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검은 고양이 네로 (2)
“나양.”
“나야옹.”
낚시를 마치고 베이스캠프로 돌아가고 있는데 고양이들이 저 멀리 뒤편에서 거리를 두고 따라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나 간택을 받은 모양이다.
그런데,
“더 이상은 안 돼요.”
“응?”
“오빠가 너무 간절하게 쳐다봐서 도와주긴 했지만 키우는 건 안 된다고요.”
수정이가 정색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고양이 싫어해?”
“고양이는 좋아하지만, 저놈들은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잖아요.”
“……?”
“헌터들의 눈썰미와 감각은 오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예민해요. 작은 벌레 소리에도 반응할 만큼.”
수정이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내 등에 매달려 있는 생선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고양이들이 생선을 훔쳐 먹은 걸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척해 준 듯했다.
“다 알면서 모른 체한 거예요. 오빠가 말리지 않았다면 이미 죽였을 거예요. 제 판단에는 아까 안개를 저놈들이 펼친 것 같거든요.”
“……알았어.”
난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 역시 안개의 범인이 고양이들이라고 의심을 했기에.
게다가 사람 먹을 것도 부족한 상황에서 고양이한테 생선을 나누어 주었기에 더 이상 고집을 부릴 수가 없었다.
* * *
“냐앙.”
“냐아앙.”
막사에 들어왔는데도 계속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스카이 캐슬 주변을 계속 어슬렁거리고 있는 듯했다.
“미치겠네.”
이제 자야 할 시간이 됐는데도 고양이들 우는 소리에 잠이 오질 않는다.
저렇게 계속 울어대다가 사람들 눈에 띄면 생명을 잃을 가능성이 컸다.
밖에서야 길냥이들을 보면 음식을 나누어 주고 조금이나마 도움의 손길을 펼치는 집사들이 많겠지만 이곳은 그런 선심을 쓰기엔 다들 너무 갑갑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배고파서 따라온 것 같은데…….’
고양이들의 크기로 봤을 때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들 같았다.
짐작건대 아마 어미를 잃었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지 않으면 저렇게 어린 새끼들이 자기들끼리 돌아다니지는 않을 테니까.
너무 어리고 작아 사냥할 실력이 되지 않아 굶고 있다가 내가 먹을 것을 나누어 주니 계속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듯했다.
‘쫓아내야겠어.’
난 입술을 굳게 다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음 같아선 몰래라도 키우고 싶지만, 안전을 위해서 그러면 안될 듯했다.
네 짐작처럼 고양이들이 안개를 펼친 거라면 단순한 야생동물이 아닌 몬스터일 가능성이 클 테니까.
지금은 어려서 작고 귀엽지만 성장하면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죽이지 않고 살려준 것만으로도 이미 큰 선심을 베푼 것이었다.
그런데,
“성준 씨?”
“성주님…….”
“냐앙.”
“냐아앙.”
울음소리를 따라 와보니 김성준이 고양이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그게 울음소리가 너무 구슬퍼서 와 보니 이놈들이 있더라고요. 근데 저희가 먹을 것을 나누어 준 건 아닙니다. 사람들이 먹고 남긴 음식입니다.”
묻지도 않았는데 김성준은 음식의 출처를 먼저 밝혔다.
본인이 생각해도 지금 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면 그리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걸 인지하고 있는 듯했다.
“먹고 남긴 음식이라…….”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양이들을 쳐다봤다.
사람들이 남긴 음식을 먹으면서도 고양이들은 참 맛있게도 먹고 있었다.
아무리 음식이 귀하지만 식사 시간이 지나면 음식물 쓰레기가 나온다.
군대를 갔다 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음식을 남기면 얼차려를 받고 선임들에게 갈굼을 당해도 식판을 깨끗이 비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그렇다고 음식이 아까워 꾸역꾸역 먹다가 배탈이 나는 것만큼 미련한 일도 없었고.
