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57화 (57/255)

57화. 드워프

스무 대의 바퀴가 달린 투석기.

이천 개의 허수아비.

네로와 친구들이 펼치는 안개까지.

일주일 만에 전투를 치를 준비를 끝마쳤다.

“성주님이 지시해서 따르긴 했지만, 과연 저놈들이 속을까요?”

“네. 분명 속을 거예요. 역사적으로 이미 증명된 전략이니까.”

난 입술을 굳게 다물며 오크성을 쳐다봤다.

“꾸웩!”

“꾸웩!”

휘이익!

휘이익!

수천 마리의 오크들이 성벽 위에서 우리를 향해 계속 위협 사격하며 괴성을 질러 대고 있었다.

마치 올 테면 와보라는 것처럼.

“거성 씨.”

“네. 준비됐습니다.”

꿀꺽.

투석기 이동을 맡은 헬퍼들이 마른침을 삼켰다.

다들 긴장한 모습이 여력 했다.

“안개가 펼쳐지면 10m만 이동할 겁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네. 걱정 안 합니다.”

난 유거성과 헬퍼들에게 다가가 한 명씩 등을 토닥여주었다.

“성태 씨,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생깁니다. 헬퍼들을 부탁드려요.”

“네. 염려 마십쇼. 단 한 발의 화살도 헬퍼들에게 닿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평소와 달리 주 무기를 버리고 방패를 든 흑기사 부대와 태백산맥 헌터들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진군하세요.”

“진군!”

“진군!”

부우우우우웅!

부우우우우웅!

나의 명령과 동시에 깃발을 든 병사가 기를 흔들고 커다란 뿔 나팔 소리가 요란하게 대지를 흔들었다.

그리고 이내,

“수정아!”

“네, 알겠어요!”

“냐아아앙.”

바닥에서부터 깊은 운무가 깔리기 시작했다.

휘이익.

휘이익.

두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우리의 진격과 동시에 비처럼 쏟아지는 수천 발의 화살들.

허나 그 화살 중에 우리를 맞추는 것은 없었다.

“와아! 저놈들 보이지도 않는데 진짜 무턱대고 쏘고 보네?”

투석기를 보고 겁을 먹은 오크들은 사정거리 안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무턱대고 우리에게 화살을 쏘아 댔다.

“진군을 멈추고 후방에 있는 투석기를 발사하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성주님.”

안개가 우리를 잠식하고 나서 난 진군을 멈추고 투석기 발사를 명령했다.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물론 우리가 날리는 바위 역시 오크성에 닿지는 않았다.

오크들이 날리는 화살은 간간이 우리의 발밑까지 떨어졌지만 바위들은 오크들의 근처도 가지 못했다.

“성준 씨!”

“네, 알겠습니다.”

둥둥둥.

쾅쾅쾅!

쿵쿵쿵!

쿵짜라쿵짝!

쿵짜라쿵짝!

냄비, 국자, 숟가락, 접시 등 주방에 있던 수많은 조리 기구를 가져온 헬퍼들이 요란하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진격을 하는 것처럼.

휘이익.

휘이익.

십 분, 이십 분, 두 시간이 지나도 오크들은 계속 미친 듯이 화살을 쏘아 댔고 전면에 내세운 허수아비들이 점점 고슴도치로 변해갔다.

안갯속 안으로 어렴풋이 보이는 실루엣으로 인해 오크들은 아마 우리가 화살에 맞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음메!”

“히이잉!”

하늘 목장에서 데려온 야생 동물들이 꼬리에 볏짚을 달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흙먼지까지 날리고 있어 우리가 공격을 받으면서도 계속 투석기를 밀어 다가온다고 여기고 정말 쉼 없이 화살을 쏘아 댔다.

“교대로 식사하라고 하세요. 예상했던 것 보다 화살이 훨씬 많은가 보네요.”

“네, 알겠습니다.”

난 정세를 살피며 병력에 휴식을 주었고, 오크들의 긴장감이 풀리지 않게 간간이 투석기와 화살 공격. 그리고 마녀 부대를 출정시켜 마법 공격을 날렸다.

