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눈물의 김치찌개
‘엄마 보고 싶다.’
주르륵.
안해용이 끓여준 김치찌개를 먹던 유거성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 엄마도 김치찌개 잘 끓였는데…….’
한 입, 두 입.
유거성은 마치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마냥 눈물을 흘리면서도 계속 김치찌개를 입에 집어넣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소현이 오만 원 주고 올걸…….’
이제 와서 후회가 되었다.
친구들이랑 패밀리 레스토랑에 간다며 오만 원만 달라고 했던 여동생을 구박만 하고 들어 온 것이.
하나뿐인 오빠가 돈 벌겠다고 던전에 들어오는데 친구들이랑 논다며 용돈을 달라고 하는 게 그때는 왜 그렇게 꼴 보기 싫었을까.
‘나쁜 년들 누가 진짜 도망가고 싶어서 그런 거냐! 무서워서 그런 거잖아. 무서워서!’
유거성은 서러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발키리 헌터들을 바라봤다.
정말 나 혼자 살겠다고 반항을 한 것이 아니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엄마한테 사랑한다고 말 한번 해 본 적이 없는데.
스물여덟.
군대를 제대하고 매일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술만 먹고 돌아다니다 이제야 돈 좀 벌어서 사람 구실을 하려고 하는데.
자신과 달리 공부를 잘하는 똑똑한 여동생 대학교에도 보내 줘야 하는데.
할 일이 너무, 너무 많은데 이렇게 땅이나 파다가 오크들에게 죽을까봐 그게 무서웠다.
위로가 필요해서 투정을 부린 것인데.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가 있다고.
그 말이 듣고 싶었던 건데.
‘헬퍼님들을 고용할 때 저희는 이런 상황까지 대비해 충분한 페이를 지불했어요.’
기껏 돌아온 대답은 그의 가슴을 더 후벼 파는 말이었다.
선민의식.
저들은 모를 것이다.
겉으론 존중하는 것 같지만 무의식중엔 계속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고 은연중에 그걸 티를 냈다는 걸.
돈을 주고 고용한 사람들.
고용인과 피고용인.
고작 그 정도 사이였다.
그런데 내가 왜 저들을 위해 내 귀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건가.
퇴각하면 살 수 있는데.
벌써 열 번도 넘게 오고 갔던 길이다.
헌터들이 없어도 헬퍼들 인원만 많다면 오크들을 피해 얼마든지 빠져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시발 발이 안 떨어지는 건데!’
그는 마치 발이 땅에 박힌 사람처럼 일어나지를 못했다.
‘이 와중에 이게 왜 이렇게 맛있는 건데!’
어느새 김치찌개에 밥그릇을 비운 유거성은 수육을 입에 집어넣었다.
집에서 자고 있으면 모질게 구박하고 못살게 굴며 깨워 김장을 도와 달라고 했던 어머니.
그러고 나서 먹었던 김장 김치와 함께 먹었던 수육.
눈을 감으니, 마치 던전이 아니라 집 마당에서 수육을 먹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맛이 너무 좋았다.
“왜 나를 보고 그렇게 웃고 있는 건데요!”
유거성은 원망스런 표정을 지으며 안해용을 쳐다봤다.
저 사람 때문이었다.
떠나야 하는데. 떠나야 살 수 있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은 이유를 찾아냈다.
경멸스런 눈빛으로 쳐다보는 발키리 헌터들보다 지금 그는 안해용의 웃는 얼굴이 더 아팠다.
다 이해한다는 얼굴로 헬퍼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고 있는 안해용.
자신과 같이 가장 낮은 곳에서 일하는 헬퍼로 들어온 사람.
근데 그는 각성했고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이능이 생겼다. 그런데도 그는 매일 아침에 일어나 낚시를 했고 밤새며 헌터들을 치료하고 나서도 자신들과 함께 진지 공사마저 했다.
잠시 허리를 펴는 것조차 미안해 헬퍼들의 눈치까지 살피며.
안해용은 모르겠지만 헬퍼들은 모두 그를 알고 있었다.
다들 한 번쯤 꿈꾸었기에.
이렇게 던전에 들어와 계속 생활 하다 보면 언젠가 자신들도 각성하지 않을까 하고.
1층에 편의점이 있는 건물을 사고.
비싼 외제 차를 타고 드라이브도 하고.
