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하늘 공원
“형님, 그러지 말고 막걸리 한 통만 더 주세요. 진짜 제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요. 이대로 있으면 미쳐버릴지도 몰라요.”
“안 돼. 지금도 많이 마셨어. 돌아 가.”
“정말 이러실 겁니까? 마음만 먹으면 힘으로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습니다. 제 성격 아시잖아요. 형님한테까지 무례하게 굴고 싶지 않으니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내주세요.”
“네가 무력을 사용하면 이곳에선 막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힘으로 가져가려면 그렇게 해. 근데 내 손으론 못 내줘.”
“알았어요. 그럼 할 수 없죠. 저도 여기까지 와서 깽판 부리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저는 지금 술이 너무 절실하거든요.”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니 A급 헌터 조성태와 그의 수하들이 식당 앞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대화하면서도 몸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것을 보니 지금도 어지간히 술을 마신 것 같은데 더 달라고 고집을 부리고 있는 듯했다.
저대로 두면 진짜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강제로 술을 강탈할 것처럼 보였다.
“성준 씨.”
“오셨습니까. 형님.”
“술을 내어주세요.”
“형님…….”
“저분들에게도 더 드리고 다른 사람들도 술이 필요하다고 하면 달라는 만큼 계속 내어주세요.”
“……네.”
김성준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조성태가 협박스런 말로 압박을 할 때도 길을 비켜주지 않았지만 내가 지시를 하니 군말 없이 그들에게 술통을 내주었다.
꾸벅.
술통을 건네받은 조성태와 수하들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며 내 옆을 지나갔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그리 곱지는 않았다.
“형님이 지시해서 따르긴 했지만 지금도 다들 취해 있습니다. 계속 술을 내주면 사고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김성준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지원군들 역시 모두 매가리가 없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걸터앉고 멍을 때리며 먼 산을 바라보며 술을 홀짝거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밥은 좀 먹던가요?”
“아니요. 다들 종일 저렇게 멍만 때리고 있습니다. 아레스와 레인보우는 물론이고 용병들 역시 돈에 고용된 거긴 하지만 다들 의리가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듣자 하니 지구에 몬스터 웨이브가 생겨 소집령이 떨어졌는데도 그걸 무시하고 저흴 구하러 온 거라고 하네요.”
“발키리 길드가 그동안 인망을 많이 쌓았던 모양이네요.”
“네. 그래서 다들 더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돈보단 의리로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목숨 바쳐 이곳까지 온 것인데 정작 옆에 있는 동료를 지키지 못한 슬픔이 꽤 큰 것 같습니다.”
김성준의 눈빛에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의 걱정처럼 저 상태에서 계속 술을 내어주면 누군가 한 명은 사고를 쳐도 칠 것 같았다.
“차라리 사고를 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네?”
“저렇게 멍때리고 있는 것보다는 술이라도 먹고 취해서 싸움이라도 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그럼 속에 있는 응어리가 어느 정도는 녹을지도 모르잖아요.”
“형님…….”
“말이 그렇다는 거예요. 지휘부에서 알아서 달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제가 나서야겠네요.”
“형님이 어떻게요? 지원군이랑은 일면식도 없으시잖아요?”
“사람이, 사람을 위로하는데 꼭 친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리고 제가 나선다고 했지. 직접 위로를 한다고는 하지 않았어요.”
“흠…….”
“제가 어떻게 위로를 하는지는 지켜보면 알게 될 거예요.”
난 김성준과 대화를 마치고 지원군이 고립되어 희생을 당한 숲을 쳐다봤다.
* * *
한숨 소리로 가득했던 침울한 밤이 지나고 다시 새로운 해가 뜰 무렵 난 모든 작업을 중지시키고 기존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성문에 소집시켰다.
“후우.”
난 잠시 짧게 심호흡을 한 후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지원군이 고립되어 희생당한 숲을 개간해서 무덤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무덤을 만들자고? 오크들에게 당해서 시체조차 없을 텐데…….”