세 시간, 네 시간, 다섯 시간.

밤늦게 전투를 시작했는데 어느새 해가 뜨며 새벽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때서야,

“성주님, 더 이상 화살이 날아오지 않습니다.”

오크들의 공격이 멈췄다.

“이제 반격할 때가 온 것 같네요. 안개를 거두세요.”

“네, 알겠습니다.”

“냐아앙!”

내가 손을 올리자 조금씩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와! 장난 아니네요. 진짜로 들어갔으면 완전 고슴도치가 됐겠네요.”

“대박, 저게 다 돈이 얼마야.”

투석기와 허수아비에 박힌.

미스릴보다 더 귀하다는 아만티움 화살을 보며 사람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족히 수만 발, 아니 십만 발은 되어 보였다.

허수아비와 투석기에 박힌 것만큼이나 바닥에도 화살이 수없이 많이 꽂혀 있었다.

“수거하세요.”

“네. 성주님.”

난 빙그레 웃으며 오크성을 쳐다봤다.

거리가 멀어 표정이 보이지 않지만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성벽 위를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 깔끔하니 많이 당황한 듯했다.

“성주님, 투석기 발사 준비됐습니다.”

“궁수 부대도 준비 완료됐습니다.”

투석기를 사정거리까지 밀고 간 헬퍼들과 활을 착용한 천여 명의 헌터들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내 지시를 기다렸다.

“흠…….”

“성주님?”

“잠시만요.”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오크성을 쳐다봤다.

이대로 내가 공격 명령을 내리면 어렵지 않게 성벽을 부수고 오크들을 몰아낼 수 있을 듯했다.

행여나 궁지에 몰린 오크들이 돌격해도 아만티움 화살이 넘치도록 많아 아마 우리한테 도착도 하기 전에 고슴도치가 될 것이다.

근데 왠지 저 성벽을 부수는 게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지윤미 마스터가 얘기했던 것처럼 가까이 와서 오크성을 보니 정말 우리가 만든 성벽보다 더 견고하고 튼튼해 보였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오크들이 도망치고 있습니다.”

공격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오크들이 밖으로 나와 우리가 없는 방향으로 뛰어가며 사방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거성 씨, 성벽 부서지지 않게 적당히 위협 사격만 하세요.”

“네. 성주님”

“궁수 부대도 성벽 상하지 않게 조준 잘해서 위협 사격만 하시고요. 오크들이 겁먹고 빨리 도망갈 수 있게.”

“지금 오크들을 다 놔주시겠다는 겁니까?”

흑기사 대장 조성태.

그가 코끝을 찡그리며 날 노려봤다.

바로 얼마 전에 오크들에게 동료들을 희생당한 일로 분노와 복수심이 타오르는 듯했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에요. 이제 와 오크 몇 마리 더 잡으면 뭐 하겠습니까. 전 그것보다 저 성이 더 탐이 나네요.”

“그래도…….”

“땅굴 작업을 시작하려면 여기에도 방어 시설이 필요합니다. 근데 저걸 다 부셨다가 다시 지으려면 헬퍼들은 물론이고 헌터들 역시 허리가 남아나지 않을 거예요.”

“끙.”

“……그렇긴 하죠.”

각 길드의 수장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 역시 오크들을 저리 보내는 게 못마땅한 듯했지만 내 말에 수긍했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발사!”

“발사!”

“발사!”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휘이익.

휘이익.

스무 대의 투석기와 천여 명의 헌터들이 화살을 쏘아 댔다.

그들은 내 지시대로 최대한 성벽이 상하지 않게 안쪽으로 화망을 집중했다.

십 분, 이십 분, 삼십 분, 한 시간 정도 포격을 하자 더 이상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성태 씨.”

“네. 알겠습니다.”

나와 눈을 마주친 조성태가 흑기사 부대를 이끌고 성으로 걸어갔다.

무혈입성.

마치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천천히 걸어가는데도 성에선 아무런 공격도 오지 않았다.

