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장원
“민기야, 거기 더 파내야 할 것 같은데.”
“네. 알겠슴돠. 형님.”
베이스캠프로 돌아오니 헬퍼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나무에 도끼질하고 있었다.
‘밥도 안 먹고 다들 고생이네.
군대에서 통나무집을 만들어 본 경험이 있어 난 나무를 자르는 게 얼마나 힘들고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혈기왕성한 이십 대 초반의 병력 이십여 명이 투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예비군 교장에서 사용할 열 평 남짓한 집을 만드는데 보름이 되어서야 완성을 할 수 있었으니까.
“식사들 하고 하세요.”
“와! 안 그래도 국물이 생각났는데 제 마음을 어떻게 알고. 하하.”
지리탕을 끓여 놓고 모이라고 하니 헬퍼들이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일을 하다가 따듯한 국물을 해 주니 절로 군침이 도는 듯했다.
“크으. 죽이네요.”
“와! 진짜 끝내주네요.”
삼삼오오 모여 앉아 식사를 시작한 헬퍼들이 지리탕 국물을 마시고선 모두 감탄사를 자아냈다.
“부성아, 이거 무슨 생선으로 끓인 거냐? 국물이 진짜 장난 아니다. 속이 완전 뻥 뚫리는 기분이야.”
“맛있죠? 해용이 형님이 끓인 거예요. 옐로 아이라고 아주 귀한 생선을 넣어서요. 헤헤.”
“엥? 뭐라고? 설마 먹으면 활력을 올려 준다는 그 옐로 아이 말하는 거 아니지?”
“어라. 형님도 아시네요. 벌써 소문이 났군요. 맞아요. 그거. 어제저녁이랑 아침에 잡은 거 몽땅 넣고 끓인 거예요. 맛도 맛이지만 아마 원기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헐…….”
“…….”
“…….”
정적.
옐로 아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모두 숟가락을 멈추고 모두 멍한 표정을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이 귀한 걸 팔지 않고 왜 우리한테?”
“헌터들 먹이려고 끓인 건데 우리한테 좀 돌아온 건가?”
“그 반대예요. 해용이 형이 형님들 고생하신다고 끓이신 건데 덕분에 헌터들이 얻어먹는 거예요.”
“헐…….”
“…….”
“…….”
헬퍼들이 놀란 것을 넘어 마치 혼이라도 나간 사람들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무래도 뭔가 설명을 해야 제대로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맛있고 몸에 좋은 게 생기면 내 가족부터 챙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보통 그런 것들이 생겼을 때 내다 팔 생각부터 하지는 않잖아요?”
“그렇긴 한데…….”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귀하지 않나요? 가족을 먼저 챙기는 건 맞는데 보통 산삼이나 정말 값이 많이 나가는 것들은…….”
“네. 맞아요. 일반 생선도 아니고 옐로 아이가 많이 귀하기는 하죠. 헌데 마스터는 그깟 돈보다 여러분 건강이 더 소중하다네요.”
난 빙그레 웃으며 헌터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 장지원을 쳐다봤다.
“주면 그냥 맛있게 먹어 이것들아. 좋은 걸, 해 주는데도 뭔 그리 말이 많아.”
“……네”
“……네”
장지원 타박 어린 말에 사람들이 마지못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숟가락을 움직였다.
그의 말처럼 맛도 좋고 몸에 좋은 재료로 음식을 해 주었는데도 사람들의 표정이 복잡하기 이룰 데가 없었다.
* * *
“잘 먹었습니다. 형님.”
“네.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네요.”
“잘 먹었습니다. 형님.”
“간은 잘 맞았죠?”
“네. 진짜 엄청 맛있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헬퍼들과 눈을 마주칠 때마다 내게 감사 인사를 해 왔다.
“다들 어지간히 고마운가 보네요.”
“그러게. 근데 왜 다 나한테 고맙다고 하는 거지?”
난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봤다.
분명 마스터가 지시해서 끓였다고 했는데 장지원에게 다가가서 인사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마스터 그런 캐릭터 아니거든요.”