“네, 저도 알고 있어요. 근데 저희를 구하러 온 사람들이 희생을 당한 장소인데 저렇게 흉물스럽게 놔둘 수는 없잖아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지원군이 희생당한 숲을 쳐다봤다.
피비린내가 나는 붉게 물든 대지.
투석기 공격으로 부러지고 쓰러진 나무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바위들까지.
지원군이 고립됐던 숲은 지금도 여전히 처절했던 전투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저대로 두면 저 풍경이 지원군의 기억을 따라다니며 계속 괴롭힐 거야.’
비록 오크들에 의해 시체조차 남아 있지 않아, 무덤을 만들고 묘비를 만드는 것은 죽은 사람들을 위하기도 하지만 산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상처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희미해지거나 치유되지 않는다. 그저 계속 아프고 또 아파하다 보면 그 상처가 조금 단단해질 뿐 그 어떤 위로의 말로도 치유가 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랬다.
군대를 제대하고 얼마 안 있어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난 자살을 생각할 정도 괴롭고 힘들었었다.
어렸을 때 나중에 어른이 돼서 돈을 벌면 우리 할머니를 호강시켜주겠다는 마음을 품고 자랐는데 정작 어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하자 할머니가 내 곁을 떠나 버린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 무슨 말이 위로되겠는가.
내게 제대로 된 효도를 할 기회를 주지 않은 할머니에 대한 원망.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더 잘하지 못한 후회.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장례식장에 와서 하하 호호 웃으며 떠들던 문상객들에 대한 분노.
원망, 분노, 후회…….
그때의 난 누가 제발 건드려 주기만을 기도했었다.
이 울분을 토해 내지 않으면 당장 미쳐 버릴 것만 같아서.
그런데 그때 내 분노를 잠재우고 마음을 다스리게 해 준 것이 딱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동질감이었다.
할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슬퍼하는 친척들을 보자 어찌 된 일인지 그 분노가 조금씩 사라졌다.
그들은 나와 같이 할머니를 그리워하고 또 추억하고 있었고 같이 눈물마저 흘리고 있었다.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눈물을 흘리다 잠시 눈을 마주친 것뿐이었는데 위로가 되었다.
지금처럼 홀로 떨어져 한숨을 쉬고 눈물을 흘리며 술을 마시는 것보다는 같은 아픔이 있는 사람들끼리 함께 숲을 개간하고 무덤을 만들고 묘비를 세우며 그 슬픔을 공유하는 것이 좋을 듯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도 하지 않는가.
“……숲을 개간하고 1300개나 되는 가묘를 만드는 게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근데 살아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니 우리를 위해서 꼭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만들자!”
“네. 우리 같이 만들어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숭고하게 희생한 동료들이 있었다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내 설명을 들은 사람들이 하나 같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우리를 구하기 위해 희생당한 이들의 이름을 이곳에 새겨 두고두고 기리겠다는데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 * *
사람들이 개간 작업을 하는 동안 난 희생자들의 리스트를 확보해서 유거성을 불렀다.
“묘비를 돌로 만들었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돌로요?”
“나무로 만들까 했는데 비 맞으면 썩을 것 같아서요.”
“그렇겠죠. 그럼 모양은…….”
“네모반듯해야죠. 뒤에 가족 관계도 새겨야 하니까 크기도 어느 정도 있어야 할 거예요.”
“끙…….”
유거성이 앓는 소리를 내며 날 쳐다봤다.
투석기 탄환과 성벽에 이어 이제는 돌로 묘비까지 만들려니 절로 신음 소리가 나오는 듯했다.
“거성 씨라면 분명 잘 만들 수 있을 거예요.”
난 유거성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가 등을 토닥거렸다.
바위를 네모반듯하게 만들어 가공하고 이름까지 새겨 넣는 게 어렵긴 하겠지만 그라면 잘해 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이미 나와 산전수전 다 겪으며 이보다 더 어려운 일도 해낸 이가 아닌가.
