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투석기
헬퍼들이 나무틀을 만들 동안 난 나무를 손에 쥐고 화살촉 모형을 만들어나갔다.
뿌지직!
“젠장! 부성아, 나무 하나만 더 갖다줘.”
“네.”
화살대와 달리 화살촉을 만드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화살대와 연결할 홈을 파다가 계속 나무가 갈라지고 끊어지고 부서졌다.
‘하나면 만들면 돼.’
허나 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도전을 했다.
수십 개의 나무를 해 먹어도 딱 하나만 완성하면 되었기에.
제대로 된 모형 하나만 만들면 다음부턴 쇳물을 들이부어 대량생산이 가능했으니까.
“힐러 님, 나무틀 만들 재료랑 흙 퍼왔습니다.”
“오! 좋네요!”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네. 아주 훌륭해요.”
난 유거성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주조를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흙이었다.
마치 해변가 백사장에 있는 모래처럼 입자가 고와야 했고 거기에 끈끈한 성질까지 갖추어야 했는데 그렇다고 또 진흙처럼 너무 수분이 많아도 안 되어서 제법 애를 먹을지 알았는데 너무나 손쉽게 해결이 되었다.
나무를 골라오는 솜씨도 그렇고 흙마저 딱 알아서 찾아오니 칭찬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다.
“저 거성 씨.”
“네. 힐러 님.”
“나무도 나무지만 어떻게 이렇게 빨리 흙을 골라 올 수 있었던 거죠?”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유거성을 쳐다봤다.
“저희 헬퍼 중에 황토 집이랑 도자기 만드는 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있어서 수월하게 흙을 선별할 수 있었습니다.”
“아, 그랬군요. 정말 대단하신 분들이 숨어 계셨네요. 만약 그분들이 없었으면 아마 나무와 흙 찾는 데만 몇 주가 더 걸렸을지도 몰라요.”
“아, 아닙니다. 힐러 님이라면 저희가 없어도…….”
“그렇지 않아요. 저도 수박 겉핥기식으로 배운 것들이라 이렇게 빨리 나무와 흙까지 찾아내지는 못했을 거예요. 정말 감사드려요.”
“……너무 칭찬을 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유거성과 헬퍼들의 얼굴이 잔뜩 붉어져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판단하기엔 정말 큰 도움을 받고 있는데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듯했다. 아니 곤란한 상황에 빠진 자신들을 위해 일부러 내가 칭찬한다고 여기고 있는 듯했다.
마음 같아선 더 칭찬을 해 주고 싶었지만 이쯤에서 멈춰야 할 듯했다.
보아하니 저들도 나처럼 칭찬받는 거에 익숙지 않은 듯했다.
“그럼 저흰 스타킹 받아서 흙을 더 정제하고 있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유거성과 헬퍼들이 도망치듯 자리를 피해 나무 틀을 만들고 안에 흙을 털기 시작했다.
‘드디어 성공했네.’
기술직 헬퍼들이 흙을 정제하는 동안 난 모형을 완성했고 주조를 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
* * *
“힐러 님, 사람들이 너무 쳐다보는데요?”
“그러게요.”
능선 위에 있는 모든 헌터들이 모여 나와 유거성을 쳐다봤다.
다들 화살촉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구경을 온 듯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한테 관심을 받는 건 처음이었다.
아마 무대 공연을 하는 아이돌조차 이렇게 뜨거운 시선을 받아 본 적은 없을 것이다.
심지어,
“……제발 성공해 주세요.”
“……힐러 님만 믿을게요.”
몇몇 헌터들은 두 손을 모은 채 기도하듯 쳐다보는 사람마저 있었다.
“힐러 님, 이렇게 계속 꽉꽉 밟아 주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네, 잘하고 있어요.”
난 흙의 상태를 확인하며 계속 나무 틀을 채워 나갔다.
