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잔치국수
해 질 무렵 수정이와 정찰대가 돌아왔다.
그녀는 잔뜩 상기된 얼굴을 하고선 내게 다가와 보고를 해 왔다.
“오빠, 예상이 맞았어요. 암염 동굴이 있는 곳 인근에서 열 군데의 늑대 서식지를 발견했어요.”
“열 군데나?”
“확인한 것만 그 정도고 짐작건대 절벽 건너편 숲 전체를 늑대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늑대들이?”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수정이를 쳐다봤다.
늑대가 아무리 빠르고 뛰어난 사냥꾼이라 하더라도 동물일 뿐이었다.
불을 사용하고 칼과 활 마법까지 부리는 오크들이 저리 득실거리고 있는데 늑대 따위가 숲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더 확인해 봐야겠지만, 절벽 건너편에 최하 수만 마리 이상의 늑대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산짐승들이 남아나질 않았던 것 같고요.”
“수만 마리라…… 그 정도면 오크 입장에서도 부담스럽긴 하겠네.”
난 수정이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크들이 이곳을 모두 차지하고 있을지 알았는데 그들에게 대항을 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세력이 남아 있던 것이다.
“이미 전쟁하는 것 같더라고요. 여기저기에서 오크들과 늑대들의 전투 흔적이 발견되었어요. 게다가 늑대 무리 쪽에 늑대인간으로 의심되는 존재들이 있는 것 같아요.”
“늑대인간?”
“네. 직접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전투 흔적을 살펴보니 분명 늑대 발자국인데 이족 보행을 하는 놈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수정이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2티어 급 몬스터 늑대인간.
오크들과 달리 늑대인간은 상대하기 꽤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인간의 외형으로 변신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늑대인간에게 물리거나 손톱과 발톱에 긁히게 되면 이성을 잃고 몬스터 화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3년 전 처음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했을 때 상위 몬스터에 의해 다치고 죽임을 당한 고통보다 늑대인간으로 인해 더 힘들고 괴로워하는 사람이 많았다.
가족과 지인이 늑대인간에게 물리면 몬스터화가 되기 전에 잔인한 선택을 해야 했기에.
“어디 긁힌 데 없지?”
난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수정이의 몸을 둘러봤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늑대인간이라는 말에 괜히 수정이의 안위가 걱정되었다.
“늑대인간은 아직 확인도 하지 못했다니까요. 그냥 발자국을 보고 짐작만…….”
“와이어 철거하고 앞으론 넘어가지 마.”
“네?”
수정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와이어를 철거하라고요?”
“어. 철거해. 늑대인간이 있을지도 모르는 곳에 헌터들을 계속 보낼 수는 없어.”
난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암염과 채소.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안위와 바꿀 만큼 절실하지는 않았다.
“오빠, 저희는 괜찮아요. 늑대인간에게 당할 만큼 약하지 않아요. 이래 봬도 뱀파이어 놈들이랑도…….”
“철거해.”
“하아…….”
“대답 안 할 거야?”
“어휴. 알았어요.”
수정이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곳에 와서 난 한 번도 내 주장을 이렇게 강력하게 어필한 적이 없었다.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그녀도 계속 내 뜻을 반박하기엔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게다가,
‘적의 적은 동지라고 했으니까.’
늑대들과 오크들이 싸우고 있다는데 괜히 중간에 껴서 드잡이질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둘이서 치고받고 싸우며 세가 줄어들면 우리로선 그 누가 이겨도 좋을 일일 테니까.
헌데,
‘삐졌나?’
수정이는 내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내가 정색을 하니 대답은 했지만, 입이 댓 발 나와 쀼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대로 암염 동굴을 포기하기가 아쉬운 모양이었다.
“수정아.”
“왜요?”
“왜요는 일본 이불이 왜요고.”
“…….”
“…….”
