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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40화 (40/255)

40화. 매복

“……가겠습니다.”

“내키지 않으면 무리하지 않아도 돼요. 미스릴 광산이 탐나긴 하지만 여러분의 목숨을 담보로 해서 강요할 생각은 없어요.”

“아닙니다. 저희가 가고 싶어서 가는 겁니다. 이미 던전에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돈 몇천만 원에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했습니다. 근데 수십억 원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망설일 이유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꼭 데려가 주십쇼. 어차피 요 몇 년 동안 몬스터랑 부대끼고 살면서 생사를 넘나들고 있는데 이렇게 살 바엔 차라리 조금 위험하더라도 한탕 제대로 해서 남은 인생이라도 편히 살고 싶습니다.”

꽤 위험한 작업이 될 수도 있는데 헬퍼들이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의사를 밝혀봤다.

눈빛을 보아하니 모두 투지가 넘쳐흘렀다.

게다가,

“수정아, 너흰 어떻게 하기로 했어?”

“헬퍼들이 저렇게 나오는데 저희도 마다할 이유가 없죠. 우리 아이들이야 원래 몬스터를 사냥해서 먹고살고 있으니.”

발키리 헌터들도 선뜻 작전에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좋아요. 그럼 모두 장비 챙기고 빗방울이 더 거세지기 전에 올라가죠.”

“네, 알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사람들도 나의 마음과 같은 것을 확인한 이상 더는 망설일 이유가 없을 듯했다.

난 헌터와 헬퍼들을 소집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막걸리?’

막 베이스캠프를 나가려는데 입구 옆에 막걸리를 담은 술통이 가득 세워져 있는 게 보였다.

“형, 왜 그러세요?”

“막걸리를 가져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전투하러 가는 데 막걸리를 가져가겠다고요?”

“어. 오크들에게 선물을 줘 볼까 하고.”

난 술통을 보며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휘관 오크.

오래 산 놈들로 인해 무리 생활을 하고 어느 정도 지능마저 있는 듯싶지만 내가 보기엔 아직 오크들은 먹고, 싸고, 자는 본능에 충실한 몬스터였다.

그런데 만약 그런 오크들에게 술을 나눠 주면 어떻게 될까?

만약 인간처럼 술이 입맛에 맞으면?

두근두근.

쿵덕쿵덕.

상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만약 내 짐작대로만 된다면 이번 전투가 훨씬 손쉬워질 수 있었다.

술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거기서 더 마시면 이성이 마비되고 취하게 된다.

술 취한 상대만큼 쉬운 상대도 없는 법이었다.

짐작건대 만약 막걸리가 입맛에 맞는다면 오크들은 한없이 들이부을 것이다.

그들이 취하지 않기 위해 절제할 만큼 이성이 있을 거라 생각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만약 취하게 된다면 일반 오크가 아닌 지휘관 오크가 취할 가능성이 컸다.

자고로 맛있고 좋은 것들은 힘이 센 놈들이 독차지하는 법이었으니까.

“지원이 형님.”

“어?”

“이것들을 들고 갔으면 하는데 가능할까요?”

“이 많은 걸 전부 다?”

“어려울까요?”

“아니 어려울 건 없는데 힘이 많이 들 것 같기는 하네.”

“그럼 들고 가주세요.”

난 막걸리가 가득 들어있는 술통을 백여 개를 헌터들에게 들게 했다.

범람한 계곡물과 댐을 이용해 이중으로 안전장치를 하긴 했지만, 삼중 사중으로 하면 그만큼 더 헬퍼들의 위험 부담이 덜어지는 것이었기에.

“얘들아, 해용이가 이것들 좀 들고 가란다.”

“네, 알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내 지시라는 말에 태백산맥 헌터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술통을 어깨에 짊어졌다.

그런데 그때,

“저희도 가겠어요.”

“…….”

지윤미 마스터가 부상병들을 데리고 길을 막아섰다.

얼핏 봐도 그 수가 오십은 되었다.

다들 일전에 오크들의 함정에 빠져 중상을 입은 헌터들이었다.

가벼운 부상을 입은 헌터들은 복귀를 했지만, 이들은 아직 의료팀이 치료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열외 된 인원들이었다.

“수정아, 지휘부랑 얘기가 된 거야?”