마지막으로 주형을 만들어 본 게 이십 년이 지났지만, 따귀 맞고 방망이질 당하면서 배운 것이라 그런지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난 최선을 다 했고 결과는 이제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옆으로 물러나세요.”
“네.”
난 유거성을 비키라 하고 오크들의 갑옷을 녹인 쇳물을 거푸집 안에 있는 모형 공동에 흘려보냈다.
“다 된 건가요?”
“네. 이제 쇳물이 식어 응고될 때까지 기다리면 돼요.”
“빨리 응고가 됐으면 좋겠네요.”
유거성의 이마와 손이 땀으로 흥건했다.
직접 작업을 총괄했던 나만큼이나 긴장하고 있는 듯했다.
십 분, 이십 분…… 두 시간.
스무 시간 같은 두 시간이 지나고 적당히 쇳물이 굳어 있을 것 같아 난 주형의 상판을 뒤집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이스! 화살촉이에요. 화살촉이 만들어졌어요.”
덥석.
유거성이 비명을 지르며 내 품에 안겨 왔다.
이십 년 만에 해본 것인데. 그것도 장비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열악한 상황에서 시도했는데 화살촉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38년을 사는 동안 지지리 복도 없더니 그동안 오지 않았던 행운이 한 번에 다 찾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온몸에 전율이 돋았다.
“힐러 님, 저, 정말 축하드려요.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혼자서 충분히 만드실 수 있으셨을 텐데 보잘것없는 저희까지 긴히 써주셔서. 이 은혜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흑흑.”
부비적부비적.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유거성이 마치 내 갈비뼈라도 부러뜨릴 기세로 날 끌어안고 비비적거렸다.
화살촉 만들기에 성공해 그동안 받았던 서러움이 한 번에 폭발한 모양이었다.
발키리 헌터들의 전투력을 좌우하는 화살촉을 만드는 데 단단히 기여했기에 이제 발키리 지휘부에서도 마냥 뻣뻣하게 굴 수는 없을 테니까.
“거성 씨.”
“네?”
“좋은 건 알겠는데 좀 떨어졌으면 좋겠네요.”
“……네.”
유거성이 얼굴이 잔뜩 빨개져 내 품에서 떨어졌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남자랑 하는 진한 포옹은 상황에 상관없이 그만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때,
“해용아, 정말 수고했다.”
“해용이 형! 전 형이 해낼 줄 알았어요.”
와락!
부비적부비적.
마치 유거성이 떨어지길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장지원과 이부성이 내 품에 안겨 왔다.
‘아, 진짜…….’
장지원의 뒤편에 권수정과 발키리 헌터들 그리고 헬퍼들이 얼싸안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게 보였다.
길드와 직급에 상관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이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부러웠다.
유거성, 장지원, 이부성.
이들만 아니었으면 나도 저기서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었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 * *
시범 제작에 성공한 난 헬퍼들의 도움을 받아 수백 개의 나무 틀을 만들었고 대량생산에 돌입했다.
슥삭슥삭.
슥삭슥삭.
그리고 그와 동시에 능선 위 곳곳에서 쇠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주조 작업으로 화살촉을 만들어 표면이 투박해 다들 돌에 비비며 날을 세우고 있었다.
“해용이 형, 헌터들이랑 헬퍼들 좀 쉬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게. 다들 왜 쉬지도 않고 저러고 있데. 저렇게 하다간 전투를 하기 전에 과로사로 쓰러지겠는데?”
난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헌터들은 물론이고 부상자까지 올라와서 화살촉을 가는 데 다들 여념이 없었다.
“형 때문이잖아요.”
“어?”
“형이 안 쉬고 계속 그러고 계시니깐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저러고 있는 거라고요.”
이부성이 입이 댓 발 나와 투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다들 왜 이렇게 열심히 하나 싶었는데 내가 범인이었나 보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알아서 쉬라고 전달 안 했어?”
“전달했죠. 근데 형이…….”
“알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그럼.”
난 기지개를 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람들을 쉬게 하려면 나부터 작업을 중단해야 할 것 같았다.
