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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41화 (41/255)

41화. 야생 닭

하루 동안 꼬박 내린 비로 인해 계곡물이 제법 차오르고 유속도 빨라진 것 같아 투석기 제작을 시작했고 그와 동시에 오크들이 몰려왔다.

“꾸웩! 꾸웩!”

“꾸르륵! 꾹꾹!”

“자살 특공대인가?”

이부성이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앞을 쳐다봤다.

“그러게? 물에 빠지면 죽는다는 걸 자각하지 못하는 건가?”

“오크들 지능이 이렇게 낮았었나? 지금까지 우리 저런 놈들이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었던 거야?”

다른 사람들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사람들은 모두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으며 계곡물에 다이빙하는 오크들을 쳐다봤다.

계곡 건너편에 수천 마리의 오크들이 등장해서 두려워했던 것도 잠시 어느새 얼굴에 여유로움이 가득했다.

내 예상대로 범람한 계곡물은 오크들의 도강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강원도의 내린천.

레저를 즐기기 위해 나름 개발을 하고 수백 년 동안 인간의 손길이 닿은 계곡도 비가 오면 배를 타지 못할 만큼 위험하다.

헌데 여긴 오죽하겠는가.

우리에게 건너오기 위해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쉬지 않고 계곡물에 몸을 던졌지만, 그중에 성공한 오크는 채 열 마리도 되지 않았다.

휘이익!

휘이익!

“꾸륵.”

“꾹.”

그마저도 땅에 발이 닿는 동시에 발키리 헌터들의 화살에 맞아 목숨을 잃었고.

그냥 평지에서 일 대 일로 붙어도 헌터들이 이길 텐데 계곡을 건너느라 지친 오크들은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오빠, 저기 오크 무리 뒤에 미스릴 갑옷을 입을 것들이 보여요. 저놈들이 지휘관인 것 같아요.”

“어, 나도 지금 보고 있어.”

“저격할까요? 저 정도 거리면 화살 사정거리에 닿을 듯한데…….”

“아니야. 그러지 마.”

지휘관 오크들을 발견하고 눈을 빛내는 수정이를 보며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꾸웨웩!”

“꾸웨웩!”

후방에 서서 목청이 터져라, 소리를 지르는 지휘관 오크들.

내가 보기엔 지금 이 상황을 저들이 계속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왜요? 지휘관 오크를 잡으면…….”

“자세히 봐 봐. 저놈들 옆에.”

“흠…….”

수정이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오크 무리들을 쳐다봤다.

황금 들판을 차지할 때 이미 경험을 했지만 지휘관 오크만 잡으면 오크들은 오합지졸이었다.

그런데도 내가 지휘관 오크를 잡지 말라고 하니 의아한 모양이다.

그런데 그때,

“어라? 저거 우리가 놔두고 온 막걸리 통이네요?”

“맞아. 저놈들 지금 막걸리를 마시면서 오크들을 지휘하고 있는 것 같아.”

수정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지휘관 오크들이 자리 잡은 곳 옆에 수십 개의 막걸리 통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짐작건대 술에 취한 지휘관 오크들이 동료들이 죽어 나가는 것도 모른 채 계속 돌격하라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듯했다.

누군가 그랬다.

멍청한 아군의 지휘관 한 명은 만 명의 적보다 무섭다고.

내 짐작이 맞았다면 지금은 지휘관 오크를 저격하는 것보다는 그대로 두고 이 상황을 조금이나마 더 오래 유지하는 게 좋을 듯했다.

“힐러 님, 투석기 완성됐습니다. 어떻게 바로 사격 시작할까요?”

“아니요. 일단 계속 투석기를 제작하고 바위도 있는 대로 모으고 계세요. 지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유거성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지만 난 투석기 발포를 허락하지 않았다.

괜히 지금 투석기를 발포해 오크들을 흩어지는 것보단 저렇게 그냥 놔두고 알아서 계곡물에 뛰어들게 하는 게 나을 듯했다.

“부성아, 우리도 막걸리 한 잔만 마시자.”

