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투석기
고무줄과 나무젓가락.
난 일단 모형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한 그루에 수백kg씩 나가는 통나무로 무턱대고 만들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나름대로 자신 있어 시도하는 것이지만 혹시나 제대로 발사가 안 되면 그런 생고생도 없으니까.
“여기 가져왔어요.”
“형, 저도 가져왔습니다.”
“고마워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권수정과 이부성이 재료들을 가져왔고 난 자리에 앉아 기억을 더듬었다.
1990년대 초반.
인터넷은커녕 TV 채널조차 4개 밖에 없던 초등학교 시절.
그때 그 시절의 나와 친구들은 하루하루가 너무 길었다.
특히 방학이 되면 지루함에 미쳐 버릴 정도로 시간이 남아돌았다. 반쯤 넋이 나가 차라리 공부라도 해볼까? 라는 마음이 생길 정도로.
종이학 만들기.
종이 개구리 만들기.
종이 딱지.
병따개.
행글라이더.
나무젓가락 총.
나무젓가락 새총.
나무젓가락 투석기.
그때 나의 무료함을 달래 줬던 게 바로 이 나무젓가락과 고무줄이었다.
‘밑판은 사다리 모양으로 만들고, 기둥은 모퉁이 네 곳에 세워서 두 개씩 교차시키고.’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별로 어렵지 않게 투석기 모양이 만들어져 나갔다.
그네.
형태도 단순했고 어렸을 때 자주 가서 놀았던 아파트 놀이터 안에 있던 놀이 기구와 비슷했기에 만드는 와중에도 그때 기억이 계속 샘솟았다.
“이제 지렛대만 연결하면 끝이네.”
난 나무젓가락 두 개를 연결해 세운 후 흐뭇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게 투석기예요?”
“엥? 끝난 거예요?”
“네.”
끄덕끄덕.
권수정과 이부성이 내가 만든 나무젓가락 투석기를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렛대 원리.
보기에도 그렇지만 투석기의 원리는 아주 간단했다.
시소.
어렸을 때 놀았던 놀이 기구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편했다.
슈웅!
지렛대를 내리고 끝부분에 있는 병뚜껑에 조약돌 하나를 올려 발사하니, 마치 손으로 힘껏 던진 것처럼 큰 힘 들이지 않았는데도 꽤 멀리 날아갔다.
내가 모형을 만드는 사이 어느새 유거성이 옆에 와있었고 난 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이것처럼 만들 수 있을까요?”
“나무젓가락은 통나무로 대체한다고 치고 고무줄이 문제네요.”
유거성이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투석기 모형을 쳐다봤다.
탄성.
지렛대의 힘을 부가시키기 위해선 노란 고무줄을 대체할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허나 난 이미 그것 역시 생각해 둔 것이 있었다.
“오크의 힘줄로 대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가능할까요?”
“와! 진짜 그걸로 대체하면 되겠네요.”
짝짝.
유거성에게 물어봤는데 별안간 권수정이 손뼉을 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못 미덥게 계속 날 지켜봤지만 막상 모형이 나오고 대체 할 수 있는 물품이 있으니 혼자서 상상의 나래라도 펼친 모양이었다.
“그거면 충분히 가능할 거예요. 정말 탄성이 끝내주거든요. 그럼 고무줄은 힘줄로 대체한다 치고. 밑판과 기둥은 바위의 무게를 지탱해야 하니 최대한 두껍고 무거운 나무로 하고, 지렛대 역할을 할 나무는 탄력이 좀 있으면 더 효과가 좋겠네요.”
“네. 맞아요.”
“눈으로 직접 보니 대충 이해가 되네요. 한번 만들어 보겠습니다.”
유거성이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 * *
“힐러 님. 모형과 똑같이 완성했습니다. 오크 힘줄 덕분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손쉽게 만들 수 있었네요.”
유거성과 기술직 헬퍼들이 반나절 만에 아파트 2층 높이의 투석기를 완성했다.
