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기술직 헬퍼들
-이렇게 해서 언제 끓일래? 화력 좀 올려줄까?
‘그게 가능해?’
-물론이지.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장작불을 쳐다보고 있던 카사가 빛으로 변하며 불길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내,
‘파란색으로 변하고 있어!’
방금 막 장작을 새로 집어넣어 끓는 둥 마는 둥 했던 사골 육수가 마치 용암처럼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사람들은 흔히 불이라 하면 붉은색을 연상하지만, 실제론 온도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을 갖고 있었다.
빨강, 노랑, 파랑, 보라색, 분홍, 주황…….
지금처럼 목재를 태웠을 땐 제대로 발화되지 않은 탄소 알갱이들로 인해 붉게 보여야 정상인데 카사가 스며듦과 동시에 마치 가스레인지 불처럼 파랗게 타오르며 더 강하고 균일한 화력을 자랑했다.
-몸 상태를 보니 대장장이 일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내 진가를 알아보는 거야?
카사가 신기하다는 듯이 날 지그시 쳐다봤다.
‘대장장이는 아니지만, 그 비슷한 공부를 했었거든.’
주조.
원형.
열처리.
취직하고 적성에 맞지 않아 1년 만에 관두긴 했지만 난 무려 3년이나 불과 금속에 관련된 공부를 했었다.
인천 기계 공고 금속 공학과.
지금은 그리 대단한 대우를 받지는 못하지만 내가 입학을 했을 때만 해도 웬만한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갈 성적이 나와야 들어갈 수 있을 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었다.
그래서 지금 카사의 능력에 대해 대단함을 누구보다 더 잘 알 수 있었다.
‘사골이나 끓이자고 쓰기엔 너무 과분한 이능인데?’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장작불을 쳐다봤다.
아무래도 난 여기서 음식만 하고 있을 운명은 아닌 듯했다.
운디네의 치료 마법에 이어 이제는 불의 정령 카사까지.
-동기화가 끝나면 지금보다 육체적 능력이 많이 상승하게 될 거야. 내가 시전할 수 있는 마법도 그에 상응하는 것들이고.
‘육체 능력에 마법까지?’
-저기 있는 인간들이랑 비슷해진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거야.
내가 의문스런 얼굴을 하자 카사가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태백산맥 헌터들을 쳐다봤고 붉은색 기운이 날 감싸왔다.
카사가 자신의 지식을 공유해 주는 것 같았다.
근력.
민첩.
체력.
지식.
지혜.
매력.
불 속성 친화력
물 속성 친화력
마법 방어력
.
.
.
‘이 많은 게 다 상승하고 있다고?’
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카사를 쳐다봤다.
이능을 각성한 헌터를 보면 보통 일정 분야에서 특화된 능력을 갖고 있는 듯했다.
태백산맥 길드 헌터들은 강한 힘과 맷집을 자랑했고, 발키리 길드 헌터들은 빠른 몸놀림과 눈으로 보이지 않는 거리에 있는 움직임까지 캐치 할 수 있을 만큼 감이 발달하여 있는 듯했다.
헌데 난 이미 치료 능력을 갖춘 것도 모자라 육체적 각성까지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다만 아직 미비해 내가 체감을 하고 있지 못하고 있을 뿐.
“부성아.”
“네?”
“형, 아무래도 살아야 할 것 같다.”
“……?”
이부성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장작불과 내 얼굴을 번갈아 쳐다봤다.
내가 너무 뜬금없게 말을 했나 보다.
“사실은 말이야…….”
난 이부성에게 그동안 내가 품고 있던 생각과 마음 그리고 카사에 대해 알려 주었다.
결혼을 포기했고. 사는데 그렇게 미련이 없었다고.
그래서 오크들에게 포위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의연할 수 있었다고.
근데 이제는 왠지 이대로 죽으면 많이 억울할 것 같았고 마음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욕심이라는 놈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예쁜 여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최고급 아파트로 이사를 하고 외제 차도 끌고 다니며 폼나게 살아 보고 싶었다.
던전에 들어올 때만 해도 나의 바람은 그저 막연한 희망 사항일 뿐이었지만 이제는 살아남아 위기를 극복하고 지구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현실이 될 수 있을 듯했다.
“축하드려요. 형. 제가 도울게요. 저도 이대로 여기서 죽기에는 많이 억울할 것 같거든요. 그리고 형한테 계속 이렇게 연이은 행운이 찾아오는 걸 보면 그렇게 될 것 같지도 않고요.”
