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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45화 (45/255)

45화. 회복 포션 (2)

“형, 얼른 나와 보세요. 성준이 형이 동충하초를 차를 완성했대요!”

이른 아침.

이부성이 호들갑을 떨며 숙소를 찾아왔다.

김성준에게 동충하초를 건네주고 사흘 정도 지난 뒤였다.

“그래? 알았어. 빨리 가 보자.”

난 자리에서 부랴부랴 일어나 이부성을 따라갔다.

“오셨어요.”

“오셨어요.”

“벌써 시음들 하고 계신 건가요?”

식당에 도착하니 지윤미 마스터와 부상병들이 먼저 도착해 동충하초 차를 마시는 게 보였다.

‘왜 저렇게 먹는 거지? 아직 한 번에 먹기에는 맛이 없는 건가?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표정이 너무 좋은데?’

부상병들의 얼굴이 모두 편안해 보였다. 마치 맛있는 차라도 먹는 것처럼 조금씩 먹으며 입을 축이고 있었다.

“형님, 오셨습니까. 어떻게 형님도 모닝 동충하초 차 한 잔 드셔보시겠습니까? 하하.”

김성준이 크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게도 차를 한잔 건네줬다.

호오.

후르륵.

“으음…….”

궁금한 게 많았지만 난 일단 뜨겁게 김이 나고 있는 동충하초를 입으로 불고 나서 맛부터 보았다.

백 마디 설명을 듣는 것보단 먹어 보면 어찌 저러고 먹는지 알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이내,

“맛있는데?”

난 사람들이 왜 천천히 먹는지 알 수 있었다.

일단 뜨겁기도 하고 무엇보다 맛이 꽤 괜찮았다.

여전히 살짝 쓰기는 하지만 녹차나 결명자차처럼 뭔가 운치가 있었다.

맛있게 쓰다고 할까?

대충 그런 느낌이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옆에서 먹는 것을 지켜보던 김성준이 또 크게 웃음소리를 내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많이 흥분한 상태인 듯했다.

오랫동안 공부를 하다가 시험에 합격한 사람처럼 왠지 모르게 그에게서 성취감 비슷한 게 느껴졌다.

“마법이라도 부린 건가요? 어떻게 며칠 만에 맛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죠?”

“사실 형님이 이걸 먹을 수 있게 만들라고 할 때는 막막했는데 막상 시작하니 제가 할 수 있는 건 별거 없더라고요.”

호오.

후르륵.

빨리 설명해 줬으면 했는데 김성준이 동충하초를 마시며 뜸을 들이며 말을 했다.

보아하니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는 듯했다.

난 그의 장단을 맞춰주기 위해 최대한 궁금한 표정을 지으며 김성준을 지그시 쳐다봤다.

“처음엔 형님 말처럼 말려도 보고 쪄도 보고 다 해 봤는데 여전히 쓴맛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옆에서 다른 헬퍼 한 명이 옆에서 콩나물 꼬다리를 따고 있었거든요.”

“콩나물 꼬다리요?”

“네. 형님도 음식을 하는 사람이니 아시겠지만, 콩나물 꼬다리가 약간 비린 맛이랑 쓴맛이 있잖아요.”

“……그렇죠.”

난 김성준의 말을 경청하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걸 보고 깨달았습니다. 동충하초도 전부 다 먹을 수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머리부터 뿌리까지 열 군데로 쪼개서 따로 말려서 차를 만들어 봤더니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내가 장단을 맞춰주니 김성준은 더 신이 나서 지난 사흘간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정리하자면 이랬다.

1~2는 비린 맛.

3~8은 쓴맛.

9~10은 아주 쓴 맛.

한 뼘밖에 안 되는 크기인데도 부위마다 맛이 달랐던 것이었다.

연이은 실험으로 김성준은 그걸 알아낸 것이었고.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건 동충하초의 머리와 뿌리 근처에 있는 부분을 떼어 내 말려서 만든 차였고.

“효능은요? 효능은 확인했나요? 맛은 좋아도 정작 버린 부분에…….”