“네. 형님. 안 그래도 저도 마시고 싶었어요.”

꿀꺽.

이부성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막걸리 한 통을 가져왔다.

아무리 사람 잡아먹는 몬스터라 하지만 수백 마리의 오크들이 물에 빠져 죽고 화살에 맞아 죽는 것을 계속 보고 있으니 정신적으로 좀 피곤한 감이 있었다.

“오빠, 태백산맥에서 전령이 왔어요. 수천 마리의 오크들이 그쪽으로 몰려오고 있대요.”

“그래? 그럼 발키리도 그쪽으로 지원 가서 오크들의 진입을 지연시키다가 최대한 많은 오크들이 몰려 있을 때 무너뜨리라고 해.”

“네, 알겠어요.”

내 지시를 받은 권수정이 눈앞에서 바람처럼 사라졌다.

“거성 씨도 이제 슬슬 준비 하세요. 어차피 이쪽으로는 못 건너올 것 같으니 우회로 쪽으로 투석기를 날려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유거성을 필두로 한 기술팀 헬퍼들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연이은 투석기 제작으로 인해 손에 익었는지 헬퍼들은 반나절 만에 투석기 10대를 만들어 냈고 시위를 장전했다.

* * *

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

“꾸웩!”

“꾸웨웩!”

“해용이랑 같은 편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계곡을 건너다 투석기에 맞고 막혀 있던 댐이 터져 물에 떠내려가는 오크들을 보며 장지원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게다가,

“그러게요. 해용이 형이 적이라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진짜 무서운 분 같아요. 어쩜 그리 항상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다니는 사람이 이런 전략을 낼 수 있는 걸까요?”

김현규와 김영균.

장지원을 도와 태백산맥을 이끄는 부마스터들 역시 얼굴에 두려움이 깃들었다.

아무리 적이라 하지만 수천 마리의 오크들이 죽는 모습은 너무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아군의 희생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일인 군단이라 불리는 S급 헌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상위 길드처럼 마법사 부대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단 한 사람의 지략으로 인해 황금 들판 전투에 이어 이번에도 대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계곡물과 막걸리.

이번에는 투석기조차 그냥 거들었을 뿐이었다.

“내가 그동안 해용이한테 뭐 실수한 거 없지?”

“흠…… 밥을 많이 먹는다는 거 말고는 특별히 없을걸요?”

“휴우…… 다행이다. 지금까지도 잘해 왔지만, 우리 앞으론 해용이한테 더 잘하자. 눈 밖에 나지 않게.”

“물론이죠. 해용이 형 덕분에 이제 돈방석에 앉게 될지도 모르는데 당연히 잘해야죠.”

장지원은 부마스터들과 함께 안해용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며 미스릴 광산이 있는 곳을 쳐다봤다.

잠시 두려움이 깃든 것도 무색하게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 * *

전투가 끝나고 난 바로 오크 진형으로 넘어가 지휘관 오크부터 확인했다.

“아주 들이부었네.”

“그러게요. 도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지휘관 오크의 시체를 확인한 이부성이 손으로 코를 감쌌다.

막걸리를 얼마나 마셨는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술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이었다.

“쯧쯧. 그러게, 공짜 술이라고 그렇게 술술 부면 쓰나. 그게 독주가 될지도 모르고.”

내가 마실 땐 그렇게 향기롭더니 오크들의 피 냄새와 섞여 코로 들어오니 역겨움이 올라왔다.

“부락 안에 암컷과 새끼 오크들이 남아 있어 모두 처치했어요.”

“처치했다고? 다 죽인 거야?”

“네. 혹시 살아서 몰래 도망칠까 봐 두 번, 세 번 확인 사살을 했으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래.”

난 수정이를 보며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오크는 번식력이 좋다.

듣기론 임신 기간도 짧고 한 번에 서너 마리 이상의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게다가 그렇게 태어난 오크는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성인 오크처럼 덩치가 커지고.

심지어 이놈들 근친 개념도 없는 듯했다.