짐작건대 이미 다 도망갔거나 남아 있는 오크들도 포격으로 인해 다 죽임을 당한 듯했다.

* * *

“형, 내부 정리가 다 됐대요. 들어가셔도 될 것 같아요.”

“그래.”

헌터들이 오크 잔당을 해치우는 걸 기다렸다가 난 오크성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이놈들 우리보다 훨씬 더 잘해 놓고 사는데?”

“형이 봐도 그렇죠? 안 그래도 사람들도 다 그것 때문에 놀라고 있어요.”

난 놀람을 넘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크성 내부를 둘러봤다.

성벽은 우리 걸 따라보고 만들었다 해도 나무와 나뭇잎 따위로 대충 천막이나 짓고 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집마저 돌로 만든 것이 여럿 보였다.

게다가,

“형, 이것 보세요. 아궁이에요.”

“헐…….”

우리조차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없어 시도조차 못 하고 있는데 돌로 만든 집들은 난방 시설까지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때,

“성주님, 지윤미 마스터가 급히 찾으십니다.”

“왜 무슨 일이 있나요?”

“그건 직접 가 보시면…….”

발키리 부 길드 마스터. 박민정이 굳은 표정을 지으며 날 찾아왔다.

그녀는 이유를 묻는데도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가 보면 알겠지.’

난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박민정의 뒤를 따랐다.

전투도 승리하고. 다친 사람도 없어 그녀가 이런 표정을 지을 일이 없었기에.

터벅터벅.

박민정을 따라가자 다른 집보다 유독 큰 돌집 앞에 각 길드의 참모들이 모여 있었다.

‘보물이라도 발견한 건가?’

다들 못 볼 것이라도 봤는지 얼굴이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오셨습니까. 성주님. 어서 들어가 보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습니다.”

“……네.”

내가 도착하자 참모들이 입구를 비켜 주었고 난 안으로 들어갔다.

지윤미, 장지원, 조성태, 최은빈.

안에는 각 길드의 수장들이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사람? 원숭이?”

인간과 비슷한 생김새를 한 생명체가 의식을 잃은 채 침상에 누워 있었다.

‘포격을 받고 당한 상처가 아닌데?’

마치 고문이라도 받은 것마냥 온몸 곳곳에 채찍 자국과 불에 그슬린 자국이 가득했다.

팔과 다리에는 쇠사슬이 감겨 있었고.

1m 정도의 키.

온몸에 가득한 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였나?’

마치 어렸을 적 책에서 보았던 원시인과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오크 따위가 아만티움 화살을 사용해서 의아했는데 역시 드워프가 만든 거였네. 이놈들이라면 충분히 납득이 가지!

‘드워프?’

-묘족과 같은 이종족이야.

파란색 빛이 날 감싸며 운디네가 말을 건네 왔다.

-불을 잘 다루고 손재주가 뛰어난 놈들이야. 아마 이놈이 화살촉을 만들었을 거야. 아까 봤던 집도 마찬가지고.

‘아…….’

난 운디네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설명을 들으니 그동안 의아했던 것들이 해소되었다.

성벽도 그렇고 아만티움 화살도 그렇고 나 역시 오크들이 만들었다고는 생각지 않았기에.

“성주님, 설명은 나중에 드릴 테니 일단 치료부터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알겠어요.”

지윤미 마스터가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날 재촉했다.

짐작건대 그녀도 드워프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듯했다.

‘운디네.’

-응, 알았어.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이 드워프의 몸을 감쌌다.

아쿠아 워터.

……대상의 회복력을 극대화하는 1단계 정령 마법.

소모 정령력 15

내가 보기에도 일단은 치료부터 해야 할 듯했다.

이대로 두면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드워프의 상처가 심각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일단 깊은 상처는 치료됐어.

‘근데 왜 안 깨어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쇼크가 왔던 것 같아. 지금은 호흡이 안정되어 있으니 이대로 잠 좀 자게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운디네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날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행히 늦지 않게 치료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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