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세계수
“괴물이 되고 싶지 않아요. 이대로 사람으로 죽고 싶어요.”
“죽긴 누가 죽어. 조금만 참아. 내가 반드시 돌려놓을 테니까.”
“언니, 제발…….”
팔과 다리도 모자라 허리에까지 강철 쇠사슬에 묶여 벽에 몸이 구속된 나현지가 사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 마스터를 쳐다봤다.
오크 좀비에게 물린 나현지의 눈동자는 어느새 핏발이 서서 붉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그녀는 조금씩 좀비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박민정.”
“네. 마스터.”
“이곳의 출입을 통제해. 아무도 현지랑 아이들을 못 만나게 해.”
“네, 알겠어요.”
차라리 죽여 달라며 애원하는 나현지를 뒤로 하고 지윤미 마스터는 등을 돌려 감옥을 나갔다.
뿌드득.
좀비가 되는 것이 두려워 눈물을 흘리는 나현지보다 입에서 피를 흘리는 지윤미 마스터의 얼굴이 더 슬퍼 보였다.
보아하니 마음을 다잡기 위해 입을 너무 굳게 다물어 입술마저 찢어진 듯했다.
헌터 2명.
헬퍼 5명.
한순간의 방심으로 일곱 명의 인원이 오크 좀비에게 물려서 언데드화 되어가고 있었고 그녀는 누구 하나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한 번만, 제발 한 번만 만나게 해 주세요.”
“죄송합니다. 지휘부의 허락 없인 들어갈 수 없어요.”
밖으로 나오니 이부성이 반쯤 넋이 나가 경비를 서고 있는 헌터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부성아…….”
“형님, 현지 씨, 현지 씨를 보게 해 주세요.”
“나중에. 나중에 보자.”
“형님, 전 지금 당장…….”
“내 마음은 알겠는데. 현지가 원하지 않을 거야.”
난 이부성에게 다가가 그를 꼭 안아주었다.
지금 나현지는 스스로 죽고 싶어 할 만큼 너무 괴로워했고 또 추했다.
이부성의 마음을 이해는 하지만 지금 둘을 만나게 하는 건 둘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짝사랑했던 여인이 몬스터화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이부성은 이부성대로 더 힘들어할 테고 나현지 역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걸 싫어할 듯했다.
“다시 되돌릴 방법이 있는 건가요?”
“밖으로만 나갈 수 있다면 되돌릴 수 있을 거예요. 중국의 청방 길드에서 언데드 몬스터에게 물린 고위 공무원을 되돌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불행 중 다행이네요.”
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되돌린 사례가 있다면 우리라고 못 할 것도 없으니까.
그런데,
“청방과 전쟁을 시작하면 정부에서 부담스러워할 텐데 그게 걱정이네요.”
“그래도 해야지. 내 새끼 살리는 일인데 그깟 정부가 무슨 대수라고.”
지윤미와 박민정의 분위기가 흉흉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전쟁이라니요?”
“10억 원. 사람으로 되돌리는데 청방 길드에서 요구한다고 알려진 금액이에요. 근데 그마저도 순번을 기다려야 해요. 언데드 몬스터에게 물려서 치료를 받길 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돈이 있어도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치료하는데 제약이 있나 보군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지윤미 마스터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치료를 하는데 10억 원을 달라는 말도 기가 막힌 데 그마저도 기회가 얻기 힘들면 싸울 수밖에 없을 듯했다.
바로 옆에서 동료가 죽어 가는데 손가락만 빨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중국 길드와의 전쟁.
이미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겨서 그런가.
그리 겁이 나지 않았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시간이 너무 늦어서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것이 염려될 뿐이었다.
나 역시 이미 나현지와 정이 들 만큼 들었다.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낚시를 했던 그녀의 모습을 이제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정도였다.
“오크들이 왜 해자를 만들고 화살을 그렇게나 많이 만들었나 했더니 언데드 몬스터 때문이었나 보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네요. 물리면 방금까지 동료로 지냈던 사람이 적으로 돌변하니…… 이곳을 차지하고 미리 준비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요.”
“아직 안심하기엔 일러. 언데드 몬스터가 물을 꺼리긴 하지만 두려워서 피할 정도는 아니니까.”
박민정과 얘기를 주고받던 지윤미가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성벽을 쳐다봤다.
진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이제 땅굴을 파고 배를 만들어 밖으로 나갈 일만 남은 줄 알았는데 오크보다 더 까다롭고 두려운 놈들이 다가오고 있는 듯했다.
짐작건대 그 많은 오크가 이쪽으로 몰려왔던 게 모두 언데드 몬스터 때문인 듯싶었다.
그런데 그때,
-저 인간 여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저대로 두면 완전히 언데드화 될 거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한 달. 마나를 사용하니 그 정도는 버티겠지만 이지를 상실하면 그때 가서는 성수를 가져와도 되돌리기는 힘들 거야. 설사 인간의 육체를 보존한다 해도 이지를 상실하면 아무 의미 없는 거잖아.
노움이 형상되어 나타나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경고를 해 주었다.
‘성수? 그게 뭔데? 그것만 있으면 현지를 치료할 수 있는 거야?’
-성수만 있으면 당연히 치료할 수 있지. 근데 이 근처에 신전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아.
‘뭐야, 그 말 하려고 나타난 거야. 난 또 무슨 방법이 있는지 알고 기대를…….
-끝까지 들어 봐. 일전에 갔었던 암염 동굴 위 산맥에서 세계수의 기운을 느꼈어. 거기에 가면 분명 엔트들이 있을 거야. 엔트의 줄기를 구하면 인간 여자를 치료할 수 있을 거야.