“응?”
“그동안 같이 지낸 세월이 얼마인데 형들이 마스터를 모르겠어요. 비싼 거라고 하면 입에 들어 있는 것도 빼내서 내다 팔 사람이거든요.”
“끙…….”
“그래서 다 형한테 인사하는 거예요. 형이 아무리 마스터가 시켰다고 해도 믿을 사람이 없거든요.”
“아…….”
난 고개를 끄덕이며 장지원을 쳐다봤다.
“야, 배윤호. 나한텐 고맙다고 안 하냐?”
“고맙습니다.”
“뭐야? 끝이야?”
“고맙다고 하라면서요?”
“새끼야. 진심을 담아서 해야지. 진심을.”
“아…….죄송해요.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마스터.”
“썩을 놈들. 이런 놈들이 뭐 예쁘다고 그 귀한 것을 한 끼 식사로 없애 버리는 거야. 아깝게.”
장지원이 투덜거리며 헬퍼들에게 시비를 걸고 다니며 투덕거리는 게 보였다.
허나,
‘진정한 친구.’
장지원도 그렇고 헬퍼들도 그렇고 그들의 눈은 모두 웃고 있었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속으로 정말 고마운데 오래된 친구나 친한 친구한테는 왠지 고맙다고 말하는 것이 남사스러울 때가
내가 보기엔 마스터와 헬퍼들의 사이가 그렇게 보였다.
“좋다.”
난 빙그레 웃으며 가만히 그들을 지켜봤다.
비록 당장 돈을 벌지 못해도 가슴이 간질간질한 것이 돈을 번 것 이상으로 값지게 쓰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우르르 쾅쾅!
우르르 쾅쾅!
별안간 숲속에서 천둥 번개라도 치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뭐지? 몬스터라도 쳐들어온 건가?”
“저 새끼들은. 나무를 쓰러뜨릴 거면 말을 하고 해야 할 거 아니야. 깜짝 놀랐잖아. 해용 씨 너무 놀랄 것 없어. 애들이 나무하러 간 거니까.”
“네? 애들이요?”
난 의문 어린 표정을 지으며 숲속을 바라봤다.
가만 보니 태백산맥 헌터들이 어슬렁거리는 게 보였다.
그들이 움직일 때마다 녹색으로 어우러진 숲과 나무 사이로 황토색 맨살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윤호 형님. 이거 여기다가 두면 되죠?”
“어, 고마워.”
헌터들이 모두 커다란 통나무를 양쪽 어깨에 들쳐 메고 걸어오는 게 보였다.
같은 길이에. 같은 두께의 통나무.
순식간에 100그루가 넘는 통나무가 베이스캠프 한편에 쌓이기 시작했다.
“해용이 형, 어째 저기 집터가 점점 넓어지는 것 같지 않아요?”
“네가 보기에도 그렇지?”
헌터들이 움직이자 헬퍼들도 다시 공사를 시작했는데 평탄화 구역을 더 넓히는 게 보였다.
난 의문스런 표정을 지으며 헬퍼들에게 다가갔다.
“어떠세요? 이 정도면 넓이는 충분할 것 같죠?”
“충분한 게 아니라 너무 큰 거 아닌가요? 이대로 지으면 나무가 장난 아니게 들어갈 것 같은데?”
난 염려 섞인 표정을 지으며 집터를 바라봤다.
그냥 작은 오두막 정도를 생각하고 집을 지어 달라고 한 것인데 그대로 두면 장원이라도 지을 기세였다.
평탄화 작업을 하고 통나무로 외벽부터 쌓으려는 모양인데 넓어도 너무 넓었다.
저렇게 지으려면 통나무 최하 수백을 넘어 천 단위 이상으로 필요할 것 같았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크게 지으나 작게 지으나 힘은 비슷하게 들어요.”
“……?”
“돈이, 아니 땅이랑 나무가 없어서 크게 못 짓는 거지. 그 두 가지가 있으면 크기가 좀 커지는 건 일도 아니에요. 헌터들이 저리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주니 한결 수월해졌네요.”
