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템빨
“지금 저길 건너야 한다는 건 아니죠?”
“저길 어떻게……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데…….”
하늘 다리 앞에 도착한 용병들이 두려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을 쳤다.
보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시린 모양이다.
“무서운 분들은 가지 않으셔도 돼요. 저희 길드원들을 살리겠다고 여러분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생각은 없으니까.”
“저희가 언제 안 간다 그랬나요. 그냥 협곡이 너무 높으니까 다른 길이 없나 물어나 본 거죠.”
지윤미 마스터가 정색하자 용병들이 쭈뼛거리며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난 다시 한번 용병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지금 여기서 돌아가셔도 탓하거나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그러니 무서운 분들은 눈치 보지 말고 뒤로 한 발자국씩 물러나세요.”
난 최대한 인자한 표정을 짓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용병들을 쳐다봤다.
좀비들에게 물린 나현지와 헬퍼들은 내게 내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허나 그건 내 입장이었고 용병들에게 그 정도는 아닐 테니까.
사람이라면 응당 제 목숨 귀한 줄 알고 먼저 챙겨도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아무도 없으세요?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원한다면 약속을 할 수도 있고요. 지금 뒤로 물러나도 절대 불이익은 없을 겁니다.”
“솔직히 무섭습니다. 엊그저께 죽다 살아났는데 또 저 높은 협곡을 줄 하나에 의지한 채 넘어가야 하고 늑대인간과 싸울 생각을 하니 오줌을 지릴 정도입니다. 근데 돌아가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 불이익이 없다고…….”
“손익을 계산해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저희가 여기까지 군말 없이 따라온 이유는 우리 중에 누군가도 분명 좀비한테 물릴 가능성이 있고 성주님이라면 분명 그 한 명을 위해서도 지금처럼 행동하실 분이니까요. 저흰 지금 가진 두려움보다 성주님이랑 더 가까워지고 친해지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합니다.”
“맞습니다. 어차피 성주님이 아니었으면 다 죽을 목숨이었습니다.”
“아니죠. 애초에 저흴 구하러 오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이 위기에 빠지는 일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기회를 드리는 겁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전 여러분을 귀히 여기고 존중할 겁니다.”
“네. 그래서 저흰 돌아가고 싶어도 못 갑니다. 솔직히 그땐 이렇게 위험한 곳인지 모르고 돈 벌려고 오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 지금은 아니니까요. 차라리 늑대인간과 싸우다 죽는 게 낫지. 성주님이 가시는 길에 등을 돌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
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용병들을 쳐다봤다.
발키리와 태백산맥 길드야 함께 생사고락을 여러 번 넘겼으니 그렇다 치고 용병들까지 나한테 이렇게까지 신뢰를 보이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수정이가 무언가 하고 있다고 하더니 용병들에게 콩깍지라도 씌우고 있는 듯했다.
“뭘 그렇게 고민을 하세요. 오빠가 좋아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겠다는데.”
수정이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와 내 몸을 끌어안으며 공주님 안기를 했다.
“……!”
“……!”
사람들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나와 수정이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눈 감으세요. 오빠. 매도 이왕이면 먼저 맞는 게 낫잖아요. 이렇게 시간을 끈다고 안 건널 것도 아니고.”
“끙…….”
수정이의 품에 안긴 난 앓는 소리를 내며 눈을 감았다.
휘이익.
휘이익.
“도착했어요. 오빠. 이제 눈 뜨셔도 돼요.”
잠시 시원한 바람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금세 건너편으로 넘어왔다.
그때부터였다.
“보셨죠. 다들! 고소 공포증이 있으신 분들은 부끄러워하지 마시고 옆에 있는 발키리 헌터들에게 슬쩍 눈치를 주세요. 그럼 최대한 안전하게 건너편으로 모셔다드릴 테니.”
발키리 길드 헌터들은 용병들이 부끄러워할 틈도 없이 자연스럽게 그들을 안고 건너편으로 한 명씩 넘어왔다.
암염과 채소를 채취하기 위해 이미 여러 번 이곳을 들락날락했던 발키리 길드 헌터들은 마치 평지 위를 걷는 것처럼 편안하고 안전하게 하늘 다리를 넘나들었다.
