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 목선
“설마 배도 만들어 보신 거예요?”
“그럴 리가.”
“그럼 어떻게? 배 만드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괜히 어설프게 만들어서 나갔다가 침몰이라도 하면…….”
“다 죽는 거지 뭐.”
“끙…….”
이부성이 앓는 소리를 내며 바다를 쳐다봤다.
그의 얼굴엔 희망보다는 두려움이 더 깊게 서려 있었다.
나로 인해 낚시를 시작한 그는 바다의 무서움을 잘 알고 있어서 그런 듯했다.
“부성아, 난 바다로 나가서 침몰하는 것보다 여기서 이렇게 희망도 없이 어영부영 살다가 죽는 게 더 무섭다.”
“형…….”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당장은 다들 지원을 와서 희생당한 사람들과 부상자들로 인해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 나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될 거야.”
난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꿈과 희망이 없는 삶.
내가 오랜 시간 동안 그리 살아 봤기에 잘 알고 있었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삶이 항상 똑같게 된다면 사람은 금방 지치게 되어 있었다.
2년 2개월의 군 생활이 죽을 것처럼 힘들고 고단해도 참고 버틸 수 있는 건 언젠가 제대를 할 수 있는 희망의 힘 덕분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지원군이 오면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을 땐 힘들고 고단해도 성벽을 만들고 농장을 만들며 능동적으로 움직였겠지만, 앞으론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마음이 죽으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게 아닌 식물인간이나 다름이 없었다.
“꼭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어. 게다가 배를 만드는 건 투석기와 성벽을 만드는 것보다 더 고되고 힘이 들 테고. 헌데 지금은 그거라도 해야 해. 그래야 사람들이 절망하지 않고 앞으로의 시간을 견뎌 낼 수 있을 거야.”
“형, 설명을 들으니 저도 뭔가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왠지 기대감이 생기고요.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형이라면 왠지 배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부성이 날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감동이라도 받은 듯한 얼굴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형이 배를 만들자고 하면 다 저처럼 기대할 것 같아요. 형이라면 분명 배를 만들어서 우리를 지구로 데려가 줄 거라고.”
체념 어린 얼굴을 했던 것도 잠시 이부성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바로 시작하실 거죠? 헬퍼들 불러올까요?”
“아니 일단 거성 씨만 불러와.”
“거성이 형만 불러오라고요?”
“아직은 때가 아니야. 지금 건조 작업을 시작하면 지원군 사람들한테 반발심이 생길 수도 있어. 당분간은 거성 씨만 불러서 은밀히 준비 하자.”
난 이부성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오다가 1300명이나 죽고 500명이 침상에 누워있었다.
산 사람은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그들과 함께 아파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현명할 듯했다.
우리는 얼굴조차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지만 살아서 이곳에 도착한 지원군들은 바로 어제까지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전우였을 테니까.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럼 가서 거성이 형만 몰래 불러올게요.”
“그래.”
이부성이 마치 스파이가 된 것처럼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 * *
유거성을 기다리며 난 지난 기억을 돌이켜 보았다.
스물일곱 살이었나.
아직 결혼을 포기하지 않았던 시절 난 1년 동안 원양 어선을 탄 적이 있었다.
배를 타고 먼 바다로 나가는 건 헬퍼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위험하고 고단한 일이었지만 1년만 바짝 고생하면 최하 오천만 원을 모을 수 있다는 말에 용기를 냈었다.
그리고 그때 내가 탄 원양 어선이 베트남에 잠시 들렸었고 베트남 사람들이 아무런 기계 장비 없이 오직 수작업으로만 배를 만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선진국은 철제 어선을 타고 다니지만, 베트남에선 아직도 나무로 만든 목선을 타고 생선을 잡으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베트남에서 듣기론 손질된 나무만 있다면 두 대를 동시에 만들면서 오로지 수작업으로 2개월이면 완성이 된다고 했다.
물론 인부들이 전부 최하 10년 이상의 숙련된 기술자들이긴 했지만 말이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시간이 더 걸릴지 몰라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면 분명 만들 수 있을 거야.’
난 숲에 있는 나무들을 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비록 숙련된 장인도 기술도 없지만, 나무만 있으면 배를 만들 수 있는 건 분명했다.
그런데 그때,
-내가 도와줄까?
‘네가 어떻게? 배를 만들 줄 알아?’
-아니 못 만들어. 근데 네가 보고 들은 것을 떠올리게 해줄 수는 있어.
운디네가 내게 말을 건네 옴과 동시에 파란색 빛이 내 머리를 감싸왔다.
-인간들의 망각이 가끔 부럽긴 하지만 이럴 때 보면 좀 불편한 것 같기는 해. 왜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떠올리지 못하는 거지? 분명 기억 속에 있는 데 말이야.
‘넌 그럼 다 기억한다는 거야?’
-당연하지.
운디네가 재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짐작건대 그녀의 기억력은 나와 격이 다른 모양이었다.
허나 난 그녀가 부럽지 않았다.
조금 불편할지는 몰라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무언가를 잊고 희미해지는 것은 신이 인간에게 준 축복이었기에.
물론 지금은 베트남에 머물렀었던 그때의 기억이 절실하긴 했다.
-네가 찾고 있는 기억 이 부분 맞지?
‘……어.’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11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이제는 내가 정말 베트남에 갔다 왔었나. 의문이 들 정도로 잊혀 있었는데 마치 내가 베트남에 와 있는 것처럼 눈앞에 생생한 영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베트남 붕타우 푸틴 마을.
25m의 길이. 무게 1톤의 나무판자를 들고 있는 이십여 명의 베트남 장인들.
“해용이 형, 거성이 형 데리고 왔어…….”
“종이랑 펜 있으면 줘봐.”
