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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62화 (62/255)

62화. 언데드 몬스터

“두더지야? 뭐야?”

“제가 알기론 두더지도 저렇게 땅을 잘 파지는 못할 거예요.”

카프리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사람들이 입을 쩍 벌리고 놀랄 만큼 땅이 갈리기 시작했다.

단순히 곡괭이와 삽을 번갈아 들으며 땅을 파고 있을 뿐인데도 마치 행위 예술을 보는 것처럼 절도가 있고 스피드도 대단했다.

‘두더지가 아니라 포클레인을 가져와도 저렇게 땅을 파지는 못할 거야.’

난 사람들을 따라 멍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를 쳐다봤다.

군대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헬기장을 만들고 제대하고 나서도 공사장을 떠돌며 이래저래 몸 쓰는 일을 많이 했던 나도 나름대로 삽질이라면 자신이 있었지만, 감히 카프리 앞에선 명함도 못 내밀 듯했다.

“#$#$#$#$”

“저 새끼가 어디다 삿대질이야?”

“#$#[email protected]#$#@$!”

한참 땅을 파던 카프리가 장지원 마스터에게 손짓하며 말을 했다.

보아하니 장지원을 자신에게 오라고 하는 듯했다.

“가 보세요. 형님한테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할 말이 있으면 지가 오면 되지. 왜 나한테 오라 말아야?”

장지원도 카프리의 의중을 눈치챈 듯한데 선뜻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카프리가 마치 밑에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억양과 손짓을 하고 있어서 그런 듯했다.

찌릿.

난 아무런 말 없이 장지원을 쳐다봤다.

다른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고.

한국인의 정서상 손을 까닥하면서 부르면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그가 이렇게 뻗대고 있을 상황은 아닌 듯했다.

누가 봐도 지금 카프리는 장지원에게 무언가 가르쳐 주기 위해서 부르는 것처럼 보였기에.

“……알았어. 가면 되잖아. 무섭게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

나와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장지원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카프리에게 걸어갔다.

그리고 이내,

“#$#$#$#$”

“얌마, 어딜 만져!”

“#$#$#$#$”

“뭐하는 거야? 네가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막 함부로 스킨십하고 막 그래도 되는 사람이 아니야!”

“#$#$#$”

“나 마스터야. 마스터. 내가 여기 대장이라고.”

“#$#$#$#$”

카프리는 장지원 마스터에게 삽을 들게 하고 뒤에 붙어서 그의 몸을 직접 어루만지며 조금은 투박하고 거친 손길로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게다가,

“#$#$#$#$”

“현규야, 너 부르는 것 같다.”

“……네.”

“영균아, 너도.”

“……네.”

카프리는 장지원 마스터에 이어 태백산맥 길드 부 마스터인 김현규와 김영균도 불러서 같은 방식으로 자세를 교정해 주었다.

“오케이. 알았어. 이렇게 하니까 힘이 골고루 분산돼서 부담도 덜 되고 잘 파지긴 하네.”

“#$$#$#$”

“아직 점심시간 안 끝났어. 조금 쉬었다가 한다고.”

“$%$%$%$%$%”

“삿대질하지 말라고!”

잠깐 땅을 파다가 장지원이 자리로 돌아오려 하자 카프리가 언성을 높이며 화를 냈다.

처음엔 대화가 통하지 않아 손짓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저기 있는 세 사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했다.

그래서 직접 교육을 할 모양이다.

“작업 시작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성주님.”

“네, 알겠습니다. 성주님.”

뎅뎅뎅.

뎅뎅뎅.

‘가르쳐줄 때 배워야지.’

아직 점심시간이 조금 남아 있긴 했지만 난 오후 작업을 재개했다.

괜히 미적거렸다가 카프리의 마음이 변할 수도 있기에.

그가 하고자 하는 대로 장단을 맞춰줬다.

“모두 카프리 옆에 정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

난 사람들을 모두 카프리 옆으로 보냈고 그는 직접 손가락질을 하며 사람들의 자리를 정해 주었다.

그런데 그때,

“#$##@#$”

“와! 저 새끼 지금 나한테 돌 던진 거 맞지?”

“#$#$#$”

카프리가 장지원을 향해 작은 조약돌을 던졌다.

