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검은 고양이 네로 (1)
헬퍼들이 배를 만드는 동안 난 그 옆에 자리를 잡고 낚시를 하는데 몰두했다.
땅굴을 파고 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당장은 겨울에 먹을 식량을 비축하는 것도 중요했기에.
배불리 먹어야 일도 할 수 있고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
“부성아, 이것도 내장 제거해서 꿰어 줘.”
“네, 형.”
난 백여 개가 넘는 낚싯대를 바다에 던져 놓고 운디네의 도움을 받아 이십여 개를 직접 컨트롤 했다.
처음엔 하나의 낚싯대를 컨트롤 하는 게 전부였지만 어느새 지금은 스무 배가 넘는 낚싯대를 컨트롤 할 만큼 정령력과 집중력이 향상되어 있었다.
“다들 힘들게 일하는데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미안하긴 하지만 오빠랑 함께 이렇게 낚시를 하고 있으니 너무 행복해요.”
낚싯대를 쳐다보며 입질을 기다리던 수정이가 지루했는지 내 옆에 앉아 팔짱을 끼었다.
총사령관이었지만 지윤미 마스터의 복귀로 지금은 나와 함께 낚시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부 마스터.
총사령관 자리에서 내려왔다 하나 발키리 길드의 이인자로서 조금 더 활동적인 업무를 해야 할 사람이었지만 지윤미 마스터가 배려해 주었다.
본인이 침상에 누워 있는 동안 그녀 몫까지 고생했으니 잠시라도 나와 함께 할 수 있게 휴가 아닌 휴가를 주었다.
게다가,
‘우리 부성이 좋겠네.’
낚시 경험이 있는 나현지와 윤다영도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하게 되었다.
낚시 작업을 도울 수도 있고 혹여나 내게 위험이 생기게 되면 인근 거리에서 가드 역할도 병행할 수 있기에.
“부성이 오빠, 저도 잡았어요.”
“오빠! 저도요! 제 것부터 받아 주세요.”
“알았어. 잠깐만.”
“오빠, 제 것부터 빼 달라니까요.”
“기다려. 다영이가 먼저 잡았잖아. 먼저 잡은 사람 것부터 챙겨야지.”
“치!”
나현지가 쀼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을 노려봤다.
어느새 그녀는 물고기를 잡는 손맛에 중독이 되어 있었고 낚싯바늘에 꿰인 물고기를 빼내는 시간조차 아까운 듯했는데 이부성이 순서대로 물고기를 수거했기 때문이었다.
‘쯧쯧.’
난 이부성을 보며 몰래 혀를 찼다.
저럴 땐 그냥 모르는 척 나현지 것부터 챙겨 주면 좋으련만 그는 너무 융통성이 없었다.
그의 저런 모습이 좋아서 마음을 주긴 했지만 나현지와 더 가까워지지 못한 것을 보고 있자니 안타까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처음엔 그저 협력 차원에서 같이 들어오긴 했지만, 지금은 발키리 길드와 더 이상 남이 아니기에 나현지와 오빠 동생을 할 만큼 가까워졌는데 그 이상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는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건져 올린 물고기의 내장을 제거하고 줄에 매다는 것에만 열중했다.
그런데 그때,
“냐아옹.”
갯바위 끝에서 고양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선 냄새를 맡고 찾아온 모양이다.
지구에서도 항구에 가면 늘 상 있는 모습이었다.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니 손바닥만 한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보였다.
눈이 또랑또랑한 게 하나같이 귀엽게 생겼다.
허나,
“이것들이 어딜!”
사람 보는 눈이 다 똑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고양이를 보자마자 이부성은 옆에 있던 작대기를 들어 위협을 했다.
그대로 두면 고양이를 쫓아가 휘두를 기세였다.
“부성아, 그러지 마.”
“네?”
“불쌍하잖아. 배고파서 찾아온 것 같은데.”
난 손에 들린 작대기를 뺏으며 이부성을 제지했다.
한 뼘도 안 되는 놈들이 위협을 받으니 등을 곧추세우는 걸 보고 있자니 너무 가여워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난,
‘우리 네로는 잘 지내려나?’
집사 출신이었다.
매일 텅 빈 집안에 혼자 들어가는 게 쓸쓸해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었고 그때 네로는 나의 외로움을 달래 주던 유일한 친구였었다.
