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미스릴 광산
“거성 씨, 이제 됐죠?”
“죄송합니다. 이렇게 해 주길 바라고 그런 건 아닌데…….”
“거참. 죄송해하지 마세요.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요.”
난 코끝을 찡그리며 다시 한번 유거성을 나무랐다.
당연히 받아야 할 권리를 챙겨주겠다는데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 같은 얼굴이었다.
기껏 지휘부랑 화해했는데 돈 때문에 얼굴을 붉혔던 자신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똑똑한 척은 하는데 알면 알수록 참 답답한 사람이었다. 아니면 순진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예전에 직장 동생들도 그랬다.
먹고 살려고 다니는 직장에서 연봉 협상 기간에 인사 팀장을 만나거나 옆 회사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면 속에 있는 말을 잘하지 못했다.
마음속으론 단돈 십만 원이라도 더 받고 싶고 그만큼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직접적으로 돈 얘기를 꺼내면 속물 같아 보일까 봐 두루뭉술하게 얘기를 하고 와서 후회하는 동생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난 지금처럼 따끔하게 충고를 해 주었다.
돈 더 달라고 하라고.
괜히 위에서 알아서 잘해 주겠지 하고 기다렸다가 뒤통수를 맞는 것보다는 차라리 솔직하게 얘기를 하는 게 후회가 적었다.
아무리 사람이 좋고 직장 분위기가 좋아도 돈 만큼 사람을 치사하게 만드는 것도 없으니까.
“거성 씨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돈 벌려고 들어 온 거잖아요. 일한 만큼 노력한 만큼 돈을 받는 건 당연한 거예요. 다음부턴 그렇게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거성 씨가 판단해서 이 정도는 받아야 할 것 같은데 그게 되지 않을 것 같으면 미리 얘기를 하세요. 말을 해 주지 않으면 저라고 마냥 다 알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유거성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표정을 보아하니 여전히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는 알아들은 듯했다.
* * *
“희한한 금속이긴 하네.”
작업을 하면서 난 미스릴이 왜 귀한 취급을 받는지 직접 느낄 수 있었다.
무게는 알루미늄처럼 가벼운데 질기기가 거의 쇠심줄 저리가라였다.
게다가 미스릴은 헌터들이 사용하는 마나 전도율마저 높아 능력을 더 강화한다고 한다.
짐작건대 육체 능력을 각성한 헌터가 미스릴로 만든 갑옷을 입으면 총으로도 뚫지 못할 듯했다.
“부성아, 좀 쉬었다 하자. 이러다 우리가 먼저 쓰러지겠다.”
“네. 형.”
사흘 밤낮 동안 쉬지 않고 작업장에 갇혀 나무를 깎아 원형을 만들어 방어구를 만들다 보니 온몸 곳곳에서 비명을 질러 됐다.
권수정, 나현지, 윤다영 그리고 발키리 헌터들의 안전을 위한 것들이라 한시라도 지체할 수가 없어 이제야 짬이 난 것이다.
솔직히 그동안은 정찰을 나간 발키리 헌터들이 다쳐도 크게 감흥이 없었지만 수정이와 가까워지고 나서 이제 다들 남 같지 않아졌다.
이부성이 좋아하는 나현지는 물론이고 다른 헌터들이 다쳐도 마음이 아주 아플 것 같았다.
게다가 그녀들에게 신변에 이상이 생기면 수정이가 제일 힘들어 할 것이기에.
“형, 좀 주무셨다 하실 거죠?”
“그래야겠지. 잠을 너무 못 잤더니 정신이 몽롱하네.”
“그럼 우리 씻고 갈까요. 거지들이 보면 형님, 형님 하겠는데요.”
“그러자.”
밖으로 나온 난 이부성과 기술직 헬퍼들과 함께 황금색 들판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졸졸졸.
황금색 들판 옆에는 강이라고 부르기엔 애매하고 마치 어렸을 적 동네에 있던 냇가처럼 폭이 작고 깊이가 낮은 물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짐작건대 이 물줄기를 따라 산으로 올라가면 계곡이 있을 듯했다.
-아주 깨끗한 물이야.
파란색 빛이 날 감싸며 운디네가 말을 건네왔다.
내게 설명해 주기 위해서 교감을 하며 내 기억을 읽는 듯했다.
