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크로스보우
“멍청이, 애들 불러와라!”
“멍청이는 너고 나는 길마 님이라고!”
“멍청이 잔말 말고 애들 불러와라. 할 거 많다.”
“저 빌어먹을 놈. 분명 알고도 저러는 걸 거야.”
장지원 마스터가 궁시렁거리며 태백산맥 길드원들과 헬퍼들을 소집했다.
헌터 50명.
헬퍼 8명.
카프리의 아이들.
장지원이 길드원들한테 애들이라고 하니 자연스레 카프리한테도 애들이 된 모양이다.
“멍청이, 이게 다야?”
“다 불러온 거야. 인마.”
“부족하다. 더 많아야 한다.”
태백산맥 길드원들을 보며 카프리가 코끝을 찡그렸다. 짐작건대 사람이 많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이백여 명이 입을 갑옷을 만들어야 하는 데 시간마저 촉박했으니.
“용병들은 뭐 하고 있죠?”
“대부분 치료를 마치고 흩어져서 공사를 돕고 있습니다.”
“전부 불러 주세요. 카프리가 사람이 많이 필요한 모양이네요.”
“네, 알겠습니다. 성주님.”
나의 지시를 받은 박민정이 용병들을 부르러 갔다.
용병 400명.
이참에 작업에 합류시켜 자연스레 친목을 도모하게 하면 태백산맥 길드로 흡수를 하는 데 도움이 될 듯했다.
“작업 시작한다. 멍청이 애들 데리고 가서 흙 퍼 와라. 용광로 더 만들어야 한다.”
“아무거나 퍼 오면 되는 거야?”
“해자 작업하면서 내가 따로 모아둔 거 있다. 그거 가져오면 된다. 실시.”
용병들이 도착하자 카프리는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보아하니 일단 대장간부터 확장하려는 모양이었다.
“멍청이 투, 넌 나무 해온다. 이것들로는 아만티움 못 녹인다.”
“오케이.”
“멍청이 쓰리. 넌 이대로 선반이랑 의자 만든다.”
“오케이.”
드워프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헌터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해자를 같이 파면서 제법 손발을 맞춘 모양이다.
김현규와 김영균.
멍청이 투, 쓰리는 태백산맥 길드의 부 마스터들이었다.
서로를 멍청이라 부르면서도 불쾌해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뭘 만드는 거지?’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드워프를 쳐다봤다.
혹시나 배울 게 있을까 하여 한참을 지켜보고 있는데 도무지 뭘 만드는지 짐작을 할 수가 없었다.
기껏 아만티움 화살촉을 녹인 카프리는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동그란 고리를 계속 만들고 있었다.
“멍청이, 애들 시켜서 이거 하나씩 연결해.”
“그냥 연결만 하면 되는 거야? 뭘 만들 건지 얘기를 해 주면 더 쉽게…….”
“넌 멍청해서 말해줘도 모른다. 그냥 내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
아만티움을 가공한 카프리는 용병들을 선반 앞에 앉혀 놓고 고리를 앞에 쌓아 줬다.
‘설마 사슬 갑옷을 만드는 건가?’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고리가 연결될수록 점점 익숙한 모양의 형태가 만들어져 갔다.
일견 보기엔 막 주는 것 같아도 무언가 카프리만의 순서대로 나누어 주는 듯했다.
안전 장갑.
정육 코너 근무 시절 저와 비슷한 것을 사용해 본 적이 있어 완성되지 않았는데도 난 금방 유추할 수 있었다.
사골과 갈비를 자르기 위해선 톱날을 장착한 골절기라는 기계를 사용했는데 까딱했다간 사람의 손가락마저 잘릴 수도 있어 같은 모양의 장갑을 나누어 줬었다.
마치 낚시를 할 때 쓰는 그물처럼 헐렁헐렁하고 매가리가 없었지만, 움직임도 자유롭고 또 가벼웠고 보이는 거와 달리 방어력 역시 상당했다.
“와우! 체인 메일을 만들지는 상상도 못 했어요.”
“부 마스터님도 사슬 갑옷을 본 적이 있나 보네요?”
“네. 일전에 다른 게이트에 레이드를 갔을 때 봤어요. 그러고 보니 거기도 늑대인간이 나왔던 지역 같네요.”