그동안 자신을 무시했던 헌터에게 찾아가 시원하게 욕도 한번 해 보고.
헬퍼라면 누구나 헌터가 된 자신을 한 번쯤 꿈꾸었을 것이다.
근데 안해용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분명 자신들과 같은 아픔과 서러움을 갖고 있을 텐데 그는 각성해 놓고도 한결같았다. 아니 각성한 이후에도 그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지금 바로 일어나 떠난다 해도 발키리 헌터들에겐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 선 떠날 자신이 없었다.
그러기엔 지금 먹고 있는 김치찌개와 수육이 너무 맛있었다.
1년 넘게 발키리 길드 헬퍼로서 월급을 받고 수당을 받고 특별 선물까지 받아 봤지만, 나 혼자 살겠다고 떠나겠다고 하는데도 밥 먹고 가라며 준 김치찌개와 수육이 더 눈물 나게 고마웠다.
* * *
“쯧쯧. 그래도 양심은 있는 인간들이었나 보네요. 눈물을 흘리는 걸 보면.”
이부성이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헬퍼들을 쳐다봤다.
이미 미운털이 잔뜩 박혀서인지 우는 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악어의 눈물.
이부성이 보기엔 헌터들이 흘리는 눈물조차 거짓처럼 보이는 듯했다.
“착한 사람들이야. 다친 동료들을 버리고 떠날 독할 마음을 갖고 있었으면 애초에 이곳까지 와서 일하고 있지도 않았을 거야.”
“그전엔 어떻게 살았는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잖아요.”
“그렇지. 저런 눈물을 머금고 떠날 독기와 용기가 있다면 남은 인생은 좀 더 윤택한 삶을 살 수 있겠지. 그래서 이제 확인 해 보려고.”
아버지가 그랬다.
이별할 때 눈물을 흘렸던 여자는 절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리고 반대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곁을 지켜준 여자는 평생을 함께하게 될 거라고.
난 헬퍼들이 식사를 마친 걸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유거성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맛있게 드셨어요?”
“네.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행이네요. 근데 떠날 때 떠나더라도 설거지는 좀 하고 갔으면 좋겠는데 그래 줄 수 있나요?”
“네?”
“어려운가요? 그쪽들이 다 떠나면 우리끼리 이 많은 걸 닦아야 하는데 너무 많아서요. 마지막으로 이 정도는 해 줄 수 있지 않나요?”
“……?”
유거성이 당황스런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뭘 봐. 인마.
먹었으니 닦으라는 거잖아?
“하고 싶은 말이 그게 전부인가요?”
“흠……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전부인데. 만약 설거지하면 내일 아침도 근사하게 차려 줄 용의는 있어요.”
“무슨 뜻이죠? 이깟 밥 한 끼 해 주고 저희를 설득하려는 건가요?”
“설득하면 넘어오긴 하나요? 전 그냥 이제 해도 지고 해서 위험할 것 같아서 제의한 건데?”
“흠…….”
유거성의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
고민이 되는 모양이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전 인간의 활력을 높여주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어요.”
“옐로 아이를 말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설거지를 하면 내일 아침은 그걸 잡아서 뜨끈한 탕을 끓여 줄게요. 그걸 먹고 가면 지금 가는 것보다 체력적으로 훨씬 도움이 될 거예요.”
“정말 계속 우리를 돕겠다는 건가요? 당신은 우리가 밉지도 않나요?”
얘기가 잘 통하는 것 같더니만. 갑자기 유거성이 정색을 하며 언성을 높였다.
“밉긴 하죠. 당신들이 남아 있으면 제가 살 가능성이 커질 테니까. 근데 전 당신들보다 당신들을 따라가지 못하는 제 자신이 더 미워요. 인간은 누구나 다 자신의 목숨이 귀한 법이고 저도 밖으로 나가면 가족이 있어 머리는 당신들을 따라가라고 하는데 이놈의 마음이 말을 듣질 않네요.”
“하아…….”
유거성이 내 시선을 피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하는 말 다 진심인 거죠?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저흴 돕겠다는 거 맞죠?”
“제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나요?”
“아니요. 진심인 것 같습니다. 설거지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요.”
유거성이 굳은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희들은 어떻게 할 거냐?’
