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친위대
“$%$%#$%#$%”
드워프가 한숨이 섞인 말로 궁시렁거리며 먼 산을 바라봤다.
왠지 그 모습이 아주 처량하고 슬퍼 보였다.
“너무 심했나?”
나도 모르게 절로 얼굴이 찌푸려졌다.
세상에 먹을 거로 약 올리는 것만큼 치사한 것도 없다고 했는데 드워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제 와 살짝 후회되었다.
‘먹고 싶은 거 못 먹을 때만큼 서러운 것도 없는데…….’
가슴이 저리고 아려왔다.
중학교 시절 비엔나소시지를 반찬으로 싸 왔던 반장의 도시락을 보며 군침을 흘렸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를 만큼 기분이 더러웠다.
“미안합니다. 제가 치사했습니다. 점심 식사 때는 막걸리를 먹게 해 드릴게요. 그리고 협조하지 않아도 구속하지 않겠습니다. 상처 치료만 마치고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게 해 드리죠.”
“$#$%#$%$%%$#%”
난 알아듣지 못할 걸 알면서도 드워프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했다.
차라리 위력을 행사했으면 이 정도로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을 텐데 먹을 거로 고문 아닌 고문을 했더니 가슴에 돌덩어리라도 올린 것처럼 무거웠다.
공동체 생활에 있어 언어는 꼭 필요한 부분이었지만 굳이 대화가 통하지 않아도 느낌이라는 게 있었다.
“@#$#$#$#$”
나를 바라보는 드워프의 눈빛엔 분노만이 아닌 절망도 함께 들어차 있었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왠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는 듯했다.
“드워프를 풀어 주시겠다고요?”
“그래야 할 것 같네요. 이종족이라 했으니 드워프도 분명 보고 싶은 친구가 있고 가족이 있을 텐데 내 살길 만들겠다고 이런 식으로 구속을 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본성이 나온다고 했던가.
가끔은 조금 비겁하게 살았을지언정 양아치처럼 살지는 않았는데, 인간과 마찬가지로 인격 비슷한 걸 갖고 있을지도 모르는 존재의 신체를 구속하면서도 내 이익만 생각했을 뿐 전혀 꺼리지 않았다.
오크들과 연이어 목숨을 걸고 싸우다 보니 사람이라면 응당 갖고 있고, 생각했어야 할 기본적인 것조차 잊고 있었다.
“방금까지…….”
“저도 사람이잖아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고요.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 오크보다 더 못 할 짓을 한 것 같네요.”
“끙…….”
박민정이 코끝을 찡그리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녀도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막걸리를 나누어 주지 않았던 게 계속 마음에 걸렸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녀도 더 이상 내 말에 왈가왈부하지 못하는 듯했다.
잠시 고민을 하는 것 같던 박민정이 따스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을 건네 왔다.
“수정이가 반할 만하네요.”
“네?”
“멋있다고요. 남자에게는 통 관심이 없어 평생 혼자 살 것 같던 제 친구가 왜 좋아하게 됐는지 알 수 있을 만큼.”
“……?”
“윤미 언니를 도와 발키리 길드를 이끌면서 이래저래 참 많은 걸 보고 들었거든요. 근데 각성하고 힘이 생긴 권력자 중에서 성주님 같은 분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기만큼 어려운 일이 없잖아요. 특히 힘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근데 성주님께선 누가 얘기해 주지도 않았는데 혼자 깨닫고 스스로 그 잘못을 고치시려고 하잖아요.”
박민정이 존경심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런데 어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정도로 칭찬을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박민정이 너무 의미를 두니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을 정도로 괜스레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저기 좀 가서 도와줘야겠네요.”
난 걸음걸이를 재촉하며 해자를 파고 있는 사람들에게 걸어갔다.
이제 적응할 때도 된 것 같은데 칭찬을 받으면 아직도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내 지시가 벌써 전달이 됐는지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이 삽을 들고 후문 앞에 나가 해자를 파고 있었다.
그런데,
“왔냐.”
“……네.”
“팔자 좋네. 길드원들은 이 추위에 삽 들고 땅이나 파고 있는데 산책이나 다니고.”
“…….”
장지원 마스터가 날 보자마자 칭얼거렸다.
말투와 표정을 보아하니 뭔가 내게 불만이 가득한 듯했다.
다른 길드원들 역시 날 바라보는 눈빛에 왠지 섭섭함이 가득해 보였다.
“그래서 지금 도와주려고 왔잖아요.”
“됐다. 우리끼리 할게. 넌 어차피 우리한테 관심도 없잖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제가 왜 길드 사람한테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있다고? 근데 그런 사람이 용병들 좀 흡수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했더니 그리 나 몰라라 하는 거야?”
“아…….”
깜빡했다.
눈앞에 닥친 일이 많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래서 삐진 듯했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고 덩치도 산만 한 사람이 이럴 때 보면 애 같은 구석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 일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굳이 성주님께서 나서지 않으시더라도 용병들은 다 태백산맥 길드에 가입하게 될 거예요.”
박민정이 앞으로 나서서 대답을 대신했다.
“뭘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닙니까? 제가 알기론 전부 흑기사 부대나 마녀 부대로 들어가려고 하는 것 같은데. 조성태와 최은빈도 적극적으로 영입을 하려고 있고.”
“그래봤자 소용없을 거예요. 수정이가 이미 용병들을 태백산맥에 가입시키기로 마음먹고 작업을 하고 있으니 마스터님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권수정 부 마스터가 용병들을 우리 길드에 흡수시키기 위해 대신 작업을 하고 있다고요?”
“네.”
“왜?”
“태백산맥 길드가 커져야 성주님의 안전과 지위가 더 견고해질 테니까요.”
