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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27화 (27/255)

27화. 황금색 들판

슈우웅 펑!

슈우웅 펑!

동이 트고 있는 새벽 아침.

게이트가 있는 방향 하늘에서 보라색 폭죽이 연이어 터져 올랐다.

박민정 부마스터가 일진 파티를 데리고 퇴각한 지 이틀.

조금 이르긴 하지만 헌터들의 육체 능력을 생각하면 게이트에 당도할법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박민정 부마스터가 퇴각에 성공한 건가?”

“아니요. 성공 신호는 보통 파란색을 사용해요.”

“그래? 그럼 보라색은 무슨 뜻이지?”

“글쎄요. 근데 제가 생각하기엔 좋은 의미의 신호는 아닌 것 같아요.”

이부성이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하늘을 쳐다봤다.

오랜 시간 헬퍼 일을 했던 그마저도 보라색 폭죽은 처음 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때,

“여기 계셨네요. 부마스터님이 빨리 능선 위로 올라오시래요.”

“……네.”

나현지가 사색이 되어 내게 달려왔고 난 부랴부랴 능선 위로 올라갔다.

짐작건대 지원을 부르기 위해 퇴각을 했던 이들에게 무언가 변고가 생긴 듯했다.

* * *

능선 위로 올라오자 발키리 길드와 태백산맥 길드의 지휘부들이 이미 모여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하나같이 침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라색 폭죽 뜻이 뭐기에 다들 이렇게 심각한 얼굴을 하고있는 거예요?”

“지원 요청 갔던 헌터 중에 두 명이 실패했다는 신호야.”

“실패요? 설마?”

“아마 둘 다 죽었을 거야.”

장지원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째 불안한 예감은 틀리질 않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여덟 명이 나갔잖아요. 그럼 나머지 여섯 명은 퇴각에 성공한 건가요?”

“아니. 퇴각에 성공했으면 파란색 신호탄을 쐈을 텐데 아직 한발도 보이지 않았어.”

“그럼?”

“신호탄을 쏠 겨를도 없이 목숨을 잃었거나 아니면 아직도 저 숲 어딘가에 고립된 것 같아.”

“끙…….”

장지원의 대답이 이어질수록 막사 안의 공기가 무거워지며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가 오고 가던 길이 막힌 것은 물론이고 적어도 수만 마리 이상의 오크들이 퇴로에 자리 잡은 것 같아.”

“수만 마리나 요? 폭죽 색깔로 그런 내용도 주고받을 수 있나요?”

“아니.”

“근데 왜 그런 판단을?”

“일진 파티는 발키리 길드 최정예 헌터들이니까.”

“……?”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레인저.

발키리 길드 헌터들이 산에서 강하다는 건 알고 있지만 난 장지원의 판단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해용아, 혹시 96년도 강릉 무장 공비 사건 알아?”

“네. 들어는 봤어요.”

“그때 북한 공작원 15명이 강원도 산악 지역에 숨어들었었는데, 우리는 군, 경. 예비군까지 합쳐 수만 명이 출동하고도 그들을 잡아내는 데 53일이나 걸렸어. 그리고 결국 한 명은 놓치고 말았고.”

“흠…….”

“발키리 일진 파티는 북한 공작원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육체 능력이 뛰어나고 산에 특화된 이능을 갖고 있어. 싸우는 것도 아니고 도망가는 것인데 이틀 만에 2명이 죽고 나머지 인원들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는 건 정말 어마어마한 인원이 이 숲을 둘러싸고 있다는 것 말고는 설명이 안 돼.”

“아…….”

난 장지원의 추가 설명을 듣고 나서야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전술 경험이 없는 나를 위해 실제 사건을 예로 들어주니 이해하기가 수월했다.

“그럼 어떡하죠? 이제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어진 건가요?”

“아니. 아직 속단하기는 일러. 발키리 길드 일진 파티라면 시간이 좀 걸릴지언정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 성공을 할 거야. 다만 지구로 돌아간다 해도 수만 마리나 되는 오크들을 뚫고 우리를 구하러 올 인력을 구하는 게 문제지.”

“구, 군대가 있잖아요?”

“글쎄. 과연 우리를 위해 정부가 군대를 투입해 줄지 모르겠네.”

장지원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No. 0001 늑대인간의 숲.]

