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군사
세 시간 정도 걸었을까.
발키리 길드 지휘부는 남은 헌터와 헬퍼들을 모아 베이스캠프 옆 숲에 위치한 산 정상으로 데리고 왔다.
허나 난,
“반대쪽으로 더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왜 이곳에 진지를 구축하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짜 사생결단이라도 내겠다는 건가?”
“해용이 형,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기서 자리를 잡으면 유리한 전투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 번만 밀려도 뒤가 없어. 그리고 전면전을 벌이다 보면 무조건 사상자가 생기기 마련이고.”
“헐…… 그게 딱 보면 보여요?”
이부성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어. 군대에서 이런 일을 했었거든.”
“저도 군대를 다녀오긴 했는데 그런 걸 배운 적은 없는데? 특수부대에서 복무하셨어요?”
“아니 후방에 있었어. 예비군 부대에.”
“네?”
이부성이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후방에서 근무했다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무시를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내가 마치 전문가라도 되는 것마냥 얘기를 하니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듯했다.
아무래도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
대전에 있는 77사단. 향토 예비 부대.
내가 2년 2개월 동안 군 생활을 했던 곳은 이부성의 예상대로 예비군 조교 업무를 하며 비교적 몸이 편한 곳이었지만, 반대로 사단급 이상의 훈련을 하고 나면 몸이 편한 만큼 정신적으로 엄청 피곤한 부대였다.
전쟁 시 부대의 임무가 부산으로 들어온 미군이 안정적으로 수도로 진격할 수 있게 진격로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었는데 훈련 시 북한 특수부대를 가장하여 한국의 특전사들이 우리의 위수 지역에 침입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다리와 같은 중요 거점에 폭파 딱지라도 하나 붙으면 다음 훈련이 있을 때까지 부대는 지옥으로 바뀌었다.
훈련에 실패했으니 장교들의 고가가 떨어지는 것 때문에 그러는 것도 있지만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후방에서 근무를 하고있는 장교들 역시 은연중에 무시를 당하기에 특전사 부대랑 경쟁하다 지는 걸 죽기보다 더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특전사들 역시 후방 부대 경계조차 뚫지 못하면 치욕으로 생각해 혈안이 되어 훈련에 임했고.
그래서 가끔은 진지에 숨어들어온 특전사들과 치고받는 격투를 벌일 때도 있었다.
물론 승자는 항상 특전사들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우리와 훈련의 강도도 틀렸고 장비도 격을 달리해서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야간 투시경 같은 것들은 둘째치고 미친놈들이 진짜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훈련을 하는데 한겨울에 얼어 있는 강을 깨서 물밑으로 잠수를 해서 들어가 다리에 폭파 딱지를 붙이는데 우리가 어떻게 막겠는가.
허나,
“나 군대에 있을 때 별명이 제갈해용이었어.”
50년이 넘게 패배를 일삼았던 우리 부대는 내가 분대장이 되고 제대를 할 때까지 단, 한 번도 딱지를 붙이는 데 성공한 적이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침투를 허락해 놓고 일개 병사 하나 때문에 그게 바뀌었다고요?”
내 얘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이부성이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남자들이 군대 얘기를 하다 보면 허풍이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라 나도 그러고 있다고 의심을 하는 듯했다.
“내가 중대장에게 건의해서 진지를 새로 구축하자고 했거든.”
“진지를 새로 구축하자고 했다고요?”
“어. 적의 눈을 피해 중요 지형을 지키려고 만드는 게 진지인데 수십 년 동안 같은 곳에 자리를 잡고 지키고 있으니 특전사 애들도 우리가 어디 숨어 있는지 다 알고 있었거든. 그래서 매번 몰래 침투할 수 있었던 거고.”
“아…….”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이부성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중대장에 재가를 받은 난 군부대 상근 열 명을 차출 받아서 전술 지도에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위치를 정해 진지를 만들었다.