“투석기를 만드셨다고요?”
“네. 지금 시험 발사해 보려고요.”
“기대되네요. 저희도 봐도 되죠?”
“물론이죠.”
소식을 듣고 왔는지 권수정과 발키리 헌터들이 몰려와 참관했다.
“헌터님들 이것 좀 당겨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유거성의 지시를 받은 태백산맥 헌터들이 지렛대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겼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탄성이 대단합니다. 헬퍼들이 당기려면 최소 열 명은 필요할 것 같아요.”
유거성이 진절머리가 난다는 얼굴로 지렛대에 연결된 오크의 힘줄을 쳐다봤다.
“제 생각엔 힘줄을 좀 얇게 해서…….”
“그건 안 돼요. 그럼 바위가 멀리 날아가지 않을 테니.”
조금 힘들어도 지금이 좋았다.
지렛대를 당기는 데 힘이 들수록 그만큼 더 멀리 날아갈 것이기에.
처음 지렛대 원리를 발견한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힘을 제대로 이용하면 지구도 들 수 있다고.
두근두근.
쿵덕쿵덕.
난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가만히 투석기를 쳐다봤다.
5, 4, 3, 2…… 1.
슈웅!
흔들흔들.
투석기가 크게 흔들리며 바위가 날아갔다.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바위가 떨어지며 밑에 있던 나무들을 다 부서져 버렸고 마치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졌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하긴, 아파트 옥상에서 화분 하나만 떨어져도 난리가 나는데.’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파괴적이었다.
마치 하늘이라도 날 듯이 꽤 높이 올라갔던 바위가 낙하하는 모습이 경이로울 정도로.
“미친…… A급 헌터가 와도 저거 맞으면 바로 묵사발이 될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갑자기 오크들이 불쌍해지네요.”
.
.
.
참관을 했던 사람들이 경악스런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했다. 다들 나 못지않게 놀란 모양이다.
허나,
“조금 더 보완하고 시험 발사도 여러 번 더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멀리 보내는 건 성공했지만, 원하는 곳으로 떨어뜨릴 수 없으면 의미가 없으니까요.”
유거성이 진중한 표정을 유지한 채 낙하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살대와 화살촉. 그리고 투석기까지.
기술직 헬퍼들은 내가 대안을 제시하기만 해도 알아서 생각하고 고민하며 디테일을 살렸다.
* * *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하루가 지나고 두 번째 시험 발사가 이루어졌다.
“오차가 살짝 있긴 하지만 이제 얼추 원하는 지점 근처에 떨어뜨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수고하셨어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네요.”
난 유거성의 어깨를 토닥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위 열 개를 던지면 그중에 절반 이상이 목표 지점에 가까운 곳에 낙하했다.
오크들이 떼로 몰려 있고 일단은 살상이 아닌 진형을 뒤로 물리게 하는 게 주목표이기에 이 정도만 돼도 충분히 위력적인 무기가 될 것 같았다.
다만,
‘이동까지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바퀴를 만들 재료와 기술이 없어 능선 위에다가 고정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조금 아쉬웠다.
방어가 아닌 공격용으로도 쓸 수 있다면 정말 치명적인 공성 병기가 될 수 있을 텐데 설사 어설프게나마 바퀴를 만든다 해도 수백 킬로그램짜리 병기를 이동시키기엔 이곳은 길이 너무 험했다.
“여기서 저기까지 일렬로 좌르륵 설치하면 될 것 같은데 거성 씨 생각은 어때요?”
“네. 제가 생각해도 딱 맞은 것 같습니다. 목재와 바위를 가져오기도 용이하고 오크 진형 쪽으로 중간에 장애물도 없어 명중률도 조금이나마 더 오를 것 같네요.”
능선 위, 진지를 구축한 지점 가장 높은 곳에서 유거성이 오크 진형을 바라보며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드는 미소를 지었다.