헌데 난 네로와 계속 함께하지 못했다.
잘 울지도 않는데 집주인과 옆집에서 시끄럽고 냄새난다고 얼마나 항의하던지 계속 키우고 싶었지만 끝내 고양이를 좋아하는 지인네 집에 보낼 수밖에 없었다.
“먹고 싶으면 먹어도 돼.”
난 고양이들이 먹을 수 있게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내장을 한곳에 모아 주었다.
어차피 우리는 먹지 않고 버리는 것이었기에 그럴 바엔 차라리 고양이에게 나누어 줘도 될 듯했다.
“부성이 때문에 그런가?”
“냐아옹.”
딱 봐도 생선이 탐이 나서 온 모양인데 고양이들은 선뜻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모아 놓은 내장을 보면서 등을 곧추세우며 경계 자세를 취했다.
‘뭐지?’
그때부터였다.
갑자기 발밑에서부터 안개가 서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른 새벽녘 바다에 해무가 끼는 것처럼.
“나현지, 윤다영. 성주님이랑 부성 씨 엄호해.”
“네. 선배.”
“네. 선배.”
착착! 착착!
휘익! 휘익!
나현지와 윤다영이 등에 메고 있던 활을 착용하며 내게 달려왔다.
“와우!”
절로 감탄사가 나올 만큼 빠른 움직임이었다.
‘이 정도였나?’
사실 난 그녀들이 움직이는 것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만약 애초에 나현지가 어디에 서 있는지 몰랐다면 처음부터 내 옆에 서 있었다고 여길 만큼 순식간에 내 옆으로 다가왔다.
“선배, 안개가 위로 올라오고 있어요. 이동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일단 대기해.”
단순히 안개가 서리는 것뿐인데도 수정의 목덜미에 땀이 서릴 정도로 긴장하는 기색이 여력 했다.
‘앞이 안 보여.’
발밑에서 시작한 안개가 어느새 우리를 뒤덮었고 한순간에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돼서 그런 듯했다.
“오빠, 괜찮으세요?”
“어, 괜찮아. 근데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야. 그냥 안개일 뿐인데?”
“단순한 안개가 아니에요. 바로 옆에 있는데도 아이들의 위치가 인지가 안 돼요.”
수정이의 목소리에 두려움마저 서리기 시작했다.
단순한 안개인지 알았는데 이능을 각성한 헌터의 시야와 감각마저 차단하는 모양이다.
게다가 분명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데도 마치 멀리 있는 사람처럼 착각이 들 정도로 거리와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
툭툭.
‘무언가 물고기를 뜯어 먹고 있어!’
잡고 있던 낚싯줄에서 미세하게 떨림이 느껴졌다.
물속에 던진 미끼를 물고기가 입질하는 것처럼.
해풍에 말리기 위해 엮어 놓은 물고기를 누군가 건드리고 있었다.
‘숭어 입질하고 비슷하긴 한데.’
성질이 고약하고 입이 큰 삼치나 우럭 같은 물고기들은 미끼를 보면 한입에 덥석 무는 경우가 많았지만, 의심이 많은 숭어는 미끼가 있어도 야금야금 뜯어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일반 낚시로는 잡기가 힘들었고 초보자들은 물고기가 미끼를 건드리는 것인지 아니면 물이 흘러서 그러는 것인지 구분하지 못해 입질이 오는 것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손맛이 딱 그랬다.
아주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성격을 갖고 있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존재.
‘설마 너희들인 거냐?’
도둑고양이.
낚싯줄을 따라 조심스레 꿰놓은 물고기에 손을 갖다 대니 무언가 내 손을 핥는 느낌이 들었다.
할짝할짝.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
익숙한 느낌이었다.
검은 고양이 네로.
그때 그놈도 이렇게 내 손을 핥곤 했었기에.
‘음흉한 놈들. 와서 먹으라고 했다고 이런 식으로 다가온 거야?’
난 혀의 느낌을 통해 위치를 가늠해 고양이의 뒷덜미를 잡았다.
이대로 두면 고양이들이 생선을 다 먹어 버릴 것만 같았기에.
그런데 그때,
“앙”
“아야.”
손에서 따끔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뒷덜미를 잡는 순간에 내 손을 물어 버린 것이었다.
