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해골 세트
검, 갑옷, 망토, 투구, 각반, 장갑, 부츠, 방패.
“재료가 부족하다. 그래도 쓸 만은 할 거다.”
나와 헬퍼들이 열심히 마법진 그리는 것을 연습하는 사이 카프리는 상점에서 판매할 무구들을 만들어
냈다.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더 좋은 걸 만들 수 있을 듯한데, 필요한 재료가 없는 거 같다.
“지원이 형님, 한번 착용해 보시겠어요?”
“그래. 나야 좋지.”
장지원 마스터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무구를 착용했다.
카프리는 마치 싸구려 옷을 건네주는 것처럼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지만, 장비 하나하나가 다 눈을 절로 사로잡을 만큼 유려했다.
특히 장비마다 새겨져 있는 마법진과 그 옆에 룬 문자는 마치 멋을 위해 몸에 새기는 타투를 보는 것처럼 근사해 보였다.
룬 문자는 이집트어와 같이 뜻을 짐작할 수 없는 형용 문자 형태였는데 마법진과 마찬가지로 무구에 마법을 각인시키고 작동하는데 필요한 듯했다.
“으음?”
장비를 착용한 장지원의 표정이 요상하게 변했다.
“형님, 왜 그러세요?”
“이거 정말 철이랑 언데드 뼈로 만든 거 맞아?”
“네. 맞아요. 제가 옆에서 직접 봤어요.”
“그래? 근데 이렇게 가볍다고? 가죽으로 만든 것보다 더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아. 아니 무게감은커녕 몸이 입기 전보다 더 가벼워진 기분이야. 등이 간질간질한 게 힘도 더 세진 것 같고.”
“마나는요?”
“마나도 그대로인 것 같긴 한데. 이거 그냥 입어 봐서는 모르겠고 대련을 한번 해 봤으면 좋겠는데?”
씨익.
장지원 마스터가 싱긋 웃으며 흑기사 부대 부대장을 쳐다봤다.
장지원 D급.
김봉준 B급.
자기보다 두 단계나 높은 헌터인데도 장지원의 얼굴에 자신감이 가득했다.
“대련 한번 해 보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온몸을 검은색으로 가득한 갑주와 긴 장창을 손에 든 김봉준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장지원의 표정을 보고 덩달아 호승심이 생긴 모양이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표정과 달리 정중한 인사를 시작으로 대련이 시작됐다.
쾅! 쾅! 쾅!
시작과 동시에 김봉준은 긴 창을 이용해서 연달아 공격했고 장지원은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방패로 방어를 했다.
“단순히 힘과 민첩을 올려주는 것 말고 다른 마법도 내장되어 있나 보네요.”
“다른 마법이요?”
“평소 봉준이의 움직임과는 뭔가 달라요. 원래는 저보다 조금 더 빠르게 연계 공격을 하는데 방패에 반발력이 있는지 매끈하게 이어지지 않고 있어요.”
옆에서 대련을 보고 있던 조성태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김봉준을 쳐다봤다.
쾅! 쾅! 쾅!
린치 차이 때문일까?
장지원은 검을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방패로 방어만 했다.
내가 보기엔 장지원 마스터가 일방적으로 밀리는 것 같은데 그가 보기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챙!
지지직! 지지직!
“읔.”
장지원이 검을 휘둘렀고 김봉준은 그걸 창으로 막아냈는데 갑자기 두 사람의 무기에 전류가 흘렀다.
김봉준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1초 정도 몸을 가누지 못했고, 그 사이에 장지원의 검은 어느새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마법 검.”
“미친…….”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B급과 D급의 대결.
아무리 A급 밑으론 비슷한 전투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너무 빠르고 허무하게 승부가 걸렸다.
그것도 두 단계나 낮은 장지원의 손에 의해서.
“성주님, 허락해 주신다면 저도 대련을 해 보고 싶습니다.”
“네. 허락할게요.”
흑기사 부대장 최우람.
김봉준의 어이없는 패배를 용납할 수 없는지 그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앞으로 나섰다.
쾅! 쾅! 쾅!
이번에도 패턴은 비슷했다.
김봉준 때와 마찬가지로 최우람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루어졌고 장지원은 연신 막아내기만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챙!
지지직! 지지직!
“오우! 짜릿하네.”
“아쉽네요. 그걸 피하다니.”
장지원의 검과 최우람의 창이 부딪쳤고 다시 빛을 동반한 전류가 흘렀다. 허나 이번엔 장지원의 연계 공격을 최우람이 뒷걸음질을 치며 피해냈다.
