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스카이 캐슬
밥을 먹으면서 눈물을 흘리고
쓰러진 나무를 치우면서 눈물을 흘리고.
가묘에 때를 입히면서 눈물을 흘리고.
숲을 개간하고 무덤을 만드는 내내 사람들의 눈에선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허나,
“이제 다들 어느 정도 떨쳐낸 것 같아요.”
“내가 봐도 그래 보이네.”
이부성과 난 사람들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들 눈물을 흘리고는 있지만, 왠지 표정이 편안해 보였다.
우리를 구하기 위해 희생을 당한 사람들의 무덤을 만들면서 죄책감을 어느 정도 떨쳐 낸 듯했다. 아니 떨쳐 냈다기보다는 가슴과 이곳 묘비에 새겨 뒀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저도 돕고 싶은데 뭘 하면 될까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술만 마시던 지원군들이 다가와 작업에 참여하길 원했다.
“괜찮겠습니까?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은데?”
“술을 마시긴 했지만 돕고 싶습니다. 아니 꼭 도와야겠습니다. 제 친구가 머물 곳인데 다른 사람들 손에만 맡기니 마음이 편하지가 않네요.”
“마음은 이해하지만 힘들 것 같네요. 그 상태로 작업을 했다간 사고의 위험이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취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제가 허락할 수 없습니다. 정 작업에 참여하고 싶으면 가서 시원한 물에 씻고 잠을 좀 잔 후에 술을 깨고 오세요. 그럼 그때 허락하겠습니다.”
난 지원군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당장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굴었던 사람들이 작업에 참여하겠다는 건 기꺼웠지만 이대로 투입하기엔 다들 너무 취해 있었다.
“여러분들이 술을 깨는 동안 작업은 멈추겠습니다. 그러니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경건한 몸과 마음으로 작업에 참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지원군들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난 한 명의 헬퍼에 불과했지만, 기존에 있던 사람들에게 내 얘기를 들었는지 내 지시에 반항하지 않았다.
“대단하시네요. 마냥 술만 마시던 사람들을 어떻게 위로하나 했는데 말 한번 섞지도 않으시고 자발적으로 일어나 참여하게 했네요.”
삼삼오오 흩어져 씻고 잠을 자는 지원군들을 보며 김성준이 감탄 어린 표정을 지었다.
허나,
[……중학교에 다니는 한별이의 아빠.]
[……에스 마트에 근무하는 김숙자 여사의 아들.]
[……아마조네스 최고의 통기타 가수였던 청년.]
저들을 일으킨 건 내가 아니었다.
동료의 죽음에 절망했던 그들을 일으킨 건 아이러니 하게도 죽은 동료와 가족들이었다.
“저들을 일으킨 건 제 위로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이유와 목적을 찾아서 일 거예요.”
“살아가야 할 이유와 목적이요?”
“네.”
난 주위를 둘러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버지 보고 싶네.’
곁에 있는 사람을 잃었을 때 가장 위험한 것은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처보다도 자존감이 떨어졌을 때였다.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사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할머니를 호강시키겠다는 다짐 하나로 살아오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니 내겐 만사가 무의미해졌었다.
허나 그때 난 장례식을 치르는 동안 아버지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32살의 젊은 나이에 혼자가 되신 아버지.
어머니가 떠나서 방황하시느라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좋았던 기억만 떠올랐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지만,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인생의 동반자를 떠나보내고 나와 할머니를 보살폈던 아버지의 고단함이 이해가 되었다.
할머니를 따라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난 그럴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밥 먹어. 밥.’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내 끼니를 걱정했던 할머니의 유언까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아 난 결국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지원군들의 상태도 그때의 나와 비슷할 것이다.
숲을 개간하고 무덤을 만드는 것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을 테고 각자의 이유와 목적을 찾아 스스로 다잡은 듯했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이 왜 다들 당신을 존경하나 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네요.”
“……?”
조성태와 그의 휘하들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공사를 하는 내내 술을 마시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술기운을 다 털어 내고 깨끗하고 정갈한 모습을 하고 있었었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원군의 총지휘관으로서 천 명이 넘는 사상자를 만들고 저는 염치도 없이 이렇게 살았으니까요.”
끄덕끄덕.
난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조성태를 가만히 쳐다봤다.
“게다가 우리의 도움이 절실할 줄 알았던 이곳 사람들이 너무 안정적이고 편안하게 있는 모습을 보고 허탈하기까지 했습니다. 난 무엇을 위해 그 많은 희생자를 내면서까지 이곳에 왔나 또 혼란스럽기까지 했습니다.”
나 역시 이곳에서 사람들을 이끌며 생사를 건 전투를 해봐서 그의 마음이 어떤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삶은 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었다.
“헌데 당신 때문에 살아가야 할 이유와 목적을 찾았습니다. 수많은 동료를 눈앞에서 잃으면서도 구차하게 살아남았으니 남은 인생은 그들을 대신해 그들의 가족을 보살피고 친구들이 잠든 이곳을 보존하는 데 전념하기로.”
이곳에 도착하고 내내 초점이 없던 조성태의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짐작건대 그는 내게 말을 하면서 스스로 다짐을 하는 듯싶었다.
지휘관으로선 어떨지 모르겠지만 인성적으론 꽤 괜찮은 사람인 듯했다.
“저도 도와…….”
“아니요. 제가 돕겠습니다. 그동안 가진 바 무력을 믿고 안하무인으로 거침없이 살아왔습니다. 허나 이번에 느꼈습니다. 전 아직 어리고 정신적으로 미성숙하다는 것을.”
“……?!”
“전 친구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을 혼자 지켜 낼 자신이 없습니다. 제가 앞으로 검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이곳을 지켜 주세요.”