난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권수정을 쳐다봤다.

진지 전투와 황금 들판 전투에는 생존을 위한 싸움이었기에 불가피하게 부상병들마저 지원을 받았지만, 지금은 이윤을 좇기 위해 나가는 전투였다.

굳이 이들까지 동행할 필요는 없었다. 동행한다고 도움이 되리라고 장담할 수도 없었고.

앉은 자리에서 치고받고 싸우는 거라면 다쳤을지언정 헬퍼들보다 낫겠지만 우리는 지금 여덟 시간 이상 산을 타야 하고 도착을 해서도 대공사를 해야 했다.

무리해서 따라가는 것보다는 휴식을 취하고 한시라도 빨리 몸을 회복하는 게 이로울 듯했다.

“그게 안 된다고 했는데…… 의료 막사에서 쉬고만 있는 게 마음이 편치 않은가 보더라고요.”

권수정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그녀도 거절한 모양인데 지윤미 마스터가 고집을 부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지윤미 마스터님.”

“네. 말씀하세요.”

“이미 두 번의 전투 참여로 인해 부상병들의 상처가 계속 덧나서 회복이 더뎌지고 있습니다. 더 이상 무리를 하는 건 본인들한테도 물론이지만, 대의적으로 봤을 때도 좋을 게 하나도 없을 것 같군요.”

“끙…….”

지윤미 마스터가 앓는 소리를 내며 길을 비켜 주었다.

그녀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등 뒤에 서 있는 부상병들을 바라봤다.

똑같은 말도 그 말을 누가 하느냐에 그 의미와 무게감이 달랐다.

수정이가 안된다고 했을 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듯한데, 내 말을 듣고 나서는 자신의 고집으로 인해 한창 휴식을 취해야 할 환자들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 * *

계곡을 사이에 두고 오크 부락 건너편에 자리를 잡은 난 계속 유속을 살폈다.

작전은 간단했다.

태백산맥 헌터들은 오크들이 우회할 수 있는 길 위에 자리를 잡고 댐을 만들고 있었고, 우리는 여기서 기다렸다가 계곡물이 범람하면 투석기 제작을 시작할 것이다.

발키리 헌터들은 혹여나 오크들이 죽자고 달려들면 그들을 저지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하고 있었고.

“어때요? 이제 투석기를 만들어도 될 것 같아요?”

“아니. 아직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물살이 빨라지긴 했는데 죽자고 달려들면 못 건널 것도 없을 것 같아.”

“그래요? 그럼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이럴 줄 알았으면 지원이 형님 따라서 저도 그냥 댐이나 만들어 갈 걸 그랬나 봐요.”

숲에 숨어서 가만히 있기가 좀이 쑤시는지 이부성이 입술을 내밀며 궁시렁거렸다.

“너 군대 다녀온 거 아니었어?”

“네. 맞아요. 근데 군대 다녀온 거랑…….”

“다른 사람들은 다들 적응한 것 같은데 너만 유독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것 같아서.”

“…….”

난 이부성의 등을 토닥이며 헬퍼들을 쳐다봤다.

이부성과 달리 헬퍼들은 삼삼오오 모여 적당히 땅을 파서 자리를 잡고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비까지 오고 있어 어느새 날씨가 부쩍 싸늘해졌지만, 땅을 파고 들어가 그 위에 낙엽을 모아 덮고 있으니 제법 아늑해 보였다.

군대에 가면 먹고 자는 거 다음으로 많이 하는 것이 바로 매복 훈련과 경계 근무였다.

사실 말이 훈련이고 근무였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냥 앉은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 축내기.

군대를 다녀온 현역 남자라면 제법 익숙한 일이었는데 유독 이부성만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해용이 오빠, 저희 왔어요.”

“어떻게 됐어?”

“오빠가 시킨 대로 오크들이 다니는 길목에 막걸리를 통을 두었더니 오크들이 와서 냄새를 맡아 보고 다 부락 안으로 들고 갔어요. 오크들이 너무 많아 안까지 따라가지는 못했지만, 왠지 분위기가 막걸리를 마실 것 같아요.”

헌터들을 이끌고 정찰 다녀온 나현지가 날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오케이. 고생했어. 너희들도 자리 잡고 앉아서 조금이라도 쉬었다 나가.”

