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농사짓는 영주님-19화 (19/255)

19화. S급 전장의 성자

「아쿠아 워터

……대상의 회복력을 극대화시킨다.

1단계 정령 마법.

소모 정령력 15」

빛이 머무름과 동시에 마치 원래 알고 있던 기억처럼 운디네의 지식이 공유됐다.

-이제 몸이 제법 정화돼서…….

“설명은 나중에 듣는 걸로 하고 일단 치료부터.”

난 부랴부랴 다시 막사로 뛰어 들어갔다.

굳이 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깨어 있을 때는 물론이고 잠자는 시간마저 역한 냄새가 나는 땀을 흘리면서부터 내 몸에 무언가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운디네, 어서!’

-알았어.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이 막사 안에 가득 맺히기 시작했다.

“으음…….”

‘치료가 되는 건가?’

물방울이 스며들 때마다 침상에 누워 거친 숨소리를 내뱉던 헌터들의 호흡이 조금씩 편안해지기 시작했다.

파리했던 안색도 조금씩 황토색으로 변해 갔고.

-일단 숨구멍은 붙여놨는데 정령력이 적어서 완치는 어려워.

‘죽지 않을 거라는 거지?’

-어, 저대로 두면 몇 달 요양을…….

‘됐어. 그 정도면. 근데 저 사람은 치료하지 못하는 거야?’

난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팔이 잘린 채 누워 있는 김영균을 쳐다봤다.

다른 환자들과 달리 그는 여전히 몸을 떨며 고통스러워하는 기색이 여력 했다.

-마지막에 하려고 남겨 둔 거야. 팔 들어서 원래 있던 곳에 갖다 대. 나머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응.’

난 천천히 걸어가 팔을 집어 들었다.

아쿠아 워터.

푸른 바다처럼 투명하고 맑은 물방울이 상처를 감쌌다.

마치 청명한 하늘의 따사로운 햇살처럼 포근한 기운이 감돌았다.

“으읔. 손이. 손이 움직여요.”

김영균이 고통스런 표정을 소리를 질렀다.

아프긴 하지만 붙긴 잘 붙었나 보다.

난 조심스레 손을 올려 눈에 감긴 붕대를 풀어 주었다.

“내 팔이…….”

주르륵.

김영균이 자신의 팔을 보며 뜨거운 눈물을 쏟아 냈다.

‘쇼크 받을까 봐 가려 놓은 거였구나.’

그의 눈은 멀쩡했다.

마장동에서 일할 때 들은 기억이 있었다.

칼에 베였을 때 지혈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이나 환자가 충격을 받지 않게 눈을 가려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털썩.

‘이제 된 건가?’

사망 선고를 받았던 헌터들을 치료한 난 바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밤새 술을 마시고 잠도 자지 않고 바로 조기 축구회에 나가 운동을 했을 때처럼 몸이 무겁고 머리가 지끈지끈했다.

‘다행이다.’

난 김영균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집안도, 학벌도, 재능도 없이 가진 거라곤 몸뚱이 하나밖에 없던 삶.

그런데 그 몸마저 장애가 생기면 설사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그의 남은 삶은 분명 더 고단했을 테니까.

당장 몸이 많이 힘들기는 하겠지만 누군가를 치료하고 살리는 행위. 생각 이상으로 뿌듯하고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해용 씨…….”

“해용이 형…….”

“해용이 형님…….”

장지원 마스터, 이부성, 치료를 받은 환자들과 간호를 하고 있던 헌터들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멍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S급 힐링이야!”

“S급이요?”

“어. 분명히 S급이야.”

장지원 마스터는 놀란 것도 모자라 경악스런 표정을 지으며 소리를 질렀다.

-힐링이랑은 격이 좀 많이 다른 건데?

허나 운디네는 마음에 들지 않는지 코끝을 찡그렸다.

짐작건대 일부 헌터들이 시전한다는 힐링 마법과는 뭔가 다른 종류인 듯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평생 은인으로 모시고 살겠습니다.”

“……?!”

김영균이 자리에서 일어나 성치 않은 팔로 내게 큰절을 했다.

너무 갑작스레 움직여 말릴 틀도 없었다.

당황스러웠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리 절을 받아 본 적은 처음이었기에.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굳이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그가 지금 나에게 얼마나 감사해하는지 다 느껴졌기에.

