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상점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네요.”
내 얘기를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던 최정광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짐작건대 그도 나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듯했다.
지금 우리의 생활 환경은 내가 어렸을 적인 80년대 초반보다 훨씬 더 열악했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그럼 이왕 만드시는 김에 식당 하나만 더 차려 주시면 안 됩니까?”
막걸리를 갖다준 요리팀 헬퍼가 다가와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손정모였던가?’
김성준 팀장을 만날 때마다 옆에 있어 얼굴은 꽤 익숙한 인물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내게 먼저 말을 건넨 건 처음이었다.
난 더 얘기해 보라는 듯 아무런 말 없이 그를 쳐다봤다.
“제가 듣기론 지금 있는 사람들을 주최로 해서 이곳을 지키고 발전시키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맞아요.”
난 고개를 끄덕이며 손정모를 지그시 쳐다봤다.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단순히 식당 하나를 차려 달라고 내게 말을 건넨 건 아닌 듯했다.
식당이 작아서 불편했으면 내가 아니라 유거성 팀장한테 협조를 요청해도 얼마든지 더 지어 줄 테니까.
“그럼 이곳을 발전시키려면 만 명 단위 이상의 헬퍼들을 밖에서 더 고용해서 들어오겠네요?”
“네. 아마 그렇게 되겠죠?”
“……성주님께서 허락해 주시고 도움을 주신다면 전 그 사람들을 상대로 음식 장사를 해 보고 싶습니다.”
“장사를 해 보고 싶다고요?”
손정모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 항상 말없이 일만 해서 과묵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지금이야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지휘부에서 식량을 수급해 제공하고 있지만, 그 사람들한테까지 그럴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흠…… 더 얘기해 보세요.”
난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손정모를 쳐다봤다.
솔직히 사람들을 고용하게 되면 난 그 인원들의 식사까지 다 책임 지려했다.
헌데, 손정모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꼭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으면 돈을 주고 알아서 사 먹으라고 하면 될 테니까.
“성주님의 성정상 우리에게 고용되고 이곳에 온 사람들에게 분명 적지 않은 페이를 주시려 할 겁니다.”
“위험한 곳에 와서 힘든 일을 하게 될 테니 당연히 그래야겠죠.”
“네. 그 부분엔 저도 동감합니다. 근데 지금처럼 먹여주고, 재워주고, 입혀주기까지 하면 그 사람들은 여기서 돈을 벌기만 하고 쓰는 건 밖에 나가서 다 쓰게 될 겁니다. 그럼 당장은 미스릴이랑 아만티움, 마나석 광산으로 인해 문제가 없겠지만 언젠간 분명 자원이 바닥을 드러내게 될 겁니다. 고생한 만큼 돈을 많이 주는 것까지는 괜찮지만 그렇게 번 돈을 이곳에서 어느 정도는 소비하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
손정모의 얘기를 들으며 난 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모두가 같이 일하고 같이 소유하고…….’
지금 우리는 일종의 공산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
잊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어떤 사회에서 살아왔었는지.
그는 단지 식당을 예로 들어 말하고 있었지만 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손정모가 아니었으면 정말 중요한 부분을 간과하고 지나칠 뻔했다.
“주제넘었다면 죄송…….”
“아니에요. 맞는 말만 한걸요.”
난 손정모를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보아하니 그도 나처럼 그리 학력이 높아 보이지는 않았다. 근데도 다가올 문제점을 미리 캐치한 것이었다.
머리로는 몰라도 장사 경험이 꽤 많은 듯했다.
백화점이랑 마트에 다닐 때도 손정모 같은 사람을 많이 봤다.
손익분기점과 같은 복잡한 단어는 모르지만, 물건을 얼마에 받고 얼마에 팔아야 하는지, 부자재 사용료와 인건비를 얼마에 맞춰야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 오랜 장사 경험으로 머리가 아닌 몸으로 터득한 것이었다.
애써 둘러 말하고 있지만 지금 손정모는 사유 재산을 갖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허락은 그렇다 치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옐로 아이와 암염 지역의 채소 때문이죠?”
“네. 이왕이면 기능성 음식을 만들어…….”