수정이와 헌터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대답하는 목소리가 까칠해 나름 딴에는 분위기를 전환해보려고 농담을 한 건데 요즘 사람들 취향에는 맞지 않는 모양이었다.
우리 때는 꽤 먹혔던 농담인데 말이다.
심지어,
“오빠, 지금 혹시 웃기려고 한 말이면 그러지 말아요. 하마터면 욕할 뻔했잖아요.”
“욕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 않나?”
“욕까지 할 정도 맞아요. 만약 제 남자친구가 그랬으면 전 창피해서 얼굴도 들지 못했을 거예요.”
나현지는 어이를 넘어서 면박까지 주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계속 있어봤자 좋은 꼴은 못 볼 듯했다.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하니 내가 하는 농담조차 마땅치 않은 듯했다.
자리를 피하는 게 좋을 듯했다.
“부성아,”
“네?”
“밥하러 가자.”
“……네.”
난 이부성과 함께 도망치듯 식당으로 걸어갔다.
* * *
오이, 당근, 콩, 양파, 대파, 쪽파, 마늘, 고추…….
식당으로 가니 김성준과 요리 팀 헬퍼들이 앞에 채소를 두고 고민 어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들 그러고 있어요?”
“그게 채소가 생겨서 좋긴 한데 뭘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돼서요.”
“흠…….”
나도 헬퍼들을 따라 턱에 손을 괴고 고민을 했다.
요리를 안 해 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세상에 식사 메뉴 정하기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는 걸.
밖에서 직장에 다닐 때도 그랬다.
보통에 회사에 나가면 막내들이 점심 메뉴를 정하고 식당을 예약 하는 곳이 많았다.
12~2시.
대부분 회사가 점심시간이 거기서 거기였고 예약하지 않으면 겨우 한 시간밖에 안 되는 점심시간을 진짜 밥 먹는 데만 다 보내는 수가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기껏 식당을 예약해도 꼭 딴죽을 거는 놈들이 있었고.
어제 같은 메뉴를 먹었다며. 혹은 어제 술을 먹어서 오늘은 국물이 먹고 싶었다고 하면서 궁시렁거리기 일쑤였다.
먹고 싶은 게 있었으면, 지가 고르면 되는데 막상 선택권을 줄 땐 알아서 하라고 했으면서 말이다.
이러나저러나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메뉴를 고르는 건 불가능했고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바로 내가 먹고 싶은 걸 고르는 것이었다.
“육수용 멸치 있죠? 우리 잔치국수나 만들어 먹죠.”
“오! 그거 좋네요. 안 그래도 고기랑 밥만 먹기 지겨웠는데 사람들도 오랜만에 면 요리를 해 주면 좋아할 것 같습니다.”
김성준이 빙그레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잔치국수.
찾아서 먹을 정도의 음식 메뉴는 아니었지만, 특별히 싫어하는 사람도 없는 서민 음식 중의 하나였다.
게다가 다른 음식들과 달리 채소도 많이 들어가지 않았고.
“그럼 성준 씨가 면 좀 뽑아주세요. 전 육수 만들게요.”
“네, 알겠습니다.”
메뉴가 정해지자 김성준이 요리 팀 헬퍼들을 데리고 바로 면 만들기 작업에 돌입했다.
잔치국수는 면만 만들면 90% 이상 만든 거나 다름이 없었다.
‘운디네 물 좀 채워줘.’
-응, 알았어.
운디네를 소환하자 그녀가 알아서 커다란 솥 여러 군데에 가득 물을 채워줬고,
‘카사!’
-오케이, 알았어.
카사가 장작불에 화력을 올려 줘서 가스레인지 저리 갈 정도로 물이 금방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무, 육수용 멸치, 대파, 양파, 양파, 고추…….
난 구해 온 채소들을 큼지막하게 썰어 냄비에 넣었다.
채소만 있으면 육수를 만드는 건 너무나 간편했다.