“정신계 각성을 했다고 짐작은 했는데 치료 능력을……. 그것도 S급이라니. 하늘이 우릴 버리지 않았구나.”

“마스터…….”

“잠깐만 있어 봐요. 너무 좋아서 그러는 거니까.”

“……네”

장지원이 다가와 날 부둥켜안고 놓아 주지 않았다.

사람들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인지하지 못했는데 운디네의 치료 능력이 꽤 많이 대단한 모양이다.

‘하긴 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냈으니.’

내가 판단에도 범상치는 않은 듯싶다.

“해용 씨, 아니 해용아.”

“네?”

“형이 말 놔도 되지?”

갑자기?

“네. 편히 말하세요. 저도 그게 편하니까.”

“그래. 내 동생. 고맙다. 정말 고마워. 넌 우리 태백산맥 길드의 은인이다. 이 은혜 평생 잊지 않으마.”

“아니에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에요.”

숨 막힌다.

좀 떨어져 이 양반아.

오랜 시간 형제처럼 지냈던 헌터들이 죽을 위기에 빠졌다가 살아나서 좋은 건 알겠는데 산적처럼 생긴 장지원 마스터와 계속 안고 있는 건 사양하고 싶은데 차마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흑흑. 형 감사해요. 이런 능력까지 각성했으면서 저희 태백산맥 길드에 남아 주셔서.”

이부성마저 내 뒤로 다가와 백 허그를 해 왔다.

나를 안은 상태에서 장지원과 이부성은 눈물, 콧물을 쏟아 냈고 어깨가 금세 흥건해졌다.

그리고 나 역시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벌써 두 번째였다.

너무 좋아 이렇게 눈물을 흘리는 게.

* * *

“해용아.”

“네, 마스터. 무슨 할 말 있으세요?”

밖으로 나와 잠시 찬바람을 맞으며 쉬고 있는데 장지원이 굳은 표정을 지으며 내게 걸어왔다.

짐작건대 그의 입에서 나올 말이 그리 듣기 좋은 소식은 아닐 듯했다.

“그게 발키리 길드 마스터 상태가 많이 위중한가 보더라.”

“이런. 그럼 빨리 가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 줄 수 있겠어?”

“그러라고 얘기를 꺼내신 거 아니었어요?”

“그렇긴 한데. 너무 염치가 없어서…… 네 상태도 그리 좋지 않아 보이는데 다른 길드 사람들까지 치료해 달라고 하기가…….”

장지원이 잔뜩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게다가,

-정령력이 고갈됐어. 더이상은 무리야.

‘잠깐 앉아 있었더니 조금 차오른 것 같은데 잘못 느낀 거야?’

-차오르긴 했는데 계속 마법을 쓰는 건 체력적으로 부담을 줄 수 있어. 오늘은 휴식을 취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운디네도 휴식을 취하라며 경고를 했다.

‘지금 마법을 쓰면 나 죽어?’

-어?

‘계속 마법을 쓰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 건지 묻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가서 도와줘야 해.

-죽지는 않지. 근데 꼭 그럴 필요가 있는 거야. 태백산맥 사람들은 네가 가족처럼 여긴다는 걸 알고 있지만, 발키리 길드는 아니잖아? 내가 잘못 느낀 거야?

‘아니야, 맞아. 발키리 길드 사람한테는 아무런 감정이 없어.

-근데도 도와주겠다고? 네 몸을 축내면서까지?

운디네가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 그런지 지금 내 마음을 이해하긴 힘든 모양이다.

‘살릴 수 있으니까.’

옆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있고 내가 살릴 수 있으면 도와주는 게 당연한 것이다.

게다가 발키리 길드 마스터는 생판 남도 아니지 않은가.

비록 서로 필요에 의해 협력을 하는 사이였지만 그녀가 없으면 우리의 남은 행보가 더 위태로워지기도 했고.

“조금 힘들긴 한데 죽을 정도는 아니에요.”

난 장지원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해야 그가 안심할 것 같았다.

“정말 괜찮은 거지? 정 힘들면…….”

“걱정하지 마세요. 몸에 무리 가지 않게 쉬엄쉬엄할게요.”

“……그래. 애들도 아니고 자기 몸 관리는 알아서 하겠지.”

