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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31화 (31/255)

31화. 대 승리

“최소 인원만 남겨 두고 모두 능선 위로 올라오라고 해 주세요.”

열 대의 투석기가 완성되고 난 전 병력을 능선 위로 소집했다.

이번 전투는 단시간에 얼마만큼의 화력을 쏟아부을 수 있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렸기에 끌어모을 수 있는 사람을 다 모아서 힘을 집중해야 했다.

“마스터랑 부상병들도 불러와야 하나요?”

“왜요? 상태가 많이 안 좋나요?”

“그게 일전에 전투로 인해 상처가 덧나서…… 이런 식으로 계속 전투에 참여시키면 완치하는 게 더 늦어질 것 같아서요.”

권수정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아무리 이능을 각성한 헌터들이라 하지만 뼈가 부러지고 내장에 상처를 받으면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 계속 전투에 참여하다 보니 그 시간이 더뎌지는 모양이었다.

허나,

“오늘까지만 고생해 달라고 하세요. 우리가 지금 아픈 사람들 배려하면서 싸울 처지는 아니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난 환자들도 모두 능선 위로 소집했다.

아픈 사람마저 부르는 게 미안하긴 했지만, 지금은 한 손이 아쉬운 상황이었다.

“거성 씨, 저기 노란색 지붕 보이나요?”

“네. 보입니다.”

“저곳을 중심으로 해서 투석기 다섯 대로 화망을 집중해 주세요.”

“다섯 대나요?”

유거성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절반이나 되는 화력을 내가 특정 장소로 지정했기 때문이었다.

“힐러 님, 왜 저곳에다가 화망을 집중하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권수정도 내 판단이 의문스러운지 설명을 듣고 싶어 했다.

“저 막사에 사령관이 머무는 듯해서요.”

“일전에 오래 산 오크가 있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 그놈을 말하는 건가요?”

“네.”

“특이한 놈을 발견한 건가요? 저도 찾아본다고 찾아봤는데 보지 못한 것 같은데…….”

권수정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오크 진형을 바라봤다.

내가 타깃을 잡은 곳에 다른 오크들과 다른 외형을 한 놈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크들의 외형은 다 하나같이 비슷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동양인들이 서양인들을 보면 얼굴을 보고도 잘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 오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난 다른 곳에 초점을 두고 관찰을 했고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능이 떨어지는 동물들은 보통 힘으로 서열을 나누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힘이 센 놈일수록 무리의 암컷과 먹을 것들을 더 빨리 선점하고 때로는 독차지 하지요.”

“아…….”

권수정이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 번 투석기는 이쪽, 이번 투석기는 저쪽, 삼 번 투석기는…….”

난 나머지 투석기들도 서열이 높은 놈이 있을 것 같은 막사 주위로 배치 했다.

지휘관들을 잡아야 했다.

그래야 기습을 했을 때 혼란을 더 가중할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감탄스러울 지경이에요.”

권수정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선 날 그윽하게 쳐다봤다.

“별거 아니에요. 제가 아니더라도 장지원 마스터나 다른 사람도 다 생각하고 있었을 거예요.”

난 머리를 긁적이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군대를 갔다 온 남자라면, 군 생활을 할 때 조금만 능동적으로 사고를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나 역시 다 군대에서 배운 것들이었기에.

데프콘3

후방에서 군 시절을 보낸 난 훈련이 있으면 항상 북한 특수부대를 막는 훈련을 했다.

방송국, 도로…….

기습을 받을 때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지휘체계를 붕괴시켜야 했고 두 번째는 연락. 세 번째는 이동 수단을 무력화시켜야 했다.

무려 2년 동안이나 그걸 막는 연습을 한 경험과 지식을 역으로 바꾼 것뿐이었다.

“투석기 투하가 되면 분명 혼란을 정리하려는 놈들이 있을 거예요. 헌터님들께서 그놈들을 찾아서 화망을 집중해 주세요.”

“네, 알겠어요.”

권수정이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올가미에 걸린 사냥감을 보듯이 우릴 쳐다보는 오크들에게 한 방 먹여 줄 시간이 당도했다.