“이 새끼, 혹시나 했는데!”
짝!
김성준이 나타나 손정모의 뒤통수를 때렸다.
“죄송합니다. 성주님. 제가 안 된다고 했는데…….”
“뭐가 안 된다는 거죠?”
“이놈 성주님한테 식당 만들어 달라고 하던 중 아니었나요?”
“맞아요. 근데 안 될 이유는 없는 것 같은데…….”
“이것부터 보시죠. 이번에 암염과 채소들을 사용해 만든 음식 중에 이능을 발생시키는 레시피를 여럿 만들었습니다.”
김성준이 내게 종이 뭉텅이를 건네주었다.
「블랙 앵거스 안심 스테이크.
작성자:손정모
주재료:블랙 앵거스 안심.
부재료: 새송이버섯 1개. 양송이버섯 2개, 다진 마늘, 암염…….
*60분 동안 근력 +5 상승」
「닭꼬치 구이.
작성자:손정모
주재료: 야생닭 안심
부재료: 대파, 암염, 마늘…….
*60분 동안 민첩 +5 상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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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안에는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잔치국수와 같이 이능을 발생시키는 요리들의 레시피가 적혀 있었다.
“아, 그걸 보여주면 어떡해요. 아직 확답도 못 받았는데…….”
“이 새끼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네. 이런 걸 만들었으면 당연히 성주님한테 보여드려야지. 너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얌체 짓을 해도 정도껏 해야지.”
김성준이 경멸스러운 눈빛을 하고선 손정모를 타박했다.
‘음흉한 놈이네.’
나도 살짝 어이가 없긴 했다.
이미 이런 것까지 만들어 놓고선 얘기도 안 하고 식당을 차려 달라고 했던 것이 괘씸하기도 했고.
허나 난,
“그쯤 해 두세요.”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김성준의 손을 붙잡았다.
얌체일지는 몰라도 레시피에 적혀 있던 실험 일지를 보아하니 그 노력과 결과물이 그걸 상쇄시키기에 충분했다.
“유거성 팀장한테 얘기해서 그럴싸하게 식당을 지어 달라고 하세요. 책임자는 손정모 씨로 하고.”
“성주님…….”
“보아하니 잠자는 시간까지 쪼개서 실험하고 레시피를 만든 것 같은데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상을 내려야죠.”
“성주님 뜻은 알겠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다른 놈들도…….”
“다른 분들도 하고 싶은 장사가 있으면 기획서 제출하라고 하세요. 살펴보고 괜찮으면 적극적으로 밀어줄 테니.”
“네?”
“전 공산당이 아니에요. 매번 얘기하잖아요. 노력한 만큼 당연히 대가를 더 받아야죠. 게다가 정모 씨가 한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거든요. 외부 사람들이 왔을 때 이곳에서 돈을 쓰게 하려면 가게가 많이 필요할 거예요.”
“진심이신가요?”
“네. 진심이에요. 단 공동의 재산으로 지원을 해 주는 것이니 재룟값과 이익은 지휘부 회의를 통해서 금액을 책정하게 될 거예요.”
“거봐요. 성주님이 허락하실 거라고 했잖아요. 형님은 성주님 마음도 모르면서 왜 저만 잡고 그래요.”
“끙…….”
김성준이 앓는 소리를 내며 손정모를 쳐다봤다.
짐작건대 당연히 내가 자신의 편을 들 줄 알았나 보다.
허나 이제는 운영하는 방식을 바꾸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지구와 교류가 시작되기 전에 개인 재산을 인정하고 또 만들어줘서 스스로 살아갈 길을 만들어줘야 할 듯했다.
“저…….”
“더 할 말이 남았나요?”
“그럼 저도 호프집 하나만 차려 주십쇼.”
“호프집이요?”
“……네.”
김성준이 얼굴이 잔뜩 붉어져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하.”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난 절로 웃음이 터졌다.
그도 속으론 자기 장사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근데 괜히 눈치가 보이고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듯했다.
“거성 씨한테 얘기해서 지어 달라고 하세요. 술장사만큼 돈 남는 장사도 없죠. 좋네요.”