시골 마을 특성상 어려서부터 산이랑 들을 뛰어다니며 놀고 다녔던 상근들은 군 지휘관보다 위수 지역의 지형을 잘 알고 있었고 특전사들이 침투할 만 곳도 더 잘 캐치해 냈었다.
오십 개.
진짜 많이 신축하지도 않았다.
기존에 있던 진지를 가진지로 위장하고 오십 개를 신설했을 뿐인데 우리 부대 위수 지역은 뚫리지 않는 요새가 되었고 내가 제대를 하고도 특전사들은 내가 소속되어 있던 연대가 아닌 다른 연대로 침투를 했다고 한다.
“정말 신기하네요. 진지 몇 개 더 만들었다고 그런 일이 가능하다니.”
“단순한 진지가 아니었지. 우리 부대는 그 진지들 때문에 그 지형을 완전히 우리 것으로 만들었으니까.
헌터는 센터다. 라는 말 들어봤지?”
“그건 게임 할 때 쓰는 말 아니에요?”
“어. 맞아. 근데 지형만 잘 잡으면 마린 한 부대로 수백 마리의 저글링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현실도 크게 다르지 않았거든. 지금도 마찬가지야. 천여 마리의 오크들이 몰려오고 있다곤 하지만 지형만 잘 이용하면 사상자 없이 막아 낼 수 있을지도 몰라.”
“흠…… 그럼 형님이 보기엔 여기는 아니라는 거죠?”
“어.”
난 이부성을 보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그래서 힐러 님은 어디에 자리를 잡길 원하는 건가요?”
“그러니까. 정작 알맹이가 빠졌네. 하던 얘기 계속해봐.”
어느새 장지원과 발키리 길드 부마스터 권수정마저 다가와 내 얘기를 듣고 있었다.
내가 너무 얘기에 몰두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기척을 숨기고 온 것인지 뒤에 사람이 온 지도 모르고 있었다.
내 얘기가 제법 설득력이 있었는지 두 사람의 표정을 보아하니 내가 말만 하면 바로 자리를 옮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지휘부에서 고민하고 정한 위치인데 제가 어찌…….”
“그런 이유라면 망설이지 않으셔도 돼요. 창피하지만 지휘부에 힐러 님보다 더 지형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까요. 애초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오크들 따위가 만든 함정에 빠지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끙! 그럼 조심스레 제 의견을 말해 보자면…….”
난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산을 오르며 보았던 위치와 어떻게 진형을 짜야 하는지 설명을 해 주었다.
“장지원 마스터님. 들으셨죠. 죄송하지만 병력을 다시 이동시켜야 할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안해용 힐러 님. 의견이 있으시면 망설이지 말고 지금처럼 바로 말씀해주세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안해용 힐러 님이 말하는데 그걸 가벼이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래도 되는 건가요?”
“물론이죠. 헬퍼 팀에 소속되어 있지만 힐러 님은 이미 그 이상의 위치에 있는 분이에요. 외람된 말이지만 힐러 님께선 자신의 위치에 대해 조금 더 자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요.”
“……네”
나의 위치라…….
듣기는 좋은데 뭔가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 * *
“저쪽은 경사가 높으니 아예 방책을 세워 길을 차단하고 이쪽에 망루랑 진지를 만들면 될 것 같아요.”
난 올라오면서 봐둔 곳에 도착해 반원 모양으로 진형을 여러 개 짜서 진지 자리를 정해 주었다.
“흠! 이렇게 하면 인원이 너무 분산되지 않나요? 그리고 맨 앞줄에 자리 잡은 헌터들은 너무 위험할 것 같은데…….”
“맨 앞줄은 가짜 진지에요. 소규모 병력이 쳐들어올 땐 그냥 싸우고 만약 감당하지 못할 규모의 적이 쳐들어오면 바로 후퇴해서 뒤쪽에 있는 진지로 합류를 하는 방식이에요.”
