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실프 (2)
-저 아이들 정령 계약까지 하게 되면 다들 한 단계씩 성장할 수 있을 거야.
‘등급이 올라간다는 말이야?’
-너희들 세계에서 무슨 기준으로 등급을 나누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확실히 더 강해질 거야.
「소드 유저 E,F
익스퍼트 하급 D
익스퍼트 중급 C
익스퍼트 상급 B
익스퍼트 최상급 A
소드 마스터 S
.
.
. 」
따스하고 포근한 기운이 느껴지며 운디네가 내게 지식을 공유해 주었다.
일전에 한 번 들었던 내용이었다.
지윤미 마스터 B급
박민정 부 마스터 C급.
권수정 부 마스터 C급.
참모 C, D급.
일반 길드원 D급.
내가 알고 있는 발키리 길드원의 등급은 위와 같았다.
No. 9 발키리.
그리고 지금의 전력으로도 대한민국 길드 내에서 열 손가락 안에 길드 명을 올리고 있었고.
만약 운디네의 말처럼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발키리 길드원들을 모두 정령과 계약시킬 수 있다면 단일 길드로 이곳을 넘볼 수 있는 곳은 없게 될 듯했다.
-그 정도가 아닐걸?
‘응?’
-일 더하기 일의 답이 꼭 이는 아니잖아. 삼이 될 수도 있고 사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익스퍼트 하급에서 상급까지는 어차피 마나 운용의 차이만 있을 뿐 그 힘이 별반 차이가 없겠지만 지금의 육체적 능력과 정령 마법까지 합쳐진다면 큰 시너지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흠…….’
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운디네를 쳐다봤다.
딴에는 친절하고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 같은데 솔직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윤미 마스터님, 조성태 대장과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
“네?”
“이런, 미안해요. 제가 너무 두서없이 물어봤군요. 마스터님의 말대로라면 밖으로 나갔을 때 외부 세력들이랑 마찰이 생길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네. 맞아요. 헌터들의 힘이 이미 법 위에 있으니까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거예요.”
“그래서 물어보는 거예요. 외부 세력이랑 전투가 발생하면 성주가 된 입장에서 아군의 전력을 확실히 알아둬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전 헌터들의 등급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요.”
“흠…….”
지윤미 마스터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녀 역시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듯했다.
“조성태 대장과 일대일로 싸우게 된다면 제가 필패를 하게 될 거예요. A급부터는 아예 격 자체가 다르거든요. 근데 흑기사 부대 부대장들이랑 싸우게 된다면 이기지는 못해도 지지도 않을 거예요.”
“부대장이 아니라 부대장들이랑 싸워도 지지 않는다고요?”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흑기사 부대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대장 조성태 A급.
부대장 박대세 B급.
부대장 김봉준 B급.
부대장 최우람 B급.
부대장 박현우 B급.
참모 B, C급
일반 부대원 C급.
그녀가 자신과 같은 등급의 헌터 네 명과 싸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듯 자신감을 내비쳤다.
“만약 특정 장소를 지키면서 싸워야 한다면 부대장들과의 전투 역시 제가 필패를 하게 될 거예요. 하지만 그런 제약이 없다면, 제가 마음먹고 게릴라전을 펼친다면 부대장들도 상당한 애를 먹게 될 거예요.”
“흠…….”
어째 설명을 들었는데 머리만 더 복잡해졌다.
애초에 내가 바보 같은 질문을 한 듯했다.
그런데 그때,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어. A급이 되지 않는 이상 B급에서 D급까지는 크게 의미가 없어. 힘과 스피드, 마나 운용이 높아서 윗 단계의 등급을 받았다 해도 상황과 사용하는 무기에 따라 D급도 충분히 B급까지는 비벼볼 만하거든.”
“흠…….”
“외부 세력이랑 싸울 수도 있다는 말에 머리가 복잡한 모양인데 그리 깊게 마음 쓰지 않아도 돼. 발키리 길드가 지키고 있는 곳을 쳐들어올 만큼 간이 큰 놈들은 우리나라에 몇 안 되거든.”
장지원 마스터가 자랑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내,
“장지원 마스터님 말이 맞습니다. 차라리 아레스 길드랑 싸우고 말지. 발키리랑은 싸운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아파 오는 것 같네요.”
“저도요. 전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 해도 발키리랑은 싸우지 않을 거예요.”
조성태와 최은빈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짐작건대 다들 발키리 길드랑 전투해 본 경험이 있는 듯했다.
난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A급을 제외하곤 다 거기서 거기라고 하더니 다들 발키리 길드를 두려워하고 있는 기색이 여력 했다.
“성주님은 애초에 발키리 길드랑 친하게 지내서 모르시겠지만 싸워 본 사람은 저희랑 다 같은 마음일 거예요. 밥 먹고 있는데 별안간 하늘에서 화살이 쏟아지고 화장실에서 볼일 보고 있는데 창문으로 화살 날아오고 마녀 부대는 저희가 아니라 발키리 길드한테 더 잘 어울릴 거예요.”
“그치. 그건 진짜 당해 본 사람만이 알지. 아레스도 그래서 발키리한테 항복한 거잖아. 던전 안에서도 문제지만 밖에서조차 언제, 어디서 화살이 날아올지 모르니 밥은커녕 잠도 제대로 못 잤거든.”
“그쯤 해둬. 옛날얘기는 뭐 하러 꺼내고 그래.”
조성태와 최은빈의 볼멘소리에 지윤미 마스터의 얼굴이 잔뜩 붉어졌다.
보아하니 지금 하는 얘기들이 다 실제로 있었던 일인 듯했다.