난 김성준의 부탁도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일단은 성주의 권한으로 인력을 투입해서 건물을 지어주고 도움을 주겠지만, 시간을 두고 차차 독립을 시켜 나중에는 거래 형식으로 바꾸면 될 듯했다.
“가, 감사합니다.”
꾸벅.
김성준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와아! 사람을 쓰레기 보듯 쳐다보더니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형님?”
“몰라, 새끼야. 난 당연히 안 될 줄 알았지. 근데 성주님이 해도 괜찮다고 하잖아.”
손정모가 억울하다는 듯 김성준에게 볼멘소리했지만, 그는 너스레를 떨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자신의 가게가 생긴다고 신이 난 모양이다.
* * *
“형님, 저 좀 살려주세요.”
“왜 무슨 일인데?”
“형님이 사람들한테 장사해도 된다고 했다면서요. 그래서 신청서가 무려 수십 장이 넘게 들어왔어요. 흑흑.”
늦은 밤, 이부성이 앓는 소리를 내며 숙소에 찾아왔다.
손정모 식당.
김성준 호프집.
최정광 낚시 상점.
조민기 삼겹살집.
.
.
.
최유라 병원.
장지원 무기상점.
장사해도 된다고 허락한 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신청서가 빗발치듯 들어왔나 보다.
그리고 그에 대한 제반 업무를 이부성이 일임하게 된 듯싶고.
그런데,
‘장지원 무기 상점?’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는 신청서가 있었다.
지금이야 상황이 여의치 않다 보니 헌터들을 공사 현장에 투입하고 있지만 헌터들은 군인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헬퍼들을 상대로 허락을 한 건데 장지원마저 신청서를 써 보냈다.
“이 양반이…….”
난 자리에서 일어나 장지원의 숙소를 찾아갔다.
“왔어?”
“왔어?”
숙소 안으로 들어가니 장지원은 카프리와 막걸리를 나눠 마시고 있었다.
“형님, 이게 뭐예요?”
“뭐긴 뭐야? 신청서잖아?”
“제가 그걸 몰라서 묻나요? 형이 왜 장사를 하는데요?”
“아…… 내 이름으로 썼구나. 그거 내가 할 거 아니야. 카프리가 한다고 해서 대신 써 준 거야.”
“카프리가 무기 상점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고요?”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장지원이 한다고 했을 때보다 내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무기 만들면 돈 번다. 돈 벌면 양주랑 맥주랑 소주 사 마실 거다.”
“…….”
“멍청이가 그랬다. 술은 뭐니 뭐니 해도 소주라고. 나도 소주 마셔 보고 싶다.”
“…….”
난 너무 어이가 없어 말을 잇지 못했다.
‘술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카프리는 술을 좋아해도 너무 좋아했다. 다행히 주량이 센지 그리 취하지 않는 것 같긴 하지만 걱정이 되었다.
뭐든 과해서 좋을 건 없었기에.
“이제 무기는 안 만든다는 거 어렵게 꼬셨어. 그냥 모른 체해. 일단 만들어 주면 우리가 쓰든, 팔든 그때 가서 결정하면 되잖아.”
장지원이 내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일전에도 들은 기억이 있었다.
카프리는 왜인지 무기 만드는 것을 꺼려 했다.
-생긴 건 저리 생겨도 온순한 종족이야. 지난 차원에서도 드워프가 자발적으로 무기를 만든 적은 없어. 대부분의 드워프는 자신이 만든 물건이 수천, 수만의 생명을 해하는 것을 보며 괴로워했거든.
‘흠…….’
-기대되네. 억지로 만든 물건조차 지난 차원에서 그리 명성을 떨쳤는데 자발적으로 만들면 어떤 물건이 나올지.
운디네가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선 드워프를 쳐다봤다.
‘대단하긴 한데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지금이야 우리가 이렇게 갇혀 있어서 그렇지. 밖에 나가면 지구의 과학이…….’
-지금까진 마나석이 없었잖아.
‘응?’
-기다려 봐. 마나석을 이용한 물건이 나오면 방금 한 말은 다신 하지 못할 테니까.
운디네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