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살수대첩
“난감하게 됐네요. 기껏 미스릴 광산을 발견했는데 하필 그 옆에 오크 부락이 있다니…….”
수정이가 씁쓸한 표정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미스릴이 탐이 나긴 하는데 오크들과 싸울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다.
“황금 들판 차지할 때처럼 투석기 만들어서 몰아내면 안 되나?”
“그때야 능선을 차지하고 진을 구축하고 있어서 가능했지만 바로 턱밑에서 투석기를 만들고 있으면 오크들이 가만히 있을까요?”
“그렇지? 나도 안 되는 거 알면서 한번 얘기해 본 거야.”
장지원이 머쓱한지 머리를 긁적였다.
그도 미스릴 광산이 어지간히 탐이 나는 모양이다.
안 쓰던 머리로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돈이라는 게 참 신기하고도 무서웠다.
당장 고립 대서 지원군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 와중에 미스릴 광산을 차지하겠다고 전투할 궁리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때,
“……스케줄이 맞지 않아 레이드에 열외 됐던 인원들이 본부 직원들과 훈련병들은 물론이고 아레스와 헤라 길드 헌터들 그리고 천여 명에 용병들의 도움을 받아 오크 진형을 뚫으며 이곳으로 오고 있어요.”
정찰을 나갔던 발키리 길드 헌터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들어와 보고를 해 왔다.
‘아레스?’
난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장지원과 이부성을 쳐다봤다.
일전에 그들에게 들었던 이름이었다.
No. 1 아레스
독자적으로 경매장을 운영하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상위 헌터가 많은.
운디네와 계약했을 때 태백산맥 길드 마스터 장지원이 날 소개해 주려 했던 곳이었다.
“설마 성태랑 은빈이가 오고 있는 건가?”
“네. 그런 것 같아요. 흑기사 부대랑 마녀 부대가 있는 걸 확인했어요.”
“이렇게 고마울 때가…… 우리 이제 진짜 살았네요.”
권수정이 미소를 지으며 장지원과 이부성을 쳐다봤다.
표정만 보면 이미 이곳을 탈출이라도 한 듯한 얼굴이었다.
“설마 지금 조성태랑 최은빈이 오고 있다는 건가요?”
“네. 맞아요.”
“제가 알기론 그들은 자기들이 맡은 게이트가 있는 지역 밖으론 웬만해선 벗어나지 않는 걸로 아는데?”
장지원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권수정을 쳐다봤다.
“지금은 소원해졌지만, 레이드 초창기에 같이 동고동락 하면서 꽤 친하게 지냈었거든요. 옛 인연을 잊지 않고 위기에 빠졌다고 하니 만사 제쳐두고 도와주러 오고 있는 모양이네요.”
“아! 그랬군요. 세상에…… 흑기사 부대와 마녀 부대라니. 이제 우리는 가만히 있다가 길 뚫어 주면 따라가기만 하면 되겠네요.”
장지원도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권수정이 쳐다보는 곳을 같이 바라봤다.
흑기사 조성태.
마녀 최은빈.
나도 얼핏 들은 기억이 있었다.
대한민국에 열 명밖에 없는 A급 헌터.
서울 3명.
인천 1명.
부산 1명.
울산 1명.
대전 1명.
대구 1명.
광주 1명.
제주도 1명.
그들은 인구밀도가 높은 서울특별시와 광역시에 머물며 각자 맡은 지역을 수호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두 명이나 되는 인원이 자신들이 이끄는 최정예 부대를 데리고 우릴 구하러 오고 있는 듯했다.
장지원과 이부성은 일진 파티가 퇴각에 성공해도 지원 병력을 꾸리는 데 애를 먹을 거라고 했는데 괜한 걱정을 한 듯했다.
대형 길드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가진바 전투력을 제외하고도 금력과 인맥이 정말 대단했다.
“근데 퇴로에 오크들이 수만 마리나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이천 명으로 오크들을 뚫을 수 있을까요?”
“정찰 결과 오천 마리 이상의 부락 일곱 군데를 발견했어요. 근데 베이스캠프와 게이트 사이에 통로를 열려면 그중에 두 군데만 물리치면 가능할 것 같아요. 다들 유기적으로 연락은 하는 거 같지만 개별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듯했어요.”