박민정이 감탄 어린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아만티움으로 만든 갑옷을 입으면 저희의 최대 장점인 스피드와 기동력이 떨어질 것을 염려했는데 저거라면 문제가 없겠네요.”
“네. 그래서 카프리도 일부러 사슬 갑옷을 만들고 있는 것 같네요.”
드워프를 장인의 종족이라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듯했다.
불을 잘 다루고 손재주가 좋은 것뿐만이 아닌 그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적합하고 필요한 것이 무언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다.
“근데 왜 저렇게 많이 만드는 거죠? 불량품이 나올 것을 감안한다 해도 너무 많은 것 같지 않아요?”
“그러게요?”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헌터들을 쳐다봤다.
추가로 투입된 용병들만 사백 명이었는데 다들 각자 하나의 사슬 갑옷을 연결하고 있었다.
게다가,
“멍청이, 애들 시켜서 오크 힘줄이랑 나무 좀 가져와.”
“그건 왜?”
“가져오라면 가져온다. 나무는 대장간 뒤에 내가 챙겨 놓은 거 있으니까 그거 가져오면 된다.”
“어라? 저건 크로스보우 같은데요?”
카프리는 갑옷에 이어 수백 개의 석궁도 만들기 시작했다.
“석궁은 왜 만드는 거죠? 그것도 이렇게 많이?”
난 조심스럽게 다가가 카프리에게 질문을 했다.
작업을 하는 그는 웃고 있었지만, 포스도 있었고 함부로 말을 건네기엔 뭔가 위압감이 있었다.
그래서 난 최대한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호기심을 내비쳤다.
“애들 데리고 나도 간다. 나도 찾을 게 있다.”
“카프리도 함께 가겠다고요?”
“필요한 게 있다. 아만티움 더 필요하다. 마나석도 찾아야 한다. 마나석 있어야 이곳을 지킬 수 있다.”
카프리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헌터들을 쳐다봤다.
보아하니 태백산맥 길드원들과 용병들을 이번 원정에 다 데리고 갔으면 하는 듯했다.
“이 인원을 다 데리고 가면 전면전이 될 것 같은데…….”
난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난 늑대인간들과 최대한 마찰 없이 그곳을 통과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많은 인원을 다 데리고 가면 원치 않는 싸움도 해야 할 듯했다.
우리의 목적은 엔트의 줄기를 구하는 것이지. 늑대인간 영역을 차지하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휘이익!
뿌지직!
“아, ㅅ…발 깜짝 놀랐네. 뭐가 이렇게 세?”
완성된 크로스보우를 가지고 시험 발사를 한 장지원이 반쯤 넋이 나가 호들갑을 떨었다.
“형님, 혹시 저 나무를 조준하고 발사한 거 맞아요?”
“어, 그렇긴 한데. 나도 맞을 줄은 몰랐어.”
100m.
장지원 마스터가 쏜 화살은 저 멀리 나무에 박혀 있었고 본인이 싸놓고도 어이가 없어 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롱 보우와 달리 크로스보우는 발사기의 조작하는 것만으로 위력적이고 더 멀리 쏠 수 있는 걸로 알고는 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형님, 저도 한번 쏴 볼게요.”
휘이익!
뿌지직.
“깜짝이야. 말하고 쏴야지. 놀랬잖아.”
“쏴 본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금방 바로 쏠지 몰랐지!”
“연사까지 가능한 거야?”
크로스보우는 발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현저히 짧았다.
심지어 김현규가 쏜 화살도 장지원의 화살 옆에 나란히 박혀 있었다.
“현규야, 다시 한번 쏴 볼래?”
“네, 알겠습니다.”
휘이익!
뿌지직!
“다시.”
“네.”
휘이익!
뿌지직!
“너 석궁 쏴 본 적 있어?”
“아니요. 처음인데요?”
“근데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춰?”
“원래 이런 거 아니에요? 그냥 군대에서 사격했던 것처럼 조준하고 당기니까 맞는데요?”
백발백중.
100m에 육박하는 나무를 조준해서 화살을 쏘는데도 전부 과녁에 명중했다.
“허무하네요. 우린 명중률 높인다고 손바닥이 까져 짓무를 정도로 연습을 했는데, 저 정도면 저희랑 별 차이 없을 것 같은데요?”