멋모르고 당했던 김봉준과 달리 미리 준비하고 있던 최우람은 쇼크 상태가 그리 길지 않았다.
“0.5초 정도 되려나? 정말 대단한 무기네요. 미리 대비를 하고 있었는데도 저 정도라니.”
“검과 방패뿐만이 아니야. 장지원 마스터의 몸놀림도 평소보다 더 빠르고 힘이 넘쳐.”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네. 우람이의 창 공격을 받으면서도 전혀 뒤로 밀리지 않네. 나도 우람이가 마음먹고 내지르면 가끔 뒤로 밀릴 정도인데…….”
조성태와 지윤미 마스터는 마치 연구라도 하는 사람같이 장지원을 관찰했다.
그리고 그 순간,
쿵!
“읔”
계속 방어만 하던 게 약 올랐는지 장지원 마스터가 방패로 육탄 공격을 했고 최우람도 잠시 몸을 가누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잠깐의 시간으로 인해 장지원의 검이 다시 목에 닿아 있었다.
“이번엔 제가…….”
흑기사 부대장 박대세.
“읔”
동료들의 패배에 세 번째 도전자가 나섰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번엔 제가…….”
“이쯤 하자.”
“형님…….”
“망신은 지금도 충분해. 너까지 지면…….”
“이길 수 있습니다.”
“이겨도 망신이야. 벌써 세 명이나 상대했는데 이제 와서 이기면 무슨 소용이야?”
“끙…….”
아직 대련하지 않은 박현우가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조성태는 허락하지 않았다.
이미 세 명의 B급 헌터와 대련을 하느라 장지원 마스터가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수고들 하셨습니다. 너무 상심들 하지 마세요. 제 능력이 아니라 이거 장비가 미쳤네요.”
“미쳤다고요?”
“보셔서 알잖아요.”
“네. 많이 미치긴 했죠.”
장지원 마스터랑 대련한 흑기사 부대장들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무구들을 쳐다봤다.
보아하니 단지 무구의 성능 때문에 자신들이 패배했다고 여기는 듯했다.
‘C급이 된 건가?’
허나 내가 보기엔 후퇴할 곳이 없는. 죽음을 담보로 했던 전투들로 인해 장지원 마스터의 역량 자체도 많이 성장한 듯했다.
그리고 그때,
-생각보다 별로인데?
‘저게 별로라고?’
-응. 귀한 마나석을 써놓고선 진짜 대충 만들었나 보네.
「드워프제 보급용 검
힘+1
민첩+1
일렉트릭 쇼크 (랜덤)」
「드워프제 보급용 방패
힘+1
민첩+1
충격 흡수+1
회피+1
스턴 (랜덤)」
「드워프제 보급용 투구
힘+1
민첩+1」
.
.
.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나타나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난,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할 것 같은데?’
봉실봉실 웃으며 만족한 기색을 내비쳤다.
B급 헌터인 흑기사 부대장들.
짐작건대 그들이 착용하고 있는 무기와 갑주들도 꽤 비싼 것들일 것이다.
헌데 고작 철괴와 언데드 뼈로 만든 언데드 세트가 더 좋아 보였다.
“저것들을 얼마나 받아야 할까요? 만들 때 보니까 마나석도 그리 많이 들어간 것 같지도 않던데.”
“무기는 최하 10억. 방패도 10억. 나머진 1억에서 3억 정도 받으면 금방 팔릴 것 같습니다.”
“그렇게 비싸게 팔아도 팔릴까요?”
“지금 말한 금액의 2배를 불러도 살 사람은 살 겁니다.”
“맞습니다. 가격만 책정해 주세요. 2배로 책정해도 제가 지금 당장 사겠습니다.”
“정말요?”
“네. 저도 똑같이 착용하고 다시 싸워 보고 싶네요. 그럼 지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흑기사 부대장들이 갑주를 보며 눈을 불태웠다.
보아하니 진짜 2배를 불러도 당장 살 듯했다.
두근두근.
쿵덕쿵덕.
가슴이 요동쳤다.
‘싸게 팔면 사람들이 미친 듯이 몰려오겠는데?’
10억이라는 금액이 아닌 해골 세트를 잘만 이용하면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이곳에 오게 할 수 있을 듯했다.
무기와 방패 1억 원. 나머진 천만 원에서 삼천만 원.
부대장들이 제시한 금액의 1/10만 받아도 이익이 상당할 것 같았다.
