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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17화 (17/255)

17화. 주먹밥

헌터들이 나무를 하는 사이 난 그린 피쉬랑 바이올렛 피쉬를 손질해 요리를 시작했다.

“부성아, 밥 좀 데워 줄래.”

“밥은 왜요?”

“주먹밥 좀 만들어 주려고.”

“흠…….”

그린 피쉬 1마리.

바이올렛 피쉬 1마리.

원래 계획은 회를 떠서 장지원 마스터랑 간부 몇몇에게만 나누어 주려고 했었는데 내가 갑자기 주먹밥을 만든다고 하니 이부성이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헌터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려고.”

“그린 피쉬랑 바이올렛 피쉬도 헌터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준다고요?”

“어. 그게 맞는 것 같아. 가뜩이나 서운해하는 사람들한테 두 번 소외감 느끼게 하고 싶지 않네.”

난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세상에 먹을 것 갖고 차별하는 것만큼 치사한 것도 없었다.

당하는 입장에서 그만큼 서러울 때도 없었고.

하다못해 공짜로 주는 것이라도 말이다.

명절 연휴, 정규직 사원에겐 한우나 과일과 같은 비싼 선물 세트를 주고 비정규직 사원한텐 스팸이나 김, 멸치 세트를 주었던 회사들.

지난 날, 스팸 세트를 손에 들고 가며 그렇게 회사 욕을 했으면서도 막상 내가 그 위치가 되니 나도 모르게 우선순위를 두고 사람을 나누고 있었다.

난 그런 사람들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형이 왜 그러는지는 알겠는데 그렇게 나눠 먹으면 효험이 있을까요?”

“흠…….”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봤다.

「그린 피쉬.

속도 상승 50% (지속 시간 1시간) 」

「바이올렛 피쉬

속도 상승 50% (지속 시간 1시간)

*그린 피쉬와 중복 가능 」

혼자 먹었을 때 100%

둘이 먹으면 50%

넷이 먹으면 25%

사십 명이 먹으면 2.5%

경계 근무와 부상으로 인해 빠진 인원이 있으니 골고루 나누어 먹이면 대략 2.5% 정도 속도가 빨라질 듯했다.

짐작건대 수치상으로 봤을 땐 별반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차라리 처음 계획했던 것처럼 몇몇 사람에게만 나누어 주는 것이 더 효율이 높을 거 같았다.

“형이 생각해도 이건 아닌 것 같죠? 옐로 아이는 그렇다 치고 그린 피쉬랑 바이올렛 피쉬는 활용하는 방법에 따라 정말 큰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거 아시잖아요.”

“어. 알지. 근데 어떡하지? 그걸 알면서도 나누어 주고 싶은데?”

난 이부성의 눈을 지그시 쳐다봤다.

어쩌겠는가.

그렇게 하는 건 내 마음이 불편한 것을.

“나누어 주고 싶으면 나누어 줘야죠. 저도 사실 좀 그렇긴 했어요. 다 같은 식구들인데 누군 주고 누군 안주면 의 상하잖아요.”

이부성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전투 식량에 들어 있는 밥을 꺼내 발열 끈을 잡아당겼다.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사실 그도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었다.

“형, 근데 왜 하필 주먹밥이에요? 낮엔 날씨가 더워서 까딱했다간 쉴지도 모르는데.”

“그냥 옛날 생각이 나서. 나 군대에 있을 땐 훈련할 때 주먹밥 많이 먹었거든. 그리고 할머니 생각도 나고 해서.”

“할머니요?”

“어. 나 어렸을 때 생선을 안 먹어서 할머니가 자주 해줬었거든.”

“낚시를 그렇게 좋아하시면서 생선을 안 드셨다고요?”

“어. 그때는 어려서 그런지 너무 지겨웠거든.”

인천 화수동.

연안 부두가 인근에 있어서 그런지 유독 동네에 배를 타시는 분들이 많았고 돌아올 때마다 가자미와 고등어와 같은 잡어들을 나누어 주곤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참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때는 일 년 열두 달 밥상에 올라오는 생선이 그렇게 싫었다.

흰살 생선 주먹밥.

그래서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게 주먹밥이었다.