“오빠, 괜찮으세요? 무슨 일이에요?”
“아, 아무 일도 아니야. 다리를 삐끗했나 봐.”
“가만히 서 있는데 왜 다리가?”
“그게 너무 긴장해서 그런 것 같아.”
“아…… 네.”
바로 옆에서 고양이들이 물고기를 훔쳐 먹고 있는데도 수정이는 물론이고 윤다영과 나현지는 전혀 인식 하지 못했고 난 나도 모르게 거짓말을 했다.
“앙! 앙!”
뒷덜미를 잡힌 고양이는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며 내 손을 물고 또 할퀴었지만 그리 아프지 않았다.
장난을 걸거나 놀아 달라고 할 때 혹은 무언가 심술이 났을 때 네로 그 녀석도 이렇게 내 손을 물곤 했었다.
그래서 그런 듯했다.
내 손을 무는 고양이에게서 전혀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리고 왠지 사실을 말하면 이부성이 고양이들을 해칠 소지가 다분해 보였고.
할짝할짝.
할짝할짝.
내 짐작이 맞는지 뒷덜미를 놓아주자 다시 손을 핥는 느낌이 났다.
먹는 데 방해를 하니 짜증이 나, 내 손을 물었던 모양이다.
“냐아옹.”
낚싯줄의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꿰고 있던 물고기가 다 사라졌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서야 조금씩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휴우.”
“휴우.”
수정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긴장으로 가득했던 얼굴도 한결 편안해졌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잉? 언제 온 거지?”
나현지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 발밑을 쳐다봤다.
“나아옹.”
“냐앙.”
몰래 물고기를 훔쳐 먹은 고양이들이 뻔뻔하게 내 신발을 쿠션 삼아 천연덕스럽게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냐앙.”
고양이들이 혀로 입을 핥으며 내 발에 얼굴을 대고 부비부비를 했다.
마치 맛있게 잘 먹었다고 내게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안개가 서리기 시작할 때 다가오더라고. 이놈들도 무서웠나 봐”
“그래요? 성주님에게 집중하느라 느끼지 못한 건가?”
나현지가 눈썹을 찡그리며 고양이들을 노려봤다.
“성주님, 잠시만 옆으로 비켜 주시겠어요?”
“……왜?”
나현지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고양이들을 향해 화살을 조준했다.
내가 옆으로 비키면 쏘기라도 할 기세였다.
“불안해서요. 아무리 고양이라 하지만 등을 잡혔어요. 혹시 모르니 없애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끙…….”
나현지에게서 차가운 한기가 느껴졌고 절로 신음 소리가 나왔다.
“그러지 마.”
난 고양이를 막아서며 애절한 눈빛으로 수정이를 쳐다봤다.
“나현지. 네가 방심해서 뒤를 잡혀 놓고선 왜 엄한 고양이한테 화풀이야.”
“내가 무슨 화풀이를 한다는 거예요? 혹시 모르니까…….”
“누가 봐도 지금 괜히 트집 잡아서 화풀이하고 있거든. 고양이였으니까 망정이지. 몬스터였으면 넌 바로 아웃인 거 알지?”
“끙…… 비밀로 해 줄 거죠?”
“당연하지. 다른 사람들이 알면 괜히 나한테까지 불똥이 튈 테니까.”
수정이와 나현지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휴우.’
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수정이 덕분에 화제가 전환됐고 나현지가 고양이들에게 겨누었던 활을 거두었다.
“성주님, 근데 물고기가 조금 없어진 것 같지 않아요?”
“응? 그럴 리가. 저기 있잖아. 이건 막 꿰기 시작한 줄이었어.”
“그래요? 아닌데. 거기에도 스무 마리 이상은 있었던 것 같은데.”
찌릿.
나현지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흠…….”
허나 그녀의 의심은 확신으로 가지 못했다.
낚시하고 있던 그녀는 물고기가 정확히 몇 마리 잡혔는지 알지 못했기에.
‘이제 그만 가. 여기 있으면 위험해.’
“냐앙.”
“냐아옹.”
고양이들이 슬그머니 갯바위 쪽으로 걸어갔다.
저 녀석들도 느낀 모양이다.
나를 제외한 사람들 모두 자신들에게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