“그래도 일만이네요?”
“네. 5배가 차이가 나긴 하지만 마녀부대가 있으니 시간이 좀 걸릴지언정 크게 염려하실 필요는 없을 듯해요.”
정찰을 나갔던 헌터가 날 보며 안심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허나,
“마녀 부대가 그렇게 대단한가요?”
난 여전히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아무리 No. 3 길드라고는 하지만 발키리도 그 못지않은 상위 길드였다.
발키리 길드도 이리 애를 먹는데 마녀 부대라는 말에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게 의아했다.
“마녀 부대는 마법사 집단이야.”
“마법사요?”
“바주카포 알지? 마법으로 그 정도 화력을 쏟아 낸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야.”
“헐…… 그럼 화력이 투석기 저리 가라 갰네요?”
“그렇지. 마나량 때문에 연사가 안 되고 좀 느려서 그렇지. 사정거리도 멀고 화력도 진짜배기야. 마법사들 몸 빵이 좀 많이 약하긴 한데 그거야 흑기사 부대가 옆에 있으니 경호를 해 줄 테니 문제가 없고.”
“아…….”
장지원의 설명을 들은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걸어 다니는 투석기쯤 되는 건가?’
그의 말을 듣고 나니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졌다.
“그럼 미스릴 광산 문제는 지원군이 오고 나서 다시 상의하면 되겠네.”
“지원군이 오고 나서 상의를 하자고요? 포기하는 게 아니고?”
“포기하기엔 너무 아깝잖아. 지원군도 이천여 명이나 된다니 상의 후에 결정하는 걸로 하자.”
장지원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선 날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절은 용납지 않겠다는 얼굴이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미스릴 광산이 포기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 * *
“해용아, 미안하다. 너랑 상의도 없이 그런 고집을 부려서.”
회의가 끝나고 장지원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날 쫓아와 사과해 왔다.
“미안하긴요. 저도 미스릴 광산을 이대로 포기하기 아깝긴 했어요.”
“그래? 난 네 표정이 안 좋아서 화난 줄 알고…….”
“화나긴요. 그냥 생각 좀 하느라 그랬어요. 미스릴 광산을 차지하려면 오크들과 또 전쟁해야 하는 것은 둘째치고 이곳에 계속 상주해야 한다는 얘기인데. 그러려면 먹을 것도 더 보충해야 하고 미스릴을 채굴하면 그걸 밖으로 나를 방법도 찾아내야 하잖아요. 지원군이 길을 뚫는다고 해도 여전히 사방에 오크들이 득실거릴 테니까.”
“……그렇지.”
장지원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스릴 광산을 차지하게 되면 최하 수천억 원 이상의 이윤이 창출되겠지만 그만큼 위험하고 애로사항도 많았다.
게다가,
‘우리끼리 차지할 방법은 없을까?’
굳이 이곳에 상주하기로 할 거면 미스릴 광산을 발키리 길드와 둘이서 소유하고 싶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 달에 천만 원만 벌어도 소원이 없겠다 싶었는데 수천억 원이라는 말에 나 역시 가슴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탐욕이라는 놈이 들끓기 시작했다.
‘진짜 투석기만 제작할 수 있으면 되는데…….’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장지원을 쳐다봤다.
장지원이 회의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투석기만 만들면 우리끼리도 오크들을 몰아낼 수 있을 듯했는데 오크들이 가만히 지켜만 보지는 않을 것이 문제였다.
반대로 그 부분만 해결하면 투석기를 만들 수 있었고.
그런데 그때,
주르륵.
주르륵.
“해용아, 비 온다. 안으로 들어가자.”
“……네.”
하늘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난 장지원과 함께 부랴부랴 숙소로 뛰어갔다.
“흠…….”
난 가만히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쳐다봤다.
아무래도 이곳은 단지 몬스터의 소굴이 아니라 지구와 같이 또 다른 행성이나 차원의 세계가 맞는 듯했다.
‘운디네!’
-응?