“아참, 그리고 가능하다면 유족이 찾아왔을 때 고인을 알아볼 수 있는 문장을 더 새겨 놓아야 하니 그것도 염두 해 주세요.”
“문장이요? 어떤 문장을 말하는 거죠? 묘비에 원래 그런 것까지 새기나요?”
옆에서 잠자코 서 있던 헌터 한 명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정지혜.
내게 지원군의 리스트를 건네준 헌터였다.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을 거예요. 근데 저희는 지금 특수 상황이잖아요. 기껏 유족이 찾아왔는데 본인 이름은 물론이고 가족 이름까지 같은 묘비가 있으면 그런 낭패도 없잖아요.”
“아…….”
정지혜가 감탄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쳐 그런 부분까지는 생각지 못한 모양이다.
“죄송한데 예를 몇 개 들어주시면 안 될까요? 무슨 느낌인지는 알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성해야 할지는 모호해서요.”
“어려울 거 없어요. ‘동인천 카리스마 PC방을 다니며 프로 게이머를 꿈꾸었던 청년.’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요리사를 꿈꾸었던 청년.’ 등등 이런 식으로 간단하지만 고인이 생전에 원했던 꿈같은 것을 알아보면 될 것 같아요.”
“끙…….”
“왜요?”
“그게 그런 걸 확인하려면 같이 온 헌터들한테 직접 물어봐야 하는데…… 지금도 저리 힘들어하는데 그런 것까지 물어보면…….”
“네. 그러라고 작성을 하는 거예요. 힘들고 슬프다고 계속 저렇게 한숨만 쉬고 술을 마시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베이스캠프를 쳐다봤다.
그곳에선 여전히 지원을 왔던 헌터들이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넋을 놓은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저들에게 전해 주세요. 잊으려 하지 말라고. 그럼 본인만 더 힘들어질 테니까. 질문하면서 좋았던 기억이든, 슬펐던 기억이든 계속 떠올리게 하세요.”
“네, 알겠어요.”
정지혜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베이스캠프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꼬르륵.
어느새 밥시간이 됐는지 배에서 알람이 울렸다.
“부성아.”
“네. 형.”
“밥 먹자. 배고프다. 성준 씨한테 얘기해서 이쪽으로 갖다 달라고 해.”
“네? 여기서 식사를 하겠다고요?”
이부성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수천여 마리의 오크와 수백여 명의 헌터들이 목숨을 잃은 곳에서 밥을 먹자고 하니 많이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한국에서의 무덤은 경건한 장소로 인식되어 있으니까.
일 년에 두 번 명절이나 되어야 온 가족이 모이고 산소를 가지만 그곳에 머무는 시간은 차례를 지내고 벌초를 하는 한 시간이 전부였다.
그조차도 나이가 어릴 땐 가기 싫어 이리저리 빠져나갈 궁리를 하기 일쑤였고.
허나 난 이곳을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늘 공원.
천여 명이 넘는 희생자가 생기고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만든 곳이지만 이곳이 눈물과 슬픔만이 아닌 웃음과 기쁨도 공존했으면 했다.
캠핑 장비를 설치해 삼겹살을 구워 먹을 수 있게 하고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공간과 텐트까지 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명절이나 돼야 잠깐 머물렀다 떠나는 곳이 아니라 공원에 놀러 온 것처럼 언제든 고인을 추억하고 싶을 때 놀러 와서 맥주를 마시며 힐링을 할 수 있는 휴식처로 만들고 싶었다.
“내 마음은 이런 데 별로인 것 같아?”
“아니요. 좋은 것 같아요. 완전 외국 스타일이네요. 저도 어디서 본 것 같아요. 외국 사람들은 공동묘지 옆에서 일광욕도 즐기고 맥주도 마시잖아요.”
이부성이 날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내 생각이 그리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