이부성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런데,
“네 눈이 씁쓸해 보이는 건 내 기분 탓인가?”
“네? 제가 씁쓸해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고요?”
왠지 이부성의 눈이 슬퍼 보였다.
“어”
끄덕끄덕.
난 고개를 끄덕이며 지그시 이부성의 눈을 쳐다봤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지금 그의 눈은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같이 매일 당구를 치던 친구가 어느 순간 7급 공무원이 되어 돌아왔을 때.
나와 같이 평생 혼자 살 것 같은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술자리에 어여쁜 여자 친구를 데려왔을 때.
밥값 한번 계산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지지리 궁상을 떨던 친구가 로또 2등이 당첨되어 소고기를 사주었을 때.
.
.
.
나도 살면서 꽤 여러 번 그와 같은 표정을 지었던 경험이 있어 지금 그의 기분이 어렴풋이 짐작되었다.
“형,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제가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다는 거예요. 하하.”
이부성이 마치 속마음이라도 들킨 사람처럼 내 시선을 피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부성아, 형한테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부러우면 부럽다고 하고 짜증 나면 짜증도 좀 내도 돼.”
“……형.”
“솔직히 짜증 나지 않아? 하루 종일 붙어 있는데 계속 나한테만 이렇게 행운이 생겨서.”
“네. 솔직히…… 조금 씁쓸하기는 했어요. 형은 계속 이렇게 높아만 지는데 저만 계속 그 자리인 것 같아서…… 젠장! 죄송해요. 형을 정말 좋아하는데…… 저 진짜 나쁜 놈인가 봐요.”
이부성이 자책 어린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새롭게 생긴 나의 친구를 순수하게 축하해 주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실망스러운 듯했다.
허나,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형…….”
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이부성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미 그에게 마음을 빼앗긴 난 가식적인 축하 인사보다 이렇게 솔직한 속마음을 보여주며 투정 어린 행동을 보이는 게 더 기특하고 예쁘게 보였다.
화가 나도, 억울해도, 슬퍼도 항상 웃어야 했던 지난 삶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은 사회에 나가면 웃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부러움 같은 감정은 언젠가부터 가슴 속 깊은 곳에 묻어 버려야 했고 행여나 튀어나오려고 하면 그걸 숨기려다가 오히려 죄책감이 먼저 찾아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원초적인 감정인데 말이다.
난 부성이가 나처럼 사회생활에 찌들어 자신의 감정조차 속여야 하는 삶을 사는 걸 원치 않았다.
내가 그린 나의 편안하고 안락한 미래에 그는 내 옆자리에 있게 될 테니까.
“부성아, 네가 좀 못되게 군다고 해도 내가 널 미워할 일은 없을 거야. 그러니 앞으로는 형한테 네 감정도 다 솔직하게 보여줘. 그래야 형이 실수하는 일이 생기지 않지.”
“실수요?”
“형도 사람인데 마냥 네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하지는 않을 거야. 근데 그런 상황이 와도 네가 계속 웃고 마냥 따르기만 하면 난 알 수가 없잖아. 그리고 그런 게 하나, 두 개 쌓이면 언젠가 터지게 될 수도 있고. 지금 저 사람들처럼.”
“아…….”
이부성이 내 시선을 따라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베이스캠프 구석에 삼삼오오 모여 눈치를 보는 발키리 헬퍼들.
그들은 마치 가시방석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처럼 불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와 자기들끼리 퇴각을 하자니, 오크들이 두렵고 여기에 마냥 있으려니 사람들의 시선이 따가운 모양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들도 만약 내가 지금 하는 얘기처럼 평소 자신들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그대로 보여줬으면 어땠을까 하고.
그럼 적어도 상처는 생겼을지언정 곪지는 않았을 테고 이런 상황에 터지지는 않을 듯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더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아야 할 테니까.
“진짜 걱정이긴 해요. 다 같이 으쌰으쌰 해도 모자랄 판에 헬퍼들이 계속 길드 탈퇴를 하겠다고 어깃장을 부리고 있나 보더라고요.”
“아직도?”
“네. 다른 데는 지휘부랑 화해한 모양인데 기술팀 헬퍼들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에요.”
이부성이 조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내게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헬퍼들의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김성준 헬퍼가 이끄는 요리팀 회유.
