들한테 해야 할 것 같네요.”

“미안해요. 제가 경솔했어요. 제가 아영이 언니한테 서운하게 있어서…….”

“아니에요. 이해해요. 부마스터님이 저희한테 감정이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으니.”

인상을 썼던 것도 잠시 이슬비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재난 관리 본부와 헌터 협회에서 우리를 버린 걸 알고 있는 듯했다.

헌터 협회 회장이 다름 아닌 플로라 길드의 마스터인 이아영이었으니까.

“격리된 곳으로 안내해 주세요. 아버지를 봐야겠네요.”

“네, 알겠어요.”

이슬비가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안내했다.

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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