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지원군 도착
“……그런 거 아니야.”
난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적극적으로 변명을 했다.
나현지.
그녀는 내가 가장 아끼고 의지하는 이부성이 짝사랑하는 여자였다.
게다가 수정이의 동료이자 동생이기도 했고.
그녀의 안위와 돈을 선택해야 한다면 난 열 번이면 열 번 다 안전을 선택할 것이다.
“풉! 농담이에요. 뭘 그렇게 정색하세요. 그러니까 더 진짜 같잖아요.”
“그러니까. 해용이 오빠 이럴 때마다 더 장난치고 싶어진다니까.”
사납게 노려봤던 것도 잠시 나현지와 윤다영이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농담한 모양이다.
헌데 솔직히 난 살짝 뜨끔하기는 했다.
찰나이긴 했지만, 고민을 했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때,
“늑대인간 때문에 그러는 거면 컴포지트 아머를 만들면 해결할 수 있어요.”
나현지가 얼굴에 웃음기를 빼고 장지원 마스터를 쳐다봤다.
그는 전투시 탱커 역할을 하기에 발키리 길드 헌터들과 달리 전신을 가리고 있는 무장을 하고 있었다.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현지를 쳐다봤다.
‘몰래몰래’
그녀의 말처럼 굳이 늑대들과 싸울 필요는 없었다.
우리의 목적은 암염과 채소의 채취였으니까.
게다가 거기에 미스릴로 전신 갑옷을 만들면 혹여나 늑대인간과 조우해도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을 듯했다.
미스릴은 가볍기에 전신 갑옷으로 만들어도 움직임에 그리 제약을 받지 않을 테니까.
“헌터가 됐을 때부터 위험은 저희에게 숙명과도 같은 것이 되었어요. 근데 고작 늑대인간이 무서워서 피하기 시작하면 저흰 더 이상 헌터 일을 할 수 없게 될 거예요.”
수정이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내 손을 꼭 붙잡았다.
헌터.
잊고 있었다.
그녀의 직업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계속 고집을 부리는 듯했다.
내 마음 같아선 지원군이 도착하면 황금 들판과 하늘 목장만 지키고 발전시켜 조금이나마 안전한 삶을 살길 원했지만, 그녀는 나와 달리 진취적이고 모험심이 강한 듯했다.
-지금 잔치국수 만든 레시피 기억해 두고 있는 게 좋을 거야. 재료가 달라지면 효능이 바뀌거나 사라질 수도 있어.
‘바뀌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고?’
-어. 재료가 재료인지라 사라지는 건 드물고 마나 홀을 넓혀주는 것 말고도 재료에 따라 꽤 다양한 효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아.
운디네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내게 주의를 시켰다.
자꾸 욕심이 생긴다.
운디네의 말처럼 재료에 따라 효능이 바뀐다면 헌터들은 더 강해질 수 있고, 미스릴만큼이나 가치를 창출시킬 테니까.
“오빠, 허락해 주세요.”
“……그래.”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그때,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게이트 방향 숲에서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리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는 게 보였다.
“제가 아이들 데리고 가서 확인 해 볼게요. 오빠는 혹시 모르니까 헬퍼 분들 지휘해서 투석기 공격 방향을 바꿔 주세요.”
“알았어.”
휘이익.
휘이익.
수정이와 헌터들이 눈앞에서 바람처럼 흩어졌고 나도 헬퍼들을 불러 모으며 부랴부랴 투석기가 있는 곳으로 뛰어갔다.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게이트 방향 숲에서 마치 폭탄이라도 터지는 것처럼 산천초목이 진동했고 그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짐작건대 지원군이 인근까지 도착해 오크들과 전투를 치르고 있는 듯했다.
* * *
“젠장! 많을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까지 많을 줄이야.”
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으며 게이트 방향 숲을 쳐다봤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오크들.
얼핏 봐도 수만 마리가 넘어 보이는 오크들이 우리가 있는 방향으로 진군을 하고 있었다.
“투석기는 아직 인가요?”