“그거라면 제가 대답해 드릴게요.”

김성준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지윤미가 다가왔다.

“굿이에요. 차 한 잔을 마실 때마다 힐러 님에게 치료 마법을 받을 때처럼 상처 부위가 눈에 띄게 호전되고 있어요.”

지윤미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김성준에게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이대로라면 사나흘 안에 회복하고 복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나흘 안에요? 그렇게나 빨리요?”

“네. 뼈와 내장을 다쳐 그동안 마나 순환이 뚝뚝 끊겼는데 동충하초를 마시니 뚝뚝 끊긴 부분이 사라지고 있어요.”

“한잔을 마셨는데 그 정도라고요?”

“동생들은 오늘 처음 마시는 거지만 전 요 며칠 동안 김성준 팀장을 도와 계속 시음하고 있었어요. 버린 부분은 역겹고 쓰기만 했지. 마나 순환을 돕는 양은 미비했어요.”

“아…….”

난 지윤미 마스터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동안 남몰래 시음을 자처하고 있었던 듯했다.

“하루에 세 잔씩. 더 먹으면 회복 시간이 더 빨라질 수 있겠지만 혹시나 해서 일단 과용은 하지 않는 방향으로 하려고요.”

“네. 아무리 몸에 좋아도 과하면 부족한 것만 못할 때도 있으니.”

“네. 맞아요. 그리고 허락해 주시면 부상병들과 함께 하늘 목장으로 거처를 옮겨서 치료를 받았으면 해서요.”

“거처를 옮기시겠다고요?”

“네. 여기다가 보관할 물건이 아닌 듯해요. 족히 몇 달은 더 침상에 누워있어야 할 환자들을 며칠 만에 완쾌시키는 약초에요. 아마 이 사실이 밖으로 알려지면 미스릴 동굴만큼이나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을 듯해요. 제 판단에는 최대한 은밀하고 조용한 곳에 보관하는 게 좋을 듯해서요.”

지윤미 마스터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헌터 세계는 그렇게 신사적인 세상이 아니에요. 누군가 힘 있는 자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빼앗으려 할지도 몰라요.”

“흠…….”

“이제는 살아 내는 것만이 아닌 조금 더 멀리 있는 미래를 그리며 준비를 하셔야 할 거예요.”

“아…….”

난 지윤미를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이었다.

아니 얘기를 듣고 있으면서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허나,

‘우리 것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긴 하니까.’

허무맹랑한 얘기가 아니기도 했다.

산과 바다, 황금 들판, 미스릴 동굴…….

밖에서처럼 땅문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자리 잡고 있기는 했지만, 아직 이곳의 주인이 정해져 있지는 않았기에.

“네, 알겠습니다. 지금 하신 말 가슴에 새겨 놓겠습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난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말을 들어 보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이곳에서 보관하는 건 좋지 않을 듯했다.

여기 있는 사람들이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했기에 믿을 수 있지만 지원군이 도착하고 무사히 탈출하게 된다면 금세 소문이 나게 될 테니까.

“성준 씨, 들었죠. 헬퍼 분들한테 얘기해서 동충하초를 하늘목장으로 옮겨 주세요.”

“지금 바로 해야 하는 건가요? 하늘 목장까지 가려면 또 한참 걸릴 텐데 밥 좀 먹고 해도 될까요?”

“물론이죠.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끼니를 거르면 쓰나요.”

난 김성준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꼬르륵.

안 그래도 나도 배가 고프긴 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도 나도 일단 배부터 채워야 할 듯했다.

* * *

쌀밥, 소고기 구이, 소고기 수육, 백숙, 계란 프라이.

디저트로 우유까지.

아침부터 요리 팀 헬퍼들이 푸짐하게 식사를 준비했다.

“어휴! 또 고기네요.”

“왜 고기 좋아했잖아?”

“고기 좋아했죠. 근데 아무리 좋아해도 매일 이것만 먹으니까 물리네요.”

이부성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식탁을 둘러봤다.