짐작건대 이곳에 투석기를 설치하고 바위를 날리는 날을 상상하고 있는 듯했다.
“여기다가 투석기를 설치하기로 한 건가요?”
“네.”
유거성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권수정이 다가왔다.
“몇 대 정도 설치할 계획이세요?”
“일단은 열 대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나 많이요? 운용할 인력이 부족하지 않을까요?”
“투석기는 헬퍼들이 운용을 할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베이스캠프에서 열심히 훈련하고 있고요.”
투석기 10대.
필요인력 100명.
이번 전투에서 지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기에 헬퍼들이 먼저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길 원했다.
투석기를 헬퍼들이 운영을 하면 일선에서 전투할 헌터들이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었기에.
“헬퍼님들께서 먼저 이렇게 나서주시니 정말 고맙네요.”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해야죠.”
난 가만히 베이스캠프를 바라봤다.
황금색 들판을 차지하기 위해 헬퍼들은 물론이고 아직 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사람들까지 화살촉 하나, 투석기에 사용할 바위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 다 손을 보태고 있었다.
헌터와 헬퍼.
사람들은 더 이상 네 일 내 일을 따지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 돈을 벌기 위해서 몬스터 사냥을 하는 게 아니고 생존을 위해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을 하는 것이기에.
“그러면 여기다가 설치하는 걸로 하고 힐러 님께서 만들어 줄 것이 더 있습니다.”
“만들 거요?”
“네. 말뚝이랑 망치 그리고 빠루가 필요합니다.”
유거성이 능선 위에 자리 잡은 집채만 한 바위를 쳐다봤다.
“바위를 자르려는 건가요?”
“네. 전투가 시작되면 적어도 천 단위 이상의 바위를 날려 보내야 할 텐데 입맛에 맞는 크기와 바위를 찾아내서 수급하는 건 한계가 있을 것 같아서요.”
“그렇겠네요.”
나도 바위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만드실 수 있겠습니까?”
“모형만 있다면 문제 될 건…….”
“망치는 있는데 말뚝이랑 빠루는 모형이 없습니다. 힘드시겠습니까?”
유거성이 근심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바위를 쪼개기 위해서 말뚝과 빠루가 꼭 필요한 모양이다.
“아니에요. 원하는 모양이랑 크기 좀 도면으로 그려주세요. 한번 만들어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다시 한번 내가 실력 발휘를 해야 할 것 같았다.
* * *
쾅! 쾅!
뿌지직.
“와! 진짜 신기하네요. 바위를 이런 식으로 쪼개는 거였군요.”
“저도 보고 듣기만 했지. 해 보는 건 처음인데 다행히 생각보다 잘 쪼개지네요.”
소형 자동차만 한 바위 위에다가 어린아이의 팔뚝만 한 두께의 쇠말뚝 이십여 개를 일렬로 가지런히 해서 박으니 바위가 일자로 쭉쭉 갈라졌다.
보아하니 바위에도 나무처럼 결이 있는 듯했다.
“다들 보셨죠? 자! 이제 시작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시범을 본 헬퍼들이 말뚝과 망치, 빠루를 챙겨 흩어졌다.
그때부터였다.
열 개, 스무 개, 백 개…… 이백 개.
투석기를 만드는 곳 옆에 바위들이 쌓여 갔다.
“옛날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돌을 제작해 성벽을 만든 건가?”
난 가만히 작업을 하는 헬퍼들을 쳐다봤다.
다들 처음 해 보는 작업에 생소했지만, 바위가 쌓여 가며 손에 익고 있는지 점점 말뚝을 적게 박고도 바위를 쪼개 냈다.
“이제 싸울 일만 남은 건가?”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오크들의 진형을 쳐다봤다.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바삐 일하다 보니 어느새 결전의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투석기와 활.
지형적 이점을 이용해 적의 사정거리 밖에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무기들.
그 때문일까.
수십 배는 많은 오크와 싸워야 하는데도 전혀 두렵거나 무섭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