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엔트 주사
“성주님, 이 정도면 현지와 아이들을 치료하고 정창을 하다가 언데드 몬스터를 만나도 당분간 걱정 없을 것 같아요.”
마대 하나를 가득 채운 지윤미 마스터가 내가 다가왔다.
표정을 보아하니 이제 돌아가자고 하는 듯했다.
허나 난,
“이왕 온 김에 챙겨 갈 수 있을 만큼 최대한 챙겨 가죠.”
고개를 흔들며 계속 작업을 시켰다.
아파트 2층 높이의 나무. 엔트들은 커다란 덩치를 자랑했고 조금 더 줄기를 채취해도 괜찮을 듯했다.
인천 늑대인간.
부산 뱀파이어.
지원군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이곳에 들어올 때 즈음에 5대 광역시 중에 두 곳에서나 몬스터 웨이브가 생겼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장 내 몸 하나 챙기기 바빴지만, 이제는 밖으로 나간 이후까지도 생각해야 할 듯했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냈으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러지 못했으면 지금 그 두 곳은 홍수나 지진과 같은 자연 재해 못지않은 대재앙을 맞고 있을 테니까.
언데드 치료제.
엔트의 줄기는 당장 우리의 생명줄이기도 했지만, 밖에 나가서도 유용하게 쓰일 듯했다.
하나, 둘, 이백 포대.
내 지시를 받은 헌터들은 이미 가져온 마대에 엔트의 줄기를 가득 채워 놓고도 마치 배고픈 하이에나 마냥 계속 엔트에게 달려들었다.
저들도 내 의중을 파악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줄기…… 열매 없다. 나중에 다시 와라.
엔트들이 내게 음성을 보내왔다.
“이쯤 하죠.”
“네. 성주님.”
난 아쉬운 기색을 감추며 작업을 중단시켰다.
내가 보기엔 조금 더 채취해도 될 것 같긴 한데 엔트가 힘이 드는 모양이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 수는 없지.’
줄기 부분은 계속 자라날 테니 시간을 두고 찾아와서 계속 채취를 하는 게 현명할 듯했다.
‘조급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실수뿐이니까.’
어차피 이곳으로 오는 길은 현재 암염 동굴 지대밖에 없었고 그곳만 틀어막고 있으면 지킬 수 있으니 괜한 걱정에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을 듯했다.
* * *
스카이 캐슬로 돌아온 난 동충하초 때처럼 운디네의 정수에 엔트의 줄기를 넣어 진액을 우려내 지윤미 마스터에게 건네줬고 그녀는 바로 감옥 안으로 걸어갔다.
“현지야, 윤미 언니야. 이것 좀 마셔봐. 이걸 마셔야 다시 돌아올 수 있대.”
“쿠으으!”
“현지야, 제발! 잠깐이라도 좋으니 정신 좀 차려 봐. 흑흑!”
“쿠아아아!”
쾅! 쾅!
“현지야, 제발…….”
엔트 차를 손에 든 지윤미 마스터가 눈물을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엔트의 줄기만 구하면 바로 치료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치료제를 만들어 왔는데도 나현지는 지윤미 마스터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를 드러내며 공격을 하려 했다.
열흘 새 나현지는 늑대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것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대감을 가지게 된 듯했고 막무가내로 공격을 하려 했다.
“현지야, 언니라고. 언니도 못 알아보겠니?”
나현지가 엔트 차를 마시지 않자 답답한지 지윤미 마스터가 쇠창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쿠아아앙!”
쾅! 쾅!
“저러다 마스터님도 물리겠네요. 뒤로 물러서 주세요.”
“……네.”
헌터들이 부랴부랴 지윤미 마스터에게 다가가 그녀의 몸을 잡고 뒤로 당겼다.
“놔! 안 놔?”
“언니, 진정하세요.”
“내가 지금 진정하게 생겼니? 이걸 먹여야 하는데. 이걸 먹어야 현지가…….”
“뒤로 물러나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성주님 명령이라도 그럴 수 없어요. 전 절대 현지를 포기…….”
“뒤로 물러나라고 했지. 포기한다고 한 적 없습니다.”
“그 말이 그 말…….”
“되돌릴 수 있어요. 그러니 저를 믿고 뒤로 물러나세요.”
“……정말이죠. 우리 현지 포기 안 할 거죠?”