젓가락을 손에 들고 있긴 한데 갈 곳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전 아무래도 못 먹겠네요. 아침은 걸러야겠어요.”

“…….”

이부성은 젓가락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소고기.

밖에서는 먹고 싶어도 돈이 아까워서 못 먹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식욕이 생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상추랑 고추는 둘째치고 쌈장이라도 있었으면…….”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더니 이거라도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데 매일 기름진 음식만 먹는 것도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런데 그때,

“좋은 말로 할 때 숟가락 다시 들지?”

김성준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다가와 이부성을 노려봤다.

“왜 그러세요. 형. 전 그냥 우유 한잔 먹으면…….”

“밥이랑 고기 안 먹으면 내일부턴 우유도 없다.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쑤셔 넣어. 그래야 또 일할 거 아니야.”

“……네.”

이부성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기껏 차려 줬더니 어디 고기를 앞에 두고 반찬 타령이야.”

“……죄송해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요즘 잘해 줬더니 다들 감 잃었지? 좋은 말로 할 때 다들 팍팍 퍼먹어. 남기는 놈 있으면 점심부턴 굶게 될 테니까.”

“……네.”

“……네.”

김성준의 살벌한 기세에 먹는 둥 마는 둥 하던 사람들이 손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님, 고기만 드시기 느끼하죠. 이거랑 같이 드세요.”

고추장과 양념 소금. 게다가 김치까지.

김성준이 내가 앉은 식탁 앞에만 밑반찬을 더 놓아주었다.

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는 원래 약간 츤데레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말로는 구박을 하지만 이제라도 밑반찬을 챙겨 주나 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앉은 식탁에는 밑반찬이 돌아가지 않았다.

“설마 지금 저만 이걸 먹으라는 건 아니죠?”

“일전에 얘기해 드렸지만, 향신료가 거의 다 떨어져 갑니다. 가지고 왔던 채소는 이미 동이 났고요.”

“저도 그건 알지만, 저 혼자 먹기에는…….”

“드세요.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형님은 잘 드셔야죠. 그래야 저희들을 잘 이끌어 줄 테니. 저놈들도 다 이해해 줄 겁니다.”

“끙…….”

난 앓는 소리를 내며 다시 한번 주위를 둘러봤다.

꿀꺽.

다들 말은 안 했지만 군침을 삼키는 게 보였다.

“뭘 추잡하게 보고 있어. 너희들 때문에 해용이 형님이 불편해서 식사를 못 하시잖아.”

“그냥 고개를 돌리다 우연히 눈 마주친 거예요. 해용이 형님. 저희는 괜찮으니까 편안하게 식사하십쇼.”

“맞습니다. 사실 고추장이나 김치나 맵고 짜기만 하지. 저희는 별로 안 좋아합니다. 고기 먹을 땐 원래 다른 거랑 먹는 거 아니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형님들?”

“그치. 네가 오랜만에 옳은 소리 했네. 그리고 난 원래 싱겁게 먹거든.”

우걱우걱.

우걱우걱.

나와 눈을 마주친 헬퍼들이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으며 고기를 입에 집어넣었다.

마치 BJ들이 먹방을 하는 것처럼 맛있고 행복한 표정이었다.

“성준 씨.”

“네. 형님.”

“전 괜찮으니까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세요.”

난 내 앞에 놓인 밑반찬을 김성준의 손에 다시 쥐여 주었다.

난 저들의 연기에 속을 만큼 어리숙하지 않았다.

어려울 때일수록 콩 한 쪽도 나눠 먹어야 하는 법이다.

이걸 혼자 먹으면 잠시 입은 즐겁겠지만 소화가 되지는 않을 듯했다.

그런데 그때,

-고추? 소금?

따스하고 포근한.

노란색 빛이 내 몸을 감싸왔다.

노움이 내 기억을 읽고 있는 듯했다.

-저것들이랑 맛이 똑같을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것들은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

‘고추랑 소금이 어디 있는지 안다고?’

-어,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데 가 볼래?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노움이 하늘 목장이 위치한 산맥을 지그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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