그동안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내가 쉬든지 말든지 일만 잘하고 있으면 아무도 신경을 안 썼는데 지금은 다들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으윽’
꽤 오래 앉아 있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온몸 뼈마디, 마디에서 비명을 질러 댔다.
허나,
‘좋네.’
몸은 힘들지 몰라도 백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눈치를 살피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얼굴엔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평생 남의 밑에서 일하다가 사람을 부리는 위치에 오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래서 남들 힘든 것만 생각했지. 내 몸 힘든 건 잊고 일을 한 듯했다.
“힐러 님, 이만 들어가 볼게요.”
“네. 수고하셨어요. 푹 쉬세요.”
“저희 들어가고 나서 또 일하기 없기에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작업을 멈추자 발키리 길드 헌터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인사를 하고 다들 막사로 걸어갔다.
굳이 가는 길이 아닌데도 대부분 내게 다가와 목 인사라도 하며 지나갔다.
‘다 살리고 말겠어.’
나현지와 윤다영 말고는 발키리 헌터들과는 접전이 없어 교류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 중의 한 명이라도 죽으면 왠지 많이 슬플 것 같았다.
더는 사상자는 생기지 않았으면 했다.
“한 번에 최대한 뒤로 오크들을 물러야 하는데…….”
권수정과 장지원이 알아서 하겠지만 난 다가올 전투에 대해 계속 고민을 했다.
화살촉을 만들며 야심 차게 준비하고 있지만 뭔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오크들이 방심하고 있어 어느 정도 성과는 기대하고 있지만, 과연 어디까지 뒤로 물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오크 진형 안에 보이는 갑옷과 방패. 그리고 목책이 계속 눈에 거슬렸다.
“힐러 님도 저와 같은 고민을 하고 계셨나 보네요. 갑옷은 그렇다 치고 방패랑 목책만 어떻게 해도 정말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텐데 아쉬워요.”
권수정이 내 옆에 다가와 한숨을 내쉬며 오크 진형을 바라봤다.
화살의 살상력을 올리기 위해선 저것들부터 처리해야 할 듯싶었다.
그동안 겪은 오크의 지능이라면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아마 우리가 넉넉한 화살을 보유한 사실을 알게 되면 오크들은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원거리 공격을 막는데 만전을 다 할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를 위해서라도 단 한 번에 최대한의 피해를 누적시킬 필요가 있었다.
“목책과 방패라…… 저것들부터 부숴버려야 할 것 같네요.”
“목책과 방패부터 부순다고요?”
“네.”
난 능선 위 곳곳에 깔린 바위를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저 바위를 굴리려나 본데. 그건 지난 전투에서 저희가 이미 해 봤어요. 오크들이 쳐들어왔을 때라면 몰라도 저기까지는 안 굴러가더라고요.”
“안 굴러가면 던지면 되잖아요.”
“저 무거운 걸 던진다고요? 아무리 태백산맥 길드 헌터 분들이 근력이 좋아도 그건 무리예요.”
“투석기.”
“네?”
“꼭 사람이 던질 필요가 있나요. 투석기를 만들면 되잖아요.”
“투석기요?”
“네.”
난 당황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권수정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화살촉도 만들었는데 투석기라고 못 만들 것도 없었다.
“여자들 보면 노란색 고무줄 한두 개씩 갖고 다니던데 그것 좀 모아서 갖다줄 수 있나요?”
“노란색 고무줄이요? 네, 알겠어요.”
권수정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투석기를 만든다고 해 놓고선 고무줄을 찾으니 당황스러운 모양인데 일단 내 지시를 따라 줬다.
화살촉을 만든 일로 조금 엉뚱한 지시를 해도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부성아.”
“네. 형.”
“넌 나무젓가락 좀 구해와 줘. 썼던 거라도 상관없어. 아 맞다. 병뚜껑도 하나 필요해.”
“네, 알겠어요.”
이부성도 내 지시에 군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