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결심
“마스터, 그럼 물고기는 어느 경매장에 내놓는 게 좋을까요?”
“흠……. 수수료가 비싸긴 하지만 크리스털이 제일 낫지 않을까? 그래도 거기가 큰 손도 많고 제일 믿을 만하잖아?”
“네, 제가 생각해도 거기만 한 데가 없을 것 같아요. 해용이 형님 생각은 어떠세요?”
장지원 마스터와 대화를 주고받던 이부성이 날 지그시 쳐다봤다.
경매장.
나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노멀-매직-레어-유니크-레전드-갓-심연…….
레어 급 이상만 돼도 아이템의 값어치가 수천만 원을 호가해서 사고파는 게 쉽지 않으니 대신 거래를 대행해 주는 곳이 있다고.
허나,
“경매장마다 차이가 있는 건가? 좀 설명해 줄 수 있어?”
던전에 들어오기 전 수박 겉핥기식으로 공부를 한 거라 어떤 식으로 운영이 되는지 알지 못했다.
“네. 물론이죠. 거래소는 보통 두 가지 방식으로 위탁을 받아요. 하나는 경매를 해서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이 낙찰을 받는 거고 또 다른 하나는 판매자가 원하는 가격에 위탁 받아 판매를 대행해 주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흠…….”
“지금 제가 말하는 크리스털 경매장은 규모가 커서 두 가지 방법으로 운영을 하고 있고요. 다만, 보통 10% 정도 수수료를 떼는 다른 경매장과 달리 30%나 수수료를 떼어 가지만 그 대신 아레스 길드가 운영하는 곳이라 제일 안전하고 믿을만한 곳이에요.”
“다른 데 보다 20%나 수수료를 더 받는데 거기다 맡기겠다고?”
주유소, PC방, 커피숍, 백화점. 할인 마트.
그동안 수없이 많은 매장에서 장사한 경험이 있던 난 30%라는 말에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할인점은 물론이고 백화점에조차 하루가 멀다고 20%다, 30%다 세일해서 50%나 해야 제대로 할인을 해 주는 거구나 하지만, 30%만 해도 정말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천 원짜리 우유를 700원에 판다고 하면 고작 300원 깎아 주는 거라 싸게 느껴지지 않지만, 정상가가 천만 원이 됐을 땐 얘기가 달라졌다.
“수수료가 비싸긴 하지만 그만큼 확실한 곳이에요. 고가의 물건을 판매하다 보면 이래저래 불순분자들이 나타나 사고가 생기기 마련인데 크리스털 경매장이랑 거래하면 그런 일이 생기지 않거든요.”
“그래? 그건 왜 그러는 건데?”
“일전에 F급 헌터 한 명이 운 좋게 레전드 아이템을 구해 크리스털 경매장을 통해 판매한 적이 있는데 울프 길드라고 질이 안 좋은 사람들에게 걸려 돈을 모두 빼앗긴 적이 있었거든요.”
“이런…….”
“어딜 가나 그런 종자들은 있기 마련이잖아요. 근데 그 울프 길드 사람들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어떻게 됐는데?”
“저희랑 비슷한 규모의 길드였는데 하루아침에 모두 소리소문없이 실종됐어요. 돈을 빼앗겼던 사람은 다시 돈을 찾았고요.”
“헐……그럼?”
“네. 자신들이 운영하는 경매장에서 거래한 건데 사고를 당하면 이미지가 안 좋아지니 아레스 길드에서 손을 쓴 거죠.”
“……다 죽은 건가?”
“그건 모르죠.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니까요. 죽었는지, 아니면 어딘가에 갇혀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심지어 한번은 어느 일반인이 집안의 가보를 크리스털 경매장에 내놓기 위해 가고 있다가 사업 실패로 인한 빚 때문에 사채업자한테 뺏긴 적이 있거든요.”
“설마 그 사람들도?”
“네. 듣기론 한국에서 가장 큰 조폭 집단이 운영하던 곳이라던데 사채업자들과 함께 그들도 모두 사라졌어요. 그때부터 크리스털 경매를 통해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판매하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요.”
“헐…….”
등골이 오싹했다.