* * *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꾸웨웩.”

“꾸르륵.”

오크들의 비명으로 숲이 진동했다.

“준비된 사수로부터 사격 개시!”

슈우웅,

투석기로 발사한 바위들과 함께 백여 명의 발키리 헌터들이 쏜 화살들이 하늘을 수놓으며 오크들의 진형에 쉼 없이 떨어졌다.

“꾸르륵.”

“꾹꾹.”

새벽 동이 트는 시간 갑작스레 폭격을 당한 오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속수무책으로 몸으로 공격을 막았다.

“힐러 님, 1차 타깃 제거했습니다.”

“2차 타깃도 제거했습니다.”

.

.

.

“5차 타깃 제거했습니다.”

“좋아요. 수고했어요. 망태기를 가져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1차 포격으로 오크 진형에 있던 목책과 방패와 같은 장애물이 대부분 무용지물이 되어 이제 굳이 큰 바위들을 날릴 필요가 없어 보여 망태기에 작은 돌들을 담아 장전을 했다.

“발사”

슈웅.

“꾸르륵.”

“꾸르륵.”

사람 얼굴만 한 수백 개의 돌 들이 마치 산탄총처럼 퍼지며 오크 진형으로 날아갔다.

아비규환.

돌과 화살을 맞고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오크가 쓰러졌고 다치지 않은 오크들이 등을 밟으며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투석기와 발키리 헌터가 쏘는 화살의 사정거리 밖으로.

동료애?

그런 것 따위는 없었다.

내 짐작이 맞는지 시간이 흘러도 무리를 이끌거나 통솔하려는 오크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이미 집중된 화망에 목숨을 잃었거나 도망치고 있을 듯했다.

“징글징글하네요.”

“저 많은 것들이 언제 저렇게 몰려와 있었데.”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오크들이 몰려오고 있다고 하더니 마치 개미 떼처럼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정말 오크가 많았다.

얼핏 봐도 만 단위는 가뿐히 넘을 것 같았다.

만약 오크들이 예전처럼 목숨마저 도외시 한 채 무대포 공격을 했다면 어쩌면 버티기 힘들었을 만큼 압도적인 숫자였다.

오크들이 몰려오고 있을 때 바로 능선을 차지했던 것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았다.

“쯧쯧! 저것들 진형이 박살이 나는데도 다들 후퇴하기 바쁘네요.”

혹시나 오크들이 돌격할까 싶어 대기하고 있던 장지원이 투석기에 맞아 신음을 흘리고 있는 오크를 보며 혀를 찼다.

“꾸륵!”

“꾸르륵!”

화살도 모자라 투석기의 압도적인 화력을 맛 본 오크들은 전의를 상실한 듯 짐도 챙기지 않고 후퇴를 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내가 손을 들자 헌터와 헬퍼들이 복명복창을 하며 포격이 끝이 났다.

대 승리.

단 한 명의 부상자도 없이 수천 마리의 오크들을 처치한 거의 학살에 가까운 전투였다.

투석기를 만들고 바위를 자르고 돌들을 나르는 작업이 정말 고되고 힘들었지만, 우리가 땀을 흘린 만큼 보답이 돌아왔다.

“이제 우리 차례네요. 권수정 부마스터님 엄호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지원을 필두로 한 태백산맥 헌터들이 무장을 갖추고 능선 아래로 내려갔다.살아 있는 오크들의 생명을 끊기 위해서.

짐작건대 목숨을 잃은 놈들보다 다쳐 쓰러진 오크들이 더 많을 듯싶었다.

“힐러 님, 발키리 길드도 움직입니다. 타격점을 더 뒤로 바꿀까요?”

“네. 그렇게 해 주세요.”

공병대.

투석기 운영을 맡은 헬퍼들이 각도를 조정하며 혹시 모를 반격에 대비하기 위해서 타격점을 조금 더 뒤로했다.

나머지 인력들은 소모한 바위와 돌들을 부지런히 계속 수급해 채워 놓고 있었고.