3년 전 인천에서 처음 열린. 지금도 게이트가 유지되고 있는 곳에 투입되었던 연대 규모에 군인들의 사망으로 인해 그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몬스터 웨이브로 인해 군대가 출동하는 건 괜찮지만 게이트 내부로 진입하는 건 국민이. 아니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와 그들의 원망을 두려워하는 정부가 원하지 않아 했다.

지구에 게이트가 생겼을 때보다 던전으로 진입한 군인들의 사망으로 인해 언론은 물론이고 온 나라가 더 들썩거려 나도 기억을 하고 있었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결단해야 할지도 몰라.”

“결단이요?”

“어, 이대로라면 퇴각을 고려해 봐야 할 것 같아.”

“퇴각이요? 오크들이 그렇게 많다면서 지금 부상병들과 헬퍼들을 데리고 퇴각을 하자는 말인가요?”

“최악의 경우를 말하는 거야. 언제 올지도 모르는 지원을 기다리기엔 이곳의 겨울은 너무 혹독하거든.”

장지원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내 시선을 피했다.

그도 알고 있는 것이다.

헌터들은 어떨지 몰라도 이대로 퇴각하면 부상병들과 헬퍼들은 모두가 생명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걸.

“이곳으로 올 수 있는 게이트가 생기고 나서 3년 동안 오크의 숲으로 겨울에 레이드를 온 길드는 한 군데도 없어.”

“왜죠? 설마 날씨 때문에?”

“어, 맞아. 추워도 너무 춥거든. 눈도 엄청 내리고. 소변을 보면 소변이 나오다가 바로 살얼음이 낄 정도야.”

장지원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말로는 묻고 있는데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리고 동의를 구하는 뉘앙스였다.

“아무리 네가 낚시를 잘한다지만 그 추위에서 삼백 명이나 되는 인원을 먹여 살릴 순 없잖아.”

“하아…….”

나도 모르게 절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날씨가 그 정도로 추우면 수온도 같이 내려가기에 물고기도 지금처럼 잡기 힘들뿐더러 야생 동물 역시 자취를 감출 것이 자명했다.

그런데,

“힘들지?”

“힘들겠죠?”

막사 안의 사람들이 모두 날 쳐다보고 있었다.

“이대로 퇴각하면 부상병과 헬퍼들은 물론이고 헌터들 역시 생명을 장담할 수 없을 거예요. 십 프로. 정말 운이 좋으면 그 정도 살아남아 빠져나갈 수 있겠죠.”

장지원의 뒤를 이어 권수정이 입을 열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왜 다 절 쳐다보는 거죠? 설마 지금 저한테 결정하라는 건 아니죠?”

“죄송해요. 힘들 결정인지 알지만, 현재로선 힐러 님의 판단의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저희는 힐러 님이 여기 있자고 하면 그렇게 할 거예요. 다만 그렇게 되면 식량을…….”

권수정이 내 시선을 피하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이 생각해도 지금 하는 말이 염치가 없는 모양이었다.

발키리 길드 200명.

태백산맥 길드 60명.

지휘부에선 수백여 명의 목숨이 달린 결정을 나에게 떠넘겼다.

마치 어깨 위에 커다란 바위라도 올려진 것처럼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해야 하나요?”

“아니요. 아직 시간은 있어요.”

“그럼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난 반쯤 넋이 나간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앉은 자리에서 바로 결정을 하기엔 수백여 명에 목숨의 무게가 너무 무거웠다.

* * *

밖으로 나온 난 가만히 오크 진형을 바라봤다.

천 미터쯤 되려나.

모락모락.

희미하게나마 음식을 해 먹는 모습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오크들은 자리를 잡고 진형을 구축했다.

잔인한 결정을 앞둔 우리와 달리 오크들은 아주 편안하고 안락해 보였다.

“닭장 속에 닭이 된 기분이네.”

평온한 오크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 올랐다.

마치 우리가 올가미에 걸려 바동거리고 있는 사냥감처럼 느껴졌다.

“꾸륵?”

“설마 저놈 웃고 있는 건가?”

우연히 눈을 마주친 오크가 웃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만큼.

마치 궁지에 몰아넣고 우리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서 많이 본 풍경인데?’

오크 진형 뒤쪽에 모습이 왠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산맥.

그리고 그 중간에 황금색 물결이 넘실거리는 들판이 보였다.

“마스터.”

“어?”