박민정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김현규를 쳐다봤다.
밥 먹고 활만 쏘는 그녀가 봐도 석궁의 위력이 정말 대단한 듯했다.
“늑대인간. 미스릴에 약하다. 늑대인간 구역에 마나석 있다. 마나석 있으면 지금보다 더 강하게 할 수 있다.”
카프리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석궁을 쳐다봤다.
‘저 홈은 왜 있는 거지? 저 그림은 뭐고?’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석궁 손잡이에 부분에 홈과 함께 마치 고무줄로 만든 쌍별과 같은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늑대인간은 저희만큼 몸이 가볍고 민첩해요. 우리가 아무리 피한다 해도 죽자고 달려들면 전면전을 치를 수밖에 없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전부 데리고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부 마스터님까지 그렇게 얘기를 하시니 그럼 같이 가는 걸로 하죠.”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같이 간다고 저리 위력적인 무기를 만들고 박민정마저 그의 손을 들어주니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아무래도 아티팩트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요. 위력이 이렇게 대단한데도 아직 미완성인가 보네요.”
“아티팩트요?”
“상위 던전에 가서 인간형 몬스터를 잡으면 가끔 저와 비슷한 문양이 새겨진 아이템이 나오곤 하거든요.”
“그럼 그것들이?”
“모르죠. 그건. 드워프들이 만든 것인지. 아니면 다른 존재가 만든 것인지. 헌데 하나는 확실한 것 같아요. 카프리가 말하는 마나석은 아마 마력의 수정을 말하는 것 같아요.”
“마력의 수정이요?”
“아티팩트를 보면 다들 하나같이 보석들이 박혀 있거든요. 그리고 그 수정들이 박힌 아이템들은 최하 수천만 원에서 수천억 원을 호가하고 있고요.”
석궁을 바라보는 박민정의 눈빛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그녀의 예상이 맞는다면 카프리는 마나석만 있으면 미스릴 광산과 암염 동굴의 가치와 비교해도 꿇리지 않을 보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럼 여긴 카프리한테 맡기는 걸로 하고 전 낚시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린 피쉬랑 바이올렛 피쉬 잡으시려고요?”
“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왕이면 쓸 수 있는 건 다 가지고 가면 좋을 것 같아서요.”
“네, 현명한 판단이신 것 같아요.”
“그럼 수고 좀 해 주세요.”
난 그린 피쉬와 바이올렛 피쉬를 잡기 위해 바닷가로 향했다.
「그린 피쉬.
속도 상승 50% (지속 시간 1시간) 」
「바이올렛 피쉬
속도 상승 50% (지속 시간 1시간)
*그린 피쉬와 중복 가능 」
늑대인간의 숲으로 출정하기 위해 난 최대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 * *
일주일간 준비를 한 끝에 출정 준비를 끝마쳤다.
“형님, 죄송합니다. 제가 같이 갔어야 하는데…….”
“죄송하긴. 다음에 같이 가면 되지. 엔트의 줄기 꼭 구해서 올 테니까. 넌 몸 좀 추스르고 있어.”
“네, 알겠습니다. 형님.”
하늘 다리로 올라가려 하는데 이부성이 울먹이며 마중을 나왔다.
일주일간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얼핏 보면 현지가 아니라 부성이가 좀비한테 물린 것처럼 피폐해져 있었다.
“다치시면 안 돼요. 형님한테 마저 무슨 일이 생기면 전 진짜 살아갈 자신이 없어요.”
“걱정하지 마. 엔트의 줄기 구해 와서 일주일 동안 빌빌댔던 널 혼내기 위해서라도 살아 올 테니까.”
난 빙그레 웃으며 이부성과 인사를 하고 산을 올랐다.
밥 먹고 활만 쏘는 발키리 부 마스터도 위력을 인정한 크로스보우.
다이아몬드만큼이나 단단한 아만티움으로 만든 체인 메일.
금보다 비싸다는 금속으로 만든 미스릴 화살.
무장을 든든하게 해서 그런지 두려움보다 기대감이 더 들었다.
두근두근.
쿵덕쿵덕.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몸이 떨리고 심장 소리가 들려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