“준비가 완료되긴 했는데 지금 저 상태에서 발사하면 지원군도 피해를…….”
“하아…….”
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오크 무리가 있는 중앙을 쳐다봤다.
그곳엔 우리를 구하기 위해 온 지원군들이 오크들에게 둘러싸여 고립되어 있었다.
우리를 구하러 왔다가 되레 위기에 빠져 있었다.
“마스터.”
“발사하세요. 어차피 저대로 두면 전멸이에요.”
지윤미 마스터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보같이. 오크들이 저리 많으면 퇴각을 해야지. 왜 여기까지 온 거야.”
A급 헌터 조성태와 흑기사 부대.
A급 헌터 최은빈과 마녀 부대.
발키리 길드의 후속 부대.
천명의 용병들.
지원군만 도착하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 기대를 했는데 오히려 그들은 오크들에게 갇혀 생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거성 씨, 발사하세요.”
“정말 괜찮습니까?”
“들었잖아요. 어차피 저대로 두면 전멸이에요.”
“네, 알겠습니다.”
유거성과 헬퍼들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투석기를 장전했다.
투석기 공격에 아군의 희생자가 생긴다더라도 길을 뚫어줘야 할 것 같았다.
천여 명.
나름 선전은 하고 있었지만 이미 절반 이상의 병력이 쓰러져 있었고, 남은 인원들도 얼마 버티지 못할 듯했다.
저대로 두었다간 곧 마나가 떨어질 테니까.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슈우웅 쾅!
슈우웅 쾅!
쾅! 쾅! 쾅!
황금 들판과 하늘 목장을 차지하기 위해 이미 여러 번 오크들과 전투를 치른 헬퍼들은 능숙하게 투석기를 다루며 화망에 집중했고 최대한 아군의 희생자가 생기지 않게 길을 열기 시작했다.
“저희가 길을 뚫어 줄 테니 모두 성벽으로 달리세요.”
발키리 헌터들은 오크들과 싸우며 직접 지원군에게 다가가 소리를 지르며 지휘를 도왔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슈우웅 쾅!
슈우웅 쾅!
쾅! 쾅! 쾅!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슈우웅 쾅!
슈우웅 쾅!
쾅! 쾅! 쾅!
“조준점을 뒤로 옮기세요. 오크들이 따라오지 못하게.”
“네, 알겠습니다.”
헬퍼들은 수십 대의 투석기를 이용해 지금까지 확보해 놓은 바위들을 있는 대로 쏟아부었고 마침내 퇴로가 열리며 지원군이 성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벽의 보호를 받으며 투석기로 원거리 공격을 한 우리는 안전하고 효율 있는 전투를 하며 지원군을 구하고 오크들의 진군을 저지했다.
* * *
사망: 1300명
생존자: 700명(중상자 300명, 경상자 200명)
기껏 부상자들을 치료시켜났더니 의료막사가 다시 환자들의 신음 소리로 가득했다.
“어떻게 된 거야. 우리는 안전하니까 진군을 하는데 만전을 다하라고 했잖아. 신호를 이해하지 못한 거야?”
“아니요. 이해했어요.”
“이해했다고? 근데 상황을 왜 이 지경으로 만든 건데?”
“오크들을 척살하고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며 최대한 천천히 진군했는데…….”
지원군의 사령관을 맡은 박민정 부마스터가 말을 하다 말고 말끝을 흐렸다.
지윤미 마스터가 채근하니 반사적으로 대답을 한 듯싶은데 말을 잇는 것이 염치가 없는 모양이었다.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있잖아. 왜 말을 하다 말아?”
“제 실수에요. 오크가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어요. 오크를 만 단위 이상으로 잡아서 주변 정리를 하며 진군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고립되어 있더라고요.”
박민정 부마스터가 대답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자고로 다구리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퇴각하며 오크들의 숫자가 많은 걸 직접 확인하고 인지했음에도 오크들의 규모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듯했다.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마스터, 야단은 나중에 치시고 일단 좀 쉬게 하죠.”