“네?”
“빨리!”
“여기.”
난 유거성에게 필기구를 받아 바로 바닥에 주저앉아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협연재 현측후판, 범니, 외판, 외부 요판, 만곡부중통재, 외판, 늑골. 용골 옆판, 용골…….
높이 5m.
길이 20m.
‘2급 항해사였던가?’
눈앞에 50대 초반의 익숙한 인물이 손에 배 도면을 들고 내게 배에 관해 설명해 주는 게 보였다.
이름이 박신호였나?
참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내가 탄 원양 어선의 항해사였지만 옆에 있으면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말이 많아 기피 대상 1순위였다. 근데 당시 막내였던 난 그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냥감이 됐었나 보다.
‘이렇게 큰 도움이 될 줄이야.’
사는 게 참 재밌었다.
난 박신호한테 배에 관해 설명을 들은 기억이 없었다.
너무 말이 많았고 일일이 새겨듣기엔 머리가 피곤했다.
그래서 그에게 붙잡히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며 고개를 끄덕이며 적당히 리액션을 했었는데 지금은 그의 오지랖과 수다가 내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형님, 설마 지금 배 도면을 그린 건가요?”
“이게 배 도면이라고요? 어라! 진짜 배처럼 생기긴 했네요.”
완성된 도면을 보고 유거성과 이부성이 완전 넋이 나가 날 지그시 쳐다봤다.
“형, 배 만들어 본 적 없다고 했잖아요?”
“만들어 본 적 없어. 근데 내가 11년 전에 배 도면을 본 적이 있더라고.”
“네? 11년 전에 본 도면을 떠올려서 지금 똑같이 그린 거라고요? 그게 말이 되나요?”
“말이 안 될 건 뭐야?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떠올린 건데?”
“그렇게 머리가 좋으면서 왜 헬퍼가 되셨어요? 저 같으면 사법고시라도 봐서…….”
“그러게? 이참에 밖에 나가면 그것도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난 이부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원하는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는 건 운디네의 이능과 마법만큼이나 꽤 큰 도움이 되었다.
“어때요. 거성 씨? 만들 수 있겠어요?”
“흠…… 도면이 복잡해서 어렵긴 한데 대충 흉내는 낼 수 있을 듯하네요.”
“흉내 정도론 안 돼요. 바다에 나갔다가 침몰하면…….”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근데 현재로선 제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거기까지입니다. 일단 만들어서 연안까지만 나가 시범 운영을 하며 미비한 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죠. 부성이한테 들었겠지만 당분간 배를 만드는 건 사람들한테 비밀로 해 주세요. 괜히 섣불리 만들었다가 실패하면 상심이 더 커질 수도 있으니.”
“네,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이래저래 할 일이 산더미라 많은 인원을 차출하기는 힘드니 이십여 명만 데리고 천천히 만들어 보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이번엔 저도 적극적으로 참여를 할게요.”
난 유거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도면까지 생긴 이상 나 혼자라면 몰라도 이래저래 공사 경험이 많은 헬퍼들과 함께 한다면 배도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듯했다.
혹여나 제대로 만들지 못해 침몰해도 멀리 나가지 않으면 옆에 뗏목을 구비하고 되돌아오거나 그것도 쉽지 않으면 수영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을 탑승시켜 빠져나오면 될 듯했다.
“그럼 전 일단 헬퍼들 데리고 나무들부터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배를 만들어야 하니 투석기랑은 다르게 물에 잘 뜨는 게 필요할 테니.”
잠시 고민 어린 표정을 짓던 유거성이 베이스캠프 쪽으로 걸어갔다.
* * *
옐로 아이, 그린 피쉬, 바이올렛 피쉬, 광어, 우럭, 학꽁치…….
오랜만에 각 잡고 낚시하러 온 나는 닥치는 대로 물고기를 잡았다.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선 그나마 물고기가 활동할 때 최대한 잡아서 건조를 시켜 놓아야 할 듯했다.
이제 제법 날씨가 서늘해져서 내장을 제거하고 말려 놓으면 썩지 않고 두고두고 먹을 수 있을 테니까.
“해용이 형님, 1차 진지로 사용했던 능선의 나무가 적당할 것 같은데 사람들이 물어보면 뭐라고 해야 할까요?”
한참 낚시를 하고 있는데 유거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나중에 배를 띄우기 위해선 공사를 바닷가 바로 옆에서 해야 했는데 하필 적당한 나무가 능선 위에 있어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가 어려운 듯했다.
“제가 설명도 없이 지시했다고 하고 대충 얼버무리세요.”
“흠…….”
“왜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서 찝찝한가요?”
“그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한테 얘기하는 건 어떨까 해서요. 나무를 찾다가 본의 아니게 베이스캠프를 둘러봤는데 분위기가 장난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안 좋나요?”
“네. 지원군도 지원군이지만 기존에 있던 사람들도 어찌나 한숨을 내쉬던지 땅이 꺼지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였습니다.”
“일주일, 아니 오 일만 있다가 말하죠. 동료들이 죽었는데 그래도 우린 배를 만들면 살 수 있다고 하며 즐거워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난 유거성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목선.
즉흥적으로 생각해 내긴 했지만, 준비하다 보니 제법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듯했다.
그래서 사실 기분이 좋았다. 기뻤다.
난 살 수 있으니까.
근데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오다 희생을 당한 사람을 생각하니 죄책감이 몰려왔다.
마음속에 기쁨과 죄책감이 공존하는 건 제법 혼란스러웠고 또 기분이 더러웠다.
굳이 다른 사람들한테까지 이 기분을 느끼게 해 줄 필요는 없을 듯했다.
두 번 생각해 봐도 충분히 울고 아파할 시간을 준 다음에 얘기하는 게 좋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