짐작건대 자신이 가르쳐준 자세대로 삽질하지 않으니 그런 것으로 보였다.

아니면 농땡이를 부려서거나.

그때부터였다.

사람들은 모두 드워프의 자세 교정을 받으며 작업을 시작했고 자세가 흐트러지거나, 허리를 펴면 어김없이 돌이 날아갔다.

‘웃고 있어.’

기분 탓일 수도 있는데 사람들을 가르치는 카프리의 눈빛과 표정이 왠지 미소 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짐작건대 말이 통하지 않아서 답답했던 게 아니라 땅을 파는 모습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참다, 참다 직접 나선 듯했고.

오전까지만 해도 분명 사람들이 땅을 파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리 티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날 때마다 확연하게 땅이 파이는 게 보였다.

‘역시 삽질은 힘이 아니라 요령이었던 건가?’

군대에서 땅을 파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우람한 덩치의 이등병 열 명보다 덩치는 왜소하지만 경험이 풍부한 병장 다섯이서 땅을 파는 게 더 빠르다는 것을.

게다가 이등병들은 하루 땅을 파면 근육통으로 인해 며칠을 골골대지만, 병장들은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아무렇지 않게 작업을 할 수 있었다.

난 카프리의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장지원에게 다가갔다.

“지원이 형님. 보아하니 카프리가 형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으니 같이 작업하면서 말 좀 가르쳐주세요.”

“나한테 지금 저놈 말까지 가르치라고? 그리고 어딜 봐서 날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 지금도 나한테 돌 던지려고 하는 거 안 보여?”

“종족이 달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잖아요. 드워프 세계에선 저게 애정 표현일 수도 있어요.”

“그게 뭔 개…….”

“네?”

“아니 아무리 종족이 달라도 돌 던지면서 애정 표현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누가 봐도 저건 마음에 안 들어서…….”

“맞아요. 형님 말이 맞을 수도 있는데 카프리에게 말을 가르치는 건 지금 저희에게 사활이 걸린 일이에요. 근데 이렇게 중대한 일을 아무한테나 맡길 수는 없잖아요.”

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장지원을 그윽하게 쳐다봤다.

나도 이왕이면 다른 사람을 붙여 주고 싶지만, 이유야 어쨌든 카프리가 먼저 관심을 보이니 지금으로선 그가 제일 적임자일 듯했다.

“……믿을 사람이 형밖에 없어서 그래요.”

“끙…… 알았다. 우리 성주가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내가 해야지. 나만 믿어.”

장지원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믿을 사람이 형밖에 없다는 한마디.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한다고.

혹시나 하고 덧붙인 말인데 장지원의 표정과 태도가 한순간에 바뀌었다.

* * *

한 달 만에 깊이 10m, 폭 10m의 해자가 완성되었고 물이 채워졌다.

카프리의 적극적인 협조와 감독 덕분이기도 했지만, 우리가 이곳을 차지하기 전 오크들이 이미 파 놓은 게 단단히 한몫했다.

땅굴 작업을 방해하여 어쩔 수 없이 공격해 차지했는데 해자를 만들고 나니, 본 성보다 더 견고하고 튼튼한 요새로 탈바꿈되었다.

“형님이라면 해낼 줄 알았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아니야, 내가 뭘 한 게 있나.”

장지원 마스터의 성향을 대략이나마 파악한 난 아낌없이 칭찬해 주었고 그는 쑥스러운지 얼굴이 붉어져 머리를 긁적였다.

“말은 좀 가르쳤나요?”

“어. 긴 문장은 못 하지만 이제 간단한 단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어.”

“역시 형님이시네요. 최소 반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한 달 만에 의사소통하게 만들다니. 혹시 땅굴 파는 것도 도와달라고 해 봤나요?”

“그게 말을 해 보긴 했는데…… 못 알아듣는 건지, 아니면 알아들으면서도 이해 못 하는 척하는 건지 관심이 없더라고.”

“제가 직접 얘기를 해 볼게요. 카프리를 불러 주세요.”

“알았어.”

장지원이 옆에 있는 헌터를 시켜 카프리를 호출했고 난 기대 어린 표정을 지으며 그를 기다렸다.