그래서 난 잔반에 관해선 사람들을 압박하거나 규칙을 정하지 않았다.
다들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라 최대한 잔반이 나오지 않게 알아서들 조절해서 퍼가고 있었기에.
“냐앙”
“냐아앙.”
김성준이 준 음식을 다 먹은 고양이들이 다시 내게 다가와 발에 얼굴을 비비고, 배를 까고, 올라타며 또 애교를 부렸다.
귀엽다.
귀여워도 너무 귀여웠다.
“성주님이 허락해 주시면 이놈들을 키우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저도 허락을 해 주고 싶긴 한데 그게…….”
“요즘 식량 창고에서 종종 쥐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겨울을 대비해, 말리고 있는 건초 창고에서도 쥐들이 갉아 먹은 흔적이 발견되었고요.”
“그래요?”
“네. 워낙 미비한 일이라 성주님께 보고가 올라가지 않은 모양인데, 이렇게 방치하다가 겨울이 오고 먹을 것을 구하기가 더 어려워지면 기껏 구한 식량과 건초들을 쥐들로 인해 다 상하게 되는 수가 있습니다.”
“이런 그러면 안 되죠!”
난 김성준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그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고양이를 키울 명분이 생긴 듯했다.
자고로 쥐들은 본능적으로 고양잇과 동물들에게 근원적인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굳이 직접 쥐들을 잡지 않아도 고양이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쥐들이 활동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듯했다.
“근데 이놈들 고양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삵이나 표범, 스라소니 같은 맹수일 수도 있어요.”
“그건 몇 달 키워보면 판가름 나지 않겠습니까? 덩치가 너무 커져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것 같으면 그때 가서 내쫓아도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제가 보기엔 성주님께서도 이놈들에게 마음을 뺏긴 것 같은데 아닌가요?”
“네. 맞아요. 저도 이놈들을 키우고 싶긴 합니다.”
“그럼 허락해 주세요. 사고가 생기지 않게 제가 잘 관리하겠습니다.”
“네. 알겠어요. 성준 씨가 그렇게까지 얘기하는데 제가 마냥 반대할 수는 없겠네요.”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로.”
“네?”
“이놈 이름은 네로로 했으면 좋겠네요.”
개냥이.
세 마리다 애교가 많긴 했지만, 난 그중에서도 유독 부비부비를 좋아하는 고양이에게 네로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 * *
“이것 보세요. 이놈들 단순한 고양이가 아니라니까요. 빨리 내쫓아야 해요.”
“성주님께 허락받았다니까. 이놈들 내쫓고 싶으면 성주님 재가부터 받아 와.”
이른 아침부터 큰 소리가 나서 와보니 식당 앞에서 김성준과 수정이가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식당과 창고가 있는 건물들이 바닷가에서처럼 하얀색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그게 헌터들 때문에 아이들이 겁을 먹은 것 같습니다.”
김성준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안개 속을 쳐다봤다.
“며칠 키우면서 지켜봤는데, 위협을 느끼면 몸을 숨기기 위해 안개를 펼치는 듯합니다. 헌데 거기까지입니다. 안개만 펼칠 뿐 사람을 해할만한 공격력도 없고 성정 역시 온순한 아이들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컨트롤이 되지 않는다면 계속 이곳에서 머무르게 할 수는 없을 것 같네요. 게다가 안개 범위도 너무 커졌습니다.”
“컨트롤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안개는 네로가 친구들을 더 데리고 와서…….”
“컨트롤 할 수 있다고요?”
“네.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헌터들이 갑자기 찾아와 겁을 먹어서 저러고 있지만, 평소 땐 제 말을 아주 잘 들었습니다. 성주님도 아시잖아요. 자고로 사람이고 동물이고 자기 밥 챙겨 주는 사람은 알아본다는 거.”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안개 속을 쳐다봤다.
“몇 마리나 더 데리고 왔죠?”