“부마스터님, 무리해서 따라가지는 마세요. 오크 열 마리를 죽여도 우리 편 한 명이 다치면 안 하니 못하니까.”

“네, 알았어요.”

난 다시 한번 안전을 당부했다.

압도적인 화력으로 오크들을 뒤로 물렸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친 오크 한 마리한테도 생명을 빼앗길 수도 있는 것이었기에 방심은 금물이었다.

* * *

“형, 잔당들 다 처치했데요. 이제 내려오셔도 된대요.”

“헬퍼들은?”

“헬퍼들한테도 오는 길에 얘기하고 왔어요. 아마 먼저들 내려가서 전장 정리하고 있을 거예요.”

“그래. 그럼 우리도 내려가자.”

포격이 끝나고 한 시간. 난 태백산맥 헌터들이 잔당들을 해치우는 걸 기다렸다가 이부성과 함께 오크 진형으로 내려갔다.

“타깃으로 정한 막사에서 미스릴 방어구를 착용한 오크들의 사체가 발견되었어요.”

진형으로 내려오자 권수정이 잔뜩 상기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미스릴?”

“던전 안에서만 발견되는 회귀금속이에요.”

“비싼 건가요?”

“말해 뭐 하겠어요. 금보다 더 귀한 금속이에요. 탄성이랑 마나 전도율이 높아서 헌터들이 환장하거든요. 반면에 무게는 웬만한 합금 금속의 절반밖에 되지 않고요.”

미스릴 검.

미스릴 도끼

미스릴 갑옷.

미스릴 투구.

미스릴 부츠.

미스릴 장갑.

.

.

.

권수정이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수거해 온 장비를 쳐다봤다.

“진짜 가볍네요. 이렇게 가벼워서 방어 효과가 있나요?”

직접 갑옷 하나를 들어 본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권수정을 쳐다봤다.

자고로 방어구는 어느 정도 무게감과 두께가 있어야 충격을 흡수해 주기에.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이 괜히 옴 몸에 중장비를 두르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미스릴이 비싼 거예요. 이게 보기엔 이래도 아마 태백산맥 헌터 분들이 입고 있는 것보다 방어력이 훨씬 좋을 거예요. 이놈들만 이렇게 귀한 무구가 있는 걸 보니 힐러 님의 짐작이 맞는 것 같아요.”

권수정이 존경 어린 눈빛을 하며 날 그윽하게 쳐다봤다.

지난 능선 전투에서 획득한 오크들의 장비는 전부 철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는데 내가 타깃으로 정했던 막사의 오크들만 미스릴 무구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말은 내가 세운 가설이 맞을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오래 산 오크들이 오크들을 통솔하고 있고 이놈들이 바로 그 지휘관인 듯했다.

“……한숨 돌려도 되는 건가?”

눈앞에 있는 황금 들판을 보자 그동안 내 어깨 위에 자리 잡고선 날 괴롭혔던 부담감들이 싹 날아간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슈우웅 펑!

슈우웅 펑!

게이트가 있는 하늘 방향에서 파란색 폭죽이 터져 올랐다.

“저거, 퇴각에 성공했다는 신호 맞죠?”

“네. 맞아요. 저희 이제 진짜 산 것 같아요.”

권수정이 걸어와 내 품에 안겨 왔다.

그녀의 몸에서 작은 떨림이 느껴졌다.

그녀 역시 나만큼이나 심적 부담이 컸었던 모양이었다.

삼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통솔하고 그들의 안전과 생명을 지켜야 하는 자리.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내라고 했던가.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마냥 좋을지 알았는데 막상 비슷한 자리에 올라와 보니 심적 피로가 대단했다.

“……수고했어요.”

토닥토닥.

난 권수정의 등을 쓰다듬으며 더 꼭 안아 주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권수정도 나만큼이나 힘들었을 거라는 걸. 그리고 그녀 역시.

“힐러 님도 수고 많으셨어요.”

내가 힘들었다는 걸 아는지 두 팔에 힘을 주며 날 더 꼭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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