얘기를 듣다 보니 혹여 생길지 모를 불상사보다 아레스 길드가 더 무섭게 느껴졌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바로 대답해야 해?”
“왜요? 별로 내키지 않으세요?”
“어. 크리스털 경매장이 안전한 건 알겠는데 그래도 30%나 떼 가는 게 너무 아깝네.”
“네. 알겠어요.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고민해 보세요.”
“어. 알았어. 너무 늦지 않게 대답할게.”
난 고민 어린 표정을 지으며 내 침소로 돌아왔다.
어깨에 무거운 돌이라도 올려놓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왕관을 쓰려는 자. 왕관의 무게를 견뎌 내라고 했던가.
이능이 생겨서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꽤 무거운 고민거리가 생겼다.
* * *
새벽 1시.
침대에 누운 지 몇 시간이 지났는데도 잠들질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워.”
백 번, 천 번을 생각해도 30%나 수수료를 주고 크리스털 경매장에 물고기를 위탁 판매하는 건 내키지 않았다.
물론 그들 딴에는 나름 보험서비스를 해 준다고 하지만 왠지 생돈 나가는 기분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백화점에 다녔던 기억 때문인 듯했다.
서울엔 위치한 백화점엔 보통 이천여 명 정도 근무를 하는데 그중에 백화점 소속 직영 사원은 채 10%가 되지 않았다.
나머지 천팔 명이나 되는 사원들은 모두 협력업체, 비정규직, 아르바이트생들이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화점에선 적게는 10%에서 많게는 30%까지 수수료를 떼어갔다. 그것도 영업 이익이 아니라 순수 매출에서 말이다.
물론 백화점을 짓기 위해서 수천억 원을 투자하겠지만 협력업체를 전전했던 내 입장에선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챙기는 것과 다름없게 느껴졌다.
“내가 직접 팔아야겠어. 더이상 내 노동력에 의한 대가를 다른 사람에게 뺏기고 싶지 않아.”
난 입술을 굳게 다물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그동안의 난 능력이 없어 현실에 타협하고 지배자들이 정한 규칙에 순응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레스 길드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태백산맥이 그런 힘이 생기면 되지 않겠는가.
‘전투력을 높이려면 일단 헌터 인원부터 늘려야겠지?’
헌터 인원.
헬퍼 인원.
레이드 여건.
어떻게 하면 태백산맥을 발전시킬지 고민을 하면서 내 정신은 조금씩 몽환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 * *
새벽 4시.
알람 소리도 울리지 않았는데 눈이 절로 떠졌다.
‘으윽, 냄새!’
밤새 잔뜩 땀을 흘린 모양인지 마치 오줌이라도 싼 것마냥 침상에 있던 이불이 누리끼리한 액체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빨리해야겠는데.”
난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운디네 덕분에 이제 굳이 피딩 타임에 맞춰 낚시를 갈 필요는 없었지만 할 일이 많았다.
샤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부글부글.
큰일도 치러야 했다.
그다지 먹은 것도 없는데 배 안에 뭐가 그리 꽉 차 있었는지 빼내도, 빼내도 한없이 나왔다.
“형님, 저 왔습니다.”
“들어와.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어.”
“주무시고 계실 줄 알았는데 일찍 일어나셨네요.”
“응. 저절로 눈이 떠지더라고.”
씨익.
난 이부성을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잠을 많이 자도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따갑고 몸과 머리가 무거웠는데 오늘은 몇 시간 자지 않았는데도 상쾌하기가 이룰 데가 없었다.
게다가,
“형님, 혹시 얼굴에 뭐 바르셨어요?”
“뭐가 묻었어?”
“잘생김이요. 오늘따라 왠지 얼굴에서 윤기가 나는 것 같아요.”
“네가 보기에도 그래 보여?”
내가 내 얼굴을 만지는데도 계속 만지고 싶을 만큼 촉촉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들었다.
-내가 얘기했잖아. 고생한 만큼 보답이 있을 거라고.
‘고마워. 이런 보답이었으면 진즉에 얘기하지. 그럼 조금 덜 투덜댔을 텐데.’
난 봉실봉실 미소를 지으며 거울을 쳐다봤다.
얼굴에 있던 기미와 주근깨 그리고 주름들이 다 사라지고 까무잡잡했던 피부톤도 하얗게 변해 있었다.