따스하고 포근한 빛이 내 몸을 감싸는 동시에 노움의 지식이 공유됐다.
세계수.
태초의…….
생명의…….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나무.
엔트.
세계수의 기운을 받으며 일천 년 이상 자라 이지를 갖게 된 나무.
.
.
.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들.
여유롭고 한가로운 모습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그 주위를 맴도는 벌과 나비, 새들까지.
눈앞에 마치 지상 낙원과 같은 모습의 풍경이 보였다.
-선택은 너의 몫이야. 엔트의 줄기를 구하면 저 인간 여자를 치료할 수 있지만 그곳에 가기 위해선 늑대인간들과 부딪혀야 할 테니까.
노인,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노움이 하늘 다리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현지와 사람들을 당장 되돌릴 방법이 있다네요.”
난 노움에게 들은 얘기를 그대로 지윤미와 박민정에게도 전달했다.
그리고 이내,
“……가야죠. 무조건 가야죠.”
“제가 직접 아이들을 이끌고 다녀올게요.”
두 사람 모두 일체 고민 없이 하늘 다리가 있는 곳을 쳐다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 * *
발키리 길드 헌터 100명.
지윤미 마스터는 직접 인원을 선발해 출정을 준비했다.
늑대인간.
언데드 몬스터와 마찬가지로 물리거나 긁히면 전염을 시키는 까다로운 놈이었다.
그래서 하늘 다리를 폐쇄하라고 지시했었고.
허나 지금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곱 명을 살리기 위해 백 명이 위험지역으로 가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지만 그 누구도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자신이 일곱 명 중의 한 명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좀비화되어 가고 있는 사람들을 포기하는 건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오빠, 지금 뭐 하세요?”
“늑대인간한테 물리면 전염된다면서? 앞에서 싸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나도 갑옷 정도는 입고 가야 할 것 같아서.”
“뭐라고요? 오빠도 같이 출정한다고요?”
출정에 참여하기 위해 미스릴을 녹여 한참 갑옷을 만들고 있는데 수정이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당연히 같이 가야지. 내가 따라가야 길잡이 역할을 하지.”
“그렇긴 하지만…….”
날 바라보는 수정의 눈빛에 걱정이 한가득하였다.
“윤미 언니, 윤미 언니도 동의했어요?”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같이 간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제가 가서 물어보고 올게요.”
“굳이…….”
후다닥.
수정이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부랴부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내,
“성주님도 같이 가겠다고 한 게 사실인가요?”
지윤미 마스터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 수정이와 함께 왔다.
“네. 당연히 같이 가는 거 아니었나요?”
“아니요. 전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어요. 잊으셨나 본데 당신은 이곳의 성주님이세요.”
“네. 저도 잘 알고 있어요.”
“그걸 아시는 분이 함께 가시겠다고요? 성주님께서 같이 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이곳에 남아 있는 사람들 생각은 안 하시는 건가요?”
“무슨 일 생기지 않게 마스터님께서 잘 지켜 주세요. 그럼 되잖아요.”
“성주님!”
지윤미 마스터가 언성을 높이며 내게 소리를 질렀다.
처음이었다. 그녀가 나한테 이렇게까지 화를 낸 것이.
왠지 분위기가 어지간해선 나를 데리고 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도 그녀가 왜 이러는지는 알고 있다.
허나 내가 없으면, 아니 노움이 없으면 길을 헤매게 될 테고 늑대인간들과 조우하는 횟수가 더 늘어날 게 분명했다.
게다가 기껏 늑대인간 지역을 통과해 엔트를 봐도 단번에 알아본다는 보장도 없고.
노움이 보여준 풍경에서 엔트는 크기가 클 뿐 일반 나무와 생김새가 똑같았다.
“……제가 꼭 가야 하는 이유에요.”
난 그녀가 납득할 수 있게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알았어요. 성주님께서 꼭 가셔야겠다면 발키리 길드 전 인원을 데리고 갈게요.”
“네. 그렇게 하세요.”
왠지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나를 데려가지 않을 것 같아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그때,
“성주 갑옷. 쓰레기. 다시 만들어야 한다.”
“끙…….”
카프리가 다가와 내가 만든 갑옷을 보며 핀잔을 주었다.
게다가,
“화살 쓰레기. 미스릴로 다시 만든다. 언데드, 늑대인간. 대가리 맞으면 죽는다.”
화살 역시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다.
“아만티움 갑옷, 미스릴 무기. 늑대인간 그냥 이긴다. 내가 만들어 준다.”
“정말이요? 카프리가 직접 무기를 만들어 준다고요?”
“멍청이가 술 처먹었으면 술 값하라고 했다. 성주 죽으면 막걸리 못 마신다. 무기 안 만들지만, 이번엔 만들어 준다.”
“다른 사람들 것도 만들어 준다는 얘기죠?”
“흠…….”
카프리가 고민스런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다이아몬드만큼이나 단단하다는 아만티움.
그걸로 갑옷을 만들면 아무리 늑대인간의 손톱과 이빨이 강력하다고 하나 어지간해선 쉽게 뚫리지 않을 듯했다.
근데 표정을 보아하니 갑옷은 내 것만 만들어 줄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멍청이가 막걸리 조금 준다. 많이 먹고 싶다.”
“그건 너무 많이 마시면 취할까 봐…….”
“그럼 나도 안 만든다. 성주 것만…….”
“드릴게요. 카프리가 원하는 대로 막걸리를 마시게 해 줄 테니 다른 사람 것도 만들어 주세요.”
“막걸리 주면 나도 만들어 준다.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게 있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멍청이가 그랬다.”
카프리의 한쪽 입술이 올라가며 고개를 끄덕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