난 조심스레 지윤미 마스터의 팔목을 잡았다.
그녀의 얼굴은 톡 하고 건들면 바로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우리의 퇴각 희망이 사라진 것을 떠나 사망한 헌터들이 안타깝고 미안해서 잔뜩 흥분한 듯했다.
허나 내가 보기엔 지금 가장 화나고 힘든 사람은 박민정 부마스터일 듯했다.
게다가,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야.’
지금은 지나간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빨리 수습하고 대책을 세우는 게 우선일 듯했다.
지원군만 믿고 아등바등 버티고 있었는데 마지막 남은 희망마저 사라져 베이스캠프에 전체에 침울한 기운이 깊게 감돌고 있었다.
* * *
“해용이 형, 의료팀장이 옐로 아이를 좀 잡아다 달라고 하네요.”
“옐로 아이를?”
“동충하초 차로 일단 치료를 시작했나 본데 여기에 오는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하며 계속 오크들과 싸우느라 다들 체력이 바닥까지 떨어져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알았어. 같이 갈 거지?”
“네.”
난 이부성과 함께 낚시채비를 챙겨 바닷가로 걸어갔다.
우리를 구하기 위해 왔다가 그 많은 사람이 희생당해 안타깝고 미안해 잠시나마라도 애도의 시간을 가져야 했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이 없었다.
일단은 살아 있는 사람부터 챙겨야 하지 않겠는가.
“해용이 형.”
“응?”
“전 여기서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
낚싯대를 바다에 던지고 자리에 앉아 이부성이 말을 건네 왔다.
슬쩍 고개를 돌려 보니 어느새 그의 얼굴에 체념이라는 놈이 자리해 있었다.
“난 싫다.”
“네?”
“난 싫다고. 이대로 여기서 갇혀서 살다가 죽기엔 너무 억울할 것 같아. 밖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아버지가 걱정되기도 하고.”
“형…….”
“내가 얘기했잖아. 나한테는 속에 있는 마음 숨기지 말라고. 벌써 잊은 거야?”
“잊은 건 아닌데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차라리 마음가짐이라도 그렇게 먹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아서요.”
“포기하지 마. 넌 너 혼자만의 몸이 아니잖아. 네가 그렇게 포기를 하면 너만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은 누가 보살피라고?”
“네?”
“너도 네가 챙겨야 할 가족들이 밖에 있는 거 아니야? 아픈 사람이 있거나, 나이 어린 동생이 있거나. 당장 네가 돈을 갖다주지 않으면…….”
“형이 그걸 어떻게? 지원이 형 한 테도 그런 말은 한 적이 없는데? 정령이 그런 것도 가르쳐 주나요?”
“그럴 리가.”
“근데 저희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그래서 진짜 제가 어머니 병원비랑 동생들 학비까지 제가 다 책임지고 있거든요.”
이부성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런 걸 꼭 물어봐야 아나. 같이 지내다 보면 대충 감으로 다 아는 거지.”
난 이부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던전까지 들어와 돈을 버는 일을 하고 있는데 당연히 사연이 있지 않겠는가.
그런 건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짐작을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부성아, 난 집에 꼭 갈 거다. 우리 아버지 평생소원이 나 장가가는 거 보고 눈 감으시는 거였는데 우리 수정이 인사시켜야지.”
“형 혹시 무슨 방법이 떠오른 거예요?”
“응.”
난 바다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만해도 바람은 게이트가 있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불었다. 헌데 지금은 계절이 바뀌면서 바람도 반대로 바뀌어 있었다.
“바람이 바뀌었어.”
“네? 바람이 바뀌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말 그대로야. 바람이 부는 방향이 바뀌었어. 그래서 물이 흘러가는 방향도 바뀌었고.”
“흠…….”
이부성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지그시 바다를 쳐다봤다.
내가 지금 하고자 하는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는 모양이다.
“게이트로 가는데 꼭 육지로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형, 설마 배를 만들자는 거예요?”
“어, 맞아.”
“헐…….”
이부성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