-너희 차원 기준으로 따지면 1급수 정도 될 거야. 마셔도 돼.
꿀꺽꿀꺽.
물의 정령 운디네.
다른 사람도 아닌 운디네가 말한 것이기에. 난 고민하지 않고 바로 머리를 숙여 물을 들이켰다.
작업장에 갇혀 코와 입으로 계속 목재 가루를 들이마셨더니 목이 아주 텁텁한 상태였다.
“크으! 죽인다.”
땀을 뻘뻘 흘리며 산에 올라가 약수를 먹었을 때처럼 청량한 느낌이 온몸 가득 퍼져나갔다.
“형, 그렇게 막 드시면…….”
“깨끗한 물이야. 마셔도 돼.”
“그래요?”
꿀꺽꿀꺽.
이부성과 유거성. 그리고 조금 떨어져 있던 기술직 헬퍼들이 다가와 나와 마찬가지로 다들 코를 박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먹을 것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물조차 제대로 마시지 못했기에.
진즉에 와서 확인을 시켜 줄 것을 그랬나 보다.
“아! 정말 끝내주네요.”
“물 먹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이야.”
이렇게 차갑고 시원한 물은 정말 오랜만이라 그런지 사람들 얼굴에 모두 웃음이 만개했다.
‘저건 뭐지? 조개 껍질인가?’
반짝반짝.
허리 정도의 깊이.
물이 워낙 맑아서 그런지 바닥까지 투명하게 다 보였는데 유난히 반짝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첨벙.
난 물속으로 들어가 잠수를 해서 양손으로 모래를 한 움큼 떠내었다.
모래 사이로 빛을 내는 은회색 알갱이들.
-미스릴 가루네.
‘이게 미스릴 가루라고?’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물 안쪽을 자세히 살펴봤다.
‘설마?’
‘미스릴 광산이라도 있는 건가?’
냇물에 미스릴 가루가 있다는 건 이 물줄기 상층부 어딘가에 미스릴을 함유한 모암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은 이상 오랜 시간 물, 공기, 햇빛 등에 의하여 부서진 후 흘러 내려와 이렇게 퇴적한 것일 테니까.
‘오! 이건 제법 큰데.’
잠시 산을 바라보다 물가를 둘러보니 새끼손톱만 한 미스릴 덩어리가 보였다.
“형, 뭐 잡으신 거예요?”
“미스릴.”
“네? 그게 미스릴이라고요?”
옆에서 내 모습을 지켜보던 이부성이 놀라 입을 벌리며 날 쳐다봤다.
“정말 그게 미스릴이라고요? 그러면 저기 바닥에 반짝거리는 거 전부 다??”
“헉! 진짜 미스릴이에요!”
유거성과 기술직 헬퍼들도 마찬가지였고.
주형으로 갑옷을 만들면 표면이 꺼칠꺼칠해 그걸 갈아주는 작업을 했던 헬퍼들은 단숨에 미스릴 가루를 알아보았다.
끄덕끄덕.
첨벙첨벙.
“형님, 같이 가요. 혼자 가기가 어디 있어요!”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사람들이 물속으로 뛰어들어 모두 허리를 숙이며 손을 집어넣었다.
미스릴이 지천으로 깔린 걸 보고 다들 얼굴 가득 미소가 만개했다.
‘엄마 보고 싶다.’
물장구를 치며 미스릴 가루를 찾는 헌터들을 보고 있자니 괜스레 옛 기억이 떠올랐다.
어렸을 적, 어머니와 아버지 손을 잡고 경주에 놀러 갔었던 그때 그 시절이.
어머니와 함께 살 때만 해도 우리 집 역시 다른 평범한 집들과 마찬가지로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이었기에.
경주 월성.
옛 신라의 황궁 앞 하천.
그리고 난 그곳에서 처음으로 사람들이 사금 캐는 걸 보았고 부모님과 함께 직접 채취도 했었다.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때만큼 행복했던 시절이 있나 싶을 만큼 나에겐 소중한 기억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여행을 간 기억이 그리 많지 않기에.
게다가 하천 바닥에 모래와 돌 틈에 섞여 있는 금을 캐내는 것이 너무 재미있기도 했고.
어린 나이였지만 금이 비싸다는 건 알 나이였기에.
