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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44화 (44/255)

44화. 회복 포션 (1)

“내가 너무 소홀했었나? 힘들어도 좀 치료를 도왔어야 했는데…….”

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의료 막사를 둘러봤다.

미스릴 동굴을 차지해 다들 들떠 있는 가운데 이곳만 유독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자책까지 할 필요는 없을 듯싶네요. 형이 치료마법을 해 주면 조금 더 일찍 낫기는 했겠지만 그럼 마나 고갈로 인해 다른 일을 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렇긴 하지.”

난 이부성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게 치료 능력이 있기는 했지만 무한정 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나만이 아니라 이능을 각성한 모든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마나가 고갈되면 일반인과 별반 다를 바가 없을뿐더러 무기력증과 같은 부작용마저 있었다.

그의 말처럼 내가 치료에만 전념했다면 오크들을 막아 내고 또 몰아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몸이 한 개만 더 있었으면 좋겠네.”

진짜 요즘 같아선 손오공의 능력이 부러웠다.

“……드셔보세요. 이거 드시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깨끗이 닦고 손질을 마친 동충하초를 나현지가 직접 지윤미 마스터에게 건네주었다.

“진짜 다 죽어가던 블랙 앵거스가 이걸 먹고 살아났어?”

“네. 제 눈으로 분명히 봤어요.”

“그래?”

동충하초를 건네받은 지윤미 마스터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나현지는 동충하초를 발견하는 과정부터 천천히 설명해 주었고 애벌레의 몸을 숙주 삼아 자란 것을 먹기가 찜찜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결국,

“언니, 언제까지 여기 누워 있을 수는 없잖아요.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뭐라도 해 봐야죠.”

“……그래.”

지윤미는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동충하초를 입 안으로 집어넣었다.

‘효과가 있어야 할 텐데…….’

난 기대 어린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를 지그시 쳐다봤다.

미스릴 동굴을 차지함으로써 지금도 사람들의 얼굴엔 흥분과 기대, 희망이 가득했지만, 그녀가 회복해서 합류한다면 그 기쁨은 두 배가 될 테니까.

발키리 길드의 마스터 지윤미.

그녀는 이곳에서 가장 무력이 강한 사람이었고 게다가 발키리 헌터들의 존경을 듬뿍 받는 리더였다.

보이는 것 말고도 정신적으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줄 것이 분명했다.

지금이야 본의 아니게 사람들이 날 의지하고 있었지만 내가 오기 전 몇 년 동안은 모두 그녀를 따랐을 테니까.

게다가 총사령관 자리를 부담스러워하는 우리 수정이도 여유가 생길 테고. 고사리손이라도 빌리고 싶을 정도로 일손이 모자란 상태에서 부상병들이 회복해서 복귀하면 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는 것과 같았다.

그런데,

“으음…….”

동충하초를 씹고 있는 지윤미의 입이 오물거릴 때마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인체에 유해한 성분은 없어. 자연 치유력을 촉진해주는 식물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동충하초 먹고 죽었다는 동물은 본 적 없으니까.

연로한 노인.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형상화한 노움이 내 등을 토닥거렸다.

블랙 앵거스가 살아난 것처럼 인간에게도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한 듯했다.

허나,

“으음…….”

글썽글썽.

얼굴이 빨개진 것도 모자라 지윤미 마스터의 눈에 눈물까지 맺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꿀꺽.

“하아…… 하아…….”

동충하초를 삼킨 그녀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언니, 괜찮으세요?”

“아니 안 괜찮아. 이거 너무 써. 게다가 삼켰는데도 계속 속이 미식거려. 약초만 아니면 당장 토를 해서 게워내고 싶을 만큼.”

지윤미가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동충하초를 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맛있으라고 준 건 아니지만 맛이 없어도 너무 없나 보다.

‘얼마나 쓰기에 저러는 거지?’

난 조심스레 동충하초 하나를 들어 끝부분만 잘라서 조금 맛을 보았다.