“네, 물론이에요.”
지윤미 마스터가 간절하고 슬픈 눈을 하고선 날 빤히 쳐다보다가 뒤로 물러났다.
철혈의 여제라 불리던 그녀마저도 지인이 좀비화가 된 모습을 보고선 반쯤 정신을 놓은 듯했다.
나현지의 신체를 쇠사슬로 구속해 놓지 않았으면 그녀 역시 이미 좀비화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너무 무모하게 굴었다.
“부 마스터님, 의료팀 헬퍼를 불러 주세요.”
“의료팀 헬퍼는 왜?”
“물어볼 게 있어서 그래요.”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엔트 차를 억지로 입어 넣어 봤자 삼킬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입에 넣는 것조차도 너무 힘들고 위험해 보였고.
“부르셨어요. 성주님.”
“네. 물어볼 게 있어서요.”
멀지 않는 곳에 있었는지 의료팀을 맡은 최유라 팀장이 금세 감옥 안으로 들어왔다.
“이걸 현지한테 먹어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그건 힘들 것 같아서요.”
“흠…….”
“그래서 말인데 주사로 투약을 했으면 하는데…… 괜찮을까요?”
“흠. 경구약은 보통 장내를 거쳐서 혈액에 녹는 거고 주사약은 곧바로 혈액에 들어가니 효과가 더 빠르긴 한데…….”
최유라가 고민하는 표정을 지으며 엔트 차를 바라봤다.
짐작건대 경구약과 주사약의 성질 자체가 조금 다른 듯했다.
허나, 어차피 이대로 있으면 나현지는 완전히 이지를 상실하게 될 테고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게다가 어차피 엔트 차는 현대 의학이 만든 법칙 안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주사기 있죠?”
“있긴 한데, 들어갈지 모르겠어요. 현지가 평소에도 주사 맞기를 싫어해서 마나로 몸을 감싸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주삿바늘이 휘어지거나 부러졌거든요.”
최유라가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주삿바늘이 너무 얇고 약해서 헌터의 육체를 이겨내지 못할 것 같나 보다.
“일단 주사기 하나만 갖다주세요. 제가 해결해 보죠.”
“네, 알겠어요.”
난 최유라 팀장에게 주사기를 받아 카프리를 찾아 대장간에 갔다.
“카프리, 여기 있는 부분을 아만티움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구멍도 있어야 해?”
“네. 있어야 해요.”
“흠…… 너무 얇고 작다. 시간 오래 걸린다.”
“얼마나?”
“해봐야 안다.”
“그럼 해 주세요.”
“바쁘다. 하지만 성주 부탁이니까 들어준다.”
카프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주삿바늘 제작을 시작했다.
“방해된다. 나가 있어.”
“……네.”
난 카프리한테 방해되지 부랴부랴 대장간을 나왔다.
“어떻게 됐나요? 주삿바늘을 만들 수 있대요?”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지윤미 마스터와 수십 명의 발키리 헌터들이 대장간 앞에 몰려와 있었다.
다들 며칠 죽도 못 얻어먹은 사람처럼 얼굴이 창백하고 야위어 있었다.
“네. 까다롭긴 하지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네요.”
“휴우. 다행이네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발키리 헌터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흘렸다.
‘빌어먹을 새끼들, 이런 모습을 보고도 10억 원을 요구하며 사람을 가려서 치료 하는 건가?’
발키리 길드 헌터들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중국의 청방 길드가 떠오르며 분노가 끓었다.
참 되먹지 못한 인간들인 듯했다.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아픈 사람을 두고 장사를 하는 것만큼 파렴치한 짓은 없을 듯싶다.
돈이 없으면 죽으라는 말 아닌가.
죽는 사람도 죽는 사람이지만 돈이 없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라는 건지.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시릴 만큼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바보처럼 울고 잊진 않아. 아직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니.”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부성아…….’
제법 익숙한 목소리에 난 나도 모르게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리가 나는 곳을 따라가 보니 나현지와 전염자들을 가둬둔 건물 창문 옆이었고 이부성이 보였다.
“너무나 슬픈 너의 눈물을 잊을 수는 없을 거야.”
이부성은 창문 아래 벽에 기대 걸터앉아 아무런 반주도 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슬퍼 보였다.