생선을 그냥 구워서 주면 먹지 않으니 밥에 섞어 같이 볶아 주신 것이었다.

그럼 난 생선이 들어가 있는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고.

생선을 싫어했던 게 아니라 뻔히 집안 형편이 어려운 걸 알면서도 치기 어린 마음에 투정을 부린 것이었다.

당근, 대파, 버섯. 마늘…….

어린아이 입맛에 맞지 않는 재료들만 잔뜩 들어갔는데도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남아 있으니 말이다.

‘내가 맛있게 먹으면 할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헌터들도 좋아하겠지?’

요리해서 길드 사람들 끼니를 챙기다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이 할머니, 아니 어머니의 마음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듯했다.

처음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왔을 뿐인데 어느샌가 정이 쌓이기 시작했고 지금은 돈 버는 것보다 걱정이 앞섰다.

‘형님들! 몬스터 못 잡아도 되니까 다치지 말고 돌아오세요.’

첫날 이부성이 레이드를 나가는 헌터들에게 했던 인사가 다시 떠오를 만큼.

비록 2.5%밖에 빨라지지 않겠지만 그렇게 조금이나마 능력이 향상돼서 최대한 다치질 않길 바라며 뭐라도 챙겨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 * *

나무를 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헌터들이 레이드에 나가기 위해 입구에 정렬했고 난 일일이 한 명씩 찾아가 주먹밥을 나누어 주었다.

“오! 오늘은 전투 식량이 아니네요?”

“와우! 드디어 전투 식량에서 해방되는 건가?”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물리기 마련이라 그런지 고작 주먹밥을 해 줬을 뿐인데 헌터들이 모두 함박웃음을 지으며 주먹밥을 건네받았다.

“형님이 오시니까 끼니때마다 제 입이 호강하네요. 정말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호강은 무슨. 레이드 갔다 오면 더 맛있는 거 해 줄 테니까 다치지 말고 다녀와요.”

“네, 알겠씀돠!”

“근데 로프가 보이지 않네요?”

“네?”

김영균 헌터.

맨 후미에서 주먹밥을 건네받은 사내가 당황스런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허리춤을 매 만졌다.

“하하, 잘 쓰지 않아서 깜빡한 모양이네요.”

“이런. 잠깐만 기다려요. 제가 금방 갖다줄게요.”

난 부랴부랴 막사로 뛰어가 로프를 가져왔다.

“자! 여기요.”

“가, 감사합니다. 굳이 이렇게 가져다주실 필요까지는 없는데. 잘 쓰지도 않는데 번거롭기만 해서 다른 헌터들도 잘 안 가지고 다니거든요.”

어머니의 마음이 이런 걸까?

그전에는 잘 보이지 않더니 오늘따라 헌터들의 장비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비상용 로프와 후레쉬, 단검, 지혈제 등등.

“귀찮아도 챙겨 가세요. 위급 상황이 생기지 않는 게 제일 좋겠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모르는 거잖아요.”

난 헌터들 한 명, 한 명을 살피며 다시 한번 장비 체크를 도와줬다.

매달 이십만 원씩 2년 동안 꼬박 보험료를 내다가 아픈 데도 없고, 사는 것도 빠듯해서 해지했더니 바로 다음 날 맹장이 터져 병원에 입원하는가 하면,

명절 때 산에 가기 위해 친구 차를 빌리며 항상 하루짜리 보험을 들다가 몇 년째 별일이 없어 딱 한 번 안 들었는데 교통사고가 나고…….

.

.

.

징크스도 아니고 평소 땐 잘하다가 잠깐 방심하면 꼭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았다.

“해용 씨, 이제 됐죠? 출발해도 될까요?”

“네.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다들 살짝 귀찮아하는 기색이 있긴 했지만 난 그때서야 안심하고 손을 흔들 수 있었다.

* * *

“부성아, 우리 30분만 쉬었다가 낚시 가자.”

“커피 한 잔 타올까요?”

“좋지. 같이…….”

“제가 타올게요. 새벽부터 일어나서 여태 쉬지도 못하셨는데 잠깐이라도 편히 앉아 계세요.”

“고마워.”

헌터들을 마중하고 나서 난 바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밥 하는 것도 만만치가 않구나.’