“미친! 퉤! 퉤퉤!”

두 번 정도 씹었을까.

난 바로 동충하초를 뱉어 냈다.

장담컨대 이건 사람이 먹을 음식이 되지 못했다.

단순히 쓴 자체가 아니라 혀가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바로 뱉어 낸다고 뱉어 냈는데도 침에 섞여 몇 방울 넘어갔는지 위장 속 깊은 곳에서부터 역겨움이 몰려왔다.

“오바이트 맛이네요.”

“맞아요. 저도 제가 그 맛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오바이트랑 가장 맛이 비슷한 것 같아요.”

지윤미가 서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정말 대단한 여자였다.

‘아무리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고 해도 어떻게 이걸 씹고 삼킬 수가 있는 거지?’

역시 상위길드의 마스터는 아무나 대는 게 아닌가 보다.

그녀가 직접 싸우는 걸 본 적이 없어 무력이 얼마나 센지는 모르겠지만 인내심만 봐도 그 강함이 예측되었다.

“맛은 그렇다 치고 몸은 좀 나아지는 것 같나요?”

“삼키고 아직 흡수되지 않아 단언할 수 없지만…… 그런 것 같기는 해요. 평소보다 마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지윤미가 날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짐작건대 자신의 몸을 관조하고 있는 듯했다.

몸이 재산인 헌터들은 스포츠 선수만큼이나 자신의 몸에 예민했고 마나의 도움을 받아 그 이상으로 잘 알고 있는 듯했다.

“……하나 더 먹어 볼까요?”

지윤미가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동충하초를 또 손에 들었다.

약초를 먹는데 어디 전쟁이라도 나가는 듯한 진중한 얼굴이었다.

“드실 수 있겠어요?”

“먹어야죠. 다들 고생하고 있는데 언제까지 이렇게 누워 있을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먼저 먹어야 동생들에게도 먹으라고 할 수 있을 테니.”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지윤미를 쳐다봤다.

말은 야무지게 하는데 그녀의 눈동자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동충하초를 먹는 게 꽤 곤욕스러운 듯싶은데 누워만 있기가 염치가 없어서 억지로 먹으려 하는 것 같았다.

지금 모습만 보면 설사 역류해도 뱉지 않고 다시 삼킬 듯한 기세였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연구 좀 해서 조금이나마 쉽게 드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게요.”

난 지윤미의 팔목을 잡고선 고래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에요. 한 번 먹어 봤으니…….”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저도 마스터님이랑 헌터들이 빨리 복귀했으면 하지만 이렇게까지 해서 재촉을 하고 싶지는 않네요.”

“진짜 괜찮은데…….”

지윤미가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동충하초를 내려놨다.

“부성아, 동충하초 들고 따라와. 이건 사람이 먹을 음식이 아니야. 정제 좀 해서 먹어야 할 것 같아.”

“정제한다고요?”

“어, 끊여서 차로 먹든가. 아니면 찌우고 말려서 먹든가. 뭔가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

“흠…… 그래도 효과가 있을까요?”

이부성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동충하초의 효능이 떨어질까 염려가 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찌릿! 찌릿!

무언가 등골을 싸늘하게 하는 한기 같은 게 느껴졌다.

그 느낌을 찾아 시선을 따라가니 지윤미 마스터가 이부성을 노려보고 있었다.

“네가 직접 먹어 봐. 그래도 그런 말이 나오면 그냥 이대로 먹게 하고.”

“흠…… 네, 알았어요.”

오드득,

오물오물.

눈앞에서 지윤미와 내가 괴로워하는 것을 직접 봤으면서도 이부성은 아무런 망설임 없이 동충하초를 입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까나리 액젓.

소금물.

.

.

.

예전에 1박3일이라는 프로그램이 한창 유행할 때 술자리에서 복불복 게임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까나리 액젓을 먹고 호들갑을 떠는 출연자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허나 막상 자신의 입에 까나리 액젓이 들어가면 바로 태도를 달리했다.