지하에 도시까지 만들고 살 정도의 기술력을 갖춘 카프리가 도와주면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시작한 땅굴 작업이 더 원활해질 것이 분명하기에.

장지원을 칭찬하긴 했지만, 해자 하나를 만드는 것만 봐도 드워프의 기술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땅을 파고 그 위에 다시 돌을 깔고, 물을 채워 넣는 일.

말이 쉽지. 생각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도르래를 이용해 다리를 올리고 내리는 것까지.

비견 다 간단해 보이지만 까딱했다간 성안 쪽이 무너질 수도 있어 정교한 기술이 수없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야, 카프리 빨리, 빨리 안 오냐?”

“네가 와라. 멍청아.”

“지금 그런 분위기 아니다. 성주가 찾는 거잖아. 내가 얘기했지. 나한텐 함부로 해도 성주한테는 그러면 안 된다고.”

“멍청아. 막걸리 가져와라. 그럼 가 준다.”

“좋은 말할 때 빨리 와라. 까불다 뒈지는 수가 있다.”

“너나 뒈져라. 멍청이.”

“…….”

“막걸리. 빨리빨리!”

난 살짝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장지원과 카프리를 번갈아 쳐다봤다.

‘말을 가르치라고 했더니 도대체 어떤 식으로 가르친 거지?’

장지원이 장담한 대로 분명 대화가 어느 정도 통하는 것 같긴 한데 뭔가 천박한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카프리, 막걸리 줄 테니까 이리로 오세요. 같이 한잔하면서 얘기하죠.”

“멍청이 있으면 안 간다. 멍청이 옆에 찌그러져 있으라고 하면 간다.”

“저 새끼가…….”

“멍청이 닥쳐. 난 네가 함부로 해도 되는 사람 아니다.”

“카프리가 말하는 멍청이가 형 맞죠?”

“……어.”

“잠시 자리 좀 피해 주세요.”

“……그래.”

장지원 마스터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자업자득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남동 공단에 실습하러 갔을 때.

예전에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취업을 한 공장의 80% 이상이 외국인 노동자였고 보통 한국에서 한 달 정도 있으면 간단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빨리빨리.

꺼져.

멍청한 새끼.

사장님 나빠요.

하고 있잖아.

.

.

.

그런데 보통 다 나쁜 말부터 배웠다. 정식으로 배운 게 아니라 일을 하면서 상급자의 지시를 들으며 귀가 열리다 보니 그 말투를 자연스럽게 먼저 터득하는 것이었다.

“한잔 받으세요. 그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덕분에 한시름 놓았어요.”

카프리와 자리한 난 그의 잔에 먼저 막걸리를 채워졌다.

“성주도 한잔 받아라. 멍청이 옆에 있으면 힘들다. 멍청해서 답답하다.”

“네, 고마워요.”

벌컥벌컥.

벌컥벌컥.

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막걸리를 들이켰다.

말은 투덜거리지만, 장지원 마스터한테 적의는 없어 보였다.

그저 내가 예상하는 것처럼 장지원 마스터가 자신한테 대하는 태도와 말투를 보고 따라 하는 것 같았다.

“전 집으로 가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배를 만들고 땅굴을 파고 있어요. 카프리씨의 도움이 더…….”

“멍청이한테 얘기했다. 땅굴 안 된다. 화살부터 만들어야 한다.”

“화살이요? 화살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아만티움 화살을 말하는 건가요? 그거라면 이미 십만 발이 넘게…….”

“부족하다. 더 만들어야 한다. 이대로 있으면 다 죽는다. 미스릴 화살 만들어야 한다.”

카프리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서 있는 박민정을 쳐다봤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가 착용하고 있는 미스릴 갑옷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때,

“부길마님, 큰일 났어요. 현지가 좀비한테 물렸어요.”

“좀비? 그게 무슨 말이야! 갑자기 언데드 몬스터가 왜 나타나?”

“그, 그게 분명 오크였는데…… 화살을 쏴서 숨이 멈춘 것까지 다 확인 했는데 갑자기 일어나서 현지와 헬퍼들을 물었어요.”

오크성 후방으로 정찰을 나갔던 헌터가 상처가 가득해져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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