‘혹시 오크 부락이 계곡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아니 그렇게 멀지 않아. 계곡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인근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아.
‘그래? 그럼 계곡에서 투석기를 만들어서 날리면 부락까지 날라갈 것 같아?’
-흠…… 그렇지? 보여줄까?
‘어,’
끄덕끄덕.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이 감싸왔고 눈앞에 오크 부락이 있는 계곡이 보였다.
운디네가 자신의 기억을 내게 공유시켜주고 있었다.
‘오크 부락 1시 방향 계곡 건너편에서 투석기를 만들면 될 것 같기도 한데…….’
-진짜 계곡 옆에서 투석기를 만들겠다고? 오크들은 어떡하려고?
‘비 오잖아.’
-오!
운디네가 감탄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길게 설명하지도 않았는데 내 의도를 간파한 모양이다.
래프팅.
에스마트에 다닐 때 여름이 되면 정기 휴무에 맞춰 강원도 계곡에 펜션을 잡고 술도 마시고 배를 타곤 했었다.
그리고 그때 지금처럼 비가 오는 날 배를 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급류에 휘말린 일행들이 반쯤 죽었다가 살아났다.
비도 얼마 오지 않았고 구명조끼도 있고 해서 안전요원의 권유를 무시하고 강행을 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물살이 거셌다.
그때 해병대 출신 안전 요원이 하는 말이 중간에 바위나 수초에 걸리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만약 발이나 손이 꼈으면 그대로 황천길이라고 했다.
아무리 자기가 수영을 잘해도 이 물살에선 구하러 가지 못한다는 말과 함께.
비가 온 이후의 계곡은 설사 고요하다 해도 바다만큼이나 무서운 곳이었다.
-근데 계곡 중간쯤에 폭이 좁은 데가 있는데 오크들이 우회해서 오면 어떡하려고?
‘막아야지.’
-어떻게?
‘물길을 막고 있다가 오크들이 우회하려고 하면 열어 버리면 될 것 같아. 폭이 좁으면 넓게 만들면 되니까.’
살수대첩.
난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의 30만 대군을 궤멸시킨 전투를 떠올렸다.
대륙을 통일한 수나라는 30만 대군을 이끌고도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수공에 의해 궤멸을 했다고 한다. 그때 살아서 돌아간 병사는 고작 삼천여 명에 불과했고 결국 수나라는 전쟁에 의한 패배의 후유증으로 멸망에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오! 좋은데? 위에선 범람한 계곡을 방어벽으로 투석기를 만들고 오크들이 우회할 수 있는 길 위에다가는 댐을 만들겠다 이거잖아?
‘괜찮은 것 같아?’
-훌륭해. 아둔한 오크들이라면 꼼짝없이 당하고 말겠는걸!
운디네가 날 보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지원이 형, 제가 지금 투석기를 제작할 방법이 떠올랐는데 한번 들어 보실래요?”
“그래? 알았어. 얘기해 봐.”
나와 마찬가지로 미스릴 광산에 욕심이 생긴 장지원은 호기심 어린 표정을 날 쳐다보았고 난 운디네와 주고받았던 내용을 그대로 설명해 주었다.
계곡을 막는 게 힘들긴 하겠지만 태백산맥 헌터들이라면 못할 것도 없을 듯했다.
몇 번의 전투를 치르며 지켜본 바에 의하면 태백산맥 헌터 한 명, 한 명은 포클레인 기계와 버금갈 정도로 힘과 체력이 좋았다.
“좋은 것 같은데? 혹시나 상황이 예상처럼 흘러가지 않아도 그냥 내빼면 되는 거잖아?”
“그죠. 근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위험을 감수해야 할 거예요. 특히 헬퍼들은 생각 이상으로 많이 위험할 수도 있어요.”
“그렇겠지. 근데 수천억 원 아니 수조 원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그 정도는 감수해야지. 우리 일단 지휘부랑 헬퍼 팀장들 모아서 말이라도 해 보자. 정 싫다고 하면 안 하면 되는 거니까.”
“네. 알았어요.”
자리에서 일어난 난 유거성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었고 헬퍼들의 동의가 필요할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