장지원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길을 앞장섰다.

그가 보기에도 내 얼굴이 많이 안 좋아 보이는 거 같았지만 나와 같은 마음인 듯했다.

나야 조금 아프고 힘들 뿐이지만 내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은 지금 사경을 헤매고 있다.

애초에 갈지 말지 고민을 하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무슨 일이시죠?”

발키리 섹터에 다다르니 보초를 서고 있던 헌터 두 명이 경계 어린 표정과 함께 손을 내밀며 길을 막아섰다.

“마스터님께서 위중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치료를 도와주려고 왔습니다.”

“성의는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네?”

“저희 쪽도 보조해 줄 인원은 많아요. 굳이 태백산맥 마스터님까지 오셔서 손을 거들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S급 힐러입니다.”

“네?”

“옆에 있는 이 친구가 도우려고 찾아온 거예요.”

“그럼 지금 그 말은 이분이 S급 힐러라는 건가요? 제가 지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요?”

약간은 귀찮은 듯한 분위기마저 풍기며 길을 막아섰던 헌터가 불신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네. 맞아요. 헌터 협회에 가서 측정해야 정확하겠지만, S급 힐러가 확실합니다.”

“그걸 마스터님께서 어떻게 확신하죠? S급은커녕 한국에는 A급 힐러조차 없는데?”

“내장이 파열돼서 곧 숨이 넘어가려는 환자를 살려내는 걸 제 눈으로 봤으니까요.”

“그 말이 사실인가요?”

“제가 여기까지 와서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죠. 이 친구 덕분에 현재 저희 길드는 중상자들이 다 고비를 넘긴 상태입니다.”

“헐……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상부에 보고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경계를 섰던 헌터가 안으로 들어갔고 이내 그녀와 함께 서너 명의 헌터들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금빛 팔찌.

왼쪽 팔목에 지휘관의 표식이 있는 걸 보니 발키리 길드의 간부들인 듯했다.

“마스터님.”

“부마스터님이 나오셨군요.”

“태백산맥에 S급 힐러가 있다는 말이 사실인가요?”

“네. 여기 이 친구입니다.”

찌릿.

발키리 길드 부마스터 박민정.

그녀가 사나운 얼굴을 하고선 날 위아래로 훑어봤다.

‘음?’

그녀의 시선이 머무르는 부위마다 뭔가 간질간질한 것이 느껴졌다.

-오! 이 아이 마나를 제법 익숙하게 다르네.

‘지금 이게 마나야?’

-어. 지금 네 몸을 훑어보려고 하는 모양이야. 앙큼한 아이네. 허락도 없이 마나를 흘려보내고.

운디네가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박민정을 쳐다봤다.

-이제 갓 익스퍼트 중급에 올라간 모양인데 그만 까불라고 전해줘.

‘익스퍼트?’

「소드 유저 E,F

익스퍼트 하급 D

익스퍼트 중급 C

익스퍼트 상급 B

익스퍼트 최상급 A

소드마스터 S」

.

.

.

-너희 세계 계산으로 치면 C급 정도 되는 아이야.

머릿속으로 운디네의 지식이 다시 한번 전달됐다.

그리고 이내,

“헛, 험.”

박민정이 신음 소리를 내며 코끝을 찡그렸다.

짐작건대 운디네가 그녀에게 뭔가 한 듯했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다급해서 실례를 저질렀네요.”

박민정이 두 손을 공손히 모아 고개를 숙이며 내게 사과를 해 왔다.

-처음이니까 봐준다고 그래. 다음에 또 그러면 이 정도로 안 끝난다고 전해줘.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뭐. 그럼 이제 들어가도 되는 건가요?”

“네. 제가 안으로 모실게요. 근데 마스터님은 여기서 기다리셔야 할 것 같네요.”

“같이 가면 안 되는 건가요?”

“죄송해요. 힐러 님이라면 몰라도 다른 분은 입장을 시켜 드리기가 곤란하네요.”

박민정이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봤다.

“치료에 꼭 필요한 사람이 아니면 남자들은…….”

“아…… 네, 알겠습니다.”

난 이해를 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스터, 그럼 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안 자고 기다릴 테니까 치료 다 하면 지휘 막사로 와.”

“네. 알겠어요.”

난 장지원과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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