“굳이 헌터들을 고용 안 해도 되겠는데요?”
“네?”
“그렇잖아요. B급 헌터들조차 이리 탐을 내는데 밑에 등급 헌터들은 오죽하겠어요. 가격을 좀 낮춰서 팔면 다들 환장하고 달려오지 않을까요?”
미스릴과 아만티움을 외부에 팔아서 돈을 충당하려고 했는데, 굳이 그러지 않아도 소문만 나면 헌터들이 알아서 몰려오지 않을까 싶다.
시간제한이 있기는 했지만 스텟을 올려주는 음식.
스텟과 마법마저 사용할 수 있는 무기와 방어구.
자연 치유력을 극대화해 상처를 치료하는 동충하초 포션.
지금 이곳엔 헌터들이 탐내 할 만한 것들이 꽤 많았다.
게다가,
오크.
늑대인간.
언데드 몬스터.
헌터들의 주머니를 채워줄 몬스터들까지 사방에서 진을 치고 있고.
“맞네요. 괜히 돈 주고 고용하는 것보다 알아서 오게 만들어 사냥하게 하는 게 훨씬 낫겠네요. 그러다가 웨이브가 생기면 어차피 살려면 같이 싸워야 할 테니까.”
“일석삼조네요. 헌터들을 고용하면 돈은 돈대로 나가고 숙식마저 제공해야 하는데 알아서 오게 하면 돈도 안 나가고 와서 상점을 이용하면 경제도 활성화될 테니 우리로선 손해 볼 게 전혀 없네요.”
각 길드의 책임자들이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 함박웃음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미스릴과 아만티움 광산도 중요하긴 하지만 진짜 보물은 카프리인 듯했다.
“쓸 만하지?”
“네. 쓸 만해요. 아니 최고예요.”
난 카프리를 보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저기 헬퍼들이 입고 있는 장비들이랑 왠지 이거랑 똑같은 거 같지 않나요?”
“그러게요? 완전 똑같은데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저 멀리 걸어가고 있는 헬퍼들을 쳐다봤다.
보아하니 땅굴 작업을 하러 가는 사람들인 모양인데 다들 하나같이 드워프제 장비들을 착용하고 있었다.
‘에이! 아니겠지?’
난 설마 하는 심정으로 그들에게 걸어갔다.
가까이 가서 정확히 확인하기 위해서.
“헐! 이거 똑같은 건데요?”
“이게 어떻게 된 거죠?”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배상우를 쳐다봤다.
최근 들어 사냥하지 않아 해체할 것이 없으니 이번엔 그의 팀이 땅굴 작업에 투입된 모양이었다.
“이거요? 대장간 헬퍼들이 나누어 주던데요? 카프리가 공사할 때 쓰라며 만들었다고.”
“…….”
“…….”
배상우의 대답에 사람들이 할 말을 잃었는지 말을 잇지 못했다.
방어구도 방어구지만 손에 든 곡괭이와 삽에도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게다가 색깔이 시커먼 것이 공사 장비를 만드는데 아만티움마저 사용한 듯했다.
난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카프리를 쳐다봤다.
“땅굴 빨리 파야 지구로 간다. 지구로 가야 소주랑 맥주 가져올 수 있다.”
“…….”
“…….”
대련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너무 옵션이 좋아서 억 단위 이상의 돈을 언급하며 만족했는데 카프리에겐 공사 겸용 장비들이었나 보다.
“그렇긴 하죠. 다들 장비가 불편하진 않죠?”
“네. 보기엔 답답해 보이는데 막상 입으니 아주 힘이 넘쳐납니다.”
“잘됐네요. 안 그래도 땅굴 작업하려면 위험할 텐데 카프리가 알아서 안전 장비를 만들어 주었네요.”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헬퍼들을 쳐다봤다.
방금 확인한 옵션대로라면 땅굴 작업은 더 수월해질 테고 집으로 갈 수 있는 시간이 더 빨라질 테니까.
“오크들의 방해도 없고 저 장비들까지 착용해서 작업을 한다면 한 달 이내로 게이트 입구에 당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한 달이라…….”
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봤다.
감회가 새롭다.
‘아버지 잘 계시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불초 소자 금방 찾아뵙겠습니다.’
이대로 여기서 갇혀 살다가 죽을지 알았는데 집으로 돌아갈 날이 머지않은 듯했다.
“오빠, 왜 우세요?”
“너무 좋아서.”
그동안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등바등 고생한 걸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절로 눈물이 글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