“하하하.”
“하하하.”
발키리 길드원에게 안겨 건너편으로 넘어온 용병들은 서로 눈을 마주칠 때마다 어색한 웃음을 지었고 그로 인해 긴장감이 가득했던 분위기가 조금은 유순해지는 듯했다.
“다리 만들어 준다. 창피해하지 않아도 된다.”
건너편으로 넘어온 카프리는 내 등을 토닥이며 몇 번 와 본 것처럼 길을 앞장섰다.
“마스터, 이제부터 늑대인간 지역이에요.”
“모두 집중하라고 해. 단 한 마리도 접근하지 못하게.”
“네, 알겠어요.”
암염 동굴을 지나 밑으로 좀 더 내려가자 발키리 길드 헌터들이 활에 화살을 먹이고 사방을 경계했다.
그리고 이내,
“아오오오!”
“아오오오!”
사방에서 늑대인간이 출몰했다.
발키리 길드 헌터 200명.
태백산맥 길드 헌터 50명.
용병 400명.
인원이 워낙에 많다 보니 금세 늑대인간들에게 들킨 모양이다.
허나,
휘이익!
쿵!
휘이익!
쿵!
“뭐야? 쟤네. 왜 저래?”
“그러게? 어디가 아픈가?”
마치 타잔처럼 나무 위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달려오던 늑대인간들이 화살을 맞고 바닥으로 픽픽 쓰러졌다.
미스릴 화살에 맞은 늑대인간들은 마치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며 몸놀림이 느려졌다.
“늑대인간 미스릴에 약하다. 멍청이 가서 마무리해.”
“오케이.”
“화살 아깝다. 머리 맞춰라. 그럼 즉사다.”
늑대인간이 나타날 때마다 수백 발의 화살이 날아갔고 체인 메일을 왜 입고 왔나 싶을 정도로 일방적인 학살이 이루어졌다.
미스릴 화살 여섯에서 일곱 발.
보통 그 정도면 늑대인간은 호흡을 멈췄고 게 중에 끝까지 버티며 다가와도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의 칼끝을 피하지 못했다.
장지원 마스터가 휘두르는 검을 보아하니 무기도 미스릴로 만든 것으로 바꾼 듯했다.
“이렇게 쉽게 잡을 수 있는 것을 그동안 생고생을 했네.”
“그러게요. 미스릴에 이렇게까지 취약할지 누가 알았겠어요.”
지윤미 마스터와 박민정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늑대인간 사체들을 쳐다봤다.
다른 게이트로 넘어가서 늑대인간 레이드를 했다가 꽤 고생한 기억이 있는 모양이었다.
휘이익!
휘이익!
“오우윽.”
“아아윽.”
열 마리, 스무 마리……. 이백 마리.
걸음걸이를 움직일 때마다 늑대인간의 사체들이 쉼 없이 쌓여 갔다.
늑대인간들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적의가 있는지 혼자 있든, 열이 있든 우리를 보자마자 무턱대고 달려들었다.
1티어급 몬스터인 오크보다 훨씬 더 쉬운 상대였다.
수백 명이 무리 지어진 걸 봤으면서도 막무가내로 달려들었다.
“늑대인간 2티어급 몬스터 맞아? 뭐 이렇게 쉽게 죽어?”
“미스릴에 약하다고 하잖아.”
“대박이네. 이걸 사람들이 알면 F급 헌터도 쉽게 잡을 수 있겠는데?”
“과연 그럴까? 지금 우리가 쏘고 있는 화살에 화살촉만 해도 백만 원이 넘을걸? 회수되면 야 상관없겠지만 못하면 그대로 다 날리는 건데 F급 헌터 중에 그만한 재력이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마냥 용병들이 화살촉을 보며 설왕설래를 하고 있었다.
“성주님, 어떻게 할까요? 밑으로 더 내려가면 백 마리 규모 이상의 서식지가 몇 군데 더 있는데 이참에 다 밀어 버릴까요?”
“흠…….”
난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저쪽에서 세계수의 기운이 느껴져. 굳이 더 내려가지 않아도 돼.