“제 말이 그 말입니다. 저도 저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고 그러는 게 아닌데, 해용이 저놈이 이런 쪽으론 너무 무신경해서 답답해서 죽겠습니다. 명색이 성주를 추대한 길드인데 여기서 이렇게 땅이나 파고 있으니…….”
용병을 흡수하는데 도와주지 못한 것도 있지만 해자 작업을 하는 것도 못마땅한지 장지원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성주님께선 헌터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시기도 하고 눈앞에 산재한 일이 많잖아요. 그래서 신경을 쓰시지 못하는 것 같아 수정이가 대신 돕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보세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저흴 챙겨주는 건 발키리 길드밖에 없네요.”
장지원 마스터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민정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린아이같이 입이 댓 발 나와서 삐진 것도 잠시 금세 화가 다 풀린 모양이다.
허나 난,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두 사람의 대화에 의아한 점이 있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안전과 지위?
분명 한국말로 얘기를 하고 있는데 두 사람이 주고받는 말의 저의를 파악할 수가 없었다.
성주가 소속된 길드임에도 궂은일을 도맡으며 땅을 파고 있는 현실이 답답한 건 이해를 한다만 왜 저런 말까지 나오는지는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성주님이 이곳에서 나가기 위해 준비하는 것처럼 장지원 마스터와 수정이는 그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이야 공동의 목표가 있고 성주님의 능력과 인품을 인정하고 따르고 있지만, 나중에도 계속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네? 설마 그 말은 지금 흑기사 부대랑 마녀 부대를 두고 말하는 건가요?”
“누군가를 특정해서 말하는 건 아니에요. 그 두 부대 역시 자신들의 목숨마저 도외시한 채 저흴 도우러 온 고맙고 의리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런데 왜?”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르는 거니까요. 지금이야 뜻이 맞아 함께하고 따른다 해도 계속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그래서 최악의 상황을 가장해서 수정이는 성주님의 친위 세력을 키우려고 하는 거예요.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태백산맥은 성주님이 어떤 결정을 내려도 목숨 바쳐 따를 테니까요.”
“흠…….”
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박민정을 쳐다봤다.
일전에 동충하초를 하늘 목장으로 옮기자면서 지윤미 마스터도 그러더니 지금 박민정 역시 헌터 세계에 대한 불신이 가득해 보였다.
“헌터 일을 하면서 돈 앞에서 한 사람이. 그리고 세력이 추악해지는 걸 정말 많이 봤어요. 그래서 그래요. 힘이 없으면 내가 가진 걸 언제 누구한테 뺏겨도 이상하지 않을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으니까요. 싸우려고 하는 게 아니라 싸우지 않기 위해 힘을 키운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아…….”
난 박민정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얘기를 더 듣다 보니 대충 이해가 되었다.
미스릴 광산, 암염 동굴, 동충하초, 옐로 아이, 잔치국수…….
지구로 귀환만 할 수 있다면 하나하나가 다 센세이션을 일으킬 만큼 귀하고 효능이 특출 난 것들이었다.
아마 힘 있는 사람이나 단체가 이곳 상황을 알게 되면 탐을 낼 게 분명했다.
‘……내 것을 지키려면 당연히 힘이 있어야지.’
박민정은 세상이 변해가고 있다고 했지만, 이 세상은 원래 그랬다.
역사가 증명해 주고 있지 않은가.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
힘이 없던 우리나라는 이미 수백 년 전부터 강대국으로부터 짓밟힌 역사를 갖고 있었고 나라의 얼이 깃든 보물과 재물을 뺏긴 것은 물론이고 사람까지 노예로 보낸 경험이 있었다.
“……고맙네요.”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장지원과 박민정을 쳐다봤다.
당장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에 급급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을 뿐 나도 어렴풋이 인지하고 있었다.
근데 이미 나를 대신해 이렇게 다들 물심양면으로 돕고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특히 수정이가 나를 위해 태백산맥을 돕고 있다는 말이 날 제일 기쁘고 든든하게 했다.
장지원과 이부성이 있는 태백산맥에게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것처럼 수정이 역시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며 평생을 같이 있을 사람이었기에.
“지원이 형님. 그럼 이제 불만은 해결된 것 같으니 작업 시작할까요?”
난 빙그레 웃으며 땅에 떨어진 곡괭이를 들고 바닥에 내리찍었다.
그리고 이내,
“아이. 왜 그래. 이런 건 우리가 할게. 성주님께선 더 중한 일을 해야지.”
장지원 마스터가 웃음을 지으며 내게 달려와 곡괭이를 빼앗으려 했다.
내가 직접 땅을 파는 게 마음이 편치 않은 모양인지 다른 헌터들도 작업을 멈추고 날 물끄러미 쳐다봤다.
허나 난,
“지금 제 판단엔 해자를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이에요. 길드에 관심이 없어서 돕지 않은 게 아니고 가장 중요한 일을 태백산맥이 맡고 있어서 안심하고 있었던 거예요.”
곡괭이를 넘겨주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런 허드렛일이…….”
“화살촉을 만들고 투석기를 만들고 성벽을 지어서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잖아요. 근데 형님은 아직도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장지원이 내 질문에 말끝을 흐렸다.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여전히 속으론 그렇게 생각을 하는 듯했다.
“제 등을 지켜 줄 친위대를 꾸리신다고 했죠. 그럼 무력도 무력이지만 해자를 파고 성벽을 보수하는데도 성심을 다해 주세요. 전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장 귀하게 대접을 해 줄 거니까요.”
난 잠시 허리를 펴고 해자를 파고 있는 태백산맥 헌터들과 헬퍼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다.
지금 하는 말은 장지원 마스터뿐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