학인진 전법.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왜군을 섬멸할 때 펼쳤던 진으로 학의 날개 형태를 닮아서 학익진 전법이란 이름이 붙었다.
처음엔 가로로 길게 늘어서 있다가 적의 수가 많으면 뒤로 후퇴하는 척 적을 가운데로 몰아 격파시키는 방법이었다.
언뜻 보기엔 단순한 방법 같지만, 이순신 장군의 학익진에 빠져 전투를 패배한 왜군들은 300년이 지나서야 패전의 원인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서도 학인진은 교범으로 나올 만큼 과학적으로도 우수함을 증명했고.
너무 널리 알려진 전법이라 인간 대 인간의 전투에선 금방 간파가 되겠지만 상대가 오크라면 충분히 써 볼만한 진법이었다.
나무와 돌로 장애물을 만들고 지형지물을 잘만 이용한다면 오히려 수적으로도 유리한 전투를 유도할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하네요. 힐러 님 계획대로 된다면 오크들이 아무리 많아도 전투를 할 수 있는 지형이 한정되어 있어서 뒤에 있는 오크들은 멍을 때리게 되고 기껏 들어온 오크들도 집중 공격을 받게 되겠네요.”
권수정이 내 말을 이해했는지 감탄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그리 대단한 진법은 아니에요. 역사에 관심만 있으면 누구나 다 아는 것들이에요.”
“끙…… 부끄럽네요. 전 이런 쪽엔 전혀 문외한이거든요.”
너무 칭찬해서 겸손을 부렸는데 오히려 권수정의 얼굴이 더 붉어졌다.
육체 능력이 뛰어나고 몬스터 사냥 경험은 더 많을지 몰라도 역사, 아니 전술에 관한 공부는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국민학교 사회시간에도 나오는 건데…….’
요즘은 어떨지 모르는데 내가 국민학교, 아니 초등학교에 다닐 땐 국, 영, 수 과목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 가르쳐주시곤 했었다.
최춘단 선생님.
그때 담임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 역사는 침략의 역사고 역사를 잊은 후손에겐 미래도 없다고.
그런 가치관을 가진 분이라 그런지 담임 선생님께서는 평균 점수가 90점이 넘어, 우수 상장을 받은 아이들보다 비록 국, 영, 수는 50점대를 받았을지언정 사회만은 늘 100점을 받은 나를 유독 예뻐해 주곤 했었다.
“힐러 님이 계셔서 정말 큰 힘이 되네요. 사실 마스터도 부상 때문에 부재중인데 잘 막을 수 있을지 혼자 속앓이를 했거든요.”
“아…… 네.”
“힐러 님이 얘기한 대로 공사를 시작할 테니 앞으로도 의견이 있으시면 기탄없이 말씀해주세요.”
“……네.”
난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발키리 부마스터 권수정.
정식으로 직책이 내려지진 않았지만, 그녀는 현재 발키리는 물론이고 태백산맥 길드의 병력 지휘권까지 가진 총사령관이었다.
“모두 공사 시작하라고 해.”
“네. 마스터.”
권수정의 명령에 백여 명이 넘는 헌터와 헬퍼들이 몸을 움직였고 정작 그녀는 내 생각과 판단 아래 움직이고 있었다.
‘진짜 군사라도 된 기분이네.’
제갈해용.
군대에선 후임병들이 반쯤 우스갯소리로 만들어준 별명이었는데 지금 왠지 내가 진짜 제갈공명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크크.”
“해용이 형?”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나왔다.
땡보중의 땡보.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 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캐릭터였다.
싸움은 관우와 장비랑 장수들이 다 하고 그는 가만히 앉아서 안전하게 머리만 굴리면 되었기에.
군주인 유비조차 그의 말을 잘 따랐고.
‘함 노려봐?’
몬스터와 직접 싸우는 걸 꺼리는 나로서는 권력은 권력대로 가질 수 있고 전면에 나서지 않아도 되니 정말 매력적인 직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