“……?!”
조성태와 휘하들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왼쪽 상의와 어깨에 붙어 있는 아레스 길드의 문장을 떼어 냈다.
그리고 이내,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흑기사 조성태.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조성태와 그의 휘하들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끙…….”
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쳐다봤다.
‘스카이 캐슬?
하늘 대장간, 하늘 식당, 하늘 대 목장에 이어 하늘 공원까지.
비록 성의 없긴 하지만 성벽이 있었고 어느새 사람들이 이곳을 스카이 캐슬이라고 부르고 있는 모양이다. 이것까진 이해가 되었다.
근데 내가 이곳의 주인은 아니었다.
‘술이 덜 깬 건가?’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아무래도 아직 술에 취해 있는 모양이다.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그들이 머물 자리를 만들면서 많이 감정적으로 변해 있는 듯했고. 그의 말처럼 무력은 강할지 몰라도 정신적으로는 여전히 많이 약해져 있는 듯싶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그러니 그만하시고 일어나세요.”
난 주위를 둘러보며 조성태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잡고 일으키려 했다.
짐작건대 지금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을 것이다.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나! 하필 왜 지금 다들 이리로 오는 건데?’
지윤미와 발키리 길드원들.
장지원과 태백산맥 길드원들.
최은빈과 마녀 부대.
그리고 용병들까지.
소집 명령도 내리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짐작건대 조성태와 그의 휘하들의 얼굴이 심각하니 걱정돼서 다가오는 것 같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이곳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발키리 길드와 태백산맥 길드 사람들 모두의 소유였다.
‘주인이라니…….’
듣기엔 따라선 다른 사람들의 기분 상하게 할 수도 있는 너무 위험한 말이었다.
“사람들 오잖아요. 빨리 일어나세요. 계속 이러고 있으면 제가 곤란해질 수도 있어요.”
“저희를 받아 주시는 겁니까?”
“받아 주긴 뭘 받아 줘요. 전 이곳의 주인도 아닐뿐더러 길드에 가입하고 싶으면 장지원 마스터한테 얘기하세요. 전 그냥 일반 헬퍼일 뿐이에요.”
“그래서 이러는 겁니다. 제가 아무리 어리고 철이 안 들었다고 하지만 장지원 마스터는 저희를 이끌만한 그릇이 아닙니다. 근데 당신께서는 계속 헬퍼로 남겠다고 고집을 부린다고 하더군요.”
“고집을 부리는 게 아니라 전 제 주제를 잘 알아요. 전 몬스터랑 싸우는 게 두렵습니다.”
“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검이 되어 드리겠다는 겁니다.”
“하아…….”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점점 다가오고 있는데 조성태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괜히 A급 헌터가 아니었다.
힘으로라도 일으키고 싶었지만, 그는 마치 땅바닥에 뿌리를 내리기라도 한 것처럼 미동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발키리의 제자들이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코앞까지 다가온 사람들이 조성태를 따라 내 앞에 와서 무릎을 꿇었다.
‘몰래 카메라인가?’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당황스럽다는 거 알아요. 근데 이게 우리가 내린 결론이에요. 미스릴 동굴과 암염 동굴. 그리고 하늘 공원까지. 이제는 설사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해도 우리는 이곳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어요. 저희를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을 묻어둔 곳인데 방치할 수 없잖아요.”
“네. 그건 아는데 왜 제가…….”
“힐러 님 밖에 없으니까요. 저희 발키리와 태백산맥은 물론이고 지원군 역시 이곳의 소유권을 주장할 입장은 되지 않으니까요. 허나 힐러 님께서 성주가 되는 거엔 모두 동의했어요.”
“성주요?”
“네. 힐러 님께서 이곳의 성주가 되어 주세요.”
지윤미와 사람들이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성의 우두머리 혹은 조상의 무덤이 있는 지방의 수령.
내가 알고 있는 성주의 의미는 그랬다.
주인이라고 할 땐 뭔가 부담스럽더니 성주라고 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지기는 했다.
게다가,
‘이미 다들 얘기가 된 모양이네.’
분위기를 보아하니 내가 허락을 하지 않으면 계속 저러고 있을 듯했다.
“성주가 되어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하면 되잖아요?”
“네. 맞아요.”
“알았어요. 성주 그거 할 테니 다들 일어나세요. 그냥 조용히 얘기하면 되지. 뭘 이렇게 야단스럽게 굴어요.”
난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구청장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려나?’
시장이라고 하기엔 크기가 작고 대충 인천의 동구 정도 크기는 될 듯싶었다.
지윤미 마스터의 말처럼 그 어떤 길드도 이곳의 소유권을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었고 그렇다고 땅을 나눌 수도 없으니 협회나 재단 개념으로 컨트롤 타워를 만들어 관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지금처럼 각자의 길드를 유지할 수 있고 이익과 권리를 나누어 주면 될 테니까.
“다들 동료들을 떠나보내느라 많이 센티해지셔서 그런 것 같은데 앞으론 이러지 마세요. 한 번만 더 주인이니 뭐니 하면서 부담스럽게 하면 성주고 뭐고 안 할 거니까.”
난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며 어깃장을 놓았다.
‘……스카이 캐슬의 주인을 뵙습니다.’
쥐구멍이 있으면 숨고 싶고, 손발이 녹아들 정도로 낯간지러웠다.
“……죄송해요. 아레스 길드 마스터는 이러면 좋아한다고 해서.”
“거봐요. 제가 이거 하지 말자고 했잖아요.”
사람들이 모두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조성태를 노려봤다.
보아하니 그가 저 멘트를 제안한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