최유라 헬퍼가 이끄는 의료팀 회유.
배상우 헬퍼가 이끄는 해체팀 회유.
허나 유거성이 이끄는 기술팀 헬퍼들에겐 여전히 적대적으로 대하고 있는 듯했다.
“어느 한쪽에서 좀 양보를 하고 타협의 의지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발키리 지휘부에서도 굳이 싫다는 사람들과 함께 할 생각은 없나 보더라고요.”
“하아…….”
이부성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상황이 참 공교롭게 됐다.
사람이 배신감을 느낄 때만큼 치졸해지는 경우도 없었다.
비록 남아서 진지를 구축해 오크들을 막아 냈다 하더라도 지휘부의 머릿속엔 여전히 사람들을 선동해 저들이 떠나려 했던 사실이 머무는 모양이었다.
“이제 아쉬울 게 없다는 건가?”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발키리 길드 헬퍼들을 둘러봤다.
저녁 준비하고 있는 요리팀.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의료팀.
전장에서 수거한 오크들의 사체에서 코어와 부산물을 추출하고 있는 해체 팀.
할 일이 없어 구석에 모여 눈치를 보고 있는 유거성을 필두로 한 기술직 헬퍼들과 달리 다른 헬퍼들은 다들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제가 좀 늦었죠. 식사하세요.”
“힐러 님…….”
“미안해요. 더 일찍 갖다주려고 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고요. 그 대신 옐로 아이까지 넣고 푹 끓였으니 기다린 만큼 맛과 효능은 확실할 거예요.”
“가,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유거성과 기술직 헬퍼들에게 사골 국물을 나누어주니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그릇을 건네받았다.
함께 하기로 했던 동료 헬퍼들마저 등을 돌리니 밥 먹는 것조차 눈치가 보이는 모양이었다.
“저희한테 너무 잘해 주지 마세요. 괜히 힐러 님까지 미운털이 박힐까 염려되네요.”
유거성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얼굴을 보아하니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하고 많이 후회하고 있는 듯했다.
만약 시간만 되돌릴 수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잘해준 적 없어요. 전 여러분이 남아 있게 된다면 식사를 책임지기로 약속했고 그걸 지키는 것뿐이에요.”
난 유거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처음 짐꾼으로 따라왔던 나였으면 몰라도 이곳에서 지금 내게 눈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 난 헬퍼의 자리에 있었지만, 직책만 그럴 뿐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난 영향력이 달랐다.
게다가 난 이들을 남게 하는 데 일조했기에 이들을 챙겨야 할 책임도 있었다.
“해용이 형 다 나눠 줬어요. 저희도 가서 밥 먹을까요?”
“여기서 먹자.”
“형…….”
“그냥 여기서 먹어.”
“……네.”
내가 유거성 옆에 엉덩이를 붙이자 이부성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내 옆에 앉았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들과 어울리는 게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이럴 때 보면 그도 아직 나이 어린 티가 났다.
나라고 이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편하겠는가. 나도 솔직히 이들이 그렇게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허나 마음이 그럴 뿐 몸은 반대로 움직였다.
가장 낮은 위치에서 오랜 시간 직장 생활을 했던 경험 때문인 듯했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항상 마음에 맞는 사람하고만 일을 할 수는 없는 법이다.
게다가 똘기 보존의 법칙이라고 어느 직장에 가도 고문관들이 한 명씩은 있기 마련이었고.
근데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멀리하고 반목하면 나만 피곤해지는 법이었다.
성격이 안 맞고 가끔은 불쾌하게 굴 때가 있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길 마련이고 그때마다 등을 돌린다면 아마 지금 내 주위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살면서 정말 많은 실수를 했으니까.
“저 힐러 님.”
“네?”
“……저희가 공사를 이어가도 될까요?”
식사를 마친 유거성이 태백산맥 섹터를 바라봤다.
오크들의 침공으로 공사가 중단된 통나무 숙소와 건조장.
오크들을 막아 내기 위해 다들 바삐 움직이고 있는데 밥만 축내고 있기가 미안한 모양이다.
그리고 유일하게 자신들을 외면하지 않고 있는 내게 무언가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마음이 편해질 것 같으면 그렇게 하세요.”
“가, 감사합니다.”
난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머리가 복잡할 땐 오히려 몸을 고생시키는 것도 괜찮았다.
지금처럼 눈치를 받으며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게 나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