예전엔 취사병이나 전업주부들을 보면 여유롭고 편해 보여 부러울 때가 있었는데 직접 해 보고 나서야 잘못된 생각이란 걸 깨달았다.

원양 어선, 과수원, 열처리 공장, 정육 코너…….

그동안 직장을 옮겨 다니며 했던 일 중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꽤 심신을 피로하게 했다.

“저 사람들은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지?”

김성준, 나현지, 윤다영.

이부성과 함께 막사 앞에 앉아 티타임을 즐기고 세 사람이 베이스캠프 입구를 서성거리는 게 보였다.

“낚시 가방을 들고 있는 것으로 봐선 낚시를 하러 가려나 본데 혹시 저희랑 같이 가려고 저러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래? 그럼 그냥 같이 가자고 하면 되잖아?”

“그러니까요. 그래서 저도 그냥 지켜만 보는 중이에요. 다른 일이 있나 해서.”

“흠…….”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세 사람을 쳐다봤다.

그런데 그때,

-내가 듣고 올게.

따스하고 포근한. 파란색 빛을 머금은 물방울이 내 몸을 감싸 옴과 동시에 운디네가 세 사람에게 다가갔다.

“낚시를 함께 하자고 하는 건 어려운 게 아닌데 부성이 몰래 해용이 형님한테 접촉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스카웃 제의를 하겠다는 게 아니고 좀 알아보겠다는 거예요. 왜 정신계 각성까지 해 놓고 헬퍼로 남아 있는지 알고 싶어서요.”

“그게 그 말이잖아. 알아보고 조건만 맞으면 데리고 오려고 하는 거 아니야?”

“끙…….”

“그냥 다 오픈하고 제의하면 안 될까? 부성이랑 나랑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하는 건 내키지 않아.”

거리가 제법 떨어졌는데도 마치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세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교감.

짐작건대 운디네가 보고 듣고 있는 것을 내게 공유해 주고 있는 듯했다.

김성준.

이부성을 위해 헌터들과 인상까지 찡그리며 언성을 높이니 그것을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의리가 있는 사내인 듯싶었다.

‘저 양반도 참 어지간히 융통성 없네.’

몰래 접촉하든. 아니면 대놓고 스카웃 제의를 하든. 어차피 결정은 내 몫이었다.

저대로 뒀다간 괜히 나 때문에 김성준이 헌터들의 눈 밖에 날 것 같아 난 자리에서 일어나 세 사람에게 걸어갔다.

“성준 씨, 혹시 낚시하러 가시나요?”

“네? 네…….”

“잘됐네요. 저희도 낚시하러 가려고 하는데 헌터들이 다 근무를 나가서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저희도 좀 데리고 가주세요.”

“아, 네.”

김성준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현지 씨랑 다영 씨는 오늘 근무이신가 보네요?”

“네?”

“이틀 전에 비번이었다고 하셨잖아요?”

“아, 맞아요. 근무예요. 근무. 지금 막 근무서고 와서 쉬는 시간인데 성준이 오빠, 낚시 간다고 해서 같이 따라가는 거예요. 경호도 하고 겸사겸사 저희도 낚시 좀 하려고요. 헤헤.”

“피곤하실 텐데 매번 고맙네요. 그럼 오늘도 신세 좀 질게요.”

난 나현지와 윤다영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사람이 당황하면 말이 많아지는 법이다.

나와 안면이 있어 길드에서 미션을 받은 모양인데 둘 다 애송이들이었다.

이직률 90%

한해 마트에 100명이 취직을 하면 90명이 다른 업종으로 전환을 하거나 업체를 바꾼다.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양념육 코너에 근무했던 사람이 다음날이 되면 월급 10만 원을 올려 받고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돈육 코너에서 근무하는 일도 허다했다.

허나 난 일이 힘들어서 관두는 직원이 있었을지언정 다른 업체에 직원을 뺏긴 경험은 없었다.

숱한 이직을 했던 난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기에.

그녀들과 나와 친분이 쌓이면 내가 발키리 길드로 가게 될 확률이 높을지 아니면 그녀들이 우리 태백산맥으로 오게 될 확률이 높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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