난 우리 둘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있는 헬퍼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쳤고 이내 다들 유거성을 따라서 주방으로 걸어갔다.
“형, 진짜 옐로 아이를 잡아서 내일 아침밥까지 차려 주실 거예요?”
“그래야지. 든든히 먹어야 공사를 재개할 수 있을 테니까.”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제가 듣기엔 분명…….”
“남을 거야.”
“네?”
“남을 거라고. 저 사람들. 저렇게 마음이 약해선 절대 못 떠나.”
난 주방으로 몰려가 설거지를 하는 헬퍼들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나라고 여기 있고 싶어서 있겠는가.
나도 머리로는 태백산맥 헌터들을 설득해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근데 마음이 말을 듣질 않는데 어떡하겠는가.
착하고 나쁘고를 떠나서 마음이 약한 것이다.
마음이 너무 약해 다친 사람들을 버리고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간다 해도 행복하게 살 자신이 없었다.
아마 악몽을 꾸다 못해 정신 병원에 입원할 수도 있었고 혹여나 지원이 와서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난다면 밤길이 무서워서 밖에 나다니지도 못할 수도 있었다.
만약 내가 발키리 길드 헌터들이라면 괘씸해서라도 어떤 식으로든 응징을 내릴 것만 같았기에.
그리고 내가 보기엔 저들 역시 나처럼 아주 약한 인간들이었다.
* * *
설거지를 마친 헬퍼들이 삼삼오오 모여 쭈뼛거리며 내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막상 당장 퇴각이라도 할 것처럼 내려와 놓고선 저녁밥을 먹고 밤까지 지새우려니 뻘쭘한 모양이다.
“저 거성 씨.”
“……네?”
“거 어색하게 그러고 있지 말고 우리 차나 한 잔 하고 운동도 할 겸 올라가서 공사 좀 할까요?”
“저희는 분명 내일…….”
“네. 알아요. 안 잊어버렸어요. 내일 아침에 떠날 때 떠나더라도 그간 정을 봐서 오늘 저녁에 공사 정도는 해 줄 수 있는 거잖아요? 사람이 백 명이나 돼서 몇 시간만 도와줘도 남아 있는 사람들한테 큰 도움이 될 겁니다.”
“흠…….”
유거성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헬퍼들을 둘러봤다.
어떻게 할 건지 묻고 있는 것이었다.
끄덕끄덕.
유거성과 눈을 마주친 헬퍼들이 조그맣게 고개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럼 취침 전까지만 돕겠습니다. 그리고 저흰 잠을 자고 내일 아침 떠날 겁니다.”
“네. 알았어요. 고마워요. 장비는 위에 다 있으니 그럼 바로 가시죠.”
“……네”
난 빙그레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능선으로 올라갔다.
내일 아침에 떠나긴 퍽 그럴 수 있겠다.
“형님,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이부성이 당황과 놀람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날 지그시 쳐다봤다.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너도 봤잖아. 밥 해 준 게 다야.”
허나 난 해 줄 말이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기에.
선택은 이들이 한 것이었다.
난 그저 저들에게 내 모습을 보았고 저들이 만약 퇴각을 결정한다면 정말 무사히 잘 빠져나가길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그때,
“저흰 더이상 발키리 길드 헬퍼가 아닙니다. 저희가 도우려는 건 오로지 힐러 님 때문입니다.”
유거성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말이 흘러나왔다.
“흠…… 고맙긴 한데 전 여러분들의 노동력에 대한 금전적인 보답을 할 능력이 안 되는데 어떻게 하죠?”
“보답은 이미 받았습니다. 근사한 저녁을 얻어먹었으니 그걸로 대신하죠.”
“그럼 밥만 먹여 주면 지금처럼 계속 일을 해 주시겠다는 건가요?”
“그게 무슨 말이죠? 저흰 분명 내일 아침 식사를 하고 떠난다고…….”
“아, 그니까요. 내일 아침에 떠나는 건 아는데 사람 사는 게 모르는 일이잖아요. 혹시라도 내일 점심까지 남아 있게 된다면 어떻게 하냐는 거죠.”
“흠…… 절대! 절대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라도 점심까지 남아 있게 된다면 밥값으로 대체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휴우.”
난 유거성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길드 탈퇴.
발키리 길드 소속도 아닌데 진지 공사는 돕고 있고, 상황이 조금 애매하게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