몸속뿐만이 아니라 피부가 좋아지니 외모도 10년은 젊어진 듯했다.
쪽.
나도 모르게 입이 거울로 갈 만큼.
오늘에서야 알았다. 거울 보는 게 이리 행복한 일인지.
그동안 살면서 거울은 면도나 할 때나 쳐다봤는데 지금은 봐도 봐도 또 보고 싶었다.
“형님, 자기애도 좋긴 하지만 그건 좀…….”
“하하. 미안. 보기 좀 그랬지?”
“아, 아니에요. 이해해요. 제가 만약에 형님이라도 그랬을 것 같아요. 외모도 정령 때문에 변하는 거죠?”
“어. 맞아.”
난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중하려고 했는데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채신없는 행동을 한 듯싶었다.
그런데,
“갈까?”
“네. 형님.”
“크크.”
“형님?”
“아, 미안. 미친놈 같지? 안 그러려고 하는데 계속 이러네.”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행복했다.
이능이 생긴 것을 떠나 잠들기 전 했던 고민과 결심으로 인해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얼굴을 비춰 눈을 찡그리게 하는 햇빛조차.
* * *
“일어나셨습니까. 형님.”
“잘 주무셨습니까!”
“여러분들이 이 시간에 왜?”
낚시하러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는데 태백산맥 헬퍼들이 나무 그늘에 앉아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형님이 집 지어 달라고 하셨잖아요. 낮에는 햇빛이 너무 세서 새벽이랑 저녁에 짓는다고 하시더라고요.”
“끙…….”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가 나왔다.
잊고 있었다.
장지원 마스터가 지어 준다고 했지만 결국 몸으로 움직여야 하는 건 헬퍼들이라는 걸.
나의 요구 조건 때문에 헬퍼들이 잠자는 시간마저 줄여야 한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야 피딩 타임에 맞춰 낚시를 다니다 보니 새벽에 일어나는 게 적응이 되었지만 그러지 않은 사람들은 깨나 곤욕일 테니까.
나 역시 공사장에 다닐 때 벽돌을 나르는 힘든 노동보다 새벽에 일어나는 것 자체가 더 서럽고 힘든 시절이 있어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 시간에 일어나서 일을 나가야 하는 거지?’
몸은 둘째치고 새벽 시간 특유의 적막함과 찬 공기는 사람을 센티해지게 하는 경향이 심했다.
그런데,
“미안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에이. 미안하긴요. 저희도 매번 찬바람 맞으면서 잠자기 불편했거든요. 형님 덕분에 이참에 저희도 따듯한 데서 자면 좋죠.”
“맞아요. 그런 말은 넣어 두세요. 오랜만에 이렇게 새벽 공기 마시면서 일어나니 좋기만 한걸요. 하하.”
헬퍼들이 웃음을 지으며 행복한 척을 했다.
누가 봐도 얼굴에 피곤함과 고단함이 한가득인데 말이다.
‘말이라도 고맙네.’
난 헬퍼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며 그윽하게 쳐다봤다.
같이 밥 먹고 잠자고 생활하며 함께 고생하고 있어서 그런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이들이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부성아.”
“네. 형님.”
“네 몸 상태는 어때?”
“저요? 저도 어제 옐로 아이를 먹어서 그런지 평소보다 몸이 많이 개운한 것 같아요.”
“그래? 확실히 효과가 있긴 있는 것 같지?”
“네. 던전에 들어오려고 몸 만들기 전보다 더 컨디션이 좋아요.”
“오케이. 그럼 오늘 아침은 옐로 아이 잔뜩 잡아서 지리탕을 끓여야겠다.”
“파는 게 아니라 탕을 끓이시겠다고요?”
“응. 집 지으려면 헬퍼들 힘들잖아. 든든하게 먹어야지.”
난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이부성을 쳐다봤다.
생면부지인 크리스털 경매장 사람들에겐 30%의 수수료를 주는 건 생각만 해도 아까웠지만, 이들에게는 물고기를 통째로 그냥 줘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정도 정이지만 헬퍼들의 체력이 좋아지는 만큼 태백산맥 길드의 전투력도 상승되는 것이기에.