“형님, 기계가 없어서 한 번에 다 먹긴 힘들 것 같고 되는대로 불러서 나누어 줘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래야 할 것 같네요.”
내가 육수 국물을 우려내는 사이 김성준과 헬퍼들이 야생 벼로 만든 쌀가루로 반죽을 해서 면을 만들어왔다.
‘암염을 넣어서 그런가?’
난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면을 육수에 넣었다.
암염을 넣고 반죽을 해서 그런지 면이 살짝 핑크색을 뛰고 있었다.
“해용이 형, 정찰대부터 불러서 먹게 할게요.”
“그래.”
난 이부성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황금 들판에 이어 하늘 목장까지 차지하게 되어 영토가 넓어져 헌터들은 계속 주변을 정찰해야 했고 시간이 맞을 때 먼저 식사하게 해 주는 게 좋았다.
“우와! 잔치국수네요. 밥이랑 고기만 먹기 지겨웠는데 정말 반가운 메뉴네요.”
“그러게. 채소를 구해 오니 잔치국수를 다 먹게 되네. 진짜 면을 먹을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식탁에 앉은 헌터들이 잔치국수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김성준이 얘기했던 것처럼 모두 밥만 먹는 게 지겨웠나 보다.
“아쉽네요. 이 맛있는 걸 계속 먹지 못한다는 게.”
“그러니까. 와이어를 철거하면 암염은 물론이고 채소도 더는 채취하지 못한다는 거잖아.”
헌터들이 마치 날 들으라는 거마냥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데 그때,
“으음?”
“으음?”
잔치국수를 맛본 헌터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서로 시선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마나 홀 크기가 커지고 있어!”
“너도?”
“언니도요?”
“어, 미비하긴 하지만 확실히 커진 것 같아. 설마 이것 때문인가?”
수정이가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잔치국수를 쳐다봤다.
-무슨 능력을 줄지 궁금했는데 마나 홀을 넓혀주는 효능이 생긴 모양이네.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면서 운디네를 쳐다봤다.
그녀는 마치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삼억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연의 정기를 흡수한 암염, 마나를 머금은 채소, 물의 정령의 정수도 모자라 불의 정령의 화력으로 끓인 음식이 그럼 평범할 거라 생각한 거야?
‘아…….’
난 운디네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네가 직접 먹어봐. 그래야 정확한 효능이 어떻게 되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까.
‘어, 알았어.’
난 의자에 앉아 직접 잔치국수를 맛보았다.
-흠…… 이제 그만 먹어도 될 것 같아. 20% 확장에 2시간정도 유지될 것 같아.
‘대박이네.’
난 운디네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잔치국수를 먹으니 진짜 정령력이 늘어나는 게 느껴졌다.
“오빠, 오빠도 지금 느껴지죠?”
“……어.”
“암염이랑 채소 때문에 이런 효능이 생긴 거 맞죠?”
“……어.”
“와이어 다시 설치할까요?”
수정이가 기대하는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마나 홀의 총량을 올려주는 음식.
짐작건대 옐로 아이와 그린 피쉬, 바이올렛 피쉬만큼 정말 큰돈을 벌 수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템이었다.
게다가 정령력을 소비하며 오랜 시간 동안 낚시를 해야 하는 것과 달리 누구나 채취를 할 수마저 있어 대량생산이 가능했다.
허나,
“고민 좀 더 해 보자.”
난 수정이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 수 있어도 그녀의 안위와 바꿀 수는 없었다.
“오빠, 혹시 수정이 언니 걱정돼서 그러는 거면 저랑 다영이가 갔다 올게요. 늑대들이랑 싸우지 않고 몰래, 몰래 조금씩 가져오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요?”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현지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순간,
“와! 이 오빠 보소. 수정이 언니가 간다고 했을 땐 단칼에 거절하더니 내가 간다고 하니까 눈동자 흔들리네.”
“그러게. 진짜 남자친구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나현지와 윤다영이 세상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날 사납게 노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