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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짓는 영주님-15화 (15/255)

15화. 형아

‘운디네, 낙지랑 새우도 필요해. 찾아줘.’

-응, 알았어.

옐로 아이 10마리.

지리탕에 넣을 생선을 넉넉하게 잡은 난 다른 해산물도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일반 매운탕을 끓일 때는 생선이랑 야채만 있어도 충분하지만, 고추장과 고춧가루를 사용하지 않고 끓이는 지리탕은 생선만 넣으면 조금 심심한 맛이 있었다.

“형님, 그렇게 좋으세요?”

“그래 보여?”

“네. 제가 보기엔 어제 그린 피쉬랑 바이올렛 피쉬의 값어치를 들었을 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은데요?”

“어. 그때보다 더 좋아.”

난 이부성을 보며 봉실봉실 미소를 지었다.

누군가 챙겨야 할 사람이 있다는 거.

그동안은 아버지 말고는 내가 챙겨야 할 사람이 없어 몰랐는데 막상 수십 명의 헌터와 헬퍼들을 챙기려고 하니 평소보다 낚시를 하는 게 더 즐겁게 느껴졌다.

“부성아.”

“네. 형님.”

“우리 물고기 잡으면 외판하지 말고 다 우리가 소비하자.”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어제 마스터 얘기 잊으셨어요? 임자만 제대로 만나면 수억을 달라고 해도 준다는 말?”

“안 잊었어. 근데 그렇게 팔려면 크리스털 경매장에 맡겨야 한다며. 내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그럴 바엔 그냥 우리가 소비하고 길드의 전투력과 명성을 높이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

“흠……. 계획하시는 게 있는 거예요?”

“어. 한번 들어볼래?”

“네.”

끄덕끄덕.

이부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바로 했고 난 어젯밤 고민 끝에 내린 결심, 아니 그 전에 그를 이해시키기 위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옐로 아이.

그린 피쉬.

바이올렛 피쉬.

당장 이것들을 밖에다 내다 팔면 큰돈을 벌 수 있다. 허나 넓게 생각하면 그로 인해 우리는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는 길드의 전투력을 상승시켜주는 꼴이었다.

생선의 효능을 빌리면 더 안전하고 손쉽게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을 테니까.

“생선을 길드에서 소비하면 당장은 좀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겠지만, 그로 인해 더 많은 헌터와 헬퍼들이 우리 태백산맥에 들어오게 된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수확물이 나오지 않을까?”

“흠…….일리가 있긴 하네요.”

내 설명을 들은 이부성이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장부를 보니 길드에서 월급을 받는 헬퍼와 달리 헌터들은 레이드에 참여해 자신이 사냥한 만큼 돈을 가져간다.

그리고 수익의 30%를 길드 비로 상납하고.

지금은 비록 인원이 적어서 길드 비가 얼마 걷히지 않고 있지만, 인원이 많아지면 그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도 있었다.

사람이 많아지면 사냥물이 늘어나기도 하겠지만 이곳이 아닌 다른 게이트로 넘어가 더 상위 몬스터를 사냥할 수도 있을 테니까.

“옐로 아이는 무료로 공급하고 그린 피쉬랑 바이올렛 피쉬만 백만 원씩 받고 공급을 하면 될 것 같은데 네 생각은 어때?”

“흠…… 형님 말처럼만 된다면야 외판을 하는 것보다 더 이익을 볼 수도 있겠네요. 헌터들이 사냥을 많이 할수록 길드의 이익이 늘어날 테니까요. 근데 그렇게 하면 형님만 더 손해를 보는 것 같아서 그게 좀…….”

“난 태백산맥과 나를 따로 생각하지 않아. 근데 네가 정 마음에 걸린다면 물고기 정산 금액과 별도로 내게 길드 수익을 좀 나눠 주면 되지 않을까?”

“아. 그런 방법이 있었네요. 근데 얼마나 드려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네요.”

“물고기 정산을 하는 것처럼 팔 때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건 어려운가?”

“흠…….”

“그 대신 기존에 태백산맥이 벌던 수익을 넘어섰을 때부터 받는 걸로 할게.”

“……길드 차원에서 봤을 때 거부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네요.”

끄덕끄덕.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이부성이 날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의 말처럼 혹여나 내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태백산맥은 손해 보는 것이 없었다.

WINWIN.

밤새 고민하며 태백산맥은 물론이고 나 역시 손해 보지 않는 방법을 연구한 것이다.

아무리 목적이 있고 사람들이 좋아서 이러는 것이었지만 손해를 보면서까지 하게 되면 기껏 다 잡았던 마음이 변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전 형님이 저희를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계실 줄은 몰랐어요.”

“우리.”

“네?”

“저희가 아니고 우리라고. 말했잖아. 난 태백산맥과 나를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아, 죄송해요.”

“죄송할 것까지야. 근데 조금 섭섭할 뻔하긴 했어. 왠지 순간 남처럼 느껴졌거든.”

“아니에요.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저희라는 단어가 입에 붙어서 저도 모르게 나온 거예요.”

이부성이 손사래를 치며 얼굴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식 놀라긴.’

내가 섭섭하다고 하니 진짜인 줄 아는 듯싶었다.

“앞으론 그러지 마. 그럼 나 정말 삐질지도 몰라.”

“네. 형님.”

“형.”

“네?”

“형이라고 해봐. 그럼 용서해 줄게.”

“끙…….”

이부성이 앓는 소리를 내며 날 쳐다봤다.

“왜 싫어? 난 형이라고 하는 게 더 친근감 있고 듣기 좋을 것 같은데?”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자꾸 형님이라 부르니 거리감이 있어 이런 일이 생기는 듯했다.

말을 놓으라고 해도 놓지 않으니 호칭이라도 바꿔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왠지 다른 헬퍼들한테도 형님이라 하고 나한테도 형님이라 하니 기분이 별로이기도 했고.

난 이부성에게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되길 원했다.

“혀, 엉…….”

얼굴 터지겠네.

형이라는 말이 뭐 그리하기 힘든지 이부성의 얼굴이 마치 사과처럼 새빨개졌다.

‘해용이 형아! 놀자!’

지금은 뭐 하고 사는지조차 모르지만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은 참 잘도 부르곤 했는데 말이다.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해용이 혀, 엉”

“그래. 동생.”

“휴우.”

“지금은 어색하겠지만 차차 좋아질 거야.”

“네. 형.”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쉬는 모습을 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제 보니 참 귀여운 구석도 있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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