그는 내가 옆에 왔는데도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돌아갈 수는 없어. 너무나 먼 곳에 있는 너에게. 그대여 돌아올 수 없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제법 소질이 있는데?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바드로 전향을 해도 되겠는걸?
운디네가 이부성의 노래가 듣기 나쁘지 않은지 내 옆에 걸터앉았다.
한 시간, 두 시간…… 열 시간.
이부성은 화장실도 가지 않은 채 같은 자리에서 계속 노래를 부르고 또 때로는 자신의 살아온 얘기를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짐작건대 열흘 내내 계속 저러고 있었던 듯했다.
그리고 그렇게 이부성의 노래를 듣다 보니,
“처음이라 오래 걸렸다. 요령을 터득했으니 앞으론 금방 만들 수 있다.”
“네, 고마워요. 카프리.”
카프리가 주삿바늘을 들고 왔고 난 부랴부랴 감옥으로 들어갔다.
“제가 놓을게요.”
“……네.”
감옥에 도착하자 지윤미는 뺏어가듯 내게 주사기를 낚아채 나현지의 팔목에 순식간에 꽂아 버렸다.
“크아아아아아!”
“현지야, 언니야, 언니.”
“크아아앙.”
쿵!
쾅!
쿵!
쾅!
엔트 주사를 맞은 나현지는 괴로운 듯 벽에 몸을 부딪치고 눈동자가 뒤집혀 온몸을 비틀며 신음 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내,
“차도가 있는 것 같죠?”
“네, 그런 것 같아요.”
나현지의 호흡이 조금씩 안정되며 발버둥을 멈추고 얌전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심려를 끼쳐 죄송해요.”
“아니야, 이렇게 무사히 일어나 줘서 우리가 감사하지.”
엔트 주사를 맞은 나현지는 다음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열흘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고 쇠사슬에 묶인 상태에서 발버둥을 쳐 대서 야위고 몸 여기저기가 많이 상해 있었지만, 예전의 초롱초롱하고 맑은 눈빛으로 되돌아왔다.
“최유라 팀장님, 대장간이랑 얘기해서 아만티움 주사기를 최대한 많이 만들어 놔 주세요. 그리고 동충하초 차도 엔트 차처럼 주사기로 투약을 했을 때 효과가 있는지 실험을 해 주시고요.”
“네, 알겠어요.”
내 지시를 받은 최유라 팀장이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동충하초 차와 엔트 주사.
이 두 가지로 인해 혹여나 언데드 몬스터와 근접전이 생겨도 우린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
“오빠, 그럼 우린 이제 밥 먹으러 가요.”
“……!”
나현지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별안간 이부성의 손을 꼭 잡았다.
“뭐에요? 저 깨어나면 소고기 스테이크 해 주기로 했잖아요? 그냥 해 본 말이었어요?”
“헉! 내가 한 얘기 다 듣고 있었던 거야?”
“그럼요. 매일 찾아와 쉬지도 않고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떠드는데 어떻게 안 들을 수가 있겠어요.”
“……?!”
나현지의 손길에 붉어졌던 이부성의 얼굴이 어느새 하얗게 상기되기 시작했다.
그녀가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 담장 옆에 가서 매일 울고불고하며 후회 섞인 말로 푸념을 했던 것을 나현지가 모두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디까지 들은 거야?”
“처음부터 끝까지? 오빠가 절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왜 좋아하게 됐는지…… 다 들었어요.”
“끙…….”
이부성이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안절부절못했다.
그리고 그때,
쪽!
“고마웠어요. 오빠가 쉬지 않고 해 준 얘기와 노래 때문에 이겨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 정말 무서웠거든요. 그대로 정말 괴물이 되어 버릴까 봐.”
나현지가 이부성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미안해요. 오빠 마음을 알아채지 못해서. 그동안 오빠 마음고생시킨 만큼 제가 다 보답 할게요.”
“…….”
‘부성아, 뭐하냐? 계속 그러고 있을 거야?…… 우리 때문에 그런가?’
이부성을 바라보는 나현지의 눈빛이 초롱초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힘들고 외로운 싸움을 하는 동안 곁을 지켜줬던 이부성의 말과 노래가 꽤 힘이 된 듯했다.
“흐흠.”
난 헛기침을 하며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눈치를 주고선 슬며시 자리를 피해 주었다.
‘우리 현지랑 부성이 하고 싶은 거 다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