맛을 보고 나서야 그 괴로움을 알게 되는 것이었다.

‘숨 안 셔도 소용없다.’

하나, 둘…….

“우웩!”

셋을 세기도 전에 이부성은 헛구역질을 하며 동충하초를 뱉어냈다.

“정제해야겠지?”

“네. 죄송합니다. 마스터. 그리고 존경합니다.”

이부성은 미안함과 존경이 담긴 눈빛을 하며 지윤미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도 나처럼 그녀의 인내심을 새삼 깨달은 모양이다.

“아니에요. 제가 죄송해요. 기껏 이렇게 귀한 걸 구해 오셨는데 솔직히 저도 더는 먹을 자신이 없네요. 동생들에게 권하고 싶지도 않고요. 아직 제가 고생을 덜 했나 봐요. 고작 약을 먹으면서 눈물까지 흘리고.”

“그건 의지로 되는 게 아니었을 겁니다. 그 누구라도 이걸 씹고 삼켰으면 눈물을 흘렸을 거예요.”

난 지윤미 마스터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힘들어서 운 게 아니었을 것이다. 정말 매운 것을 먹으면 절로 눈물이 나오지 않는가.

아마 너무 쓰고 역겨워서 그와 비슷한 작용이 생겨 그렇게 된 것일 듯했다.

사람이 무슨 블랙 앵거스처럼 초식 동물도 아니고 신체 구조가 다른데 풀떼기를 어찌 생으로 먹을 수 있겠는가.

산삼같이 귀한 약초들은 생으로 섭취를 하기도 하지만 이건 애초에 이런 식으로 먹을 음식이 아니었다.

* * *

“오빠, 고마워요. 저 윤미 언니 그런 표정 짓는 거 처음 봤어요. 가슴에 화살을 맞고도 저희들 걱정할까 봐 웃던 분인데 정말 동충하초를 먹는 게 힘들었나 봐요. 만약 오빠가 말리지 않았으면 억지로라도 다 먹었을 거예요.”

밖으로 나오자 나현지가 나한테 감사 인사를 해 왔다.

그녀의 얼굴에 살짝 눈물 자국이 있었다.

동충하초를 먹고 괴로워하는 지윤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슬펐던 듯했다.

“고맙긴. 해 볼 방법이 있는데 굳이 강요하지 않았을 뿐이야. 만약 정제해서 효과가 떨어지거나 맛이 여전하면 그때는 억지로라도 먹어야 할 거야.”

난 나현지의 등을 토닥거리고 식당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쑥.

이것도 어려서 할머니가 떡으로 만들어줘서 먹을 수 있는 거구나 했지.

동충하초와 별반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쓰고 시큼하고 맛이 없었다.

분명 동충하초도 쑥처럼 조금이나마 편하게 먹을 방법이 있을 것이다.

‘신기하단 말이야. 옛날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먹기 시작했을까?’

난 새삼 옛날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지금이야 의학과 과학이 발달 되어 쑥이 성인병을 예방하고 노화를 방지할 정도로 몸에 좋다는 게 증명되었지만, 옛날 사람들은 이걸 어떻게 알고 먹게 되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식당에 도착하니 열심히 막걸리를 만들고 있던 김성준이 달려와 내게 인사를 해 왔다.

“고생이 많네요. 부탁 좀 할 게 있어서 왔어요.”

“네. 말씀하세요.”

“약초를 구했는데 그냥 먹기에는 너무 써요. 그래서 차로도 좀 끓여보고, 쪄 보고, 구워도 보고해서 맛을 좀 중화시켜야 할 것 같아요.”

난 수확한 동충하초를 김성준과 헬퍼들에게 건네주었다.

“탕약을 끓이라는 말인가요?”

“네. 탕약이 됐든. 뭐가 됐든. 일단 먹을 수 있게 좀 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김성준이 날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에게도 이제 무언가를 지시할 때 가타부타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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