이미 가고자 하는 방향의 길은 열었는데 이참에 아예 이곳을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게다가,
“밑으로 더 내려가야 한다. 거기에 아만티움이랑 마나석 있다.”
카프리도 밑으로 더 내려가길 원했다.
늑대인간들은 보통 동굴 안이나 토굴을 파서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 생활하는 것 같았고 그중에 아만티움과 마나석 동굴이 있는 듯했다.
“일단 사체들을 한곳에 모으고 화살을 회수한 이후에 밑으로 내려가죠.”
“네, 알겠어요. 이대로 가자면 조금 아쉬울 뻔했어요.”
지윤미 마스터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주변을 정리했다.
‘이런 기분이었나?’
처음 화살에 맞은 늑대인간이 비명을 지르며 덤빌 때만 해도 소름이 끼쳤는데 지금은 왠지 가슴이 찌릿찌릿할 정도로 흥분으로 가득했다.
목숨을 걸고 하는 사냥이 아니라 마치 서바이벌 게임을 하러 온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오오오!”
“아오오오!”
휘이익!
쿵!
휘이익!
쿵!
휘이익!
휘이익!
“오우윽.”
“아아윽.”
백 마리, 이백 마리…… 이천 마리.
백 마리 이상의 늑대인간무리조차 육백오십 명의 궁수들이 쏘는 미스릴 화살엔 속수무책이었다. 그나마 아주 가끔 지근거리까지 와서 앞발을 휘두르는 놈들이 있었지만 아만티움으로 만든 체인 메일을 뚫어내지는 못했다.
“성주님, 카프리가 아만티움과 마나석 동굴을 찾은 것 같아요. 늑대인간도 인근에는 더 없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할까요?”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카프리가 만들어 준 활과 화살이 너무 강력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늑대인간을 몰아냈다 하나 이곳을 온전히 차지하려면 인원을 정착시켜야 했기에.
“헬퍼들이 필요한 거죠?”
“네. 마나석 동굴도 동굴이지만 늑대인간 사체를 해체하려면 그래야 할 것 같아요. 2티어급 몬스터라 오크 코어보다 더 가치가 있어서 저대로 버리기엔 아까우니.”
“주위를 더 둘러보고 부르는 걸로 하죠. 아직 잔당들이 남아 있을 수도 있으니까.”
“네, 알겠어요.”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카이 캐슬 본성과 오크성에 이어 이곳까지 관리하려면 인원을 또 나눠야 하지만 아만티움과 마나석 동굴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장소였다.
카프리가 만든 무기가 지금도 이렇게 위력적인데 마나석까지 장착하게 되면 더 강력해질 것이 분명했기에.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고 일단 이곳을 대충이나마 정리하고 이동을 하는 게 나을 듯했다.
* * *
“암염 동굴 밑에 지휘 막사를 만들고 그 밑 능선에 이십여 개 정도 초소 및 망루를 만들어서 경계하면 마나석과 아만티움 동굴이 있는 곳까지 감시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황금 들판 능선에 진지를 구축한 것처럼 학익진으로 설치를 시작하겠습니다.”
“성벽까지는 무리인가요?”
“지금은 그럴 여력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산맥 중간이라 돌을 나르는 것도 만만치가 않고요. 현재로선 이게 최선입니다.”
“네. 제가 봐도 그게 최선인 것 같네요. 거성 씨 계획대로 시작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이미 여러 번 경험이 있어서일까.
헬퍼들을 데리고 온 유거성은 금세 주변 지형지물을 파악하고 시야를 확보하고 진지 구축을 시작함과 동시에 하늘 다리로 오고 갈 수 있는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제가 누워 있는 사이에 유거성 팀장이 참 많이 변한 것 같네요.”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으니까요.”
공사를 시작한 유거성과 헬퍼들을 보며 지윤미 마스터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얼굴에 절로 미소가 생길 만큼 유거성과 기술직 헬퍼들의 일 처리는 일사천리였다.
“그럼 이곳은 장지원 마스터랑 헬퍼들에게 맡기고 우린 출발하죠.”
“네, 알겠어요.”
헬퍼들의 투입으로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안전이 확보된 걸 확인한 후 난 발키리 길드원들을 데리고 다시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