난 나현지의 등을 토닥이며 정찰병들을 격려해 주었다.

제법 어려울 일이 될지 알았는데 정찰병들은 인명 피해 없이 내 명령을 이행하고 있었다.

발키리 길드 헌터들은 오십여 명이 함께 하고 있었고 난 그녀들을 일곱 개 팀으로 나눠 계속 주변을 살피게 하며 오크족 정찰병이 다가오면 은밀하게 암살을 명했다.

혹여나 지금 오크들에게 노출이 된다면 죽어라 도망을 가야 했기에.

* * *

족장 오르쿠스.

일반 오크보다 2배나 큰 신장을 가진 오크가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나무통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

[맛있는 냄새가 나는데?]

시큼하고도 알싸한 향을 맡은 오르쿠스는 우악스런 손길로 나무통의 뚜껑을 열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그래서 부하들도 자신에게 가져온 것일 테고.

먹을 게 있는데 자신에게 가져오지 않고 몰래 먹었다간 단숨에 머리통을 날려 버릴 테니까.

약육강식.

오크 세계의 질서 유지는 간단했다.

힘이 강한 자일수록 더 많은 먹을 것과 암컷을 차지할 수 있었다.

[오!]

벌컥벌컥.

벌컥벌컥.

[이건 무슨 맛이지?]

나무통에 얼굴을 박고 막걸리를 맛본 오르쿠스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기분 좋은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생전 맛보는 신기한 맛.

오크들은 육식을 즐기는 종족이었지만 막걸리의 알콜은 오르쿠스의 내장으로 들어가 혈맥을 돌고 또 뇌로 가서 그를 흥분시키기 시작했다.

[너희들도 같이 와서 먹어!]

[그래도 되겠습니까? 대장?]

[흠?]

오르쿠스는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평소 같았으면 자신의 배가 완전히 찰 때까지 혼자 먹고 난 후에 기회를 주었을 텐데 제 뜻과 상관없이 말이 먼저 튀어나와 버렸다.

허나 고민을 하던 것도 잠시,

[많잖아. 이거 엄청 맛있다. 너희들도 같이 먹자.]

오르쿠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주변 오크들을 불러 모았다.

자신도 자신이 왜 그러는지 몰랐다.

그저 지금은 너무 기분이 좋았다.

잘 먹으면 살이 찌고 키도 큰다.

잘 먹으면 힘이 세진다.

힘이 세진 오크는 자신에게 도전한다.

그럼 위험하다.

오르쿠스의 머릿속엔 이런 생각이 맴돌고 있었지만, 지금은 왠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벌컥벌컥.

벌컥벌컥.

[까불면 죽여 버리지. 뭐!]

막걸리를 마시면 마실수록 설사 수백 명의 오크가 반란해 자신의 자리를 넘본다 해도 다 무찌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럼 저희도 같이 먹겠습니다. 대장.]

[감사합니다. 대장.]

오르쿠스의 허락을 받은 주변 오크들이 하나씩 막걸리를 통을 잡았다.

서열 2위부터 100위까지.

다들 오르쿠스가 죽으면 다음 대 족장을 노릴 만큼 힘이 세고 지능이 높은 오크들이었다.

정찰병이 먹을 것을 구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배를 채우기 위해 몰려온 것이었다.

벌컥벌컥

벌컥벌컥.

하나, 둘, 셋…… 사십.

오크들의 손이 움직이고 목젖이 꿀렁일 때마다 막걸리 통이 하나씩 비워졌다.

휘청휘청.

우당탕.

처음 막걸리를 맛본 오르쿠스와 지휘관 오크들은 그 매력에 빠져 자신들이 취해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하는 걸 인지 하지 못한 채 막걸리를 흡입했다.

그런데 그때,

[대장, 인간, 인간이 나타났습니다.]

오크 한 마리가 호들갑을 떨며 족장의 방에 들어왔다.

[인간?]

[네, 엄청 많습니다.]

꿀꺽.

오르쿠스는 군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들야들하고 부드러운 살을 가진 인간들.

왠지 막걸리와 함께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들, 다 불러 모아. 가서 잡아 오자!]

[네. 대장!]

휘청휘청.

휘청휘청.

오르쿠스는 지휘관 오크들에게 지시해 전 병력을 소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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