괜히 측은지심에 암컷과 새끼들을 풀어 줬다가는 언제 어떻게 세를 넓힐지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내게 묻지도 않고 다 죽여 버린 듯했다.

“표정이 왜 그러세요? 설마 살려주려고 했던 건 아니죠?”

“살려주려고 했다기보다는 한번 길들여 보려고 했지.”

“오크를 길들여 보려 했다고요?”

수정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날 쳐다봤다. 어지간히도 놀란 얼굴이었다.

“오크들을 해치우긴 했지만 여기 있는 게 다는 아니잖아. 이제 이곳에도 성곽을 쌓아야 할 것 같은데 우리끼리 하기에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아…… 죄송해요. 그 생각을 못 했네요.”

수정이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노예.

비인도적이긴 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따질 때가 아니었다.

성인 오크들은 힘들겠지만 새끼 오크들이 우리의 통제하에 바위를 나르고 성곽을 짓는 일에 협조하면 죽이는 것보다는 나을 듯했다.

지능이 낮은 생명체이니 시도해 볼 만했는데 그 기회조차 사라졌다.

그런데 그때,

“성곽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도망친 오크들을 척살하기 위해 따라갔던 나현지가 걸어왔다.

“주변을 살펴보니 황금 들판을 거치지 않는 이상 이곳으로 대규모 병력이 올 만한 길은 없더라고요.”

“길이 없다고?”

“네. 남쪽과 서쪽은 바다로 막혀 있고 북쪽은 산맥이 끊겨 낭떠러지에요. 이곳에 걸어서 오기 위해선 우리가 자리 잡은 2번째 베이스캠프를 반드시 지나쳐야 해요.”

나현지가 활대로 바닥에 그림을 그리며 주변 지형을 설명해 주었다.

“그래? 그럼 지금 짓고 있는 성곽만 지켜 내면 여기도 우리 땅이라는 얘기지?”

“우리 땅이요?”

“어. 우리 땅.”

“듣기 좋은 말이네요. 맞아요. 오빠 말처럼 성곽만 지켜내면 여긴 우리 땅이에요.”

나현지가 날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미스릴 광산은 물론이고 이 숲과 바다도 우리 차지죠. 지켜 낼 수만 있다면.”

“목숨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 지켜내야지. 이제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없게 됐잖아.”

“맞아요. 거성이 오빠, 미스릴이 있다는 동굴에 갔다 왔는데 보이는 것만 캐내도 수백 톤은 될 것 같다고 하네요. 그걸 두고 어찌 도망을 가겠어요.”

나현지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짐작건대 밖으로 가져 나가면 미스릴은 금만큼이나 값진 취급을 받을 듯했다.

그런데 그런 금속이 바로 옆에 수백 톤이나 묻혀 있었다.

헌터 150명.

헬퍼 150명.

토탈 300명.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미스릴을 캐내서 나눠 가지면 두당 수십억씩, 아니 백억 단위 이상의 돈을 나눠 가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수정아,”

“네. 오빠.”

“헌터들한테 얘기해서 헬퍼들 데리고 주변 탐색을 더 해 줘.”

“네, 알았어요.”

난 수정이를 통해 정찰을 지시했다.

‘어쩌면 먹을 만한 게 있을지도 몰라.’

난 기대 어린 표정을 지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산 하나 차인데 이곳은 베이스캠프가 있는 곳과 풍경이 조금 달랐다.

그곳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꽃이 보였고 나무의 생김새도 조금씩 달랐다.

게다가 이곳은 우리와 싸우기 위해 임시로 지은 막사가 아닌 오크들이 집을 짓고 서식까지 했던 곳이었다.

분명 오천여 마리나 되는 오크들이 배를 채울 수 있는 야생 동물이나 무언가가 있을 듯싶었다.

그런데 그때,

“오빠, 이것 좀 보세요.”

“어라? 그거 닭 아니야?”

“그죠? 오빠가 보기에도 닭 같이 생겼죠?”

푸다닥.

푸다닥.

윤다영과 함께 정찰을 나갔던 헌터들이 양손에 닭을 쥐고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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