“일곱 마리가 늘어 열 마리가 됐습니다. 제발 조금만 더 시간을 주세요. 그럼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김성준이 사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며칠 만에 고양이들과 정이 많이 든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냐앙.”
“네로?”
안개 속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걸어 나왔고 내게 걸어와 발에 얼굴을 비볐다.
내 냄새가 나고 목소리가 들리니 모습을 드러낸 듯했다.
“네로야.”
“냐앙.”
“이제 괜찮으니까 이 안개 좀 치워줘. 그렇게 안 해 주면 형아도 너를 지켜 줄 수가 없어.”
난 네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대화를 시도했다.
네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전부였다.
나 역시 그새 네로에게 정이 들었고 김성준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컨트롤이 되지 않으면 계속 이곳에 머무르게 할 수는 없었다.
“오빠랑 성준이 오빠가 그렇게 좋아하는데 저도 이러는 게 마음이 좋지 않아요. 근데 안전을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걸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알았어. 한 번만 더 부탁해 보고 그래도 안개가 걷히지 않는다면 내보낼게.”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네로에게 말을 걸었다.
“네로야, 형이랑 함께하고 싶으면 안개를 걷어야 해. 그래야 형아가 계속 너한테 먹을 것도 주고 같이 놀아 줄 수가 있어.”
“냐아앙.”
내가 다시 한번 머리를 쓰다듬자 네로가 뒤로 벌러덩 누우며 배를 보여줬다.
고양이가 주인을 신뢰하거나 기분이 좋을 때 하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냐아앙.”
“냐아앙.”
“안개가 걷히고 있어!”
“거봐. 내 말이 맞잖아. 이놈들 사람들 말을 알아듣는다니까!”
네로의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고양이들의 울음소리가 퍼져 나왔고 뿌옇게 가려졌던 식당과 창고 건물들이 다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수정아…….”
“수정아…….”
김성준과 난 사정하는 표정을 지으며 수정이를 쳐다봤고.
“하아…… 알았어요. 일단 오늘은 그냥 넘어가는 걸로 하죠. 근데 계속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그녀는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쪽.
“뭐예요. 갑자기. 사람들 다 보는데.”
“고마워서. 헤헤.”
난 감사의 선물로 수정이에게 뽀뽀를 했다.
내가 고집을 부리면 얼마든지 키울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이렇게 그녀의 허락을 받고 키우는 게 마음이 한결 더 편안했다.
그리고 한편으론 미안하기도 했다.
나도 이런 괜한 일로 에너지를 낭비할 때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기에.
근데 어쩌겠는가.
저리 귀여운 놈이 볼 때마다 저리 계속 안기는걸.
-너무 눈치 볼 필요는 없어. 은혜를 아는 놈들이니 분명 내게 도움이 될 거야.
‘응, 뭐라고?’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앞을 바라봤다.
그곳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있었다. 그녀는 마치 고양이들의 정체를 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염려하는 것처럼 몬스터나 맹수는 아니야. 나도 처음엔 너무 어려서 긴가민가했는데 지금 보니 확실한 것 같네. 이놈들 묘족의 아이들이야.
‘묘족?’
-너희 인간이랑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인간이랑 비슷한 존재라고?’
난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네로를 쳐다봤다.
아무리 둘러봐도 내겐 고양이로 보이는데 인간이랑 비슷한 존재라는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아직 어려서 그래. 성체가 되면 너희처럼 사고도 하고 언어를 주고받으며 공동체 생활을 하는 종족이야. 모습 역시 지금보다는 훨씬 진화된 외형으로 변신할 수도 있고.
‘변신한다고? 그럼 몬스터 아니야?’
-이놈들은 너희가 말하는 코어도 없을뿐더러. 그 뿌리가 마계가 아니야.
신계, 정령계, 마계, 중간계…….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이 내 머리를 감싸 왔다.
내가 어리벙벙한 표정을 짓자 운디네가 자신의 지식을 공유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