그래서 가끔은 나이를 먹고도 경주에 내려가 사금이나 캐면서 살아 볼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을 한 적이 있었다.
괴금.
복권 맞을 확률만큼 희박하지만 가끔은 가루가 아닌 덩어리로 발견되기도 한다기에.
그리고 그때,
“대박! 힐러 님, 힐러 님! 이것 좀 봐주세요.”
첨벙첨벙.
유거성이 호들갑을 떨며 내게 다가왔다.
그의 손엔 은색 빛을 내는 주먹만 한 돌이 쥐어져 있었다.
‘카사.’
-맞아. 미스릴이야.
‘저게 정말 미스릴이라고?’
-그렇다니까.
카사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미스릴이에요.”
“꺅! 정말요.”
첨벙첨벙.
유거성이 마치 어린아이처럼 물을 튀기며 폴짝폴짝 뛰었다.
당장 부자라도 된 것처럼 세상 행복한 모습이었다.
내 짐작처럼 진짜 이 물길 상층부 어딘가에 모암이 있는 듯했다.
그런데 그때,
“힐러 님은 이미 짐작 하시고 있나 보네요. 냇물에 이 정도 미스릴이 있다는 건 저 위 어딘가에 수십 톤 이상의 미스릴이 매장되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기술직 헬퍼 한 명이 상기된 얼굴로 내게 다가와 말을 걸어왔다.
아마 이름이 황정민이었나 그랬던 것 같다.
“수십 톤이나요?”
“최하로 잡아서 그 정도입니다. 어쩌면 수조 원대 이상의 미스릴이 매장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광산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건가요?”
“네. 몇 년 전에 독일에서 반년 정도 일했던 적이 있습니다.”
황정민이 계곡 상층부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수조 원이라…….”
난 손을 들어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작업을 할 때 항상 아무런 말없이 일만하던 헬퍼였다.
동료 헬퍼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조차 보지 못할 만큼 과묵한 남자였다.
그동안 지켜온 바에 의하면 확실하지도 않은 걸로 섣불리 나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다만,
‘저 넓은 델 어떻게 확인하지?’
미스릴이 정말 매장되어 있다고 해도 당장은 확인할 방법도 채굴할 방법도 없었다.
냇물에 있는 것처럼 눈에 보이면 다행이지만 말 그대로 땅속에 매장되어 있을 확률이 높을 테니까.
그런데 그때,
-내가 도와줄까?
‘어?’
-이 물줄기 위쪽에 있는 것 같다며? 그럼 이 물줄기 따라서 미스릴이 광석이 분포된 데를 찾아 주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지?’
-오케이. 알았어. 금방 다녀올게.
운디네가 형상화되어 물속으로 들어갔다.
* * *
여섯 시간쯤 지났을까.
운디네가 되돌아왔다.
-찾았어. 저기 보이는 능선에 자연 동굴이 있는데 벽 곳곳이 미스릴 원석으로 되어 있었어.
‘벽이 미스릴 원석이라고?’
-응.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도 양이 꽤 되는 것 같아. 너희 세계 기준으로 몇 톤은 가뿐히 넘을 거야.
‘헐…….’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운디네가 가리킨 능선을 쳐다봤다.
미스릴은 가볍다.
그런데도 몇 톤의 양이 눈에 보일 정도로 있으면 그것만 캐내도 수천억 원은 될 듯했다.
그리고 채굴까지 가능하다면 황정민의 말처럼 정말 조 단위의 돈을 벌 수도 있었다.
두근두근.
쿵덕쿵덕.
가슴이 또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1,000,000,000,000원
1조.
로또와 파워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큰 금액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인생 역전을 할 수 있을 만큼 큰 금액이었다.
“부성아, 당장 지휘부 소집해줘.”
“네. 형.”
난 바로 이부성을 불러 지휘부를 소집했다.
운디네가 가리킨 능선은 성곽 바깥쪽에 있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도 차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맞아, 조금 위험하긴 할 거야. 미스릴이 매장되어 있는 동굴 인근에 오크 부락이 있거든.
‘오크 부락이 있다고?’
-어. 얼핏 보긴 했는데 한 오천만 리쯤 되는 것 같더라고.
‘끙…….’
운디네의 입에서 가장 중요한 말이 뒤늦게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