배윤호 헬퍼.
구릿빛 피부에 오밀조밀한 근육들.
딱 봐도 밖에서 꽤 힘쓰는 일을 했을 법한 포스를 가진 사내가 하얀 이를 보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헌터들은 갑자기 왜 저러는 거죠? 조금 있으면 레이드에 나가야 할 텐데 저렇게 벌써 힘을 빼면 안 좋을 텐데…….”
“형님이 저흴 챙기는 모습이 부러웠나 보더라고요. 그래서 시위 하는 것 같아요. 자기들도 좀 봐 달라고.”
“엥?”
“형님이 그러셨다면서요. 헌터들 주려고 끓인 게 아니라 저희 주려고 끓인 건데 헌터들이 꼽사리로 먹게 되는 거라고.”
“끙! 그런 식으로 얘기하지는 않았는데…….”
“네. 알죠. 제가 원래 말버릇이…….하하. 아무튼 전 듣기 아주 좋았지만 헌터들은 좀 섭섭했던 모양이더라고요.”
“이런…….”
“저렇게까지 하는데 다음 식사 자리에선 눈길 좀 주세요. 쓰담쓰담도 해 주고.”
“네. 그래야 할 것 같네요.”
난 빙그레 웃으며 헌터들을 바라봤다.
헌터들이 어려워 나도 모르게 좀 데면데면하게 군 것인데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앞으론 더 잘해 줄게요.’
두근두근.
쿵덕쿵덕.
빌어먹을 대한민국에서는 내 이름으로 된 땅 한 평이 없었는데 밥 한 끼 차려 주고 백 평이 넘는 집이 생긴다고 하니 몸에서 기분 좋은 떨림이 느껴졌다.
예전부터 늘 꿈꾸었던 삶이었다.
바닷가 옆에 그럴싸한 펜션을 지어 놓고 낚시도 하고 농사도 지으면서 살면 얼마나 행복할까. 하고 말이다.
게다가 사무직 직원들은 자기 책상도 있고 컴퓨터도 있지만, 현장에서 계속 근무했던 난 하다못해 핸드폰 충전을 하기 위해 콘센트를 쓰는 것조차 눈치를 살폈던 삶을 살아서 그런지 더 감회가 새로웠다.
글썽글썽.
주르륵.
너무 좋아서 그런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처음이었다.
매번 슬프고 서럽고 억울해서 눈물을 흘렸는데 생애 처음으로 기뻐서 눈물을 흘릴 정도로 기분이 너무 좋았다.
“형…… 왜 그러세요?”
눈물을 흘리면서 웃고 있어서일까.
이부성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봤다.
“너무 좋으니까 눈물이 나네.”
“좋아서 우는 거 맞죠?”
“왜? 안 좋아 보여?”
“아무리 생각해도 저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생선만 내다 팔면 여기가 아닌 지구에 더 근사한 집을 살 수도 있고 지금처럼 허드렛일도 안 해도 되잖아요.”
“그렇긴 하지.”
난 이부성의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헌데, 난 지금이 좋은 걸 어쩌겠는가.
돈을 좀 적게 벌어도 이편이 내 정신을 더 풍요롭게 해 주고 있었으니까.
“너도 내 나이 되면 알게 될 거야.”
난 이부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돈이 없으면 사는 게 좀 불편하긴 하지만 많다고 마냥 행복한 것도 아니었기에.
예나 지금이나 난 꿈이 그리 크지 않았다.
그냥 월세 걱정 없이 집주인 눈치 안 봐도 되는 내 집 하나. 거기에 가게 하나까지 더 있으면 금상첨화였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기쁘면 같이 웃고 슬프면 같이 울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었다.
게다가 난 지금 하는 일을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처럼 자고로 집안이 편안해야 바깥일도 잘 되는 법이었으니까.
헌터들의 태도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자고로 옛날부터 밥해 주는 사람한테는 잘 보여야 하는 법이었다.
그래야 하다못해 계란 프라이라도 하나 더 얻어먹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