‘지금도 이런데 정령 계약까지 하면 아주 난리 나겠네.’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이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레인저.
그녀들은 전면전 스타일이 아니라 기습 공격이나 정찰들과 같은 게릴라 전법에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더 특화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애초에 내 질문이 잘못된 듯했다.
“지윤미 마스터님, 제가 할 말이 있으니 회의가 끝나고 발키리 길드 전 인원을 소집해 주세요.”
“저한테 얘기하시면 제가 전달…….”
“제가 직접 얼굴 보고 할 말이 있어서 그래요.”
“네. 알겠습니다.”
지윤미 마스터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물의 정령 16
불의 정령 2
땅의 정령 2
바람의 정령 24
발키리 길드원들을 소집했더니 수많은 정령이 함께 따라와 주위를 맴돌았다.
‘제법 많은데?’
-세계수는 반신이야. 게다가 우리 정령들과 가장 친숙한 기운을 갖고 있고. 그런 존재의 축복을 받았으니 나머지 아이들도 조만간 다 정령이 호감을 느끼고 찾아오게 될 거야.
‘그럼 서둘러야겠는데?’
난 헌터들 사이를 급히 오가며 정령이 호감을 보이는 인원들을 한곳으로 추렸다.
“오빠, 왜 그러세요? 저희 아이들이 뭐 잘못한 거 있어요?”
내가 아무런 말 없이 특정 인원만 열외를 시키니 수정이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그녀의 곁엔 물의 정령이 맴돌고 있었다.
“아니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물고기 좀 잔뜩 잡아 놓으려고.”
“휴우…… 전 또 깜짝 놀랐잖아요. 저희 아이들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줄 알고.”
불안해했던 것도 잠시 수정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낚시를 좋아했던 난 바다에 매료되었고 그 덕분에 운디네를 불러내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헌터들에게도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었다.
세계수의 축복 때문에 이미 정령이 먼저 다가올 정도로 친화력이 올랐으니 옆에서 조금만 서포터를 해
주면 계약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은 생각이야. 전에 차원에서는 우리와 계약을 하겠답시고 정령진을 만들고 별 꼴값을 다 떨었지만 사실 우리와 친해지는 정답은 진심으로 우릴 좋아하고 찾아 주는 거거든.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운디네가 날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 *
바닷가에 도착해 낚싯대를 받아 놓고도 지윤미와 박민정은 계속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스캐이 캐슬 본성.
오크성.
암염 동굴 지대까지.
경계를 해야 할 곳이 많은데 길드의 최고 지휘관들이 다 이곳에 있으니 마음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성주님, 물고기 비축량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저희가 모두 여기 와 있는 건 좀 그런데…….”
“언니는 여기 있어. 내가 가서…….”
“둘 다 오늘은 아무 생각 말고 여기 계세요. 고기도 고기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좀 쉬라고 데리고 온 거니까.”
난 두 사람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나무를 가져와 불부터 지폈다.
그녀들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지금은 여기 있는 게 더 중요했기에.
“성주님…….”
“성주님…….”
“성주로서 하는 명령이에요. 오늘은 쉬세요.”
“끙…….”
“끙…….”
명령이라는 말에 두 명 모두 앓는 소리를 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소희 씨랑 선미 씨는 저 좀 도와주실래요?”
“어머, 저희 이름을 아시네요?”
“물론이죠.”
“감사해요. 뭘 도와 드리면 될까요?”
불의 정령이 맴돌고 있는 헌터들을 부르자 그녀들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내게 걸어왔다.
내가 자신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미안한데 두 분은 여기서 불이 꺼지지 않게 나무를 계속 넣어 주세요. 그래 줄 수 있죠?”
“네. 알았어요. 사실은 저 낚시는 그렇게 흥미가 없거든요. 미끌미끌한 갯바위에 올라가서 물이 튀기는 것도 싫고.”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성주님이 호명해서 따라오긴 했지만, 솔직히 저도 낚시하기는 싫었거든요. 여기서 불 지피는 게 제 적성이 더 맞을 것 같아요.”
“네. 사실은 저도 그럴 것 같아서 부탁드린 거였어요.”
난 빙그레 웃으며 두 사람을 쳐다봤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들의 주위를 맴돌고 있는 불의 정령을 쳐다봤다.
“예은 씨랑 혜림 씨는 고구마랑 감자 가져왔나요?”
“네. 지시하신 대로 식량 창고에 가서 넉넉하게 갖고 왔어요.”
“그럼 그것들 좀 맛있게 구워 주세요.”
“저희가요?”
“싫어요? 그럼 낚시 할래요?”
“아니요. 이거 할게요.”
“저도요.”
땅의 정령이 어슬렁거리는 헌터들이 갯바위를 보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로 대장간 경계 근무를 했던 두 명.
암염 동굴 인근에서 채소 채취를 돕고 경계 임무를 맡았던 두 명.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이 네 명은 낚시하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어슬렁거리고 있는 정령의 성향에 따라 위치를 배치하니 모두 다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오빠, 고마워요.”
“뭐가?”
“사실은 저도 윤미 언니랑 민정이를 좀 쉬게 해 주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거든요.”
열 개의 장작불을 마저 만들고 돼지고기와 생선 구울 준비를 하는데 수정이가 슬며시 내게 다가왔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교대로 쉬면서 일하고 있는데 두 사람은 아직 죄책감 때문인지 쉬기는커녕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요.”
“죄책감?”
“둘 다 겉으로 내색은 안 하지만 여린 사람들이에요. 이곳에 와서 너무 많은 동료를 잃었잖아요.”
“……그렇지.”
난 이해 한다는 듯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