“혹시 저기 보이는 노란색 풀 하나만 뽑아다 주실 수 있나요?”

“저기 오크 진형 뒤편에 있는 풀밭 말하는 거야?”

“네. 맞아요. 힘들까요?”

“왜? 괜히 고생하지 말고 지금 여기서 죽으라고?”

장지원이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아니 그게 아니라…….”

“농담이야. 당황하기는. 왜 저게 뭔데?”

“그게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왠지 저 풀을 제가 아는 것 같아서요.”

“흠…… 나는 힘들고 발키리 길드 헌터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그래요? 그럼 대신 부탁 좀 해 주세요.”

“……그래.”

장지원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권수정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이내,

“서지현.”

“네. 부마스터.”

권수정이 팔목에 차고 있던 노란색 팔찌를 옆에 서 있던 헌터에게 건네줬다.

통성명은 한 적 없지만, 권수정을 만날 때마다 늘 붙어 있던 헌터였다.

짐작건대 권수정의 참모쯤 되는 듯싶었다.

“혹시 내가 돌아오지 못하면 길드원들을 부탁해.”

“……부마스터.”

“윤미 언니 있잖아. 언니가 일어날 때까지만 버티면 돼. 너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그동안 고마웠고 더 잘해 주지 못해 미안했어.”

터벅터벅.

“……?!”

당황스러웠다.

가능할 것 같으면 뽑아다 달라고 한 건데 권수정이 마치 죽으러 가는 사람같이 대화를 주고받았다.

‘확실하지도 않은데…….’

덥석.

난 부랴부랴 뛰어가 권수정의 팔목을 잡았다.

“부마스터님, 위험하시면 꼭 확인할 필요 없어요. 제가 생각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풉!”

“풉!”

비장한 표정을 지었던 것도 잠시 권수정과 서지현이 날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걱정하시는 것 같아 장난 한번 해 봤어요. 고작 오크들 따위에게 뒤를 잡힐 정도로 약하지 않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다녀올게요.”

찡긋.

내게 윙크한 권수정이 마치 호러 영화에 나오는 귀신처럼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졌다.

“……이런 면도 있었네.”

난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권수정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봤다.

“언니가 힐러 님과 친해지고 싶은 모양인가 보네요.”

“네?”

“마음에 드는 사람한테만 저렇게 가끔 장난을 치시거든요.”

매번 아무런 말 없이 옆에 서 있기만 하던 서지현이 내게 다가와 먼저 말을 걸었다.

“다행이네요. 전 마음에 들어서.”

“네?”

“기술직 헬퍼들과 아직…….”

“그건…….”

“불편하시면 더 얘기하지 않을게요. 헌데 지금 발키리 길드 지휘부의 처사를 제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건 알고 있으면 좋겠네요.”

“……네”

난 차가운 기운을 풀풀 뿜으며 황금색 들판을 쳐다봤다.

발키리 길드 헬퍼 100명.

태백산맥 길드 헬퍼 10명.

이대로 퇴각하면 그들은 죽는다.

그냥 걷기만 하기도 힘든 길을 일반인들이 어찌 오크들마저 피해 달아날 수 있겠는가.

근데 이 와중에 기술직 헬퍼들과 반목하고 있는 지휘부의 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해용아, 근데 넌 저게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먹을 거요.”

“어?”

장지원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허나 난,

“오크들도 먹어야 살 테니까요. 단순히 우리를 사냥하겠다고 저 많은 인원이 온 것 같지는 않은 것 같아서요.”

꽤 높은 확신을 갖고 부탁을 한 것이다.

오크. 늑대, 블랙 앵거스, 멧돼지…….

이곳의 겨울이 혹독하다 해도 생명체가 살아 있다.

그 말은 겨울을 이겨낼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곰이나 뱀처럼 겨울잠을 잔다거나 아니면 따듯한 곳으로 계속 이동하면서 생활을 한다거나 하면서 말이다.

근데 지금 오크는 이곳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다른 이유가 있을 거라 여겨졌다.

그리고 그때,

“저기 돌아오시네요.”

“네.”

저 멀리 권수정이 돌아오는 게 보였다.

그녀의 손엔 노란색 풀이 한 다발이나 들려있었다.

“힐러 님, 혹시 이게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것이 맞나요?”

권수정이 잔뜩 상기 된 얼굴을 하고선 날 지그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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